맨발로 걷는 사람들
정성영
일요일이면 집 근처 산에 간다. 오늘은 6월 들어 두 번째 일요일이다. 짙푸른 신록의 싱그러운 숲길에는 많은 사람이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오가고 있었다. 원형으로 된 산책로는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오른쪽으로 도는 사람과 왼쪽으로 도는 사람들로 다양했다. 다들 가벼운 운동화 차림이거나 더러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도 보인다.
가끔은 팬티 바람에 달리기로 산책로를 따라 뛰는 사람도 있는데 대개 나이가 젊은 축이다. 하기야 걷기도 힘겨운 노인들이 뜀박질까지야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지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다양해서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들 건강에 관심이 많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나도 건강을 위해 매주 한 두 번쯤은 산에 간다. 하지만 나는 산책로를 따라 걷지는 않고 숲속에 자리 잡은 운동기구를 찾아간다. 산에 안 가는 날에는 집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고 아령으로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나 또한 나이 들어가며 건강문제에 관심이 많아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을 하느라고 노력은 하는 편이지만 건강이 어찌 꼭 내 의지대로만 되랴. 그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일 뿐이다.
내가 이용하는 운동기구가 있는 곳은 비포장의 흙길이고 비탈길이라 걷기에 그리 편한 곳은 아니다. 작년 여름만 해도 길이 안 좋아 그런지 왕래하는 사람들이 별로 안 보였던 곳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난 가을께부터 신발을 벗어들고 흙길을 걷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올봄부터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차츰차츰 맨발의 중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작년 가을쯤인가 어느 TV 방송에서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면 건강에 좋다는 프로가 방영한 뒤부터라고 생각한다.
방송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가뜩이나 백세 시대라는데 건강에 모두들 관심이 많아 뭐가 또 좋다 하면 너도나도 벌떼처럼 몰려드는 풍조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건강에 좋다 한들 이미 팔십을 넘어 구십을 바라보는 분들은 산길을 걷는다는 일이 쉽지 않다. 그나마 건강한 편인 70대 중반 정도의 노인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60대 정도의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겨울에는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햇발이 잘 들어오는 곳인데 어느 틈에 나뭇잎이 우거져 하늘을 가리고 컴컴할 정도로 그늘이 드리워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어 시원하다. 주변에는 아카시나무 밤나무 벚나무 등이 서로 어울려 아름드리로 자라고 있다. 이른 봄에 진달래가 피고 벚꽃이 피고, 아카시아꽃의 달콤한 향이 숲속에 안개처럼 서리더니 이어서 어느새 아카시아 꽃도 다 지고 요즘은 밤꽃 향이 한창이다.
짙푸른 나무 숲속에 앉아 있으면 고요한 물속에 들어와 앉은 것 처럼 마음이 평온하다. 다만 신발을 벗어들고 지나가거나 아주 가끔은 애완견을 앞세우고 흙길을 일부러 산책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넓은 산책로보다는 한가해서 더러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기도 좋다. 이따금 사교성있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기도 해서 고요한 숲속에 둘러서서 예기치 못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오늘도 90을 바라본다는 남자 노인 한 분이 내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 앉더니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커내 나도 운동을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러자 등산용 지팡이를 양손에 쥐고 맨발로 길을 가던 70대의 여성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비교적 몸이 날씬해 보이는 여성분이라 내가 호기심이 가서 “맨발로 걸으니 건강에 무슨 좋은 효과 좀 보셨나요“하고 물어 보았다.
대답인 즉 체중이 3~4키로 빠지고 식욕이 좋아졌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그 노인은 별로 뚱뚱한 편도 아니고 비교적 날씬해 보여 체중을 줄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아마도 심리적 효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아 보인다.
남자 노인은 퇴행성 관절염으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다시 천천히 산책을 시작했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비록 관절염이 있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느린 걸음으로나마 산길을 오르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표가 아닐까. 내 친구들 중에는 80대 중반인데도 걷지를 못해 모임에도 못 나오고 집에서만 생활하기도 하는데, 맑은 공기 쐬며 푸른 숲속을 거닌다는 것은 큰 행복이란 생각이다.
모든 사람들이 저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대로 걸어 다니기를 염원하며 건강에 좋다는 맨발 걷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산책로에는 황톳길도 만들어 놓고 건강에 관심있는 구민들이 불편 없이 이용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리라. 포장된 산책로를 맨발로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맨발로 흙길을 걸어야 하는데 특히 황톳길이 좋다고 말한다.
모두들 요즘은 건강 얘기가 화두다. 오래 사는것도 좋지만 두 다리가 튼튼하게 건강해야만 제대로 된 삶을 즐기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얼마전부터 운동기구 앞에서는 신발 벗고 맨발로 흙바닥을 거닐며 운동을 한다. 비록 일주일에 한 두 번이지만 그래도 두어 시간 맨땅을 밟고 숲속에서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숨쉬고 있으니 조금은 덕을 보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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