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식이 어무이는 어쩔 수 없을 거그만, 날씨가 더워서 걸어올 수 있겠는가?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오소.” “알았고만요, 그런디 근식이 아부지가 짐이 많아서 힘들 것이그만요, 천천히 조심해 가씨요.”
영산댁이 마음먹은 대로 오늘 일이 잘 풀려간다. 어제 사건 현장조사에서 조사가 끝나고 유가족들이 모여 의논한 끝에 유해를 화장하기로 한 것을 들었었고 자택에 빈소를 차린다는 걸 알았다. 장영팔의 빈소가 어찌 되어있는지 궁금했었다. 비록 빈소를 찾아가 분향은 못 했지만, 의자를 놓고라도 담장 너머에 들여다보고 위로했었다. 그리고는 자전거에 장짐을 실은 남편을 앞에 보내고 우체국에 가 이경안에게 전화를 걸어 장례식 절차도 알아보고 싶었었다. 그런데 시장을 봤던 짐이 많게 되자 남편은 먼저 간다며 버스를 타고 오라지 않은가.
삼거리 버스정류장 가까이에 있는 우체국에 들어가 순천경찰서 수사과에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여자 목소리였다.
“예, 순천경찰서 수사과장실입니다.” “과장님 좀 바꿔 주씨요.” “실례지만 누구단가요?” “지리산 산장에 친구라고 허믄 알그만요.” “과장님은 황전 지서에 넘어가셨습니다.” “언제 출발했나요?” “시방 도착할 시간이 다 됐습니다.”
이경안 수사과장이 친구의 장례절차와 빈소를 방문하기 위해 황전 지서에 올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떠난 지 한 시간 가까이 되어 간다며 이미 도착할 시간이 되어간다는 것이 아닌가. 영산댁은 버스정류소에서 10여 미터 아래로 내려와 이경안을 기다리기로 했다. 예상대로 검은색 승용차가 속력을 줄이더니 멈췄다. 일이 잘 풀리는 날은 이렇게 예상도 적중했다. 운전석 뒤에서 이경안이 차 문을 열고 나왔다.
“미스 안 거기에서 머 허는가?” 길가에서 서성이는 영산댁을 발견하고 차를 세우게 하고 나오더니 거기에서 뭐 하느냐며 어린아이처럼 싱글벙글했다. “장 보러 나왔다니까요. 차에 탄 사람들은 누군가요?” “우리 직원인데 친구 빈소에 오는 참이그만.” “나는 요 위에 삼거리 다방에 있을 테니까, 직원들만 앞에 보내놓고 우리는 차나 한잔해요.” “알았구먼.”
영산댁이 다방 안으로 들어와 안쪽 구석진 자리로 들어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경안도 곧이어 따라 들어왔다.
“그런디 오늘 무슨 일로 나왔냐니깐?” 조금 전 무슨 일로 나왔는지 물었지만, 장 보러 나온 모습이 아닌 것처럼 보였는지 이경안이 다시 물었다.
“그이 빈소가 어찌케 되었는지 궁금해 보려고 나왔고만요. 어제 오후 일정은 순조롭게 잘 되었는가요?” “하머! 곧장 화장해 집으로 넘어갔다니까.” 그는 담배를 길게 빨고 입에 가득 채워진 연기를 길게 내뱉으면서 말했다.
“고흥 선산으로 간다고 했능가요?” “그렇다니까, 화장을 시켜서 신식으로 헌 것이 백번 잘헌 거지 전통방식으로 상여에다 시신을 태우고 선산까지 가려고 해봐. 글고 요새 날이 뜨거워 하루만 지나 뿔믄 썩는 내금새가 코를 진동해 뿐다니까. 아까막도 내가 전화를 해 가꼬 물어보니 큰아들 철수가 말하기를 큰아부지가 시킨 대로 허기를 잘했다고 그러더란 말이시.”
자기가 유가족들을 설득해 장영팔의 시신을 서둘러 화장했던 것을 잘한 일이라며 이경안은 영산댁에게 자기과시를 했다. 이번 사건을 근식이 다치지 않게 잘 처리했음을 영산댁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이 과장님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것을 감사드리는구먼요.” “그 바람에 자네 겉은 좋은 친구를 얻었으니까 나도 미스 안이 고맙다니까.” “그러믄 출상은 언제 한대요?” “낼 하기로 했다등만. 오늘 저녁에는 우리 직원들이 밤새 빈소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니까.” “내가 항꾼에 못 하는 것이 가슴 아프구먼요.”
남편이 걱정되어 얘기를 빨리 끝내야 하겠기에 이경안에게 날이 덥다며 냉커피를 마시자고 영산댁이 제안하니 오케이 했다.
“나는 집으로 가서 빈소를 쳐다볼 수도 없어서 면사무소 뒷마당으로 가서 의자를 놓고 쳐다봤담 말이요, 그런디 빈소에도 아무도 없고 마당에도 아무도 없고 헝게 시방까지 맘이 안 좋습디다.” “그러믄 죽은 영팔이 위로해주려고 역부로 나왔던 갑네.” “빈소가 너무 쓸쓸해 뿡게, 맘이 슬퍼지더라니까요.” “미스 안에게 내가 말 안 하든가? 사람이 죽어 뿔믄 아무것도 모른다고 안 하든가? 내가 자네한테 한번 물어볼 거그만, 자네는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생각헝가? 아니믄 귀신이 없다고 생각헝가?”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디 사람이 죽어 가꼬 귀신이 되는 일은 없다고 본당게요.” “그래, 내가 항상 허는 말이 사람이란 죽어 뿔믄 그만이라고 하지 않든가?” “남편이 있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그들이 있는디 미스 안이라고 부르니깐 좀 그렇고만요!” “아니, 미스 안이라고 부르니까 기분이 안 좋은가?” “기분 나쁘진 않고마요.” “그러면 된다니까, 우리는 친구 사이라 앞으로도 계속해 미스 안이라고 부를 거그만.”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지 오래고 중고등학생의 학부모인데 이경안은 계속해 미스 안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영산댁이 기분 나쁘지 않다고 얘기하자 그는 계속해 미스 안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미션스쿨에 다녔고 예수 믿는 사람이니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는 건 없다고 믿고만요, 그런디 귀신이 있기는 한데 그건 사람 귀신이 아니고 사탄과 마귀가 구신 행세를 한답디다.” “맞담 말이시. 그러니까 죽어버린 사람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니까.”
신약성경에서 유독 귀신 얘기에 대한 구절은 마가복음 5장에서 많이 등장하는 거로 영산댁이 기억했다. 8절에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의 몸에서 지금 즉시 나오너라, 하시고 그 여자에서 나온 귀신에게 물었더니 군대 귀신이라 대답했다. 예수께서 군대 귀신들을 산에 있는 돼지 떼들 뱃속으로 들어가게 해버렸다는 대목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영혼에서 나온 귀신이 아니며 사탄 마귀무리였다고 지금까지 그녀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을 이경안에게 설명했다.
“그래 자네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 이미 죽어버린 사람한테 연연하지 말란 말이시. 심적으로도 자네는 고인한테 할 일은 다 했으니까 자책헐 필요가 없담 말이시.” “알았고만요. 오늘 내가 과장님한테 전화했던 건 얼굴도 한번 보고 싶었고 목소리도 들어보고 싶었고만요.” “이 사람아! 기껏해야 이틀 지냈는데 그런가?”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어 수사과장실에 전화했다는 말에 이경안이 흐뭇해했다.
“근식이가 퇴원해서 근자랑 집에 온다고 했거든요.” “그러믄 얼런 가 봐야 하겠네. 우리 직원한테 동네까지 태워다 주라고 할게.”
아들 근식이 퇴원해 집에 올 것이라고 말했더니 그러면 어서 집에 가 봐야 한다며 재촉했다. 부하직원에게 시켜 영산댁을 발산마을까지 모셔다드릴 것을 지시했다. 어느새 승용차가 건들 농로로 들어서고 황전천에 이르자 냇물을 건너가지 말게 하고 승용차를 돌려보냈다.
“아저씨 냇물을 건너지 말고 여그서 내려 주씨요.” “아니 집에까장 가시지 않고요?” “아니그만요.” ] 어제 현장조사에서 근식이 다치지 않게 영산댁이 바라는 뜻대로 무사히 마치게 되었고 서둘러 장영팔의 시신을 화장하게 한 것도 이경안에 의해서였다. 이제는 망자에게서 더 이상의 죽음에 대한 시빗거리가 발생치 않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