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룡산의 꿈
지창식
동양에서 용은 전지전능하고 신성한 동물로 여겨왔다. 내 고향 춘천에는 커다란 용이 한 마리 있다. 그것은 대룡산(大龍山)이다. 이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기다란 산줄기가 바로 꿈틀거리는 용을 연상시킨다. 아마도 산의 이름을 처음 지은 옛 선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던 듯싶다.
세상의 많은 산 중에서 내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산이 이 산일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랜 것은 이 산 너머 뒷배라고 불리는 산간 마을에서 자라던 유년시절의 추억이다. 어른들이 대룡산이란 산 이름을 얘기하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 시절 들은 전설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다. 50년이 지난 이야기라면 전설이라고 할만하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룡산 안쪽 사암리에는 우리 집안의 오랜 선산이 있고, 친척들이 몇 집 모여 살고 있었다. 집안에 제사가 있는 날이면 아버지는 한밤중이라도 산을 넘어 갔다 오시곤 했다. 어느 날 다녀오셔서 들려주신 이야기이다. 그때 대룡산에는 미군들이 군사도로를 만들고 있었나 보다. 마을 노인의 꿈에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나는 이무기인데 3일만 더 있으면 용으로 승천한다. 그러니 도로 공사를 3일만 연기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다고 한다. 마을 노인은 통역을 통하여 미군들에게 꿈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나 미군들이 동네 노인의 꿈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겠지. 그대로 공사를 강행하다가 불도저가 큰 구렁이를 치었는데, 곧바로 불도저도 굴러서 운전하던 미군이 죽었다고 한다. 대룡산은 영험한 산인가 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우리 집은 대룡산이 빤히 보이는 석사동으로 이사를 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문을 열면 바로 저 앞에 대룡산이 보였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봄이 되면 대룡산에는 여기저기 연기가 올랐다. 그때만 해도 화전이 한창이었다. 밤에 보면 산불이 장관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연기가 한줄기만 올라가도 산불이 났다고 야단일터인데 그 생각을 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대룡산은 나의 산사람으로서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중학교 1학년 때쯤이다. 대룡산의 한 봉우리인 명봉은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곳이지만 그 당시에는 지도에 643이라는 삼각점만 표시된 무명의 봉우리였다. 가을날 파란 하늘 아래 능선 위에 서 있는 소나무가 멀리서도 잘 보였다. ‘저기는 어떨까? 저곳에 올라가 보면 어떨까?’ 불현듯 그곳에 가 보고 싶어졌다. 어느 날 반바지 차림에 나는 이곳을 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그때는 잡목과 덩굴이 우거져 있었다. 무릎과 팔을 긁히면서 무조건 위만 쳐다보며 올랐다. 봉우리에 있는 편평한 헬기장은 지금처럼 주변에 나무들이 크게 자라지 않아서 사방의 전망이 확 트였다. 처음으로 정상에 올라 석양에 물든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던 그때의 감격. 잊을 수 없다.
알피니즘의 입장에서는 어떤 다른 목적 예를 들면 나물을 채취한다거나 사냥을 한다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산을 오르는 행위들은 등산으로 보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 보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 산을 오르는 것만을 등산으로 본다. 이런 일이 나에게서 처음 있었던 곳이 대룡산이다. 지금 되돌아봐도 어린 나이에 대견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스무 살 때쯤 친구와 함께 대룡산에서 금병산까지 능선 종주산행을 시도했다. 나로서는 처음 하는 종주 등산이었다. 경험이 없어서 하루 산행에 어울리지 않게 짐을 잔뜩 짊어지고, 그날따라 능선에는 안개도 많이 끼었다. 모르는 길을 찾아가느라 12시간이나 걸렸다.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했을 때는 기진맥진하여 그대로 쓰러졌다가, 깜깜한 밤중에 동행한 친구의 재촉을 받으며 간신이 내려왔다. 그때 올가미에 걸려있던 오소리를 가져다 다음날 끓여 먹었던 것도 추억이지만, 나에게 산의 위험을 일찌감치 깨닫게 해 준 산행이었다.
요즈음도 한 해에 몇 번씩은 대룡산에 다녀오게 되는 것 같다. 순수하게 혼자 등산을 하기 위해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안내 산행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산나물을 뜯거나, 단순히 소풍 삼아 산기슭까지만 다녀올 경우도 있다.
대룡산의 멋은 무엇일까? 대룡산은 춘천분지 안쪽에서 보면 이 고장 사람들의 심성처럼 부드럽고 순한 모습이다. 특별한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산 너머 반대쪽에는 깊은 골짜기와 험준한 절벽이 곳곳에 있고, 아직도 비경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사람들은 흔히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운해(雲海)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로서는 젊은 시절 내 고장 대룡산에서 처음 본 광경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사진에 취미가 있는 친구를 위해서 안내산행 했던 적이 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춘천분지 모든 지역은 안개가 깔려서 광활한 바다와 같았다. 태양은 파란 하늘 아래 넘실대는 하얀 바다를 쨍쨍 내리쬐는데, 건너편에 보이는 삼악산과 북배산은 섬처럼 운해 위에 떠 있고, 어디선가 까만 새 몇 마리가 날아와 피어오르는 안갯속을 오르내리던 그 환상적인 풍경.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몇 해 전에 동네에 새로 짓는 중학교의 이름을 공모했었다. 학교용지에서 보면 대룡산이 빤히 보이는 곳이다. 춘천의 대표적인 산 이름을 딴 학교가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이 큰 용처럼 큰 뜻을 품고 자라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대룡이란 이름으로 공모에 응했다. 나중에 다수의 심사위원이 내가 제안한 안에 동의하여 학교 이름이 대룡중학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대룡산은 글자 그대로 큰 용이다. 동쪽의 오방색은 청색이므로 춘천의 동쪽에 있는 대룡산은 거대한 청룡이다. 청룡은 용 중에서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기운과 희망을 상징하며, 상서로운 조짐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산을 바라볼 때면 나는 대룡처럼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큰 인물이 이 고장에서 나오기를 염원해 본다. 누워있는 거대한 청룡이 일어나 하늘을 훨훨 나는 꿈을 그려 본다. (2014.3.21)
첫댓글 지창식 선생님, 수필문학 4월호 등단.
'대룡산의 꿈'이 역량있는 수필가의 길을 열었나봅니다.
드리며 큰 를 보냅니다.
뒷배! 북방리 사랑말 이군요 실습때 자주 가보던곳입니다.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등산 수필 크게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구 보니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지만 오랜 동안 불려지던 잊혀져 가는 지명 한개를 수필을 통해 살려낸 것 같습니다.
축하합니다. 대룡중학교 누구의 작품인가 했더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역시 산의 대가이십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지창식님의 등단을드립니다.
아! 대룡중학교 이름을 사무국장님께서 지으셨군요. 봄내 고을에서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 믿으며 등단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우리 문화원에 경사났습니다. 줄줄이 유창숙님 지창식님 묘하게 가운데 창 자가 들어가야 등단하는 가봐요.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