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권지성 전임연구위원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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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잠언(잠 22:17-23:11)
당신이 고대 이집트 왕국 시기 나일강 유역의 한 집에서 태어난 아기라고 생각해 보자. 어느 해에 무려 열 명의 아기가 태어났으나 질병으로 다섯 명의 아이만이 살아남았고, 다음 해에는 기근으로 세 명의 아이가 죽었고, 얼마 있지 않아서 전쟁 통에 한 명의 아이가 죽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당신은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뚫고 책, 학교, 도서관도 없는 작은 부락에서 마침내 60세의 노인이 되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생의 지혜를 가진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왕을 만나야 합니다.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왕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합니까?” 또 다른 날에는 나일강이 자주 범람하자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웠던 지계석이 변경되어 자신의 땅이 어떤 권력자의 땅이 된 일로 어떤 고아가 당신을 찾아온다. “타인의 지계석을 함부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은 그 동네의 유일한 노인이며 현자이자 판관이다. 당신은 옛 지혜자들의 말을 암기하고 또 이해하고 있고 그들의 가르침을 근거로 다른 이들에게 삶의 기준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잠언 22:12-24:22은 현자들의 잠언으로 오랜 선조들의 지혜가 함축적으로 나열된다. 이 부분에서는 일관된 주제가 없다. 하지만 잠언 22:17-24:22(C3)은 크게 다음의 주제들로 분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자들의 컬렉션 주제들이 어느 정도 계획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의 윤리적 문제’로, 이 주제는 일반적인 훈계(22:17-23:11; C3A)의 성격을 띤다. 둘째는 ‘지혜와 훈계의 가치’로, 이 주제는 자녀들을 향한 훈계 1(23:12-23:35; C3B.1)에 집중된다. 셋째는 ‘악인(미련한 자)과 선인(지혜자)’으로, 이 주제는 자녀들을 향한 훈계 2(24:1-22; C3B.2)에 자주 보인다.
문학적 형식과 구조
현자(지혜자)들의 30개 단위의 잠언들로 구성된 22:17-24:22(C3)을 살펴보자. 이 문학적 단위는 크게 일반적인 훈계인 22:17-23:11(C3A)과 자녀들을 향한 훈계인 23:12-24:22(C3B)로 나뉜다. 이 컬렉션(C3)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22:17) 현자들의 잠언은 솔로몬의 잠언 I에 비해 내용 면에서 더 확장되어 있으며, 솔로몬 잠언(I, II) 사이에 삽입되어 있다. 기존 컬렉션이 주로 행위와 결과 그리고 미덕과 결과의 연계성을 강조했다면, 이 컬렉션(C3)은 관조적 자세와 내면의 평온과 같은 가치가 드러난다. 전체 30개의 격언이 세트로 구성된다.
격언 1: 지혜자의 말씀에 마음을 두라(22:17-21)
첫 번째 격언은 전형적인 훈육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귀’를 기울여 현자들의 말을 듣는다면, 결국 그러한 행위는 기쁨이 된다.(17-18절) 현자들의 말과 지식의 내면화(신체화)는 귀, 심장, 배, 입술(17-18절)로 표상되는데, 이 배는 심장에 들어 있는 지식을 보호하며 입술은 귀로 들은 것을 답변할 준비를 하는 곳이다.1 이 행위가 그들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은 바로 교훈적 시작의 전형적인 표현이다.(예. 4:20-27) 또한 격언은 ‘여호와’ 신뢰에 관한 신앙을 언급하는데(19절) 이 구절이 왈트키가 말하듯 언약적 약속의 개념을 말하는지는 분명치 않다.2 19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미브타흐’는 확신, 의존을 뜻하는데, 이 절은 여호와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 지금 현자들이 제자들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이는 고대근동의 격언을 이스라엘 신앙의 일부로 극적으로 치환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자들의 가르침은 30개로 이루어진 충고와 지식의 격언(22:17-24:22)이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30’이라는 숫자를 사용함으로써 잠언의 저자는 당시 인기가 많았던 아메네모페의 인스트럭션을 간접적으로 가리키려 했을지 모른다.(21절) 20절은 이 가르침을 기록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서기관적 가르침이 기억되고 학습되어 최종적으로 기록되는, 구전적이며 암기하는 서기관들의 문화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것이 진리를 분간하고 결국에는 이 교육을 통해서 제자들이 보낸 자(왕 혹은 고위 관리)에게 참된 대답을 줄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기 위함이라 말한다.(21절) 여기서 “코쉐트 이메레이 에메트”(קשׁט אמרי אמת)는 직역하면 ‘진리의 말들의 진리’로 최상의 진리를 뜻한다.(21a절) 이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자신을 보낸 자에게 정확하고 믿음직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21b절) 폭스는 답변의 효율성에 대한 부분이 아메네모페에서 온 것이라 보지만, 이는 불확실하다.3 이 격언은 고대 이집트 왕국의 격언집 아메네모페의 3.9-10, 3.16 그리고 마지막의 27.7과 첫 프롤로그에서 1.5-6과 유사성을 가진다.
격언 2: 약한 자를 탈취하지 말라(22:22-23)
잠언 22:22-23(격언 2)은 약한 자와 곤고한 자에 대한 압제의 문제를 다루며, 23절은 22절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드러낸다. 22a절은 ‘가난한 자’(다르)이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다르)의 것을 훔치지 말고, ‘소유가 없는 자들’(아니)을 성문에서 때리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당시 사회의 약탈적이고 야만적인 권력자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불법적인 방식으로 하층민의 소유물을 도둑질하지 말고 그들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22절의 ‘성문’은 법적 소송이나 판결이 이뤄지는 공론의 장을 의미한다. 23a절은 여호와가 그들을 위해서 법적인 노력(리브)을 다해 송사를 변호할 것(야리브 리밤)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법정 용어인 ‘리브’(법적 권리를 ‘주장하다’)가 두 번 연속으로 사용된다. 이 용어는 주로 한 개인이 자신의 권리와 무고함에 대해서 해명하는 상황에서 사용된다.(출 23:2, 삼상 24:16, 25:39, 시 43:1, 74:22, 119:154, 잠 23:11, 25:9) 23b절은 이 훔친 자들의 생명을 빼앗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는 동사 ‘훔치다’(카바)가 두 번 연속으로 사용된다. 22절의 최하층민을 약탈하는 자들은 23절에서 타인의 것을 훔치는 자로 표현되는데, 여호와는 도둑질하는 자들의 생명을 취할 것이라 말한다. 약탈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했던 행위, 곧 생명을 취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는 생명을 취하는 여호와의 행위와 대비되며, 이로써 약탈자들은 심판을 받는다. 이렇듯 세상의 법에서 불가능한 것이 여호와에게는 가능하다. 이러한 신적 보응의 행위는 구약의 일관된 주장이다.(잠 16:17, 신 10:17-18, 암 2:6, 사 1:23)
아메네모페 또한 사회적 약자를 약탈하는 문제를 지적한다.4 하지만 아메네모페는 잠언처럼 신의 법적 활동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복하는지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는다.(4.19) 단지 ‘정의의 신’이자 ‘서기관들의 신’인 ‘문’/‘토트’에게 하소연한다. 아메네모페는 장애가 있는 자에 대한 폭력을 중단할 것을 말하고(4.5), 잠언은 경제적 약자에게 집중한다. 아메네모페는 또한 인간 스스로 성급히 이 문제를 다루지 말고 또 이들을 본받지 말 것을 강조하며 악한 자들의 문제를 신과 자연에 맡길 것을 주문한다.(4.8-5.8)
격언 3: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라(22:24-25)
사귀지 말아야 할 친구들에 관해 언급하는 이 격언은 분노하는 자, 울분한 자를 경계하라고 말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24절은 ‘화’(아프)를 가진 자(참조. 19:19, 27:4), ‘격노’(헤마)하는 자(참조. 15:18)와 친구를 맺지 말고 그들과 동행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는 자기 자신의 폭주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외부적으로 터뜨리는 자들의 친구가 되지 말라는, 이들에게 다가가지 말라는 의미의 경고이다.
폭스는 이집트의 현자 〈프타호텝의 교훈〉을 인용하여 “분노의 마음(hot-heart)의 불꽃은 사방에 퍼지며, 부드럽게 걷는 자, 그의 걸음은 평탄해진다.”(1.378-9)라고 말한다.5 아메네모페에서도 분노한 자와 함께하거나 대화하거나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아메네모페는 싸우려는 사람과 함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대적자 혹은 상급자나 고용주와의 논쟁이나 다툼의 정황을 예로 든다.(5.12-13) 둘의 차이점은 잠언 22:25에서 곧이어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이와 같은 분노의 행위(‘길’, 오라흐)를 배우지 않기 위해서(25a절)이고, 둘째는 이 친구들을 가까이하면서 스스로가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25b)이다. 즉 분노하는 친구 무리에서 멀어짐으로써 파멸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참조. 3:25-26, 12-13, 13:14b, 14:27b, 29:6) 이 격언은 결국 분노보다는 자기 통제가 가능한 자가 되라는 미덕의 차원과 잠언 1-9장에서 강조된 ‘길’의 이미지가 함께 드러나 있다.6 물론 이 분노한 자가 ‘가난한 자들’의 부당한 요구로서의 분노로 인식된다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격언 4: 보증을 서지 마라(22:26-27)
아메네모페 16.16-17은 정확히 보증에 대한 것이 아닐 수 있으나, “한 남자를 위해 서류를 만들지 말라.”7는 제임스 블랙의 번역을 따르면 어떤 계약 서류를 만드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잠언 22:26-27과 관련된다. 아메네모페의 문맥은 뇌물 받기를 거부할 것에 대한 정황과 맞닿아 있지만, 잠언은 빚 보증이 결국 자신의 모든 잠자리마저도 앗아갈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27절)
26절을 직역하면 “손을 흔드는 자들 가운데 그리고 빚을 대신 책임져 주는 가운데 거하지 말라”가 된다.8 26a절에서 ‘손을 흔드는 것/손을 치는 것’(, 타카)은 누군가를 위해 보증인으로서 행동할 때의 표현이다.(잠 17:18, 22:26, 6:1) 잠언 6:1-5에서는 이미 타인을 위한 보증 행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11:15, 17:18, 20:16, 27:13) 보증의 행위는 아마도 큰 틀에서 충분한 자산이 있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빚진 자가 이를 갚지 못한다면, 그리고 보증을 선 자가 아무 소유도 없다면 결국 자신이 가진 집의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27절)
격언 5, 11: 선조의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마라(22:28, 23:10-11)
고대 사회의 토지 경계석은 소유권을 표시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따라서 사적 욕망으로 인해 지계석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속이는 것은 반사회적인 행위였다.
잠언 22:28은 조상들이 옛적에 설정한 경계선을 바꾸지 말라는 것이나, 동일한 주제를 확장한 잠언 23:10-11은 고아들의 밭을 침범한 자들에게 구속자가 행할 보복을 말한다. 이를 통해서 고아들에 대한 정의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아메네모페는 일반적인 탐욕의 관점에서 서술하면서 만약 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탐심으로 타인의 땅을 침범한다면 신들에 의해서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7.12-8.15) 폭스는 이집트 지역은 정기적인 홍수로 나일강이 범람했고 이에 따라서 땅의 경계에 대한 기록을 자주 수정해야 했었다고 말한다.9 이때 기록은 주로 서기관들이 측량 장비를 통해서 행하였기에 개인의 땅을 임의로 확장하거나 권력자들의 땅을 조작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었는데, 아메네모페 7.13에서는 이 측정 밧줄의 위치를 변경하지 말라고 언급한 것이다. 서기관들은 땅의 경계를 확정하는 사람들로서 땅을 정직하게 측량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8.11-15)
잠언 22:28의 격언을 23:10-11에서 활용하면서 의미를 확장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23:10-11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고아들에 관하여 22:28과 동일한 명령(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으로 시작한다. ‘고아들’(야토밈)은 부모가 없는 이들이다. 이들의 권익을 보호해줄 자가 전무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부모가 소유했던 땅이 있었던 것 같다.(23:10b) 주위의 힘 있는 자들 혹은 땅의 경계를 관리하는 자들은 이를 쉽게 빼앗거나 침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아들이 가진 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이 격언은 사회적 약자들이 가진 것을 도적질하는 행위에 대한 경고이다.(23:10)10 왜냐하면 고아들을 지켜주고 법적 권리를 옹호해 줄 수 있는 ‘그들의 구속자들’(고알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속자들은 사회에서 힘 있는 자들이고, 이들은 고아들의 권리를 위해서 싸울 수 있기에 함부로 이들을 얕봐서는 안 된다.
엘리멜렉 가계의 가까운 친척 보아스는 엘리멜렉과 두 아들의 죽음 이후에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리고 이후 룻과 결혼함으로써 자녀를 갖게 되고 기업의 구속자가 된다. 따라서 잠언 23:11의 구속자(고엘)는 법적 대리인인 친족 집단을 일컫는다. 이들은 채무 관계에 얽힌 이, 노예로 팔려간 이들을 다시 사오거나 그들의 억울한 법적 문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므로 함부로 약자들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고엘’을 여호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여호와는 지켜줄 사람이 없는 고아와 과부들의 ‘고엘’이 된다.(참조. 22:23) 잠언 15:25(“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에서 볼 수 있듯이 함부로 타인의 토지 경계(게불)를 조작하는 것은 신적 심판을 초래할 수 있다. 신명기 율법은 상속받을 가나안 땅의 경계를 함부로 옮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신 19:14, 27:17) 열왕기상 21:4에서는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는데, 나봇은 그 땅이 자신 선조들의 유산이기에 타인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격언 6: 교육된 서기관(22:29)
이 격언은 미래에 왕을 섬기기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아메네모페 27.16-17은 교육된 서기관이 왕을 섬기는 자가 되기에 합당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30가지 교훈 마지막에 교육자로서 온전하게 타인을 무지함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이의 가르침을 배우라고 말하며 그런 사람만이 자격 있는 선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27.10-17) 마찬가지로 잠언 22:29 역시 자신의 일에 전문적인 자들만이 왕을 섬길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천한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하슈킴’은 ‘하쇼크’(חשֹך ‘어두운’, ‘비천한’, ‘낮은’, ‘무명의’)에서 파생되었으며, 경제적 하층민들을 의미한다.(잠 22:29a)11 ‘능숙한’(마히르)은 ‘경험 있는’을 뜻하고 시편 45:1(참조. 아히칼 1:1)은 왕을 교육하는 숙달된(마히르) 서기관(쇼페르)을 칭한다. 그는 탁월한 교육자이면서 저술가이다.(HALOT) 유명한 서기관인 에스라는 모세 율법에 능통한(마히르) 서기관이다.(스 7:6) 고대 서기관들은 각각 궁전이나 성전 혹은 부유한 가정의 선생들로부터 서기관(학자)이 되는 훈련을 받았을 것이며 왕궁이나 종교기관 혹은 무역에서 자신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29b-c절에서 ‘~앞에 선다.’라는 것은 누군가를 섬긴다는 의미이다.(집 8:8) 즉 격언 6은 이러한 서기관의 자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서기관의 조건에 대한 격언 6이 가리키는 것은 격언 7-11 전체인데, 격언 5, 11(지계석)은 문학적 경계를 형성한다.12 미래의 서기관들은 어떠한 자격을 갖추어야 할까? 바로 음식을 먹을 때 주의할 것(격언 7, 9), 부에 대한 경계(격언 8), 미련한 자에게 지혜의 말 금지(격언 10), 경계석을 범하지 않는 것(격언 11)이다. 이 모든 것은 권력자가 될 서기관들이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이와 같이 훈련된 전문적인 서기관들은 결코 외딴곳에서 이름 없는 자들을 섬기는 위치에 서지 않을 것이며 왕을 섬기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밖에 없다.
격언 6은 도덕적 규율이나 훈계의 가치에 대한 것(금지)이 아닌 갑작스럽게 전문적인 서기관이 되는 조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폭스는 이 격언이 잠언의 흐름에서 벗어난 것이며 아메네모페(27.16-17)의 것을 빌린 것으로 본다.13 폭스는 이스라엘에서 서기관은 왕궁의 특정한 기능적인 직업군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서기관이 광범위하게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왕궁이나 국가기관에 고용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서기관이 단순히 비서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14
격언 7: 관원과의 식사에서 그의 음식을 탐하지 마라(23:1-3)
잠언 23:1-3과 아메네모페는 관리 앞에서의 식사 예절에 대해서 충고한다. 높은 자들의 식사 테이블에서는 탐욕스럽게 행동해서는 안 되며 ‘얼마나 많은 음식이 있는가.’ 하면서 손을 뻗는 탐욕스러운 태도로 먹어서는 안 된다.
잠언 23:1-3은 아메네모페만을 소스로 사용하지는 않는 듯하다. 블랙의 주장처럼 2절은 아메네모페와 평행구문이 없다. 그리고 3절은 의미적으로만 유사하다. 아메네모페 23.13-20은 관리 앞에서 먹지 말 것과 단지 침으로만 씹고 아무것도 먹지 말 것을 충고한다. 그릇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유는 관원이 가진 힘 때문이다.(23.16-20)
개인의 탐심을 유의할 것을 경고한 이 구절의 내용은 지혜문학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이집트 문헌 중 〈카겜니에게 준 가르침〉(The Instruc-tion Addressed to Kagemni, 1.1-10), 〈프타호텝의 교훈〉(The Instruction of Ptahhotep, 119ff.), 〈아메네모페의 교훈〉(23, 13-20) 모두에 유사한 내용이 있으며, 집회서 31:12-32:13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순리적으로 생각 가능한 것이다.15 프타호텝(AEL I, 65)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손님들 가운데 있다면, 당신보다 더 높은 위치의 사람의 식탁에서, 당신 앞에 놓여진 것대로 그가 준 것을 가져가라. 당신 앞에 있는 것을 보라, 그에게 눈길을 주지 마라.(Ptahhotep, 119ff.)
카겜니의 아버지(AELI, 59-60)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식욕을 억제하는 인내를 보이라고 조언한다. 여기서의 경고는 지위가 있는 자와의 식사에 대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잠언 23:1-3은 식탁 예법에 대한 일반적인 조언으로 보아야 하며, 아메네모페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부족해 보인다.
잠언 23:1에서 ‘관원’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쉘’(מושׁל)은 왕부터 지방 관리까지 모든 형태의 통치자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생각하라’는 것은 주의 깊게 관찰하라는 뜻이다. ‘네 앞에 있는 것’이 ‘관원’을 의미하는지 ‘먹을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뜻이라면, 잘못된 식사법이 관료의 눈에 거슬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2-3절에서 음식 자체에 대한 탐욕을 강조하므로 ‘네 앞에 있는 것’은 식탁 위에 있는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근동 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에 맞추어 음식이 배정되기에, 고위 관리들의 것을 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b절의 “임 바알 네페쉬 아타” 구문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바알 네페쉬’는 직역하면 ‘식욕의 소유주’이며, 이는 곧 ‘식욕이 상당한 자라면’이라는 뜻이다.16 따라서 2절에 표현된 목에 드리워진 칼은 과도한 식욕을 철저하게 통제할 것을 의미한다. 결국 관원과의 식탁에서 진수성찬을 보더라도 이를 탐욕스럽게 갈망하지 말아야 하며, 그 이유는 속이는 음식 때문이다.(23:3) 음식이 속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순간적인 배고픔과 욕심으로 인해 음식을 과도하게 먹었을 때 그 기쁨은 잠시이지만 이후의 상황에 따라 후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회서는 교육된 사람처럼 차려진 것을 먹고, 타인에게 탐욕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먹고, 적절한 시기에 식사를 멈추라고 말한다.(집 31:16-17) 잠언 20:17은 속임수에 의한 식사는 그 순간에는 달콤할지 모르지만 이후 그의 입은 자갈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자갈로 채워진다는 것은 그가 말하지 못하고 그의 씹는 행위가 스스로를 다치게 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격언 9: 인색한 자의 음식을 먹지 마라(23:6-8)
잠언 23:6-8에서 ‘악한 눈’은 인색한 자를 가리킨다.(ESV)17 인색한 자와 식사할 때 그가 겉으로는 식사를 권할지라도 그것은 본심이 아닌 위선이기에, 결국 먹은 것을 토하게 되고 나누었던 환담도 모두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아메네모페의 핵심은 식사 예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진 자가 가난한 자의 재물과 소유를 탐내지 않는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빼앗은 물건은 마치 목에 걸린 빵조각처럼 스스로에게 저주가 되어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14.14-17) 아메네모페는 이런 자들이 좋은 말로 변명한다 할지라도 감독자들에 의해 처벌과 저주가 주어질 것이며 삼켰던 것은 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14.15-18) 잠언과 아메네모페는 먹은 것을 토한다는 표현 이외에는 특별한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18
카겜니는 식욕에 빠진 관리와 식사할 때 그의 탐욕을 진정시킬 방법으로 결코 폭식가, 술주정뱅이에 반하여 먹어서는 안 되며 그가 자원해서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태도는 자신의 사회적 명성을 지키게 만든다. 유사한 식사 예절을 다루지만, 여기서는 초대된 자의 온전함을 위해서 조언이 주어진다.
클리포드는 격언 9에서 ‘이런 끔찍한 주인의 식사 자리에 왜 가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잠언은 이집트 문헌들(Cheti IX. 7-9; Amenemope XIV.5-18)을 참고했다고 본다.19 또한 폭스는 이 격언 역시 아메네모페에서 유사한 이미지를 가져온 것으로 본다.20 하지만 이는 명백히 인스트럭션 장르가 다루기 좋아하는 격언들의 컬렉션이지 특정한 텍스트를 인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21 잠언은 단순히 ‘인색한 자’의 구역질 나는 본성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격언 9는 격언 7과 달리 인색한 자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투영된다. 그런 자가 초대한 식사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 잠언 28:22은 부를 추구하는 욕심 많은 자에 대한 경계를 표현한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악한 눈’(인색한 자)의 반대는 ‘착한 눈’(22:9), 곧 ‘너그러운 자’이다.
7a절의 개역개정 번역(“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을
히브리어(כי כמו־שׁער בנפשׁו כן־ה וא)로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는 그의 내면에서부터 계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22가 된다. 인색한 자의 ‘네페쉬’(영혼)는 초대받은 자를 자신의 이익이라는 물질적 관점에서 여러 각도로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이 바로 인색한 자의 정체성이다. 7b절에서 이들은 겉으로 ‘먹으라, 마시라’ 환대하면서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처럼 한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마음’은 실제로는 전혀 손님들과 함께하지 않으며, 오히려 손님들을 배제한다.
초대한 자의 위선과 계산적인 태도는 외적인 행동으로 드러난다. 겉으로만 환대하는 그의 ‘이중성’으로 인해 손님들이 먹은 것을 전부 토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23:8a) 물론 물리적으로 반드시 그런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은유적 표현으로 주인의 그런 위선에 대해 손님이 느끼는 역겨움을 희화화한 것이다.23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주인과 나누었던 손님의 즐거운 말들, 곧 상호 간에 주고받은 유쾌한 대화들은 모두 망쳐지고 헛되게 될 것이다.(8b절)
격언 10: 미련한 자에게 지혜의 말을 하지 마라(23:9)
잠언 23:9은 교정이 불가능한 미련한 자에게 건네는 충고를 중단하라고 말한다. 아메네모페 22.11-12은 마음과 생각을 가감 없이 모두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낳는지를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공개적으로 말하는 행위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더 낫다.(22.13-15) 따라서 상대방의 아둔함에 초점을 둔 잠언과 논조가 다르다. 한편 프타호텝은 잠언과 더욱 유사하다.
듣지 않는 미련한 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는 무지함 속에서 지식, 유해함 속에서 유용함을 본다.
그는 타인이 혐오하는 모든 것을 한다.(lines 575-579)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는 것은 매우 긴급하거나 심히 중요한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24 잠언은 교육적 훈육이 통하지 않는 자들을 포기할 것을 자주 주문한다.(9:7-8, 17:10, 26:4-5, 27:22)
격언 8: 부자가 되려 애쓰지 마라, 쳐다보지 마라(23:4-5)
부요함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아메네모페의 충고는 정확히 잠언에서 되풀이된다. 특히 ‘부요’에 마음을 두지 말라(9.10)는 명령과 쉽게 날아가 사라지는 기러기에 대한 직유법은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아메네모페는 다른 관점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무시할 만한 운명과 숙명은 없다.”(9.11) “모든 사람은 그의 시간이 온다.”(9.13) 즉, 부요함은 갑작스럽게 오고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한다.(9.15-19) 그것은 마치 새처럼 우연히 와서 그렇게 사라진다.(10.4-5) 주제의 유사성과는 달리, 부요함에 대한 아메네모페의 운명적 시각이 잠언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폭스가 말하는 직접적 유사성은 설득력이 없다.25
잠언 23:4-5은 부자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지 말며 자신의 이해를 버려야 함을 말한다. 여기서는 단순히 지혜로움을 통한 부의 획득에 대한 확신을 비웃는다. 23:4b에서 구문 “미비나트카 하달”은 “너의 이해에서 단념하라.”로 번역된다. 폭스는 이 구문에서 명사 ‘빈’이 “강렬하게 쳐다보다”(23:1)를 함의한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26 부요함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 즉 부의 일시성, 무용성, 부정하게 얻은 재물들(10:2, 22, 11:4, 18, 19:2, 20:17, 21-22, 21:5, 28:20b)은 확실히 전반적인 잠언의 노동과 부요함에 대한 긍정적 인식(12:27; 14:23; 24:4; 28:20)과는 대조를 이룬다. 특히 급한 행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데(19:2), 조급하게 부유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13:11, 20:21, 28:20b, 22) 잠언은 내부에서부터 이처럼 부요함에 대해 모순된 견해를 보인다. 오히려 전도서의 부의 유용성에 대한 강한 회의감과 유사하다. 부요함은 눈에 비친 것이 전부이며 오히려 평안함이 없이 자신을 해할 뿐이다.[전 5:11-17 (Heb 10-16), 6:1-2, 4:7-8] 잠언은 전도서와 같이 삶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강하지 않으나, 부요함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욕망은 쉽게 그것을 잃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의 눈이 이 부요함을 주목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것은 독수리와 같이 날개를 펼치고 유유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5절) “만약 너의 눈이 그것에 시선을 날린다면(התעוף, 하타이프), 그것은 가버릴 것이다.”(5a절) 부요함은 찰나의 일시성과 궁극적인 소유의 불가능성을 동시에 말한다. 그것은 오늘 잠시 앞에 보이다가 하늘로 쉽게 사라져버리는, 잡을 수 없는 독수리와 같다.
요약
현자들의 잠언(C3)은 총 30개의 격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아메네모페와 직접적 관련성을 가지는 C3A는 일반적으로 사회적/개인적 도덕과 윤리를 다룬다. 동시에 여호와(22:19, 23, 23:11)에 대한 신뢰와 신적 처벌에 대한 종교적 관점이 투영된다. 지혜와 훈계 속에서 전통적인 훈계를 마음에 담으라고 조언한다. 현자의 지혜를 통해서 이를 학습하는 이들이 온전하게 진리에 화답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22:21) 윤리적 가르침들은 사회의 질서 유지에 핵심적이다. 개개인은 분노하는 이웃들을 멀리해야 하며(격언 3), 타인의 빚 보증을 서면 안 된다(격언 4). 중요한 인물과의 식사에서 식욕을 부려서는 안 되며(격언 7, 9), 미련한 자에게 충고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격언 10).
잠언은 아메네모페가 그러하듯이 기존의 격언들을 확장시켜 단순한 행위-결과의 도식에 국한되지 않고 불의한 사회적 현실을 비판한다. 잠언 22:22-23(격언 2)은 ‘성문’이라는 열린 공적인 공간에서 빈곤한 자들과 약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직접 그들의 송사를 진행할 것이며 약자들을 해한 자의 생명을 훔칠 것이기 때문이다. 격언 5, 11은 권력자인 서기관 혹은 힘 있는 이웃이 고아들의 토지를 조작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리고 과도하게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것을 비판한다.(격언 8) 재물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헛되고 일시적일 뿐 아니라 잡으려는 순간 재물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주(註)
1 Bruce K. Waltke, The Book of Proverbs: Chapters 15-31, NICOT (Grand Rapids: Eerdmans, 2005), 222.
2 왈트키는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의 관념이 들어 있는 22장 17-21절의 중심에 19절이 있다고 본다. Waltke, Proverbs 15-31, 223.
3 Michael V. Fox, Proverbs 10-31, AB 18B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9), 712.
4 폭스는 프타호텝(Ptahhotep)의 교훈과의 유사성도 지적한다.(74-77) Fox, Proverbs 10-31, 714.
5 Fox, Proverbs 10-31, 716.
6 William McKane, Proverbs: A New Approach (London: SCM, 1970), 378.
7 James R. Black, “The Instruction of Amenemope: A Critical Edition and Commentary Prolegomenon and Prologue,” Univ. of Wisconsin, Ph.D (2002), 564.
8 26a절에 대한 칠십인역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를 보증으로 주지 마라 왜냐하면 너는 한 개인 앞에서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9 Fox, Proverbs 10-31, 732.
10 머피는 ‘고엘’(구속자)이 친족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본다.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이 격언은 법적이며 경제적 문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일차적으로 친족에게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이를 확장하여 하나님이 최종적인 ‘고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가능하다. Roland E. Murphy, Proverbs, WBC 22 (Nashville: Nelson, 1998), 175; McKane, Proverbs, 380.
11 머피는 이 단어를 ‘어두움’으로 번역한다. Murphy, Proverbs, 169; 와이브레이(ESV)는 ‘무명한’, ‘외진’의 의미로 번역한다. Roger N. Whybray, Proverbs, NCBC (Grand Rapids: Eerdmans, 1994), 331.
12 Richard J. Clifford, Proverbs: A Commentary, OTL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9), 208.
13 Fox, Proverbs 10-31, 719.
14 Karel van der Toorn, Scribal Culture and the Making of the Hebrew Bible (Cambridge; London: Harvard University, 2009); JiSeong J. Kwon, Scribal Culture and Intertextuality: Literary and Historical Relationships between Job and Deutero-Isaiah, FAT II 85 (Tübingen: Mohr Siebeck, 2016).
15 Helmer Ringgren, Sprüche/Prediger (Vandenhoeck & Ruprecht Göttingen, 1962); McKane, Proverbs, 381; Murphy, Proverbs, 174.
16 맥케인과 폭스는 “식욕이 왕성한 자라면”으로 번역한다. 와이브레이는 ‘바알’을 ‘주어진다’는 동사로 보고 “네가 식욕에 주어진다면”으로 번역한다.(ESV, KJV)
17 Fox, Proverbs 10-31, 726; Whybray, Proverbs, 333; 하지만 반 르우벤은 ‘악한 눈’을 가진 자는 손님에게 단지 선의로 다가가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Raymond C. Van Leeuwen, “Proverbs,” in Proverbs-Sirach, NIB V (Nashville: Abingdon, 1994), 206.
18 McKane, Proverbs, 383.
19 클리포드는 “이 초대받지 않은 방문자들이 아메네모페 11장에서 가난한 자들에게서 도적질하는 자들의 결과와 같이 고통을 당할 도적들”이라 본다. 하지만 위에서 논의한 대로 잠언 23:6-8의 논지상 이들이 초대되지 않은 자들이라는 근거는 없다. Clifford, Proverbs, 210-211.
20 Fox, Proverbs 10-31, 727. 벤시라[31(34):12-21]의 경우는 폭스가 말한 것처럼, 확실히 잠언 23장(vv. 1-3, 6-8)의 식탁 예절에 대한 재구성 담론으로 평가될 수 있다. 벤시라는 하나님이 이러한 자들을 싫어한다는 평가를 첨언한다.(31:13)
21 McKane, Proverbs, 383.
22 하지만 히브리어 ‘שׁער’을 ‘머리카락’(LXX,τρίχα)으로, ‘בנפשׁ’을 ‘목구멍’으로 읽는다면,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목구멍에 머리카락 같다.”가 된다. 즉 목구멍에 있는 머리카락이 들어가면 자연스레 토하게 된다는 것이다.
23 Murphy, Proverbs, 175.
24 Waltke, Proverbs 15-31, 244.
25 잠언 23:5에서 새처럼 날아가는 부요함은 아메네모페보다 더 이른 수메르 문헌에서 발견된다. “소유는 착지할 곳을 찾지 못한 비행 중인 참새들과 같다.” Whybray, Proverbs, 333.
26 Fox, Proverbs 10-31, 723-724.
권지성|영국 더럼대학교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스위스 취리히대학교와 로잔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히브리 성서 및 제2성전기 문헌을 연구하였다. 저서로 Scribal Culture, 『특강 욥기』, 『특강 전도서』 등이 있다. 현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전임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