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가 이런 날이 -
구월은 우리 농장에 가을걷이가 시작 되는 달이다.
밤나무 산에 떨어지는 알밤을 주워야 하고, 감 밭에 감 따기까지 마치려면 두 달은 걸린다.
봄에는 고사리 따고 매실 따고 여름에는 풀베기 겨울에는 가지치고 비배관리, 우리 부부의
일손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농장의 사계절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런 중에 딸과 사위가 외손녀 채린 을 맡겨두고 프랑스로 6개월간 연수를 떠나고 지금은
거주지가 안정이 되었으니 관광도 하실 겸 채린이를 데리고 파리까지 오시라고 비행기 예약하고, 이태리 관광 일정도 잡혀 있다고 한다. 집안 일도 밀려 있고 우리 나이도 얼마인데 그 먼 나라까지 어떻게 가느냐고 나는 볼멘소리를하고, 남편은 그렇지 않아도 성지 순례 모집에 참가하고 싶었는데 나 생전에 바티칸시티 한번 가 볼 기회가 있겠느냐해서, 우리는
서둘러 집안일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나와 남편은 생후 23 개월 된 채린을 유모차에 태우고 이곳 남도 광양에서 인천 국제공항까지 거침없이 달려가 프랑스 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다. 채린이는 태어난지 2 개월됐을 때부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제부모를 떨어저 외가에서 크며 서울과 광양을 수차례
이동하며 자라온 관계로 여행에는 이골이 나 있어서 12시간이나 비행기를 타야하는 긴
여정을 탈 없이 이겨내고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까다로운 입국절차로 시간이 오래 걸려 마중나온 딸내외가 게이트 밖에서 부모님이 무사히 비행기를 탔는지 애가 타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채린을 그들의 품에 안겨 주고 비로소 안도했다.
공항에서 파리 시내까지는 지하철을 갈아타가며 상당히 먼 거리였다. 파리시내의 모습은
높은 건물은 없고 칠 팔층 정도 높이의 육중한 유럽풍 돌집들이 틈없이 빽빽이 늘어서 있고
주먹만한 돌을 박은 좁은 도로가 골목처럼 이어저 있었다. 딸네의 스튜디오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시차적응도 하고 이틀정도 쉬었다.
10월 23일, 미리 정한 일정대로 로마, 피렌체 베니스 세 곳의 관광을 위해 집을 나섰다.
로마행 비행기를 탔다. 저 아래 한없이 펼처진 알프스 산맥이 은색 눈에 덮여 반짝이고
있었다. 고향 떠나올 때 망설이던 마음은 고향과 같이 멀리 밀려가고 나는 하나라도 놓지고 싶지 않아서 안경 속의 작은 눈을 힘주어 크게 떴다. 두 시간여 만에 로마 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오고 길이 질척거렸지만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여행이라는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한국인이 하는 민박집에 들었다. 방도 넓고
아침저녁 식사도 푸짐했다.
조각가이자 화가이며 건축가이기도 했던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성 베드로 대성당,
그 거대한 조각상들에 우리 채린이는 놀라서 울기도 했다. 카토릭의 수장인 교황이 사는 집
바티칸시티, 어마어마하게 큰 집, 수많은 그림과 조각품,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우리는 그
현장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판테온, 트레비분수 ‘로마의 휴일’에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계단은 명소가 되어 관광코스로 정해저있고 우리도 거기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아침 날씨는 쌀쌀했고 한낮에는 햇살이 따가웠다. 어느새 이틀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짐을
꾸려 피렌체를 향해 길을 나섰다.
로마 역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이윽고 피렌체 행 테제베를 탔다.
정해진 자리를 찾아서 앉고 짐은 선반에 얹었다. 딸과 사위는 이제 갓 용변을 가리는
채린을 안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분주하고 나와 남편은 창밖의 끝없이 펼처진 이국
풍경을 바라보다가 깜박 졸기도하며 두 시간여를 달려 피렌체에 닿았다.
그런데 정해진 민박집을 가기위해 버스 티켓을 사려고 딸의 가방을 열어 보니 여행비용
으료 준비한 돈이 없어졌다. 로마 스테이션에는 쓰리꾼들이 상주하면서 관광객을 상대로
벌어 먹고 산다는 말을 들었다는데 설마 우리가 당할 줄은 몰랐단다.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심기일전하여 숙소로 향했다. 이틑 날 사위가 환전소까지 찾아가서 어려움을 해결했다.
여행자 보험에 들지 않아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다.
피렌체는 ‘꽃이 피다’라는 여자 이름이란다. 이름처럼 아름다웠다. 네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를 배출한 곳이라 하고 ‘신곡’을 쓴 단테의 고국이기도하다. 모국에서 추방당하고
먼 이국을 떠돌며 고국에 돌아오기를 갈망하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숨진 고귀한 분 생각에 잠시 가슴이 아렸다. 이곳 역시 거대한 성지들로 돔으로 지은 두오모 대성당, 산 조반나 세례 당, 내 머리 용량이 차버려서 기억도 못하겠다.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관광이라 못 간곳이 많았다. 박물관을 다 돌고 라운지에서 잠시 다리를 쉬면서 멋모르고
시킨 ‘에스프레소’커피가 장종지만한데 담겨서 나왔는데 만원이라고 해서 놀라며 마셨다.
눈 깜짝 새 또 이틀이 지나고,다음 여행지는 베네치아, 두 시간을 기차로 달리는데
어디서부터인지 그 기차는 바다에 놓인 다리위를 한도 끝도 없이 가는 것 같았다. 창밖
양 옆으로 새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처진 풍경을 보며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닿았다.
“ 아! 살다가 이런 날이 나에게 ” 프렛 폼을 걸어 나가며 나는 “ 창공에 빛난 별 물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우치아 “ 하고
뱃속으로부터 울려나오는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시원하게--. 그러나 입밖으로 나오지는
않았고 가슴으로만 불렀다. 그 곳의 공기와 바람과 냄새가 저절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
같았다. 아! 이래서 이태리 가곡이 그렇게나 아름다웠구나. 마음이 풍선처럼 부푸는듯하다.
역 밖으로 나오니 발 앞에 바로 바다가 있다. 도저히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물 안에 도시
인지 나라인지가 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우리 아들 손자들에게 설명 할 수 없을 것이다.
‘ 그 애들을 데려 왔어야 하는 건데 , 한숨이 나왔다. 물 색깔도 쏘는듯 강렬한 태양빛도
나는 처음 보았다. 배를 타고 푸른 물결 위를 한참을 달리며 배는 정거장마다 대었다가 또
출발햇다. 그 물길을 운하라고하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넓은 길을 대운하라고 한다.
작은 섬들을 여러 개의 다리로 이어 만든 도시, 베네치아는 물이 곧 길이다. 큰 배는 버스,
물골목은 taxi 라고 써부친 보트, 또 마차에 해당하는 고급스런 곤돌라, 곤돌라 운전수를
곤돌리에 라고 하는데 기다란 노를 저으며 이태리 가곡을 멋지게 부른다고 한다.
배에서 내려 숙소로 갔는데 집도 후지고 방도 좁고 좀 기울진 듯 했다. 그래도 이곳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역시 이곳에서도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색색의 돌과 유리, 금으로 그린
모자이크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고 수호신인 사자상이 많았다. 광장에는 길이 잘 든
비둘기들이 관광객들의 어깨나 손에 앉아 사진도 찍었다. 유리공예품의 본국이라고
화려한 유리제품 가게들이 끝이 없고 다 기억도 못하겠다.
리알토 다리 주변에는 온갖 가게가 즐비하게 서있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수없이
많아서 다 돌아 볼 수는 없었지만 ‘카사노바’도 눈물을 흘리며 건넜다는 ‘탄식의 다리’에서
사진도 찍고 유래도 들어 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짐을
꾸려 되돌아오는 배를 타고 물 안의 도시를 떠나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일주일간은 파리구경을 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딸네의 좁은 스튜디오에
같이 지내기가 너무 불편하고, 자식이지만 그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 주는 것 같아서 어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 갈 날이 몇 밤 남았는지 세어보고 또 세어봤다. 그러나 꿈에
라도 올 수 없을 이 파리에, 여기가 어디라고 내가 서 있나 싶기도 하고 이 아름다운 나라
에서 걸어 다니고 사진도 찍고 하는 나 자신이 실감 되지 않았다.
파리의 상징물인 에펠 탑, 교과서에서 본 개선문, 노래가사에 나오는 상젤리제 거리,
룩셈 부르크 공원, 시구로만 듣던 센느 강, 거대한 루브르 박물관, 나폴레옹의 무덤, 마리
앙뜨와 네뜨가 갇혔던 감옥, 소르본 대학 뒤 먹자골목에서 사 먹은 맛있는 샌드위치,
낭만의 몽마르뜨 언덕에서 내려다 본 시내 전경, (잊지 않으려고 적어 본다)
파리에서의 일주일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어서 많은 관광을 했지만 그 중에 가장
하일 라이트는 길을 잃었던 일이다. 남편과 나는 새벽에 잠이 깨어 아직 어두운데 아이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살며시 집을 나왔다. 그러나 지난번 가본 큰 공원이 문이 닫혀있어서
조금 더 걸어가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십 일월초의 새벽기온은 차갑고 아름이 넘는
큰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 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날도 밝아지고 해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었는데 어느 길이나 똑같다. 우리가 처음에 왔던 길이 알 수가 없다. 회색빛 돌로 지은 똑같은 집들, 새벽 서리에 젖어 번들거리는 좁은 도로, 특이한 건물이나 튀어나온 간판도 없는 침묵에 잠긴 도시, 시간은 흐르고
차츰 마음은 초조 해지고 도대체 말 붙여볼 수없는, 애초에 계획도시로 동시대에 지어진 저
완강한 동네, 남편은 어제 입은 옷을 바꿔 입고 나와서 사위가 적어 준 집주소도 전화 번호도 없으니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새벽 가게 문을 여는 남자에게 서툰 영어단어를 써
물어보고 아침 출근하는 여자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들은 시간을 할애하여 지도를 펴서 설명
을 친절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댕큐’ 하고 돌아섰지만 실은 아무 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허리도 다리도 아파왔다. 공포감이 느껴지고 이러다 정말 국제적 미아가 되는 건 아닐지,
‘아! 살다가 이런 날이’ 이 먼 프랑스까지 와서 이제 귀여운 채린이도 못보고 어떻게 되는 거 아니냐고 남편을 원망하며 투덜댔다. 우리는 생각을 다시고쳐 정히 안되면 한국 대사관을 찾아 가자고 했다. 그런데 골목 저 끝에 에펠탑의 꼭대기가 보였다. 거기는 딸의 집에서
멀지 않는 곳이고 또 두 번이나 가 본적이 있으니 그곳에 가면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다시 서툰 영어단어를 섞어가며 물어서 에펠탑 가는 버스를 탔다. 길을 찾는 우리에게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파리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했다. 버스 기사에게 유러화
지폐 한 장을 내밀며 ‘에펠 타워’ 했더니 동전 몇 개를 거슬러 준다. ‘ok' 이젠 됐구나. 드디어 에펠탑 맞은편 육사건물(박물관)앞에서 버스를 내리고 길건너 공원에 들어가 잠시 다리를 쉬고 큰 나무 뒤에서 교대로 소변을 해결했다. 그 도시에는 노출된 곳에 화장실이 없어서 옛날 칠십년대에 서울에서도 밖에 나갔다가 화장실 때문에 곤란을 겪던 생각이 났다.
이제는 돌아오는 길이 짐작이되어 딸의 동네에까지 왔을 때 저 앞에 사위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너무나 반가워 달려가 사위를 끌어앉고 엉엉 울었다. 아홉시가 넘도록 오지 않는 우리
를 찾아 나선 사위를 만나 집에 들어가 웃고 얘기했지만 나에게는 무서운 충격이었다.
채린이는 그동안 같이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를 핫비,핫미라고 부르며 지 아빠 엄마와 같이 지내는 것이 만족한 듯 즐거워한다. 나는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겼다.
11월 4일 드디어 나와 남편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사위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프랑스 드골 공항에 나왔다, 그동안 애써준 사위에게 고마운 표시도 못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라고 작별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대한항공 기내에서 수준 높은 서비스를 받으며 이제 비로소 우리 둘만의 조촐한 여행기분을 맛보았다. 열 두 시간의 비행이 지루하지도 않았다.
관광지마다 각색 인종이 물밀듯이 들고 나는 모습이 떠올랐다. 십 년 전에도 십 년 후에도
그들은 끝없이 몰려들고 몰려나겠지. 도도히 흐르는 인류의 물결 속에 나도 한 점의 원소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손 내밀면 손잡을 수 있을 것 같고 입 맞출 수도 있을 것 같
다는 생각도 했다. 이방인 대하기를 짐승 보듯 하던 내가 여행으로 인해 이만큼 의식이 바
뀌었다. 그 선진국, 부자나라 사람들의 검소한 생활도 엿보았다. 밤이면 거리에 네온사인도
없어서 어둑하고, 길가에 세워둔 2인용 소형차, 기품 있는 부인들이 입은 옷차림은 세기가
지나도 변화가 없는 디자인 같았다. 집안의 전등도 촛불처럼 은은하고 우체국까지 걸어가
편지를 부치고 버스를 타면 교양 있게 앉아 책을 읽는 것은 남녀가 다 그랬다.
선진국 프랑스와 개도국 우리나라의 차이점이 어떤 것인지 많은 느낌을 가졌다.
고향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찜질방에 들어가서 몸이 노곤해지도록 피로를 풀었다.
힘든 나라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호사를 많이 누린다. 그리고 행복하다.
두서없고 너무나 긴 글을 올려서 혹시 지탄이나 받을까 염려 됩니다.
첫댓글 자알 읽었습니다. 긴글이라 지탄한다구요. 누가요? 이보다 10배 길어도 다 읽겠구만요. 이태리, 프랑스, 바티칸 기행을 이렇게 짧게 얘기할 수 있다니 대단한 문장가이십니다. 시차도 풀리고, 찜질방에서 어지간히 몸도 풀리면, 길 잃은 얘기 더 해줄 수 없나요? 거기가 젤 재미납니다. ㅎㅎㅎ
좋은 관광여행이었습니다. 우리 나이가 아니면 언제 다시 가게
에펠 탑, 개선문, 상젤리제 거리, 룩셈 부르크 공원, 센느 강, 거대한 루브르 박물관, 나폴레옹의 무덤, 마리 앙뜨와 네뜨가 갇혔던 감옥, 소르본 대학 등등 그림으로만 본 명소인데 상세히 설명해서 가본거나 진배없습니다. 딸 때문에 구경 한번 잘하셨습니다.
여행기를 읽으면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읍니다 잘 읽었읍니다
그저 부럽다는 말 밖에 달리 할말이 없습니다. 저도 간접적으로 나마 유럽 여행 10/1 정도는 한거 같습니다. 근디 파리의 노테르담 사원은?~~^^
마치 제가 여행을 간듯 ...진솔한 여행기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요 매화헌님. 반갑습니다. 이글을 읽으니 앉아서 유럽구경을 잘 하고 잇습니다. 전 10년전에 돌았는데 세느강이 왜 그렇게 작게 보이고 한강이 얼마나 크고 좋게 보이던가. 그때 가서야 알앗답니다. 다음에 또 좋은 이야기 들려주시기를..
반겨 주시고 댓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으려고 생각난대로 적은 글이라서 모자란게 많아요.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돌과 스테인드 글라스로 지은 웅장하구 아름답기가 필설로 표현 할 수가 없느데 동정녀 마리아에게 바치는 대 서당
이랍니다. 파리 외에 다른 나라에도 여러군데 있다는데 영화 "노트르담 꼽추" 배경이 된 곳이 파리에 있는 성당이라 하네요.
네! 센 강은 상상밖으로 좁았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관광객이 그 강을 보러 많이 모였드군요. 또 뵙기를---.
아닙니다. 하나두 지루하지 않게 잘 읽었습니다. 여행글로 인해 읽는 입장은 그곳 문화를 간접경험 하게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어느 여행가의 글보다도 머리에 쏘옥 들어와서 정말 단숨에 읽을수가 있어서 좋았읍니다. 저도 가고싶은 마음이 드는군요.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정말로 열심히 살면서 뜻잇는 외국여행 생생하게 잘 올려 주셨습니다 검소하게 사는 선진국민의 모습 잘 설명해 주셔서 도움되었습니다
외국에는 군 시절에 겨우 미국에 가본적이 있었는데 프랑스 여행을 하시면서 이렇게 여행기도 올려주시고 그곳 풍물들도 재미있게 묘사해 주셔서 눈으로 선히 보이는듯한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