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렬 (1917년)
김정렬(金貞烈, 일본식 이름: 香川貞雄 카가와 사다오, 1917년 9월 29일 ~ 1992년 9월 7일[1])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대한민국의 정치가, 외교관, 기업가이다.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그의 아호(雅號)는 서암(曙巖), 이열(怡悅)이다.
김정렬
金貞烈
3식 전투기 히엔의 앞에 서 있는 김정렬 장군생애1917년 9월 29일 ~ 1992년 9월 7일 (76세)출생지일제 강점기 경성부 사직정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별명호(號)는 서암(曙巖)· 이열(怡悅)
일본식 이름은 카가와 사다오(香川貞雄)종교불교부모김준원(부), 변씨 부인(모)배우자이희재자녀슬하 3남 2녀친척김기원(큰아버지)
김영환(아우)복무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공군복무 기간1941년 ~ 1945년 (일본군 육군)
1946년 ~ 1949년 (대한민국 육군)
1949년 ~ 1960년 (대한민국 공군)최종 계급일본군 육군 대위
대한민국 육군 대령
대한민국 공군 중장근무공군본부지휘공군참모총장주요 참전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기타 이력대한민국 국무총리
그는 김신 등과 함께 대한민국 공군의 창군 주역의 한 사람으로 공군 군번은 1번(50001번)이었다.
1940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1941년 일본항공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조종수로 출전하였다. 해방 후 창군에 참여하고 1949년에는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참여하여 1,3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1957년 중장 예편 이후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1963년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의 초대 의장이 되었다가 그 해에 주미대한민국대사로 부임, 1년간 근무했다. 1966년에는 반공연맹 이사장으로 취임하였고, 1967년에는 민주공화당 공천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1970년대에는 기업인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제5공화국 때 총리 서리로 발탁되어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아버지 김준원도 해방 후 육군 창군에 참여하여 한국 전쟁 당시 육군 대령으로 참전하였고, 6.25 전쟁 당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폭격의 위기로부터 구한 김영환은 그의 동생이었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경성부 출생이며 호는 서암(曙巖)이다. 일본식 이름은 카가와 사다오(香川貞雄)이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1917년 9월 29일 경성부 종로에서 김준원과 변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영환은 그의 동생이었다. 김정렬은 경성부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대한제국 군인이었던 무관 집안이었다.[2] 그의 집안은 대대로 조선에서 무관을 지낸 집안으로, 큰아버지 김기원과 아버지 김준원은 구한말 군관학교를 졸업한 대한제국 군인으로 일제 강점기 무렵에 각각 다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15기와 26기 졸업생으로 일본군에 편입되어 일제 강점기에도 군인으로 활동했다. 특히 아버지 김준원은 해방 후 육군 창군에 참여, 한국 전쟁에는 육군 대령으로 경남병사구사령관으로 활동하였고 예비역 준장으로 예편하기도 했다.
1935년 경성공립중학교(京城公立中學校)를 졸업한 뒤 다시 편제가 바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4학년이 되었다. 1936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군예과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일본군 복무편집
1940년 일본예과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일본 육군항공사관학교 54기로 편입, 1941년 3월 일본 육군항공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제국 육군 항공대 소속 조종사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1941년 12월 항공 중위로 필리핀 공략 작전에 참여하였다. 일본 육군의 비행중대장 및 비행전대장으로 보임되었다.
1942년 일본 아케노(明野)육군항공비행학교에 입학하여 1943년 일본 아케노(明野)육군항공비행학교를 졸업했다. 바로 대위로 승진하여 전투기 비행중대장으로 보임되었다.
창군과 공군 창설 활동편집
광복 후 1946년 최용덕, 이근석, 아버지 김준원 등과 함께 조선국방경비대 육군 항공대(공군의 전신) 창설에 앞장섰으며, 그해 이희재와 결혼하였으나 야근과 훈련 등의 이유로 2년간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가 1948년에 결혼하였다.
1949년 육군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하자 김정렬은 동생 김영환 등과 함께 공군의 창군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공군의 초대 참모총장이 되었다.[3] 한편 공군의 장성으로 진급하여 당시 육군 대령으로 있던 아버지 김준원보다도 더 직급이 높아졌다. 이후 초대, 제3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1950년 6.25 전쟁에 참전하였는데 당시 육군 대령인 아버지 김준원, 공군 대령인 동생 김영환 등도 참전하였다. 6.25 전쟁 이후 공군사관학교 교장, 군사정전회담 한국군 연락장교단 단장, 주한(駐韓)유엔군사령부 한국군사사절 단장, 공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7년 초 공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1957년 7월국방부 장관이 되었으며, 국방장관 재직 중 1958년방첩 조직인 79호실을 조직하였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4월 25일부터 권승렬 등과 함께 이승만의 하야를 촉구하고 자신도 사퇴하였다. 4·19 혁명 이후 1년간 야인 생활을 하였다.
국방부 중앙정보국 설치편집
국방부 79호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59년 어느 날 미 CIA 주요 간부 한 사람 이 당시 국방부 장관인 김정렬에게 미국 기관과는 별도[4] 의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며 당시 국방부 장관 김정렬에게 제의해왔다.
그는 미국 기관과 는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될 CIA 지부 를 대한민국에 설치하고 싶다고 제의해왔다. 그는 CIA 지부가 설치 되면 그 요원 들에게 외교관과 똑같은 치외법권이 보장 되어 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5] 그러나 김정렬은 쉽게 응하지 않았다. 미국 중앙정보부, 즉 CIA 간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넬슨은 CIA 서울지부를 창설하러 왔다고 말하 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김 장관에게 넬슨은 전임 장관인 김용우와 CIA부장 앨런 덜레스가 함께 서명한 협약서를 제시했다.
김정렬은 이 제안에 대해 CIA 한국 지부가 독자적인 기관으로서 설치되는 것은 곤란하나, 주한 미국 대사관 안에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여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5] 한미 두 나라의 정보협력에 대해서 규정한 문서였는데 김정렬은 이런 것이 있는 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넬슨은 이 협약에 따라 CIA지부를 개설하고 이 기구와 상대할 한국측 정보기관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김정렬은 이후락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지만 미국 CIA에서 계속 부탁하자 이승만에게 보고했다. 이승만은 아에 CIA를 믿지 말라면서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결국 정보기관은 국방부의 예하에 두는 것으로 낙착된다. 김 장관이 이 문제를 이승만 대통령과 상의했더니 대통령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CIA지부의 창설을 허가하면서도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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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군인)
김관진(金寬鎭, 1949년 8월 27일 ~ , 전북 임실)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제43대 국방부 장관을 지내고,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되었다.[1][2]
김관진
김관진대한민국의 국가안보실장임기2014년 6월 1일 ~ 2017년 5월 21일대통령박근혜(2013~2017)
황교안(대행)(2016~2017)
문재인(2017)총리정홍원
이완구
황교안전임김장수후임정의용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임기2010년 12월 4일 ~ 2014년 6월 30일대통령이명박(2010~2013)
박근혜(2013~2014)총리김황식
정홍원전임김태영후임한민구신상정보국적대한민국출생일1949년 8월 27일 (68세)출생지대한민국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학력육군사관학교 28기자녀슬하 3녀종교천주교(세례명:아우구스티노)
김관진
생애1949년 8월 27일 (68세) ~출생지대한민국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본관경주종교천주교(세례명: 아우구스티노)부모김영문(부)배우자김연수자녀슬하3녀복무대한민국 육군복무 기간1972년 3월 ~ 2008년 3월최종 계급육군 대장근무국방부 합동참모본부지휘육군 제3야전군, 육군 제2군단, 육군 제35보병사단주요 참전베트남 전쟁서훈 내역미국 정부 공로훈장기타 이력국방부 장관(2010년 12월 4일~2014년 6월 30일)
생애편집
1949년 8월 27일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에서 태어났다.[3]
육군사관학교 28기로 임관하여 수도기계화보병사단 26기계화 보병여단장, 육군 제35보병사단장,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제2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제3야전군 사령관, 제33대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을 지냈다.
2010년 12월 4일 이명박 정부에서 제43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장관으로 내정된지 38일만에 자진사퇴하게 되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3년 3월 22일 대한민국 헌정상 전 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유임되었다.[4]
2014년 6월 1일 박근혜 정부에서 김장수의 후임으로 제2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지명되어 2017년 5월까지 근무했다.
학력편집
전주중앙초등학교전주북중학교서울고등학교 졸업1972년: 육군사관학교 제28기 학사1977년: 육군보병학교 졸업1982년: 육군기계화학교 졸업
경력편집
1972년 3월: 육군 소위 임관1983년 4월: 육군 15사단 50연대 2대대장, 15사단 작전참모1990년 9월: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26기계화보병여단장1992년 3월: 합동참모본부 군사전략과장1993년 12월: 대통령비서실 파견 근무1996년 1월: 육군교육사령부 전투개발부 차장1996년 11월: 육군본부 비서실장1998년 4월: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전략기획처장1999년 4월: 육군 35사단장2000년 10월: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2002년 10월: 육군 2군단장2004년 5월: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2005년 4월 ~ 2006년 11월 : 제3야전군 사령관2006년 11월 ~ 2008년 3월: 제33대 합동참모본부 의장2008년 4월: 육군 대장 예편2010년 12월 4일 ~ 2014년 6월 29일: 제43대 국방부 장관[5]2014년 6월 1일 ~ 2017년 5월 21일: 제2대 국가안보실장
상훈편집
미국 국방부 공로훈장(2008년 3월 25일[6])2008년 보국훈장 통일장
논란
역시
대장 위에 병장이다
https://youtu.be/ao7mbnE0rrc
https://youtu.be/Vf7GIyClfB8
https://youtu.be/98gcc21ZPEw
독사파 뚝심?
독선이 패망!
겸허하시게
국민이 명한 군권을
기망하다니....
오라를 받으슈
국민이 명함🍌
시원합니다
바다는
민의 피와 땀으로
사욕을?
매국을?
사리사욕을?
국민소환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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