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쟁이 일어나야 진가를 발휘하는 인간병기들 해군 UDT [월간조선]
유디티는 전체 지원자중 평균 수료율이 40%가 안된다. 이들은 24주(6개월)간의 강인한 훈련을 통과한 선택된 소수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강하다. 24주간의 훈련중 가장 힘들고 괴롭다는 지옥주 훈련은 1백 32시간 동안 잠을 한숨도 자지 않으면서 체조와 구보, 고무보트 조정훈련 등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훈련이 반복된다. 훈련을 수료하면 그들은 평소 체력의 10배 이상 강한 인간병기로 개조되는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
일요일 오후 7시. 모 지역에 위차한 해군 특수전 부대. 일반인에게는UDT(수중파괴대:Underwater Demolition Team)로 잘알려진 부대 연병장에 도착하자 "불가능은 없다"라는 부대 슬로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녹색베레모에 희한하게 생긴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위병소 초병을 보는 순간, 이곳이 말로만 듣던 특수전 부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부대장이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해사26기 출신으로 함상근무를 하다가 중위 때UDT지원오늘부대장이 되는인연을 맺었다.
75년에는 미국에 파견돼 SEAL(육해공 전천후 특수부대: Sea Air and Landing) 훈련소를 우등으로 수료한 특수전 분야의 베테랑이자, 미국 남가자주大에서 국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구파 장교다. 학자 스타일의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부대장이 그 험하고 거칠다는 SEAL훈련을 어떻게 견디어낼 수 있었을까?
그의 약력 소개를 들으며 그 동안 람보형 터프가이로 상상되던 특전부대원들에 대한 선입견이 잘못이었음을 께닫게 되었다. 부대장 뿐만 아니라 중견 지휘관 대부분이 후덕하고 이지적인 인상을 하고 있는데 놀랐다. 부대 중견 지휘관들의 계급과 지휘를 묻자 특수전 요원들은 계급과 이름을 밝히지 않는것이 관례라고 말한다.그들은 음지에서 일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인 셈이다.
연병장 한쪽에는 SEAL이라고 새겨진 15m높이의 인공암벽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SEAL과 UDT는 어떤 상호관계가 있는것일까? 이 질문에 부대장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사회에서는 통상 UDT라고 부릅니다만 정식 명칭은 UDT/SEAL/EOD 특수전 부대입니다. 초창기에는 수중파괴임무(UDT)만을 수행했으나 지금 은 폭팔물 처리임무(EOD),육해공 전천후특수타격임무(SEAL), 해상 대테러임무가 추가돼 1인 4역을 하고 있습니다."
UDT와 SEAL
미국의 경우 UDT와 SEAL은 한 부대로 통합되어 UDT/SEAL로 부르지만 EOD는 별도의 부대로 분리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한 부대가 1인 4역을 하는 것은 유례가 없다고 한다. 대원들의 개인병기나 장비를 소개해 달라고 하자 이렇게 말한다. "TV에 우리대원들의 훈련모습이 자주 방영됩니다. 그것은 우리활동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희들은 외부에 공개 할수없고, 또 공개해서도 안되는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병기나 부대편성과 같은 사안은 설명드리기 곤란합니다." 따라서 이번 취재는 상당히 제약된 상황에서,보안상 저촉되지 않는 부분만을 취재 대상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부대 행정관 건물 입구에는 스트레스를 주지도 말고 맏지도 말자라는 구호가 눈에 들어 왔다. 명령에 죽고 사는 軍에서 무슨 스트레스 쌓일 일이 많기에 이런 구호를 적어 놓았을까? 이 구호에 대한 부대장의 설명이다. "특수전 부대는 단 한번의 승부를 위해 오랜 기간 반복훈련을 하기 때문에 고도의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훈련자체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정도로 위험하고 힘들기 때문에 긴장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부대원들을 규제로 묶어 통솔하기보다는 리버럴하고 자율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부대 어디를 둘러봐도 팽팽한 긴장감 대신 포근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자연스러운 복장과 넉넉한 분위기,대원 상하간의 격의 없는 모습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긴장감이 넘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부대 견학과 UDT훈련과정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사이 어느덧 주위엔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일요일 자정...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M60기관총이 칠흑같은 어둠의 정적을 찢어내기라도 하듯 불을 뿜어댔다. 드디어 24주에 걸친 UDT훈련과정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지옥週(hell week)"가 시작 된 것이다. 곤히 잠들었다가 허겁지겁 팬티바람으로 뛰어나온 훈련생도들이 연병장에 늘어섰다. 사방에서 폭음통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이 펑펑 터졌고,연막탄이 핑크빛 연막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의 우렁찬 함성과 구호는 부대뒷산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에너지가 강렬했다. 교관이 내리는 명령은 엄격했지만 훈련생도들에게 반드시 존칭어를 사용하는것이 특이했다. 훈련생도들에게 존칭을 쓰는 이유를 묻자 교육대장은 이렇게 답한다. "UDT 교육과정은 장교와 하사관,사병이 함께 훈련받기 때문에 훈련병이라 하지않고 훈련생도라 부릅니다. 교관들도 항상 존대말로 교육을 진행하죠. 이번 기수 또한 장교와 하사관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중에는 육군 특전사 소속의 장교와 하사관, 해병 특수수색대 장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UDT교육을 수료하면 소속군으로 돌아가 각 군 특성에 맞는 특수전의 첨병역할을 하게 된다. UDT는 해군만이 아니라 우리 군 전체의 특수전 능력고도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UDT 교육대장에게 교육의 목표를 묻자 자신의 방에 걸린 "호랑이 새끼를 키울 것인가, 고양이 새끼를 키울 것인가"라는 구호를 가리킨다. 훈련은 엄하게 ,부대운영은 민주적으로,이것이 UDT의 특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프로
이 부대가 민주적 훈련방식과 부대운영을 하는 원동력은 미국의 영향 때문이다. 본 부대는 미국 UDT/SEAL팀과 일년에 수십차례 한미 합동 훈련을 실시,한국군 단위부대 중 가장 합동 훈련을 많이 하는 부대로 알려졌다. 교범과 훈련방식도 미국의 것을 답습했다. 미국의 UDT/SEAL 훈련과정과 부대운영 방식은 고도의 스포츠 의학과 인간심리학,특수전 전술전략의 합작품이다. 이러한 부대 운영 매뉴얼을 미국 유학을 통해 배운 한국 요원들은 미국식 교범과 합리적 통솔법을 우리식으로 변형시켜 부대 전통을 만들었다. 미국의 UDT/SEAL요원들은 강제모집을 통한 비 자발적인 훈련이 아니라 지원제로 운영되는것이 특징. 훈련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지원자는 연병장에 있는 "자유의 종"을 치고 모자를 벗어 걸면 자퇴가 허락된다. 훈련도 우리나라와 같이 24주로 극한 상황을 끊임없이 부여하여 이를 극복하는 능력을 기른다. 때문에 정신력과 체력 ,특수전에 필요한 임기웅변의 재능이 없으면 수료가 불가능하다. 얼마나 훈련이 고된지 어느 해에는 수료자가 한명도 없을 정도라고 한다. UDT에 지원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UDT의 한 지역대장은 이렇게 말한다.
"UDT를 아무나 할 수 있다면 나는 지원을 망설였을겁니다. UDT 대원들은 극한에 도전하는 24주의 훈련을 통과한 `선택된 소수` 입니다. 다른 부대가 아마추어라면 우리는 프로인 셈이죠."
그는 "UDT야말로 인내심과 오기로 똘똘 뭉친 프로 중의 프로"라면서 UDT대원을 임의로 차출하여 훈련시키면 훈련을 견디지못하고 중도에서 탈락하고 만다고 한다. 자기가 좋아서 자발 적으로 참여하는것과 억지로 시켜서 하는것과는 완연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에게 어느지역 출신이 가장 훈련을 잘 받는지를 묻자 경남과 충청도출신이라면서 독종 중의 상독종은 충청도 출신인것 같다고 답한다. 훈련생도들이 한 시간에 걸친 선착순과 체조와 얼차려로 기진맥진하자 다음 명령이 떨어졌다. "IBS(저속고무보트)를 완전히 펌핑한 후(바람을 넣는다는 뜻),훈련복장을 착용하고 선착순으로 집합하십시요!" 잠시후 군복에 카포크 재킷(해군용 주황색 구명조끼), 팔각모를 쓴 생도들이 IBS를 들고 연병장에 집합했다. 기자도 교육대에서 제공한 군복과 카포크 재킷을 착용하고 훈련대열에 합류했다.
냉수욕 견디기
다음 훈련은 냉수욕 견디기. 두 시간동안 바닷물에 들어가 인내력을 기르는훈련이다.부대 부두까지 IBS를 머리에 이고 군가를 부르며 이동 했다. IBS의 무게는 85kg. 10m도 못가 머리가 쑤시고 목이 뻐근해 진다. 부두에 도착하자 훈련생도와 교관단을 대표하여 교육대장이 용왕님께 생도들이 탈락자 없이 무사히 지옥주를 마치게 해달라는 내용의 신고식을 가졌다. 그후 교관의 `入水` 구령과 동시에 생도들은 차례로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기자도 난생 처음으로 심야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짠물의 비릿한 여운이 가시면서 맑은 별들이 비늘을 털듯 반짝이는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카포크 재킷을 입었으니 몸이 45도로 기운 채 바다에 둥둥 떠서 두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깥날씨와 달리 심야의 바다는 오금이 저릴정도로 냉랭했다.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신체현상이 시작 낮다. 바닷물에 체온을 뺏기면서 발 끝부터 뻐근하게 저려오는 것이다. 시간이 더흐르자 오한이 일었다. 아무리 참으려해도 턱이 덜덜 떨리고 ,옅은 신음소리가 입술 바깥으로 튀어 나왔다. 그 와중에서도 무시로 잠이 쏟아졌다. 교관들은 생도들이 졸지 못하도록 쉴세없이 군가를 시켰다. 그 중에서도 국군의 날 시가행진 때 들었던 UDT가가 인상적이었다.
이노래는 지난 1968년 박노식 씨 주연의 "사나이 UDT"영화에 삽입 되었다.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불루벨스 4중창단이 이 노래를 유행 시킴으로써 국민들에게 UDT를 친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낮다고 한다. 교관들은 연신 플래시를 비추며 꾸벅 꾸벅 조는 생도들에게 물을 끼얹는다. 비몽사몽간에 두 시간이 흘렀다. 바깥으로 나오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체온을 잃은 근육이 굳어서 제대로 걸을 수 가 없었다. 잠시의 휴식도 없이 이번에는 IBS에 승선하여 고무보트 조정훈련이 시작 낮다. 부두 전방의 섬까지 왕복 10마일의 거리다. 기자는 10조에 배치되어 노(패달)을 잡았다. IBS는 조장이 뒤에서 키를 조정하고 좌현과 우현에서 각각 2~3명씩 노를 젓는다. "노를 수면과 지각으로 꽂고 뒤로 힘차게 끌어당기세요." 10조 조장 X소위(해양대 ROTC 출신)의 코치에도 불구하고 노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 앞 사람과 계속 부딪쳤다. 고무보트 조정 훈련은 단결심을 기르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조원 상호간에 호흡이 잘맞는 팀은 쑥쑥 전진하는 반면 한 사람이라도 꾀를 부려 적당히 저으면 당장에 다른 조에 추월 당한다. 지옥주 기간에는 IBS의 평균속력이 시속 4 노트정도인데 ,24주훈련이 끝날 때 쯤이면 시속 7노트까지 빨라진다고 한다.
육체와 정신의 조화
새벽 세 시 부두를 출발한 IBS가 반환점인 섬을 돌자 그제서야 어슴푸레하게 주위의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햇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바다풍경이 눈에 들어올 새도 없이 입에서는 연신 단내가 풍겼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라는 말이 실감 났다. 기자는 그동안 정신력만 강하다면 육체적으로 힘든일은 감당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옥주 훈련에 참여하면서 이 말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 할 수 있었다. UDT 전우회장 曺光鉉(에비역 해군 대령:경남기업 비상 기획관)는 이렇게 설명한다. "UDT요원에게는 체력과 정신력,테크닉의 세 요소가 요구됩니다.체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정신력이 아무리 강해도 UDT훈련을 소화 할 수 없어요. 저는 정신력이 강하면 어떤 상황도 이겨 낼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知德體가 겸비돼야 완성된 인간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체력이 거의 다 소모되면서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자율 신경계의 의지를 떠나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팔에 노를 의지하는 느낌이었다.
10조 조원들은 묵묵히, 그리고 인내심으로 초심자의 몫까지 벌충하여 노를 저은 덕분에 내가 탑승했던 IBS는 5위로 골인했다. 욱신욱신 쑤시는 손바닥위에는 큼지막한 물집이 잡혀 있었다. 생도들은 IBS를 머리에 이고 다음 코스인 체조장으로 이동했다. 지옥주 훈련 첫날의 훈련일정은 체조와 3km구보,고무보트 조정 훈련,수영 등이 쉴틈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한숨도 자지못하고 고무보트를 젓거나 시가지 구보로 지옥주 훈련의 첫날을 지샜다. 다음날 새벽 5시 체조와 구보훈련에 참여 할 수 있었다. 모두 52종목으로 구성된 UDT체조는 달팽이 체조,새 날리기,배들어 올리기,새우 튀기 등 이름도 생소한 동작의 연속으로 인해 신체 각 부위에 강렬한 압박이 가해진다. 18번째 종목까지는 겨우 따라했지만 19번째 종목부터는 아무리 힘을 써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미국 SEAL팀이 개발한 이 체조는 신체 곳곳의 관절을 풀어주고 근육강도를 극대화 시켜준다고 한다. 생도들은 오전 오후 두시간 UDT 체조로 몸을 유연하게 해야만 그날의 격렬한 훈련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 체조는 날이 가면서 강도가 늘어나기 때문에 생도들의 근육도 날이 갈 수록 강화된다. 밤새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해서 그런지 훈련생도들의 동작이 전날에 비해 느슨해진 느낌이었지만 눈빛은 빠릿빠릿하게 살아 있었다. 다음 순서는 구보. 구보도 훈련초기에는 1km구보로 시작하여 지옥주 기간에는 3km를 뛴다. 수료무렵에는 전속력으로 20km구보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체력이 눈에 띄게 강화된다고 한다. 물에 젖은 군화에서 철커덕 소리가 계속 났고,군복위에 착용한 주황색 카포크 재킷에서 김이 무럭 무럭 솟았다.
이날 구보에서 2명이 낙오했다. 아침 식사시간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생도들이 식판을 들고 서서 식사를 하는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식당에 앉혀 놓으면 밥 먹다 말고 자는 생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 한다. 배고품 보다 더 참기 어려운것이 잠인 모양이다. 식사시간에 조느라 식사를 못하면 다음 훈련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서서 식사를 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지옥주 기간에 잠을 재우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최악의 상황에 빠뜨려 정신력과 체력으로 극복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훈련생도들이 지옥주를 통과하면 어떤 훈련에 부딪혀도 자신감을 갖는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후 생도들은 장거리 IBS 조정훈련에 돌입했다.
이 훈련이 끝난 후 85kg의 IBS 를 이고 가파른 암벽을 오르는 훈련이 실시됐다. 두 시간에 걸친 고무보트 암벽훈련이 끝나면 체조와 구보가 이어진다. 이런식으로 토요일 정오까지 한 숨도 자지않고 견뎌야 하는것이다.
"지옥주"는 UDT훈련의 꽃
UDT대원들은 현역,예비역을 막론하고 제대 후에도 지옥주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UDT대원들은 장교나 사병을 막론하고 24주간의 교육과정 을 수료해야 하는데, 지옥주는 그 중 5주차 훈련에 해당된다. UDT교육과정의 초기 단계인 5주까지는 체조와 구보,수영,고무보트 조정 등 기초체력 강화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마지막 코스가 지옥주. 말하자면 지옥주는 일반 군인과 특전 요원들을 가리는 분기점이다.
그들은 훈련 첫날 착용한 복장 그대로 1백 32 시간동안 바닷물에 젖고,갯벌에서 뒹굴고,잠을 한 숨도 못잔 상황에서 일주일간 인간 극한을 넘나드는 훈련을 하는 만큼 탈락자도 상당수에 달한다. UDT교육의 평균 수료율이 40%를 넘지 않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지옥주 과정에서 탈락한다. 과거에는 수료율이 10%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UDT11기는 3백 20명이 지원하여 16명 수료,12기는 2백 17명이 지원하여 12명 수료 ,14기는 겨우 6명이 수료함으로써 생도보다 교관이 더많은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옥주 훈련을 통과한 생도들은 특수전 교육에 돌입한다.
잠수,사격,폭파,정찰 등 특전 전술을 익히는 이 과정은 교관들 표현에 의하면 "눈 깜짝하는 사이에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상황" 이 반복된다. 그 중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분야가 잠수훈련이다. UDT훈련과정에서는 수심 1백 30피트(약 40m) 까지 잠수하여 5분간 체류하는 훈련을 한다. 압축공기를 사용하는 잠수의 경우 수심 1백 30피트가 제한 선이다. 다음은 황갑룡씨(UDT전우회 경남지부 회장)의 설명. " 잠수에서는 수면 아래로 33피트를 내려 갈 때마다 1기압씩 늘어납니다. 1백 30피트까지 내려가면 지상보다 네배 이상의 수압이 가해지는 셈이지요. 감압조치를 하지않고 내려갔다가는 고막이 터질 정도 입니다. 수심 1백 30피트에서 5분까지는 별문제가 없지만 그 이상 지나면 체내의 질소가 마취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술 취한 것처럼 몽롱한 상황에 빠집니다.
질소 마취 현상이 나타나면 통제력을 상실하기때문에 빌글빙글 돌며 떠오르거나 가라앉는 등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죠 " 잠수가 일상 생활인 UDT대원이나 예비역 대원들은 대부분 고막 이상으로 청력이 좋지않다고 한다. 집에서 텔레비젼을 볼때도 불륨을 최대한으로 올려야 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에 이웃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는 것.
UDT출신 예비역 중 잠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쿠버 장비로 수심 94m까지 잠수한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감압 조치를 무시하고 떠오르다가 수압에 의해 반신불수가 된 대원도 있었다. UDT대원들의 잠수법은 몇 가지로 구별 된다. 일반 스쿠버 처럼 기포가 수면으로 올라오는 잠수법(open circuit)이 있는가 하면 기포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폐쇠회로 잠수법 (close circuit)이 있다. 이방법은 적진 침투시 사용하는데 대단 히 위험하기 때문에 고도의 숙련도가 요구된다.
갯벌 훈련...
특수전 교육과정을 마치면 제주도 전지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 동안 배운 특수전 기술을 점검하고 실전에서 응용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19주째는 생식주간이라 하여 무인도에서 3박4일간 생도들을 풀어놓고 일체의 음식물 공급을 중단한다. 그들은 교육과정에서 배운대로 물고기나 나무뿌리,파충류 등을 잡아 먹으며 생존법을 터득한다. 이런 훈련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 생도들의 체력이 고도화 되기 때문에 교관들이 생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된다. 24주의 UDT훈련을 마치면 근육이 완전히 바뀌면서 평소 체력의 10배 이상을 발휘 할 수 있는 `인간병기`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지옥주 4일째 되는 날 오후 4시, 지옥주 훈련의 하이라이트인 갯벌훈련이 시작됐다. 훈련장 인근의 각종 산업체에서 배출하는 중금속과 시내의 시궁창물이 바다로 흘러가는곳, 뻘흙 사이에 문명의 쓰레게가 켜켜이 쌓여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 갯벌에 4일 밤낮을 뜬 눈으로 지샌 훈련생도들이 집합한다.
갯벌 훈련과정 쯤 되면 IBS를 머리에 이고 걸으면서 잠을 잘 정도라고 한다. 그들은 M60 기관총이 불꽃을 뿜고 연막탄이 시야를 가린 상황에서 살에 닿으면 독이 올라 벌겋게 부어오르는 갯벌을 1시간동안 기고 뒹굴었다. 온몸이 시꺼먼 뻘흙으로 뒤범벅 되어 껌뻠이는 눈과 함성을 지를때 이빨만 하얗게 보였다. 나흘 동안 함숨도 못잔데다가 다리사이가 뻘흙과 모래로 긁혀 생도들의 동작이 첫날에 비해 유난히 굼뜨게 보였다. UDT대원들은 지옥주 중에서도 갯벌훈련을 잊지못하는 추억으로 간직한다. 훈련이 끝나면 몸에 독이 올라 피부에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기자는 갯벌훈련을 참관하면서 더러운 갯벌에 생도들을 기고 뒹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꼭 이런과정을 거쳐야 훌륭한 대원으로 재 탄생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UDT교육대장은 갯벌훈련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특수전 요원들은 인간의 이기심을 없에는 것이 중요합니다.갯벌훈련을 통해 수치심을 버리고,자존심과 이기심을 버리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아무리 더러운 곳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 또 인간이 가질수 있는모든 감정을 버리고 팀을 위해,국가를 위해 새롭게 태어나라는 사고를 길러주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훈련은 미국 SEAL에서도 똑같이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SEAL팀은 세계곳곳에서 실전에 투입되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들은 작전에서사망하거나 부상한 동료들을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회수하여 치료하고,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을 긍지로 삼고 있다. 이기심이 많은 대원은 위기 상황에서 동료의 시신을 챙기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훈련과정에서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을 희생하여 팀을 우선하는 정신을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부상,사망한 동료대원의 시신을 끌고 나오는 동료애는 갯벌훈련이나 고무보트 조정훈련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 길러진다는 설명이다.
UDT의 역사
UDT의 역사는 2차대전에서 시작됐다. 미 해병대는 1942년 타와라 상륙작전 당시 해안에 매설된 기뢰와 수중 철조망,각종 폭팔물과 인공장애물로 큰 해를 당했다. 이러한 수중장애물 제거를 위해 창설된 부대가 UDT다.
2차대전 후 특수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UDT는 육해공 전천후 타격임무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것이 SEAL의 출발이다.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 월남전과 같은 대규모 정규전을 피하고 소규모 정예병력이나 비군사적 수단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conflict) 전략 추진을 위해 특수전 부대 육성에 주력하였다. 그 당시 특수전 부대 강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 현재 3천 5백여명의 정예 SEAL요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SEAL은 장비도 특수침투에 알맞도록 소형 경량화되고 타격력이 강한 최첨단을 자랑한다. 특수 소음장치를 갖춘 고속 침투정 ,레이져 목표물 식별장치,장거리 목표물 확대 식별 장비,개인용 야간 투시경, HK기관단총,레이져 빔을 발사해 표물을 식별하는 AN-PAO-1,산악이나 사막등 험한 지형에서도 기동력이 뛰어난 허머스 특수차량(HMMWR)등은 기본장비에 속한다. 이밖에도 공상과학영화에서나 구경 할 수 있는 비밀 병기들이 다수 지급돼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SEAL외에도 세계각국은 그린베레(美 육군 특수 부대),레인져(美육군 경보병 특공부대),델타포스(美 제 1특전단 분견대),SAS(영국 공수특전단), 코만도(영국 해병 특공대),GIGN(프랑스 대 테러부대),GSG-9(독일 제9 국경 저격여단),콤수빈(이탈리아 수중 툭공대)등 나라별 특성에 맞는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도 경보병 여단 내에 해상 침투대를 운영하고 있으며,원산에 수중침투 전문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각국이 특수전 부대를 육성하는 이유는 국가 비상사태 발생시 경제적인 비용으로 정확하고 강력한 타격 을 위해서이다. 미사일 개발이나 함정 한 척 건조비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특수전 요원을 훈련 시키면 그보다 몇백 배의 정확성과 타격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각국은 경쟁적로 특수전 부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월남전 이후 벌어진 포클랜드전이나 걸프전의 戰史 를 보면 정규군의 작전 이전에 특수전 요원들이 맹활약하여 승리로 이끌었음을 교훈으로 전해주고 있다. 91년 6월17일자 뉴스위크는 `비밀의 전사들(SECRET WaRRIORs)` 이란 제하의 커버 스토리 기사에서 '걸프전 당시 특수전 요원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아군 피해가 엄청났을 것' 이라고 특수부대의 활약상을 소개 했다. 우리나라 UDT의 역사는 1954년 장인표 대위와 조학상 씨등 8명이 미국UDT학교를 수료하면서 시작 됐다. 이들이 1955년 한국에 돌아와 3백명의 지원자를 훈련하여 1기생 26명을 졸업시켰다. 1955년 한국 UDT는 교관요원 8명과 대원 26명등 34명으로 첫 출발했다.
자신의 가능성에 도전한다
UDT는 1965년 부터 1975년까지 월남전에 참전하여 실전경험을 쌓았으며, 수많은 대북 비밀작전으로 특수전 부대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1976년 부터 SEAL개념이 추가된 한국의 UDT/SEAL/EOD 부대는 이제 한국 최강을 넘어 세게최강의 특수부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 세계특수전 분야에서는 대만 UDT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지형여건상 대만에서 중국본토로 첩보원을 침투시키려면 금문도에서 UDT를 이용한 수중침투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범국가적인 지원하에 최정예 UDT부대를 육성한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 UDT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80년대 후반 한국 UDT대원들을 교관으로 초청하기 위해 접촉했다.그후 시범팀이 사우디 국방 관계자들에게 시범훈련을 보였고 교범번역과 파견요원 선발을 추진하던 중에 걸프전 이 터졌다. 걸프전에서 우리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 지원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사장된 것이다. 이 사례는 한국 UDT의 능력을 외국 정부에서 인정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에 해당된다.
5박 6일에 걸친 UDT의 지옥주 훈련에 참여하여 체험취재를 하면서 한 가지 의문점을 지우기 힘들었다. 군입대를 회피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시대 분위기에서 이 젊은이들은 왜 편안한 군생활을 마다하고 훈련이 고되기로 유명한 UDT에 지원 했을까.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UDT대원과 훈련생도,UDT훈련을 지켜보는 일반 사병들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해 보았다.
UDT관련자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자신의 가능성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소속됐던 10조 조장 X소위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훈련보다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UDT에 도전한 것은 인내심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 훈련을 견딘다면 한국에서,세계에서 가장 힘든 훈련을 이겨냈다는 명예와 자부심을 얻게 되는 셈이죠. 어차피 젊은 시절에 한번 겪어야 할 군 생활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UDT훈련과정에서 길러진 인내심과 복종심,그리고 개인을 희생하여 팀을 살리는 협동심은 사회생활에서도 소중한 규범이 되고 있다. 이종호씨(UDT전우회 진해지부장,한화화학 진해 공장 근무)는 UDT에서 제대 한 후 외항선원 생활을 했다. 그가 승선했던 배가 남지나 해를 항해 할 때 베트남 난민을 태운 침몰직전의 보트 피플과 만났다. 선장이 보트 피플의 승선을 거부하자 이씨는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며 바다에 뛰어들어 57명의 귀중한 생명을 구조했다. 그덕에 이종호씨는 세계인권옹호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20 척의 보트가 여러척 줄어
이밖에도 UDT대원출신들은 각종 대민 봉사활동으로 부대의 명예를 지켜왔다.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때 UDT대원들은 45kg의 산소통과 15kg의 납벨트를 메고 사체인양과 선체인양작업을 벌였다. 매년 전국의 바다와 강에 산재된 불발탄 신고가 들어오면 UDT가 달려가 처리하고,해상 인명 구조활동,전국 각 항구의 수중암반제거작업도 이들의 몫이었다. 오늘날 포항제철과 현대 미포 조선소, 대우 옥포 조선소,영광 원전 ,아산만 개발,광양제철소 같은 국가 기간 산업 건설공사에는 선발대로 UDT가 투입돼 해저 지형 정찰과 수중 장애물제거 ,암반폭파 같은 일을 수행한 것은 알려지지 않은 비화다. 최근에는 한강 수상 경찰,경찰특공대,119 구조대 등 우리사회 곳곳에서 궂은 일과 봉사활동에 종사하고 있는것도 UDT정신이 사회로 이어지고 있는 소중한 사례다. 그러나 UDT훈련을 바라보는 일반 사병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미친 사람들""군대 생활 편하게 하지뭐하러..."등 부정적이었다. 이들의 말처럼 훈련생도들은 미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미쳤다고 하기 이전에 한가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편한 것이 좋다 하여 아무도 UDT에 지원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났을때, 어느 누가 기뢰가 부설된 적해안에 침투해 장애물을 제거하며,서해 훼리같은 인양작업을 수행 하겠는가. UDT대원들은 형제나 부자지간이 대단히 많다.
훈련생도 중에 형제가 나란히 입교했는데,알고보니 이들의 맏형이 현역UDT 대원이었다. 두 생도가 무사히 교육을 수료하면 3형제가 UDT에 근무하는 셈이다. ooo 명에 불과한 현역과 예비역중 형제 부자지간을 따지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점이 이 부대의 특징일 것이다. 처음 20척의 IBS로 시작한 지옥주 훈련은 마지막 단계에서 여러 척이 줄어 있었다. 처음에 봤던 대원들 중 상당수가 보이질 않았다. 훈련과정을 이기지못해 탈락한 것이다. 강자만이 생존하는 세계에서 내일의 영웅을 꿈꾸는 훈련생도들은 오늘도 `사나이 UDT` 가 되기 위해 땀을 흘린다. 그들의 에너지를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발휘하도록 하기위해서는 정신적 동기가 필요 할 것이다.
그것은 클라우제비츠의 지적처럼 `명예심`이다. 우리는 사회는 인간극한에 도전하는 UDT자들의 영웅심을 국가적 명예심으로 승화 시켜야 하는 UDT를 UDT답게 만드는 동기는 `명예심` 이기 때문이다. 북한 잠수정 예인 작업에 동원된 해군 특수부대는 이른바 수중폭파부대인 해군 `UDT'(Under Demolition Team)와 해난구조부대인 SSU이다. 이 중 해군 작전사령부 5전단 소속인 UDT는 육.해.공 전천후 작전이 가능한 해군이 자랑하는 최정예 부대이다. 이번 북한 잠수정을 해상 초계함 밧줄로 묶고 끌고와 육지로 끌어올리는 일부의 과정도 이들의 몫이다. 잠수정내 북한 승조원 정찰팀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망치로 잠수정을 두드리고 혹시나 모를 대응 사격등에 대비해 수중총 등 완전군장을 하고 수상함, 링스 대잠헬기 등의 엄호속에 작전을 수행했다. 지난 1955년에 미국의 실(SEAL) 팀을 본따 창설된 UDT는 한국군 최초의 제대로 된 교육과정과 모습을 갖춘 공식적인 특수부대로써 몇차례 변화를 거쳐 유디티(수중폭파), 실(육해공 전천후 작전팀), 이오디(폭발물 처리반), 해상대테러 등 4개의 소수정예팀을 운용하는 해군 특전전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특히 실팀의 작전수행능력은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실팀 요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악소리만 요란한 부대가 아닌 실질적인 전투수행 고급기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다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군 UDT 요원이 되려면 `체력과 정신력 10배 이상 향상'을 목표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 상황을 모두 거치는 24주간의 기본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훈련 기간중 1주일 동안은 특별히 `지옥주 훈련'으로 정해 잠을 재우지 않고 식사를 고무보트를 머리에 인 채 서서 먹게 하거나 물속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등의 고된 훈련을 거친다. 이러한 훈련방식은 작전지역이 비슷한 해병특수수색대등 각 군의 특수부대 훈련방식의 개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UDT훈련에는 해군뿐 아니라 특전사, 해병대, 정보부대 요원 등 각 군에서 선발된 장기복무 하사관이상 최정예 병력들이 위탁입교하지만 교육생의 절반 이상이 24주간의 훈련을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도중 탈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 훈련을 마친뒤에도 다시 3년동안 공수교육과 특기과정, 고급과정 등을 거치면서 해상·수중·공중·육상 모두를 제압할 수 있는 침투능력과 사격술,폭파술, 생존술, 구급법, 호신술 등을 익히게 된다. 일부 교육은 미해군 실 특수전 학교에서 습득하며 국제 경연대회를 통해 각국 특수부대와 전력을 견주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UDT대원은 `살아 있는 만능병기'로 변해 적이 설치한 수중장애물을 제거해 해병의 상륙작전을 돕는 고전적인 임무외에 적 경보체제나 유도탄 기지등을 사전에 무력화하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조국의 바다는 바로 그들이 있기에 또한 믿음직 하지 않은가 !
2. 최강 해군 SSU 24시 [신동아]
SSU는 평상시가 곧 전시체제인 특수부대이다. 서해 카훼리호 침몰 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격침된 북 반잠수정 인양 현장에 SSU대원이 있었다. 목숨을 내맡긴 채…. 적막함과 섬뜩함. 우주공간에 떠 있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사방은 칠흑같은 어둠으로 차 있다. 여기는 바닷속 150m. 랜턴을 비춰도 가시거리는 2m 안팎이다. 컵라면 용기가 3분의 1 크기로 찌그러지는 16대기압이 몸을 압박하고 있다. 해군 해난구조대(Ship Salvage Unit, SSU) 심해잠수사인 김OO(30) 상사는 신체가 이 조건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구조함인 청해진함의 ‘챔버’(함상감압실, DDC) 속에서 이미 가압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150m 바닷속은 함상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악조건이다. 관절부위가 뻑뻑하게 느껴졌다. 무거운 잠수장비를 착용했는데도 몸이 수평으로 눕혀질 만큼 강한 2노트의 조류가 흐르고 있었다. 3월17일 오전 경남 거제도 남방 100km 해상. 지난해 12월18일 이곳에서 격침됐던 북한 반잠수정을 인양하는 작업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1월18일 국방과학연구소 소속 무기체계 측정 지원함인 선진호가 수중음파탐지기를 이용, 선체 위치를 확인했지만 파도가 높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인양작업을 할 수 없었다.
3월15일 SSU는 해양전술정보단으로부터 기상예보를 통보받고 현장에서 기상을 확인한 결과 16일부터 며칠간이 작업하기에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최정예 심해잠수사로 꼽히는 김상사는 수심 300m까지 들어가는 잠수 훈련을 거쳤지만 150m 깊이에서의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막상 150m 해저에 들어가자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랜턴에 비친 희미한 반잠수정이 눈에 들어왔다. 포탄에 맞아 찢겨나간 반잠수정의 선체는 무척 날카로웠다. 그 안에는 부패된 북한군 시체가 들어 있었다. 지휘관은 “13도의 쿠로시오 난류가 흐르는 해역이어서 상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이미 동료 잠수사들이 반잠수정을 ‘와이어’(30kg)로 묶는 작업을 해왔지만 김 상사는 이제 반잠수정이 빠져나가지 않게 와이어끼리 묶고 크레인 후크와 단단히 연결하는 마무리 작업을 해야 했다. 김상사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까라면 까는 거지, 뭐.” 이 군대 은어가 이 상황에서는 어쩐지 자신감을 갖게 했다. 함상(艦上) 지휘소에서 현장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지휘관들과 동료들의 사기를 위해, 그리고 신혼여행도 떠나지 못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작업에 몰두하고 움직일수록 두려움은 사라졌다. 마무리작업은 간단치 않았다. 몸은 지상에서보다 4∼5배 빨리 지쳤다. 10분 정도 작업을 하면 전신의 근육이 뭉쳐 잠시 오그리고 있어야 했다. 고압력에 노출돼 있어 기억력이 급격히 감퇴했다. 지휘관으로부터 10가지 지시를 받았는데 3가지밖에 기억 나지 않았다. 잠시 쉬는 사이 눈처럼 떠다니는 부유물질 사이로 넓적한 심해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재미 삼아 살짝 건드렸는데 무서워하지도 않고 도망 갈 생각도 않는다. 위쪽을 올려다 보자 소형 우주선처럼 생긴 인원이송실(PTC)이 버티고 있다. PTC는 함상의 챔버와 생명줄로 연결돼 챔버와 같은 압력,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생명줄은 카메라·기체투입·통신·수심측정·전원공급·온수공급 호스들을 한데 뭉친 굵은 줄이다. 이 생명줄은 다시 김상사 자신과 동료 장OO 중사에게 연결돼 있어 이들이 긴 시간 심해에서 작업할 수 있는 것이다.
150m 수심서 선체 인양 세계 최초
심해잠수사들은 보통 3인 1조로 활동한다. 1명은 PTC에서 수중작업을 하는 2명의 잠수사를 돕는다. 수중에서 잠수사는 앞만 볼 수 있는 헬멧을 쓰기 때문에 옆이나 뒤에서 닥치는 위험을 모를 때가 많다. 갑작스러운 장비고장으로 호흡기체 공급이 중단돼 질식할 수도 있고 날카로운 물체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동료애를 발휘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 이는 동료밖에 없기 때문에 동료에 대한 우애가 친형제 이상으로 돈독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작업은 끝났다. 김상사는 장중사와 먼저 OK 수신호(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O자를 만들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편다)를 주고받았다. 작업을 마치고 ‘챔버 조종실’에 신호를 보냈다. “OK, 수중작업 완료.” 그 순간 청해진함의 지휘소에서는 함성이 일었다. 이제 함상의 크레인이 반잠수정을 안전하게 인양하는 작업만 남았다. 김상사와 장중사, 그리고 인원이송기(PTC)에서 작업을 돕고 있던 강00 중사는 함상의 챔버 속에서 대기중이던 동료 3명과 합류해 감압과정을 거쳐야 한다. 동료들과 챔버 안에 있던 김상사는 잠시 초조해졌다.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물에서 올라왔지만 혹시 청해진함의 크레인이 반잠수정을 끌어올리는 도중 결색(結索)이 느슨해져 다시 가라앉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기다리다 지친 김상사는 챔버의 지휘소인 ‘챔버 조종실’과 몇 차례 교신을 시도했다. 마침내 성공적으로 인양했다는 패널 조정관의 말을 듣는 순간 김상사는 집에 있는 신부를 떠올리고 웃음을 머금었다. 김상사는 지난해 말 결혼식 날짜를 3월14일로 잡았다. 그런데 자신이 근무하는 청해진함이 반잠수정 인양작전에 투입됐다. 날씨가 좋지 않아 인양작업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횟수가 늘어나자 결혼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다. 3월1일 6회째 작전을 펼칠 때까지 그는 포화잠수 감독관으로 함상에서 잠수사들을 감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잠수사들이 잠수를 한번씩 한 뒤여서 다음 출항 때는 그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는 결혼식을 작전이 끝난 뒤로 미루기로 마음 먹었다. 임무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간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기지에 머물게 되자 그는 예정대로 14일 결혼식을 올렸다. 다만 신혼여행만 가지 않고 집에서 출동명령을 기다렸다.
다음날 날씨가 좋아지자 비상이 걸렸다. 청해진함은 다시 출항했고 반잠수정을 무사히 인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상사는 5일 반 동안의 감압과정을 거치고 23일 신부에게 돌아갔다. 이처럼 심해잠수사들은 목숨을 걸고 심해에 뛰어들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곳이 해군의 특수부대인 SSU(대장 鄭00 중령)다. 주요 임무는 조난 선박과 인명 구조활동, 주요항만의 수중 장애물 제거 등이다. 수중폭파 침투 등의 임무를 맡고 있는 UDT와는 별개의 부대다. 이 부대는 93년 서해 카훼리호 침몰사건 때 단 한 구의 시체도 유실하지 않고 건져 올리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침몰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건 등에서도 활약했고, 97년 강릉 앞바다에 좌초한 북한 잠수함과 98년 동해 앞바다에서 발견된 잠수정을 인양했다. SSU는 이번 반잠수정 인양 작전에 투입됐던 청해진함(함장 禹OO 중령)과 함께 제 00전대(전대장 陳OO 대령) 소속이다. SSU는 크게 교육훈련대와 구조대로 나뉜다. 구조대원들은 모두 ○○○명. 이 가운데 30여명의 정예 잠수사가 청해진함에 파견돼 있다. 4500톤급 선박구조함인 청해진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있어 이곳 심해잠수사들이 수심 300m 포화(飽和)잠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기록은 북해 유전개발 등 상업 목적의 잠수기술이 발달한 영국과 노르웨이, 미국 등 5개국 정도만 갖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과 영국 해군에서는 비용이 과다하게 들고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어 포화잠수사를 별도로 두지 않고 필요할 경우 상업잠수사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상업적인 심해잠수사가 없기 때문에 해군이 이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450m 깊이의 실험잠수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실험 잠수일 뿐이어서 실제 그 깊이에서 작업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1990년 초 미 해군이98m 수심에서 선박을 인양한 것이 최고 기록이었다. 이 기록을 이번 인양작업에서 SSU가 깨뜨린 것이다. 진OO 대령의 얘기다. “수심 150m에서 10t 이상의 선박을 인양한 예가 없습니다. 이 작업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일본 해군의 대잠초계기(P-3C)가 작업을 내내 지켜봤을 정도입니다. 인양 관련 뉴스가 전세계로 타전되자 이를 본 호주와 캐나다의 기업들이 도와 달라는 요청까지 해왔지만 SSU는 공익성을 띤 작업만 지원하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우리 해군의 능력을 아는 러시아와 일본 등의 해군은 잠수기술을 배우려고 함께 훈련하자는 요청을 해올 정도입니다."
과학의 개가, 포화잠수
이번 인양작전에서 심해잠수사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청해진함의 최신 설비다. 96년 해군에 배치된 이 함은 IMF 이전 가격이 1000억원대. 포화잠수장비(DDS), 심해잠수구조정(DSRV), 98년 6월 동해에서 북한 잠수정을 인양할 때 사용한 리프팅 백, 각종 유압 동력장치, 100m보다 깊은 곳에서도 함을 자동으로 고정 시켜주는 자동함위장치(DPS)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인양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이 반잠수정과 일직선상에 위치해 안정적으로 고정(Harboring)되는 것. 이는 특히 함과 생명줄로 연결돼 있는 잠수사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위치유지 작업은 기상상태, 조류, 함정조함술, 전자기기 상태 등 최적의 조건이 갖춰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파고 2m, 풍속 20노트 이내의 조건이 4일간 지속돼야 한다. 과거 10년동안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는 대륙성고기압으로 인한 북서풍 때문에 이런 조건을 갖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3월1일부터 며칠간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이때 심해잠수사들이 1차로 반잠수정의 함수 부분과 함미 부분을 결색하는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고, 16일과 17일 이틀간 마무리를 해 선체인양에 성공했던 것이다. 이번 인양작업의 또다른 특색은 포화잠수라는 특수 기법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이는 해저 100m보다 깊은 곳에서 잠수할 경우 사용하는 기법으로 미국의 조지 본드 대령이 1966년 개발했다. 이를 위해서는 산소와 헬륨을 혼합한 혼합기체 공급장치와 수면으로 상승할 때 압력을 서서히 줄여주는 감압장치가 있어야 한다. 혼합기체를 이용하는 것은 질소 마취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감압장치가 필요한 것은 고압력 상태에 있다가 갑자기 저압력 상태로 나오면 혈관이 파열되고, 질소가 기포화하여 생기는 공기색전증(塞栓症), 관절통 근육통 운동지각장애 등 치명적인 부상(잠수병, caisson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화잠수는 먼저 잠수사들을 밀폐된 격실(챔버)에 들어가게 한 다음 ▲혼합기체를 넣고 1분당 수심 1m로 하강속도를 정한 뒤 가압해 잠수목표 수심과 같은 압력을 만든다. 이 과정이 잠수사 체내에 기체가 최대로 흡수되도록 하는 포화과정이다. 그 뒤 ▲잠수사가 챔버에 연결된 PTC를 타고 바다 밑으로 이동하고 ▲목표수심에서 잠수사가 PTC 밖으로 나가 임무를 수행한 다음 ▲ 임무를 완수하면 보통 50분에 수심 1m 상승 속도로 상정, 챔버의 압력을 줄이도록 한다. 이 기준은 영국 잠수전문기관(National Hyperbaric Centre)이 수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포화잠수 감압표’에 따른 것이다. 포화잠수 잠수사들은 안전을 위해 잠수복과 장비에 달려 있는 수십개의 밸브와 게이지를 점검하고, 눈 감고도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돼 있어야 한다.
무호흡 잠수하는 인간 아가미들
포화잠수를 좀더 쉽게 받아 들이려면 다른 유형의 잠수법을 익혀야 한다. 일반인의 경우 숨을 참고 잠수하는 스킨 다이빙을 할 때 약간의 잠수 훈련을 통해 5m까지는 잠수할 수 있다. 그러나 물 속에서 1분간 머물기도 어렵다. 직업적인 해녀의 경우 최대 20m까지 잠수해 2∼3분 정도 숨을 참을 수 있다고 한다. 스쿠버(SCUBA) 장비를 이용할 때 잠수사들은 압축공기(질소 79%+산소21%)를 마시게 된다. 너무 깊이 잠수해 이 공기를 마시면 우리 몸에 질소가 과도하게 축적돼 감압병에 걸릴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스쿠버 다이빙의 한계수심을 40m로 잡고 있다. 해수 표면에서 생명줄을 통해 공기를 공급받으면서 잠수하는 표면공급잠수는 수심 60m까지 가능하다. 수심 60∼100m까지는 산소와 헬륨 혼합기체를 공급받아야 한다. 이런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 무호흡 잠수로 해저 100m 보다 깊은 곳까지 잠수할 수 있는 ‘아가미 인간’들이 있긴 하다. 영화 ‘그랑블루’의 주인공인 자크 마욜은 이탈리아의 실존 인물인데, 그는 수심 105m까지 도달한 기록을 갖고 있다. 현재의 최고 기록은 1996년 쿠바 태생의 피핀이 세운 130m. 당시 소요된 시간은 2분18초였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이 50∼60m 깊이로 잠수할 경우 흉곽이 찌그러져 죽게 된다고 하지만 피핀이나 마욜같은 사람은 이 한계를 간단히 뛰어넘었다. 스쿠버 전문가인 성형외과의 장세명(48) 박사의 말. “피핀은 잠수에 특출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상인의 폐활량은 3∼4ℓ인데 그는 8.2ℓ나 됩니다. 게다가 복식호흡과 요가 등으로 맥박을 1분에 18회까지 떨어뜨릴 수 있고 육지에서는 숨을 쉬지 않고 9∼10분 동안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선천적인 신체조건과 후천적인 노력의 결과입니다.” 포화잠수에 필수 장비인 챔버는 긴 원통형 공간으로 9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다. 잠 잘 수 있는 침대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간단한 샤워를 할 수 있는 화장실이 별도의 방으로 돼 있다. 좁은 공간에서 고압력을 받으며 장시간 생활해야 하므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압력은 기체에만 영향을 끼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폐를 비롯, 코와 귀를 잇는 곳, 뇌 앞부분의 공동부분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많은 잠수사들은 관절의 물렁뼈도 영향을 받아 가압관절통이 느껴진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는 잠수의학의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수심 150m, 관절 통증과 식욕부진
압력의 힘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위해 기자가 챔버 안에 들어가 봤다. 영국에서 전문 잠수감독관 교육을 받은 SSU의 신00(申OO·35) 소령은 해저 10m 수심의 압력을 넣겠다고 했다. 챔버의 문을 닫고 함께 탄 잠수사들과 얘기를 나누려 했다. 그러나 곧 귀가 먹먹해지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승한 잠수사들은 손으로 코를 막고 숨을 힘껏 쉬어 귀로 공기를 내보내는 ‘펌핑(Pumping)’을 계속하라고 했다. 그런데 한쪽 귀로만 공기가 새나가고 한쪽은 계속 먹먹해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감기 탓이었다. 동승자 중에 감기 걸린 이가 있으면 평상시보다 훨씬 빨리 바이러스가 번식돼 모두 감기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귀가 쨍쨍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머리가 멍해져오자 갑자기 겁이 났다. 챔버 조종실의 신소령에게 그만 하라고 하고 몇 분간의 감압과정을 거쳐 챔버 밖으로 나갔다. 겨우 수심 5m의 압력을 받았을 뿐인데도 그런 변화가 있었다. 간단한 체험이었지만 수심 150m 깊이의 압력 조건은 상상을 초월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 150m 바닷속으로 잠수했다가 챔버 속에서 감압과정을 거쳤던 한00 중사의 얘기다. “16대기압의 압력은 1cm2의 면적에 16kg의 압력을 받는 상태입니다. 이때는 1대기압 상태에서보다 4∼5배 힘이 더 듭니다. 관절 부분이 접힐 때마다 아파왔습니다. 150m에서 잠수사는 혼합기체(헬륨 95%, 산소 5%)를 마셔야 하므로 대기중에서보다 6∼7배 빨리 체온손실을 느껴 추위를 쉽게 느낍니다. 식욕도 거의 없고 밥알을 씹으면 고무를 씹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32℃의 고온, 70% 이상의 습도 때문에 항상 피부가 끈적끈적하고 불쾌지수가 높습니다. 헬륨을 마시면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도널드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챔버 조정패널의 생환지원사와 교신도 쉽지 않습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지요. 이런 상황에는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없으면 버티기 어렵습니다.” 포화잠수 5회 기록을 갖고 있는 이00(33) 상사는 “챔버 안에서는 될수록 말은 짧게, 목적어 중심으로 얘기한다. 소설책이나 감상용 책은 답답해서 읽지 못한다. 차라리 과학책이나 수학 정석 같은 걸 본다. 집중이 잘 안되는 환경에서 오히려 집중할 거리를 찾는 거다 성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현상도 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챔버 내에 혹은 수중에서 감압없이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기간도 한정돼 있다. 영국이 48일간의 실험에 성공했고, 노르웨이는 24일, 우리 해군은 15일 체류에 성공했다. 챔버 조종실의 생환지원사는 24시간 대기하면서 챔버 속 잠수사들의 안전을 체크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거의 100% 들어준다. 그러다 보니 장난기 있는 잠수사들은 간혹 빨랫감을 챔버 속에 갖고 들어갔다가 이중 현창(챔버 밖과 안에서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을 통해 슬그머니 밖으로 내놓기도 한다. 이처럼 어려운 포화잠수를 한 번 하고 나면 체중이 4∼5kg 줄어든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약 2개월간의 휴식이 필요하다. 만약의 위험으로부터 잠수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군은 해양의학적성훈련원(해의원, 원장 김00 중령) 소속 잠수군의관들을 두고 있다. 포화잠수를 하기 전후 잠수사들은 해의원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김OO 해의원장의 얘기다. “챔버 내부를 가압할 때 그 안의 잠수사들은 누구나 잠수병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현기증 졸림 등이 나타나는 고압신경증후군, 어깨 무릎 고관절 손목 등에 통증이 오는 가압관절통 등의 우려가 있습니다. 감압시에는 감압병 저체온증 호흡곤란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요.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잠수 전에 철저한 신체검사를 하고, 사후에도 계속 발병 여부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의원은 24시간 비상연락망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포화잠수를 하고 난 잠수사는 얼마간 자신이 포화잠수를 했다는 표시를 달고 다닌다고 한다. 거기에는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두는데, 만약 자신이 쓰러지면 곧바로 연락해달라는 것이다. 그만큼 포화잠수는 위험하다. SSU대원들은 일반 잠수시에도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상처를 입기 일쑤다. 특히 고막파열 가압관절통 등은 잠수사들의 ‘직업병’으로 여겨질 정도. 생명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 신경성 위장병에 걸릴 수도 있다. SSU에서는 잠수사들이 챔버 속이나 물 속에서 위험에 처할 경우 스스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인체의 생리적 현상이나 압력 내성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해의원에서도 이들에게 간호사 못지 않은 의료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의무교육을 하고 있다. 문제는 장비의 완벽도다. 그래서 진OO 대령도 “SSU 대원들의 능력은 최상급이다. 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장비의 신뢰도”라고 밝혔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SSU 대원들은 수중에서 최정예라는 자부심 외에는 진급이나 수당 등에 큰 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힘든 일을 자원했고, 어떤 만족을 얻는가. 경남 통영 한산도 출신으로 해난구조대 부장을 맡고 있는 심해잠수사 박00 소령은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했는데 특히 해난구조 분야는 남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여서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도달하지 못한 세계, 볼 수 없고 체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늘 동경하고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런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거지요.” 이번 반잠수정 인양작전 때 잠수했던 심해잠수사 한00(30) 중사는 “해군에 입대해 처음엔 미사일 유도사로 복무하다 SSU의 존재를 알고 지원했다. 작전 중에는 굉장히 힘들다. 그러나 작전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 때문에 다시 힘든 일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원사나 준위 등 십수년 경력의 SSU대원들은 작전이나 훈련 도중 물밑에서 ‘아찔한’ 고비를 수없이 넘긴 이들이다. 이00(50) 준위는 74~76년 신안 앞바다 유물 인양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파도가 높고 조류도 강한 악조건에서 작업을 했는데, 어민들이 쓰다 버린 어망에 걸려 위험에 처했다는 것. 어망은 해난구조대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애물이다. 움직일수록 몸에 더 잘 감기는 특성 때문에 빨리 제거하지 않을 경우 그대로 수장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동료의 도움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그는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해진다고 했다. 그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것은 무엇보다 정신력이라고 강조했다. 박소령도 “SSU 대원 역시 평범한 인간”이라면서 “다만 어떤 정신 자세로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특수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으로 나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SSU 대원들이 사기를 잃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강한 동료애와 결속력 때문이다. 그것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00 중령은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작전시에는 엄격하지만 평소에는 가족처럼 지내려 한다”면서 평소의 SSU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SSU대원으로 있다가 희생된 사람들을 부대원들이 잊지 않도록 현충일에는 단체로 국립묘지를 방문하고, 평소에 유가족들과도 교분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대원들은 ‘내가 죽어도 SSU가 가족을 책임진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SSU가 거둔 성과 중 부대원들이 지금도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1993년 10월 침몰한 서해 카훼리호의 시체인양작전이었다. 전남 부안군 위도 앞바다는 조류가 빨라 작업이 더뎠고, 유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10월14일 급기야 위도 주민들은 SSU, UDT 등 구조대원들이 작업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다고 집단적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해난구조대장으로 급파됐던 진교중 대령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수사들은 1시간 잠수하면 최소한 5시간 이상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쉴 새 없이 작업에 투입해야 했다. 시체를 모두 인양하고 부대로 복귀한 뒤에도 위도주민들의 오해는 풀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진대령은 우연히 당시 위도 청년회장인 장영수씨를 만나 인사를 받게 됐다. 사건 당시 오해가 있어 군인들에게 함부로 했노라고 사과를 해온 것. 진대령은 장씨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사고 당시 강한 조류와 불투명한 시계 등으로 인해 작전이 지연돼 안타까웠습니다. 그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업을 종용하실 때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일이 끝나고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들으니 저희들은 국민들에게 뭔가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들어 더할 수 없이 기쁩니다….” 당시 교육대장이었던 정00 중령은 교육생들을 데리고 현장에 투입됐다. 10월 10일 사건 당일은 일요일이었고 월요일부터 교육생들을 데리고 제주도 실습을 갈 계획이어서 교육생들의 외박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투입 명령을 받자 걱정이 앞섰다. 깜깜한 바닷속에서 시체를 안고 올라와야 하는 작업인데, 이제 갓 훈련을 받은 이들에게 어떻게 그 일을 시킬지 답답하기만 했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건 제일 먼저 뛰어든 잠수사가 성공하면 다른 잠수사들도 모두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일 우직하고 다이빙 잘하는 교관을 먼저 잠수시켰습니다. 그런데 몇 분 뒤 그가 시체 한 구를 안고 물 위로 힘차게 솟구치는 겁니다. 얼마나 기뻤던지….” 94년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작년 여름 지리산 폭우 때 실종자 구조작업 등 재난의 현장에는 언제나 SSU가 빛을 발했다. 1년에 2회 정도 100여명씩 투입돼 한강 정화활동을 벌이는 것도 SSU의 자랑거리다. 매년 수중정화작업에 참여해왔던 정OO 중령은 “6~7년 전만 해도 한강에는 고기가 별로 살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에는 맑은 물에 사는 쏘가리가 있어 놀랐다”며 정화작업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작업들로 인해 SSU는 몇 년 전 모 신문사가 주최한 환경대상을 받았고, 그동안 받은 감사장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SSU는 한강 정화활동과 함께 교각의 불량유무를 점검하는 일도 하고 있다. 96년 감사원과 서울시청의 요청으로 한강 교각의 물 밑 상태를 수중카메라로 촬영해 주기도 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이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던 것. 94년에는 전국 국도의 18개 교량을 검사해주기도 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지옥훈련
SSU는 1950년 부산에서 특수공작대로 창설됐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SSU의 활약상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부대를 지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요즘 모병은 현역 해군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받거나 신병을 대상으로 한다. 올해의 경우 600여명이 지원했다. 그러나 SSU는 대원을 선발하는 기준이 무척 까다롭다. 이들을 대상으로 턱걸이(8개 이상), 팔굽혀펴기(30초 내 26개), 수영(2가지 이상 영법), 구보, 윗몸일으키기 등 기초체력을 평가하고, 잠수사로 적격인지 여부를 평가하는 2차 특수신체검사를 받는다. 3차는 지원의지와 인성, 담력, 용모 등을 보는 면접이다.
팬티차림으로 차가운 물 속에서 기절
이렇게 선발된 인원(올해 90명) 가운데 10주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는 이는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 공기잠수(SCUBA) 교육, 탐색·인양·결색 등의 구조이론 등도 쉽지 않지만 ‘지옥훈련’이라 불리는 기초 체력훈련을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훈련은 아침 6시부터 밤 8시까지 숨쉴 틈 없이 진행된다. 2주일 안에 최소 6km 이상을 수영해야 하며, 7주째가 되면 매일 20km의 구보를 하게 된다. 9주째엔 악명높은 ‘기수 PT체조’를 하는데 이는 기수 숫자(올해 45기)에 1000을 곱한 횟수를 하는 것이다. 이 10주 과정을 마치면 체력적으로 최상의 상태가 된다고 한다. 구타가 없는 대신 엄격한 과실제도를 둬 탈락자를 가려낸다. 안전수칙을 어기거나 절도, 도박 등의 과실을 범하는 교육원생은 탈락하게 된다. 교육훈련대에 따르면 요즘엔 체력은 좋으나 의지력이 약해 탈락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간혹 자기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노력하다가 한도를 넘어 다치는 경우도 있다. 일단 SSU 대원으로 선발되면 사회에 나가서도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익히기 때문에 피나는 훈련을 견디려다가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것. SSU대장인 정OO 중령은 80년 이 교육을 받았다. 당시 44명이 입교했지만 17명만 수료했다. “훈련받던 중 차가운 물속에 팬티만 입고 잠수했는데 너무 추워 기절한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수료 2주 전에 병원에 실려갔는데 군의관이 ‘훈련 더 받으면 죽는다’면서 입원하라고 하더군요. 입원하면 탈락하기 때문에 저는 입원할 수 없다고 버텼어요. 그러자 지휘관들이 상의해서 통원치료를 하라고 하더군요. 다행히 마지막 2주간은 기술적인 교육이 중심이어서 무사히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해군에 입대해서야 SSU의 존재를 알게 돼 지원한 이00(21·세종대 휴학중) 상병은 4주째 교육을 받다 너무 힘들어 포기할 생각이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했더니 그렇게 힘들면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다음날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잠수기술은 사회에 나가서도 써먹을 수 있으니 참고 견디라는 거예요.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고 했어요. 육체·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여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격려와 훈련관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훈련을 마쳤습니다. 그때 버티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초등교육은 장교와 하사관이 함께 받고, 병은 따로 받는다. 중등·고등·특수 과정은 장교와 하사관만 받을 수 있다. 수심 50m 이상 잠수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 중등과정까지는 천해잠수사로 불린다. 고등과정 이상의 교육을 받고 수심 100m 이상 잠수 가능한 이들을 심해잠수사라고 부르는데, 포화잠수교육을 받는 특수과정까지 마치려면 보통 10년 정도 걸린다. 그 위에 잠수감독관 교육과정이 있다.
SSU, 경쟁력 있는 군대의 상징
잠수사의 ‘꽃’인 포화잠수사가 되려면 혼합기체잠수를 할 수 있는 잠수보조원으로 실제 작전에 100일 이상 근무하고 이론과 실기, 건강진단 등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국내 포화잠수사는 모두 영국 등 잠수 선진국에서 자격증을 따온다. 국내에 포화잠수 시뮬레이터(Deep Diving System)가 없어 관련 교육을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1주일간 20명이 한 팀이 되어 이 교육을 받는 데 6억∼7억원이 들어간다. 해군은 이 시스템을 도입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포화잠수사를 양성하고, 잠수연구와 민간인 위탁교육도 할 계획이라고 신00 소령은 밝혔다. 현재 SSU는 국가 공인 잠수기능사 자격시험을 위탁받아 시행하고 있는데, DDS 시스템이 도입되면 사실상 ‘잠수기술의 메카’가 될 것으로 보인다. SSU의 구성원은 일반 병이 60%, 하사관 30%, 장교가 10%다. 일반 병과 일부 하사관, 장교는 영내에 근무하지만 나머지는 가정을 갖고 출퇴근할 수 있다. 그러나 24시간 비상연락망으로 연결돼 있어야 하므로 가정생활에 충실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다고 처우가 특별히 좋은 건 아니다. SSU는 현재 포화잠수사 상여금 등이 별도로 지급되고 있지만 타 부대와 큰 차이 없다. 다만 포상과 훈장 수여 등을 통해 군인으로서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보통 군인에 비해 훨씬 많은 땀과 노력을 바쳐야 하는 이들 대원에게 그에 합당한 처우수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심해잠수사(Deep Diver)는 우주항공사 다음으로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해의 심해잠수사들은 1년에 2번만 잠수해도 여유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수준은 아닐지라도 다른 일반 부대원과 차별성을 두지 않으면 엄청난 비용과 기간이 투입된 개개 대원들이 의무복무기간만 마치고 전역하게 돼 국가적 낭비만 불러올 수 있다. SSU는 일상적 임무 외에도 앞으로 근해의 광물탐사나 남극의 해저탐사 등 산업적 차원의 큰 역할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진OO 대령은 “통상 군은 소비집단으로 알려져 있지만 SSU는 그 반대다. SSU는 비전 있는 군대의 상징이다. 군 복무중에도 대민지원을 통해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제대 후에도 각종 수중공사, 해외건설업체 등에 전문가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SSU는 해야 할 일에 비해 인원이 너무 적다. 공무원들의 인원감축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SSU 대원은 늘려야 할 상황인 것이다. 세계 최강의 잠수사가 되기 위해 피땀을 흘리고 있는 해난구조대원들. 이들이 부르는 ‘해난구조대가’는 오늘도 진해 앞바다에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정현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3. 잠수정 예인·수색 해군특수전부대 맹활약
북한 잠수정 예인 및 수색에는 해군 최정예 특수전부대로 「수중폭파부대」인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와 UDT의 폭발문처리반인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및 해난구조대인 SSU(Ship Salvage Unit)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UDT는 수중폭파전문인 「작은」 UDT와 SEAL(육해공 전천후 작전팀), EOD, 해상대테러 등 4개 팀으로 구성돼있다. 이번에도 SEAL과 작은 UDT가 제일 먼저 잠수정에 접근해 탐색 작업을 벌였으며 무장한 채 선체에 예인줄을 묶었다. 또 예인시 소형보트를 타고 주변 경계를 담당했다. EOD는 폭발물 유무 확인, 폭발물 확인 시 제거 등을 주임무로 한다. 이번에도 본격적인 잠수정 수색에 앞서 폭발물 설치 가능성이 높은 해치 해체 임무를 맡았다. 45명이 투입된 SSU는 수심 30m아래로 가라앉은 잠수정에 접근해 공기주머니를 설치하고 쇠줄을 연결하는 등 부양을 위한 바닷속일을 도맡았다. 〈김형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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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특수부대에서도 인정한 부대라고 들었는데 .... 더욱 자세히 알고 시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