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진경시대 회화대전(眞景時代 繪畵大展)을 다녀 와서

[오상수]

[간송미술관]☆… 澗松逝去 50주기 紀念「眞景時代 繪畵大展」(05.13~05.28)

☆… 지난 5월 17일 목요일 오전 10시 50분,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지난 5월 13일에 개막식에 초대장을 받고 오늘 비로소 출행한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간송 전형필 선생 서거 5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진경시대 회화대전>이다. 간송의 유묵(遺墨)과 진경(眞景) 시대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만나고 왔다. 간송미술관 전시회는 나에게 있어서 연중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행사이다.

☆… 오늘 아침, 서둘러 성북동으로 갔다. 10시 50분, 예상은 했지만 사람이 많다. 관람을 기다리는 대열이 이미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초입, 성북동 대로까지 늘어져 있었다. 그 긴 줄에 나도 한 점을 보태어 나도 줄이 되었다. 간송미술관의 전시회가 이렇게 문전성시를 이룬 것은 불과 2, 3년 정도이다.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가 증대된 것도 있지만, 인터넷 매체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 간송미술관의 전시 작품이 그 예술적 가치가 높고 이 전시회가 아니고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이어서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아주 한정된 기회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특히 재작년 혜원 신윤복을 주제로 한 인기 연속극이 방영될 때, 그때 간송미술관에서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한 작품이 전시되어 그것이 언론매체를 통하여 알려지기 시작하여 엄청난 관람객이 몰려든 바 있다.

☆… 드디어 내가 선 자리가 미술관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물기를 머금은 오월의 신록들이 싱그럽게 넘실거리고 있다. 특히 문 안의 왼쪽 가장자리에 핀 핸드볼 공만한 불두화(佛頭花)가 순백의 광채를 뿜으며 반긴다. 간송미술관의 정원은 자연정원이다.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아 수백 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향나무, 후박나무, 배롱나무 등 각종 나무들이 그대로 어울려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오솔길 옆의 화단에는 연분홍 금낭화가 귀여운 음표를 그리며 연이어 피어 있고 곳곳에 작약과 모란이 자주빛과 흰색의 꽃망울을 터뜨리고, 우리의 들녘에 흔히 보이는 애기똥풀이 노란 꽃무리로 피어있다. 아, 그리고 산목련 한 송이! …그렇게 약 30분, 주변을 둘러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12시 정각, 1층 전시실 입구의 문 위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선생이 쓰신 ‘葆華閣’(보화각) 현판이 걸려 있다.

간송미술관 정원의 수림 속에 산목련나무 ... 거기에 함박꾳(산목련) 한 송이

▶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은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3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지사이며 간송이 고미술에 눈을 뜨게 한 우리나라 고미술에 대한 선구자적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한묵생활(翰墨生活)로 은거하며 오경석과 자신이 수집한 풍부한 문헌과 고서화를 토대로 『槿域書畫徵』(근역서화징)을 편술하였다.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서화가에 관한 기록을 총정리한 역저이다. 그 밖에도 조선 초기부터 근대에 걸친 서화가·문인학자들의 날인(捺印)된 인장자료를 모아『槿域印藪』(근역인수)를 집성하였으며, 수집한 소품 고서화들을 화첩으로 묶은『槿域書彙』(근역서휘)·『槿域畫彙』(근역화휘) 등 한국서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글씨는 전서와 예서를 고격(古格)으로 즐겨 썼다. 특히 전서와 예서를 혼합한 글씨나 와당(瓦當), 고전(古錢), 갑골문형태의 구성적인 작품도 시도하여 독특한 경지를 이루었다. 또한 고서화의 감식과 전각(篆刻)에 있어서도 당대의 일인자였다. 합천 해인사의 <자통홍제존자사명대사비 慈通弘濟尊者四溟大師碑>의 두전(頭篆:빗몸의 머리에 돌려가며 쓴 전자)을 비롯한 기념비 글씨도 전국 곳곳에 많이 남겼다.

☆…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유리 전시관에 간송의 작품과 낙관(落款)과 그가 즐겨 사용하던 백자(白磁) 몇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벽 위에는 간송 전형필의 1956년 작 ‘묵국(墨菊)’이다. 화면 왼쪽 글씨[제발]는 간송의 외사촌형인 소설가 월탄 박종화가 썼다.

올해는 '문화독립운동가' 간송 서거 50주기를 기념하여 열리는 <진경시대 회화대전>이므로, 간송의 유묵(遺墨) 넉 점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누런 갱지 위에 숲을 거니는 선비를 그린 '방고사소요(倣高士逍遙·1956)'는 추사(秋史)의 '고사소요'를 임모(臨摸)한 것이다. 최완수(70)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아이들이나 쓰는 갱지에 그림을 남긴 것에서 문화재 구입에는 큰돈을 쓰면서도 자신에겐 인색했던 간송의 면모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갈필(渴筆)의 '방고사소요'가 수척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데 반해, '묵국(墨菊·1956)'은 활달하고 호방한 필치를 보인다. 외사촌 형인 소설가 월탄(月灘) 박종화와 친분이 두터웠던 간송이 월탄과 대작(對酌)하던 중 취흥(醉興)에 그린 것이다.

간송 전형필이 추사의 '고사소요'를 모방하여 그린 <倣高士逍遙>(방고사소요·1956)

추사 김정희의 작품 <高士逍遙>(고사소요)

1층 들머리를 단원과 겸재가 그린 내외금강의 힘찬 절경들이 덮었다. 겸재가 그린 내금강 입구 단발령 풍경에서 시작해, 장쾌한 외금강 구룡폭의 비경과 내금강 명경대, 총석정 등을 특유의 가지 치는 듯한 필법으로 그린 단원의 걸작들이 잇따라 등장한다. 삼일포 문암에서 바라본 해돋이 광경을 담은 겸재의 <문암관 일출>은 복잡한 바위 풍경을 극도로 간략하게 축약시켜 장쾌한 비경의 느낌을 극대화하는 표현력의 진수다.

겸재 정선의 <楓岳內山總覽>(풍악내산총람) 絹本彩色 73.8×100.8cm

겸재 정선의 <文岩觀日出>(문암관일출)  絹本彩色 25.5×33.0cm

표암과 이인상의 소담한 연꽃 문인화와 한겨울 꼿꼿한 유덕장의 <설죽도>, 겸재의 소담한 초충도 소품 그림 앞에서 설레는 기분을 삭인 뒤 다시 후면 진열창으로 다가가면, 서울 청운동 숲을 그린 겸재의 대작 <청풍계>, 현재 심사정, 최북 등이 그린 큰 폭의 산수화들이 메들리처럼 이어진다. 명필 원교 이광사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합작해 그린 <잉어>가 힘차게 튀어오르고 있었다.

 간송미술관의 ‘진경시대 회화대전’에 나온 18세기 대가들의 그림. 왼쪽부터 김홍도의 <하화청정>(연꽃과 고추잠자리), 신윤복의 풍속화 <표모봉욕>(빨래하던 아낙이 욕을 보다), 이인문의 <모춘야흥>(늦봄의 들놀이 흥취),

2층은 18세기 겸재의 뒤를 이은 2, 3세대 대가들이 수놓은 진경회화의 모자이크다. 겸재의 한강 사생첩 소품을 비롯해 최북·김득신·김석신·정수영 등의 소품들이 물 흐르듯 지나간다. 대작 <강산무진도>로 유명한 화원화가 이인문이 신선들의 숲 속 풍류 모임을 그린 <모춘야흥>의 우아한 묘사를 거쳐 혜원의 에로틱한 풍속화 연작들이 대미를 마무리한다. 섬세한 필선에 18세기 남녀 애정풍속도 등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이 눈맛을 돋운다. 달빛 아래 고적하게 앉은 개 그림 <나월불폐>에서는 조명 받지 못한 천재화가의 불우한 내면을 읽게 된다. 전시장을 돌고나면, 18세기 옛 그림들의 여명은 풍경의 기운으로 시작해 감각의 황혼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진경시대(眞景時代)'는 조선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우리 문화의 절정기였던 숙종(1661~1720)~정조(1752~1800)대 125년간을 일컫는 말. 진경시대 회화의 대표주자 겸재(謙齋) 정선(1676~1759) 작품으로 '청풍계(淸風溪)', '인곡유거(仁谷幽居)' 등이 나왔다. '청풍계'는 인왕산 특유의 백색 암벽(岩壁)을 장쾌한 붓질로 검게 묘사해 흑백을 뒤바꿔버린 역작이다. '인곡유거'는 51세 때 인왕산 밑으로 이사한 겸재가 자신의 일상을 수채화처럼 맑은 필치로 그린 그림이다. 이밖에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 단원(檀園) 김홍도(1745~?), 혜원(蕙園) 신윤복(1758~?), 표암 강세황, 호생관 최북, 이인상, 이인문, 변상벽 등 조선후기 화가들의 작품 11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예술품의 존귀한 바는 그것이 우수한 작품일수록 그 시대와 문화를 가장 정직하고 똑똑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겁니다."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사진)은 1959년 청소년 잡지 '학원(學園)'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10만석지기 거부(巨富)의 상속자였던 간송은 이런 신념으로 일본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 되찾기에 평생을 바쳤다.

그가 1936년 서울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에서 조선 청화백자 한 점을 1만 4580원에 낙찰받은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됐다. 큰 기와집 한 채가 1,000원이던 시절, 500원으로 시작된 경매는 순식간에 1만원을 넘어갔다. 일본 골동품상 야마나카와 간송 두 사람이 끈질기게 경합했기 때문. 야마나카가 1만 4550원을 끝으로 두 손을 들자, 간송은 1만 4580원을 불러 마침내 백자를 손에 넣었다. 나물 캐던 할머니가 야산에서 파내 참기름 병으로 사용하다 단돈 5원에 일본 상인에게 팔아버렸다고 전해지는 국보 294호 '청화백자 양각진사철채 난국초충문병'은 이렇게 고국(故國)의 품에 남게 됐다.

▶ 간송(澗松) 전형필(全瑩弼, 1906~1962) 선생은 본관이 정선(廷善)이며. 자는 천뢰(天賚), 호는 간송(澗松)·지산(芝山)·취설재(翠雪齋)를 썼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학과를 졸업한 이후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일본에 의해 문화재가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오세창·고희동·김돈희·안종원·김용진·이도영·이상범·노수현 등과 함께 미술품과 문화재의 수집·보존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특히 오세창의 고서화에 대한 감식안에 힘입어 1932년경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인수하여 고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했다.

1934년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개설하여 본격적으로 서화작품과 조선자기·고려청자 등 골동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는 한편, 1938년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북단장 내에 개설하여 서화뿐만 아니라 석탑·석불·불도 등의 문화재를 수집·보존하는 데 힘썼다. 그의 수장품은 대부분 국보 및 보물급의 문화재로 김정희·정선·신윤복·심사정·김홍도·장승업 등의 회화작품과 서예 및 자기류·불상·석불·서적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미술관 정원에 있는 간송 전형필 선생 흉상

1940년대에는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인수하여 육영사업에 힘썼고, 8·15해방 후 문화재보존위원으로 고적 보존에 주력했으며 1960년 김상기·김원룡·최순우·진홍섭·황수영 등과 함께 고고미술동인회를 결성하고 동인지〈고고미술 考古美術〉발간에 참여했다. 196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66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되었으며, 북단장에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설립되어 미술사를 연구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 실장 -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간송미술관의 고서화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분으로 소위 간송학파를 이루고 전형필 선생이 수집하여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의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고 우리나라 미술사의 큰 구획을 그은 분이다. 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원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등 국보급 문화재와 다수의 보물, 중요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고미술사에서 한 구획을 긋는 <진경시대 회화대전>이다. 오늘 27일 일요일까지 개최된다. 간송미술관 전시회는 1971년부터 40여 년 간, 봄(5월)과 가을(10월) 연중 2차례 개최하는데 이번이 82회 전시회이다. 관람료는 받지 않는다. 뜻 있는 분은 귀한 발걸음 하시면 발품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기원섭]

참 좋아요.
이키나 귀한 글을 주시다니요.
그나저나,
우심쏘까?

[임숭남]

최완수 화백님은 최근에 EBS방송에서 우리 그림(동양화)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오늘의 그림(가치관)에 대해 강의를 하신 분이십니다. 참으로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림을 역사적 관점에 맞추어 재이있게 역사 공부도 하면서 우리 그림에 대한 견문을 넓히게 하셨습니다.
방송으로만 보면서 감사함을 표하지 못했는데, 백파 어른의 글을 보고 이 기회에 최완수 화백님께 감사드립니다.

[들꽃이야기]

한국고미술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귀한 글과 사진들로 제가 한 단계 업이 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는 귀한 글들
앞으로 더 기대해도 될련지요.
제 뜨락?으로 옮겨갑니다.^^감사합니다.

[삼 강]

지나는 길에 너무나 긴 줄을 보고 흐뭇했소^^ 언제 부터인가 미술관 앞에 장사진을 친 풍경을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라오' 이런 저런일들 때문에 아쉽게도 이 번 기회는 놓질 것 같소!! 백파의 감상문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김옥련]

선생님 덕분에 귀한 공부합니다.늘 살아 숨쉬는 고귀한 내용들 가슴에 가득 채웁니다.

[단쿡]

민족 문화를 지키기 위한 간송선생님의 훌륭함으로 후세들이 선조들의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네요. 백파선생님의 완벽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고홍곤]

꼭 가보고싶은 간송 미술관이였는데 여태 가보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귀한 설명과 사진 덕분에 마치 다녀온듯합니다
조만간 꼭 다녀 오겠습니다

[김용균]

백파 고맙네.좋은 공부했네.~

[영원한 친구]

늦게 나마 너무나 귀한 보물을 접한 듯 합니다! 존경 하옵는 선배님의 글도 후세에 길이 남겨야 할텐데요ㅗ!아니 스스로 남게 되겠지요! 늘 좋은 공부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 사진도 수준급이시네요!! 사진집 하나 내시지요!

[남정희]

담벼락에 한문으로 전시 안내문을 붙여 놓으니. 다른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이국(일본)적인 분위기가 납니다.
선생님의 충분한 부연설명과 간송화백님의 특색있는 그림 잘 보았습니다.^^**

[이청만]

직접 제가 가서 본 것보다 더 생생한 글과 그림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전형필선생님의 그림은 처음 본 터수라 고맙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