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가정적 애환을 앓던 우리 가정은 형의 죽음으로 또 한번 애환의 늪에 빠진 적이 있다.
어느 날 나의 네 살 위의 형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6월의 어느 날 방안에 앉아있던 내게 조용히 그러나 불길한 예감을 일으키면서
나를 부르는 형의 지인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형이 쓰러져있다는 것.
그때부터 다음 날 정오 무렵 서울 성모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형은 반 시체로 누워있었다.
병원에만 있을 수 없었기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서 나는 약 200번을 기도했다.
형을 살려달라고. 걸으면서 길가에 앉아서...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 시간을 울던 중 형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 처절하고 그렇게 힘겨웠던 경우는 그때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특별히 형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다. 형의 가엾고 짧았던 한 평생이 마음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도끼를 맞은 것이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의 자아의 한 귀퉁이도 죽었다.
오빠가 위급할 때 그들은 분명히 주님을 불렀다. 그러나 주님은 오시지 않았다.
오시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시지 않았다. 사흘 동안 기다리시다가 나흘째 되던 날 오셨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주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는 손상이 갔을 것이다.
인간의 신뢰 인간의 사랑은 상대적으로 상대의 반응에 의존한다.
아무리 믿고 신뢰했던 상대라도 그 상대가 내 상식과 기대에 반하는 반응을 보였을 때
그에 대한 내 심리적 반사 작용이 온전하게 유지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경우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세계의 이런 일반적 경향을 초월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 세상의 어떤 논리나 이치의 지배를 받는 게 아니다.
기독교 신앙이 비상식적이라는 말이 아니며 비이성적이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인간의 상식과 이성으로 가두어 두기에는 기독교 신앙은 너무도 크고 심오하다는 뜻이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신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념은 너무도 뻔하다.
마음 편하기 위해서, 좀 더 바르게 살아보기 위해서, 복을 받기 위해서, 혹시 지옥이 있을까봐...
이런 것은 인간이 참 신앙에 이르는 동기나 과정과는 상관 없는 것들이다.
자기 오빠를 살려달라고 절박하게 불렀건만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에 오신 그리스도가
도대체 마음의 평안이나 복된 인생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신앙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깊은 좌절과 실망과 상처를 무릅써야만 하는데
그런 신앙을 어느 누가 원한다는 말인가?
형을 살려달라고 길거리에서 200번이나 절박하게 애걸했던 소년의 요구를 무시해버린 신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놀랍고도 경이로운 어떤 본질이 있다.
자기들의 요구가 무시된 것 같은 나흘 후 마르다와 마리아는 눈이 찢어질만큼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는데 죽은 지 나흘 지난 자기 오라버니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무덤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형이 죽은 얼마 후 그 소년의 마음에 패인 도끼 자국엔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경험되었다.
아, 그렇다.
기독교 신앙이란 상식의 증명, 도덕적 열매, 논리의 결과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동력은 마음의 평안도 복도 윤리적인 삶도 아니다. 그는 또 다른 도끼를 맞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도끼, 그 도끼 자국에서 피는 꽃이 신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전됐기에
그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역동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영생, 그의 의로움, 그의 구원, 그의 동기, 그의 힘, 그의 목적이 되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이 무엇을 얻기 위해 믿는 게 아니라 얻었기에 믿는 것이요,
사랑받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 받았기에 믿는 것이다.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믿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에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2024. 2. 24
이 호 혁
첫댓글 그리스도가 역동하는 신앙되게 하소서!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꽃이 내게도 풍성하게 피게 하소서.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소유하게 하소서!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