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 제337회 오이도 갯길 걷기
오늘은 봄비가 내리며 백곡이 윤택해진다는 곡우(穀雨)절기입니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비는 내리지 않고 화창한 날씨이니 혹시라도 적기에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있으면 어쩌나 생각도 해봅니다. 수리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절, 새벽부터 밤낮으로 물을 퍼올려 어렵게 농사를 지었던 젊었을 때 일이 생각납니다.
요즘 눈에 보이는 봄꽃들마다 방긋 웃어주는 날들입니다. 꽃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밝아지며 웃기 됩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꽃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웃는 얼굴을 좋아할 것입니다. 얼굴을 펴면 인상이 좋아지고, 허리를 펴면 몸이 좋아지고, 마음을 펴면 인생이 좋아진답니다. 오늘은 백두산' 제337회 오이도 갯길 걷기는 날입니다. 소래포구 해오름 광장~소래역사관 ~소래습지 생태공원 ~갯골~염전~종합어시장을 걷는 날로 무척이나 기대 되는 날입니다.
친구들과 새로움도 보며, 꽃을 보며 많이 웃으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하루가 될 줄을 믿으며 사당역에 모여 오이도 종점, 다시 수인선을 타고 소래포구 역에 내렸습니다. 역사가 무척 크기도 하고 시설이 좋습니다. 역앞 에는 57층 이상의 아파트가 즐비합니다. 이제는 수도 서울이고 지방 소도시건 주거 시설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둘러볼 수 있는 주요한 곳은 소래역사관, 소래습지생태공원, 소래포구, 양떼 목장, 소래산, 논현 포대, 소래철교, 장도 포다지, 소래아트홀이 있답니다.
물이 빠진 갯벌은 검은 흙바닥을 드러내고 물을 잃은 배와 갈매기가 한가로이 오수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종합어시장에서 점심 먹을 요량으로 펼쳐진 어물전에서 값을 물어보며 흥정을 해 봅니다. 싱싱한 고기들이 펄럭입니다. 일행이 많기에 예서제서 소리 높여 손짓하고 부릅니다.
소래포구는 소래(蘇萊)라는 지명은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고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장수 소정방을 출격했는데 그가 도착한 곳이 오늘날의 소래포구 지역이었기에 소정방의 소(蘇)와 내주의 래(萊)를 취해 ‘소래’가 되었다는 다는 장재영 친구가 전해줍니다. 이곳은 서너 번 온 적이 있습니다. 강습동기들 찾았던 일과 집사람과 함께 온 것이 제일 기억이 납니다.
바닷가 갯벌 생태계를 보러 가는 길에 19537년 우렁찬 기적소리를 울리며 민족의 애환을 함께한 수원역에서 남인천(수인선) 52km를 달렸던 검은 협궤용 증기기관차가 금방이라도 칙칙 폭폭~ 하며 검은 연기를 내며 달릴 것만 같습니다.
인천연안은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크고 작은 수많은 섬아 있답니다. 인천 앞바다에서 가장 깊은 곳은 월미도 근처 약 20m 깊이랍니다. 간식 시간, 푸짐한 간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소래 갯골 탐방 데크를 걸으며 물 빠진 갯벌을 조망합니다. 소래 갯벌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범위는 매일 변하며 12km까지 오르내린답니다.
소래습지 생태공원을 찾았습니다. 소리 염전을 이어주는 소염교를 지나 소래습지 생태공원 전시관을 찾았습니다. 1층은 생태 전시실, 2층에는 카페테리아와 영상회의실, 3층은 전망대이었습니다. 전에 몇 번 와 본 곳이라 전시관을 건너뛰고 3층 전망대에 오릅니다. 오르는 길에는 물과 고기와 관련된 연목구어(緣木求魚), 수어지교(水魚之交), 일어탁수(一魚濁水) 들과 같은 사자성어와 ‘부뜨막에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등 15개 속담이 그림과 함께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탁 트인 갯벌, 염전, 소금창고, 풍차 등이 보입니다. 염전에서는 햇빛과 바람으 이용하여 바닷물을 농축한 소금, 천일염을 만든답니다. 일하는 인부에게 물어보니 햇볕 좋은 날은 조그만 밭에서 200kg 소금을 생산하며 비가 내일 때는 만드는 소금을 모두 버린ㄴ답니다. 지금은 경제성이 적어서인지 소금창고도 모두 부서지고 만드는 소금 양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갈대군락 사이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주는 이국적인 풍차가 느릿느릿 돌라갑니다.
새들이 놀라지 않게 만들어 놓은 조류관찰 테크를 지나 나무로 만든 3층 소래습지생태공원 조류 관찰대에 올라가 갯벌과 새들을 찾아봅니다. 새도 별로 볼 수 없었습니다. 염전에는 1980년대 초부터 바닥에 태양열 흡수량이 높이도록 검은 타일을 염판(개흙)에 입혀놓았습니다. 타일 판이 이용되기 전에는 깨진 옹기를 바닥에 깔았다고 합니다.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운 하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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