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만하면 영화이야기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글은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영화 '싸인'에 관련된 여러 의견들이 오가기에 저도 거기에 잠깐 끼어들어 보겠습니다.
일단 제 개인적인 평가와 제 기호를 밝히는게 순서겠죠?
저는 이 영화에서 100점 만점에 95점을 기대하고 보러 갔는데 90점을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식스센스'를 제가 가장 아끼는 영화중 한편이라 생각하고, '언브레이커블'을 상당히 평가절하된 비운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제가 어제 본 '싸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을 펼쳐 보겠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외계인이나 미스터리 서클이 주제인 영화가 절대 아닙니다.
이상하게 샤말란 감독의 영화의 극장예고편은 상당히 스펙터클한 장면들로 영화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이미지를 사전에 관객들에게 주입시켜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언브레이커블'과 이 영화 '싸인'이 그러했죠.
이 영화의 주제는 조금 동양적인 면과 서양적인 면이 혼합되어 있습니다만,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과 모든일이 이미 계획되어 있다는 운명론(?)에 대해 샤말란
감독이 감히 접근을 시도해 보았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접근을 시도하기 위한 배경으로 '미스터리 써클'과 '외계인의 침공'같은
소재를 사용했는데 이는 아마도 사전 홍보효과를 높이기 위한 장치로 의도적으로 삽인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상당히 간단하죠?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목사가 믿음까지 잃어버리고 살아가다가 어떤 큰 사건을 겪으면서 다시 믿음을 회복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적 줄거리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큰 사건이 바로 '외계인의 침공'이 되겠네요.
그런데 이게 줄거리가 아니라 '외계인의 침략을 받은 한 가족이 생존해나가는 과정'
을 줄거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수 있겠습니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만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면 정말 말 그대로 이 영화는 헛점투성이의 영화가 됩니다.(특히 외계인 관련 부분에선 상당히 납득하기 힘든 일들로 가득합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이 간단한 줄거리를 감독이 110분 동안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바로 감독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제가 봤을때는 상당히 '샤말란'답게 풀어갔
다고 평가해주고 싶네요(훌륭하게 풀어갔다는 뜻이 아니라요...)
특히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기법은 거의 절정에 달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스릴이 넘치는 연출(마치 히치콕의 영화를 보는듯한)을 몇장면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느릿느릿한 호흡에 식스센스의 일부를 보는듯한 카메라 워크와 사건의 전개는 역시 샤말란답게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특히 중요한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들을 떠올리며 결정적인 단서를 얻는 기법등) 저야 이런 스타일의 전개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 보면 그다지 별 감흥이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놀란 것은 의외로 코믹에 가까운 장면이 몇군데 있다는 것인데, 멜 깁슨
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아니면 샤말란이 의도적으로 삽인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다지 나쁜 시도는 아니었다고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캐릭터의 연기는 솔직히 만점에 가깝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는 배우들의 연기가 나빴다기 보다는 영화속 등장 캐릭터에 멜깁슨이나 호아킨 피닉스가 좀 매치가 안되는 경향이 있다라는 판단인데요, 멜깁슨 역에는 멜깁슨보다 조금 외소하고
섬세한 배우가, 호아킨 피닉스역은 좀 덩치가 있고 약간 무식한 감이 있는 배우가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두 꼬마들의 연기는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맥컬리 컬킨의 동생인 로린 컬킨은 형의 이미지가 많이 느껴지는게 매우 이색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샤말란 감독 본인이 의외로 오랫동안 이 영화에 모습을 나타냈죠? 식스센스와 언브레이커블에 비해 거의 몇배 이상의 시간동안 등장했고, 게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멜깁슨의 부인을 죽이고, 또한 자기집에 들어온 외계인을 죽이지 않고 살려 놓아서 나중에 멜깁슨 가족이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들죠... 영화에 나오는 얘기처럼 이 모든게 정해진 운명이라고 하면 더이상 할말은 없습니다만...
또한 영화의 끝부분에 외계인이 실제 등장하는데요, 저는 샤말란감독이 외계인을 끝까지 안보여줄것이라 생각했는데... 제 예측을 벗어나 버렸네요. 이 영화의 제작비가 7천만달러인데, 주연배우들의 출연료를 빼면 대부분이 루카스의 ILM 이 참여한,외계인의 컴퓨터 그래픽 작업비용이 아닌가 합니다.
끝으로 이 영화가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는 이유를 들자면 미국이 작년에 겪은 911 테러의 여파로 인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WTC의 붕괴사고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많이 약해졌을 미국인들에게 샤말란감독이 '다시 믿음을 가져라' 라고 전해주는 메시지라고 봐도 될 정도로 말이죠...
결론적으로, 이 영화 '싸인'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보느냐에 따라 상당히 상반되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영화라 보여집니다. 물론 이 영화의 예고편이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것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지만요. 이 영화가 기대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영화라고 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영화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스릴 같은 것에서 재미를 찾으신다면 그다지 불만스러운 영화는 아닐 걸로 감히 생각해
봅니다.
- 칼멘 -
이 영화를 보면 후회할것 같은 분 :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면 '브이' 나 '인디펜던스데이'를 떠올리는 분
식스센스가 그다지 재미없고 '언브레이커블'은 최악이라 느꼈던 분
영화에 최소한의 스펙터클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느린 호흡의 영화를 지루하게 느끼는 분
이 영화를 보면 좋아할것 같은 분 :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
'식스센스'보다 '언브레이커블'이 더 재미있었다고 느끼는 분
깜짝깜짝 놀라는 걸 좋아하는 분(?)
사족 1 : 뒷자리에 앉는 여자분을 경계하라.
어제 이 영화를 보다가 상당히 쇼킹한 장면에서 뒷자리에 앉은 여자분이 발로 제 의자를 차는 바람에 그것에 더 놀란 경험을... ^^
사족 2 : 이해 안가는 대사 한가지.
멜 깁슨의 아내가 죽기전에 '노려봐라 (see)' 와 '힘껏 휘둘러라'라는 말을 했죠. 그런데 멜깁슨은 이게 전부 자기 동생에게 한 얘기로만 알고 있다가 외계인과 대면한 순간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노려봐라'는 자기에게 한 말이란 걸 깨닫습니다.
물론 우리말로 번역한 분이 정황을 잘 고려해서 선택한 언어였겠지만.. 왠지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코드1 DVD로 나오면 원어로 다시한번 잘 음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조만간 극장을 다시 찾아가 집중해서 들어 보던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