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비가 많이 왔네 아내는 그리고,
별로 오지 않았는데, 나는 그런다.
아내는 잠을 잤고 나는 밤을 새웠다. 이제 내가 잘
차례지만 한 몸인 우리는 그리 아득할 수가 없다.
간밤에 비가 많이 왔네, 별로 오지 않았는데.
자다가 자기 전 위치로 깨어났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내 앞에 마구 펼쳐진, 나라는 어설픈 물건,
느낌 없이 주먹과 눈물의
의미가 분명하고
의미는 죽음의 영롱이다.
폭염은 밀가루 반죽 냄새였다.
물 뿌린 신문지로 통유리 덕지덕지 덮으며
아내는 태풍 너머 보금자리에 있다.
이단의 거룩은 음악으로만 신비로울 수 있고
그밖은 참지 못하는
짐승이라는 생각. 사브레, 사브레. 네 몸의
냄새의 이름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이라는 말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도기 찻잔
두개가 있다. 잠복인 현대가 있다. 미래의 문법이 아닌,
새로운 놀이가 있다. 수명의 반전 혹은 끌림이 있다.
제의 병풍이 있다. 고전적인 여관 주인이 있다.
악마는 망령도 명징하다. 세련이지. 악에는
우여곡절이 없고 모양으로는 선이 막장 드라마다.
나른한 나이의 계절에 오래된 것은
오래 견딘 것이라는 뜻의
예리한 비상(非常). 죽음은 미래의
관류(貫流), 그것 없이 정말로 뜯어보면
얼굴이 수습되지 않는다. 눈, 코, 귀, 입의
제자리가 없다. 죄를 짓다니, 죄씩이나······ 그렇게
웃기는 일도 없지, 정말. 육체의 맑음과 흐림, 근육은
해체 너머로 흔들리고 그것을 우리가
성(聖)이라 불렀었다. 침묵보다 더 낮게 가라앉는 소란의
상자다. 고층 아파트에서 가까운 하늘에 잠자리
비행기의
위험한 다정, 여러가지 새들의 여러가지
설거지, 소아성애보다 더 어린 소아가 내는
수수께끼, 가랑이 삼위(三位). 포식자와 사냥감 사이
흔들리는 연민의 흔들리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운명은 분명 늘 생명의 운명이었을 것.
누구나 요상한 소리를 내지. 이름에
묻어 있고 드물게 이름인 소리다.
뜻과 형식과 내용이 사이좋게 흐물흐물해지는
고무가 있다. 더 심한 숭늉이 있다.
의외로 앞선 것이 있다.
실처럼 가늘고 길어지는 몸과 생애
사이가 있다.
최대 혹은 미비가 있다. 유년과 동성의
창세기가 있다. 돌이켜보니
불안했었다는 창세기다.
저런, 쯪쯪, 이크······예의가 괄호를
사슴처럼 껑충 뛰어넘는
마구 생몰년이 있다.
혁명만 우울증이다.
다음 세대인 아테나한테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았기에 제우스가 아직도
꼰대 아니 거, 아냐?
[개인의 거울], 창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