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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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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직녀에게 외 / 서규정
동산 추천 0 조회 49 15.06.21 22: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직녀에게 / 서규정

 

 

수없이 잡아당긴 사랑의 줄,

이슬비들이 몸을 부풀리는 강가에서

발을 씻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구름사이를 색종이처럼 빠져나오는 햇살

색계의 사랑을 나는 이렇게 받아 쓰려네

직녀여 일년에 한 번 우리 만날 때는

강둑이 터져 막힌 시뻘건 황토밭에서

땅콩처럼 따뜻한 발끝으로 만나세

흙바람 스치는 콩깍지 바깥은

빈칸을 찾아 헤매도는 하늘뿐이라네

 

 

 

 

 

줄기가 나를 세운다 / 서규정

 

 

꼭 한놈만 죽이고 싶은 가을이 가네
딱 한 번만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게
십자성 별빛따라
한 놈의 흉곽을 확 열어 제끼고
사형수가 되었으면 하네
재판관이 왜 그랬냐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장기 기증을 권유하는 덜 떨어진 녀석이
간, 심장, 눈, 그 중에 하나만 빼놓고 가라 하면
쓸개나 떼주고 가리
T.V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승려가
지은 죄 씻고 가라 하면
검은 장갑이나 벗어 주고 가리
마지막으로 남길 말 없냐 물으면 고개를 살레살레

 

한없이 열어 본 해바라기 빈 가슴

 

 

 

 

철시 / 서규정

 

 

  기장 시장에 내려 장안사로 갈까 연화리 바닷가로 갈까

망설이는 공터에서 웬 노인네가 펼쳐놓은 좌판을 내려다

보니 중고 신발들이다

 

  짝짝들이 놀고 있다

 

  쳇! 산다는 건 신을 갈아 신는 것뿐이었네, 흰 눈 소복소복

쌓인 마당에서 처음 신던 고까신부터 고무신 운동화 군화

안전화 신발이 바뀌면서 모습도 달라지던 그때 미끌미끌

땀이 범벅이되어 발 뿌리 다치면 길도 함께 고장 나, 슬리퍼로

직직 세상의 어두운 그늘만은 끌지 않기를

 

  짝짝짝짝 박수 치듯 먼지 털듯 발바닥을 터는 중간의 철시,

노인네가 자릴 옮기려는지 짝을 맞춰 신발들을 쓸어 담는

박스 위에 떨어지는 마른 잎

 

  극락이나 지옥으로 갈 땐 신발을 벗고 간다

 

  나직한 소리들이 들리는 것만 같아, 사라지고 잊혀서야

비로소 완벽할 깔창 위의 모든 날들을 환하게 털어 주세요,

몇 번이나 곁눈질로 부탁했다

 

 

 

 

엘 콘드르 파샤 / 

 

 

이 지상 제 아무리 큰 전투라도

결국엔 오합지졸들로 치루고 말걸

살다보면 전쟁처럼 재미난 극도 없어

난세에 난다는, 영웅조차 보이지 않는 판국에

대권에만 눈이 먼 누구의 명령 따윌 따른단 말인가

 

국운이 다 하면 같이 가는 것

 

시체더미 속, 최후의 일인이라는 생색보다

패전을, 패잔의 맛으로 더욱 깊이 우려내어

흔틀번틀 살아온 이력을

물타기 하는 것이라면 충분 하리

 

우리는 전설보다 역설을 믿는 미래의 부족

 

아직까지 못다 푼 숙제 하나가

위계도 아닌 위계와, 질서도 아닌 질서

그러니까 지배와 굴종이었다면

허공중에 매듭처럼 질끈 맺힌, 새

새는, 뒤도 안 돌아보고 훨훨 날아가게

 

진군보다, 퇴각의 나팔을 신나게 불어야만 한다

 

- 서규정 시집 『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는다 』 2013

 

 

 

 

 

 

만추 단추 /

 

 

믿을 건 오로지 외로움뿐이라 강은 외줄기로 흐르는가
감물 든 런닝구 같은 백사장을 늘어지게 붙들고 붙들던
그 사랑이 물이 되어 돌돌돌 저리 여울지는지 몰라
심장에 빨대를 찔러 넣듯
고부라진 모습을 누가 또 눈여겨 볼까마는
마른 잎 한 잎 내려놓고도 하늘은 끝 간데 없이 들리고 들려
눈썹 끝으로 몰려나온 두 줄기 눈물이 그렁그렁
천리나 만리 밖으로 흐르는 강물과 셋이서 함께 흐르라
이제 더는 외롭지 않게 여럿이서 가라 했네
그대, 메이고 메인 가슴 멍 자리는
허수아비 옷깃을 다져 여며 단추로 달아놓고
심장에 곶은 빨대를 쪽쪽 빨며 불불불 따라가도 천리이고
거슬러 와도 만리인, 내 마음 저녁 강에 빈 배로 떠돌고 있네
 

 

 

 

 

 

 

노래야 잘 가거라 / 서규정

 

 

가요방에 가서 혼자 노랠 불렀다

시작하자마자 팡파르가 울리며 백점을

맞았다 새우깡과 캔맥주를 들고 온 아가씨는

나를 위 아래로 한참이나 훑어보다가

공손하게 닫고 나간 문을, 살짝 열어놓고

얼마든지 내 노랫소릴 들려주마.

얼큰한 기분으로 다시 한 곡..... 80점 엇

점수가 줄어든다. 그래! 이번에야말로

신세대의 노래로..... 70점 앗 점수가

죽어간다 잘못된 만남이었다.

그렇다면 비장의 무기 나의 18번 한계령을

아랫배에 힘을 주고..... 60점을 받기 전에

내 노래는 이미 판소리로 변질되어 떠나가

있었다. 기계에다 내 노래를 묻다니

노래야 잘 가거라. 이 어둠 속의 이 갈증

누가 막 노래를 마쳤을까 피빛으로 고여 떠있는

밖엔, 어둠에 갇혀 발악하고 포효하는 상갓집의

백열등 

 

 

 

 

장군 / 서규정

 

 

해운대 백사장에
뺨을 후려치며 몰려오는 황혼
개를 따라나온 퇴역장군도 붉게 물들었지만
번데기를 파는 아저씨도 벌겋게 물들었다
문득 어금니가 물리는 그리움 저녁나라로
금을 긋다 쫓겨난 수평선
그 너머에서 떠오르는 환한 보름달
그들은 똑같이 탄성을 질러댔다
번데기 아저씨는 이내 입을 닫았지만
장군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한 사람은 여생이고 나머지는 인생이라니
 

 

 

 



빨래 / 서규정

 

 

네 그리움이 남아 있느냐
쉬었다가 익어간 탱자의 하늘이다
빨래가 쉬이 젖는 희망이라면
살아가는 절망 여태 마르지 않았니
소나기와 똑같은 빛으로 타오르기 싫어
척박한 등뒤에 사다리 같은 등뼈를 남겨 놓았다
내 눈에 채찍으로만 보이던 지평선이
푸른 탱자 눈망울을 팽이로 돌리고 돌리면
어지럽게 돌아보고 돌아보는 앞마당
빨랫줄을 타고 앉은 하늘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고
포로로 잡혀 있던 선녀들이 너울너울 춤추며 있다
하나씩 골라 잡아 천년 만년 같이 살 선녀가
아니 아니 내 옷이더란 말이냐
그렇게 만나고 싶은 바로 그 사람이
 

 

 

 

 

풍차 / 서규정

 

 

달마는 동쪽으로 가더라도 나는 서쪽으로 간다
부산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시내버스로 12키로쯤
긴다리를 건너 S읍 내고향
늠름한 사람들이 많아서 누가 좀도둑인지 모르는 모래와
물이 서로 힘을 믿고 겉도는 만경강 상류
바닥이 좁아 낯선 얼굴을 만나면 서라 넌 누구냐
그 이마에다 눈을 사르르 감고 면벽으로 들어가던
화엄보다 장엄에 들던 박치기의 명수들이,
이제는 목을 뽑듯 실을 뽑듯 애드벌룬 띄우고
합장을 하듯 전주시로 깍지 끼여 들어간다

 

애드벌룬이란 질서를 지키는 농간이다
살풋 풀어지는 눈빛들을 긁어모아 옭아매는 재주가
있었다 이 고장엔 서커스가 규칙적으로 들어오고
흥행은 언제나 만점이었다 루머가 자라고 주먹이
돌지 않는 날은 주물공장 굴뚝의 연기처럼 무쇠라도
불끈불끈 녹아야 직성이 풀렸다
그건 다 만경강이 강물을 가르쳐주지 않고
높이 쌓아 놓은 강뚝만 보여주어서 그렇다고, 범람하는
황토물을 보고 배운 눈높이 때문이라는
이 고장 정치문화 대변인인 이발소 주인의 견해는,
풍차를 많이 만들어서 강물을 빨리 보내야 한다는데 이르러
나는 그의 면도칼에서 벗어난다
자네는 누굴 두들기는 일보다 얻어 터지는 날이 많았지
왜 신랑 대신 뚜벅뚜벅 입장하던 새마을회관
자네 별명이 사거리 공산당 아니 달마 맞지
모래바람이 자동적으로 눈꺼풀을 닫던 그 때가 언제였드라
 

 

 

 

 

 


내 안의 블루 / 서규정

 

 

낙석 하나가 분화를 꿈꾸는 지층을 깨우듯
내 몸을 흔드는 정체불명의 힘,
블루라는 낯선 말이
간간이 극장 포스터나 술집 이름으로 등장할 때에도
뭐 현대인의 색다른 기호나 유희성이겠거니 하다가
자갈치 물양장에서 은하호를 보는 순간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어

 

전선과 전선이 담쟁이 넝쿨처럼 우거진
교각 밑에선 노약자 노숙자들은 노을과 놀고
관리들은 꼬리 잘린 도마뱀과 놀고
공적자금은 밑 터진 독과 놀고
우울이 껌처럼 늘어붙는 거리
평생을 구두 발자국만 새긴 어느 판화가의 생애를 위해서라도
어디로 떠나가 줄까 더 이상
발자국을 뜯어 먹히기 싫어....그러니까
얼마나 이 땅의 기다림과 그리움들이 다했으면
덧문을 닫아 걸 이 나이에
나를 끌어내는 정염의 덩어리를 찾아
맨발로 99톤 은하호에 오르기 전에

 

가방에 담았던 면도기 치약 몇 권의 노트를 꺼내고
내 그림자와 백병전을 벌이던 몸통을 쑤셔 박았지
자크를 열고 나오려는 팔다리를 우둑우둑 분질러
다져 넣으며 나도 모르게
죽어서 다시 살아!
손에 묻은 분진을 털며 외쳤어
 

 

 

 

 

안개 / 서규정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으리라 내 타는 갈증 적셔준 신불산

산정에서 이빨이 부러지게 깨물었던 한 알의 오렌지와도 같이....

성난 파도에게 와작와작 씹히는 안강망을 타고 어디만큼 왔을까

더듬더듬 화장실을 찾아 고물* 쪽으로 가다 문짝도 다 떨어진

기관실 흐린 알전구 밑에서 기름범벅으로 푸드득 뛰쳐나오는

한 마리 괭이갈매기에 놀라 그물을 잡고 주저앉고 싶었어

그 옛날 어느 거센 영혼이었을까 자물통 같은 시대를 향해

무엇인가를 떨그럭떨그럭 외치다 닫았다 또 외치다 닫았다

 통닭가게도 아닌 천막촌에서 약간의 미소를 입가에 발라

스스로를 알맞게 구워놓고 간 그 써늘한 이념의 주변

 

  한 걸음이 줄달음에게 소리친다 뛰지 마 뛰지 마 뛰어

달아나는 쪽은 청춘이야 돌아와 붉은 양탄자는 아니더라도

군가에 맞춰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젊음의 껍질만 벗겨

마른 나를 둘둘 말아와 

 

  최루가스를 맡으며 늙으면서 와, 차단이란 지독한 교류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가랑이 사이로 쏟아지는 오줌줄기

처럼 깊은 것은 양다리를 걸친다 참답게 말을 해라

귀머거리에게도 들리는 말을 해라 삐라처럼 따라붙는

기억들을 수장시킬 이 순백의 해역에 갈매기 제 똥 위에

앉아 있어도 부장품은 없다 우린 같이 상처의 속도로

살아왔다 살아간다 사라진다 

 

  다시 타는 목마름이다 바다는 물보다 왜 하얀 불을 먹이는

것이냐 차라리 열락의 솜꽃이 피는 목화의 城으로 가자

바람은 키를 낮춰 미풍으로 따라 오라 별빛도 깨끗이 지워진

위도에서 뿌우 뿌우 짙은 주황의 눈깔을 굴리며 항로를 찾는

어선 한 척 토악질을 하는 현창으로 누가 날 밀어 넣었지

이 따듯한 안개 속에 분간 없이 묻어두면 되는가 묻어두기만

하면 끝나는 것인가

 

*고물, 배 뒷부분 

 

 

 

 

육체의 길 / 서규정

 

 

단추를 열고 나를 내보내려다
한발짝만 물러서도 금만경은 발톱 속까지 푸른 들판이었다
사내가 길을 물었으면 가야지
발바닥만 문지를테냐
멀고 긴 회초리 그 가느다란 길을 매로 들고 누님은
가라 이마가 터질 때까지 반드시 가서
생활보다는 삶을 살아라 사정없이 내려치면
나는 장딴지에 겹겹의 지평선을 두르고 바라보던 먼 산
까악까악 글씨처럼 날아오던 새떼가
머리 위에서 먹물처럼 번질 때 도장을 찍다 말고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해
사람과 싸우지 말고 사람의 싸움을 해야 한다
하늘문서에 찍힌 해가 누구의 도장인 줄도 모르고
생활의 노예로 살았다
아수라로 살아온 만큼만 삶을 노래하리라
입을 열고 나를 내보내려 하면 왜 그리 숨이 막히는지
사회가 순수했으면 사람도 순수했을 것이다
끝나지 않은 사람의 싸움 중에 늘 앞장서다 머리 벗겨진
젊은 투사의 말이 내 반생을 발칵 뒤집는
순수, 그것이 그렇게 멀리 흐르는 강 이름인가
우리 시대 깊은 물 속에 익사한 수많은 붕어떼들은 별 헤는 밤
은하수로 흐르리
고개를 저으며 물 묻은 숨을 털 듯 구르는 발자국처럼
떨어진 잎새만 내보내지 말고 나오라 나여
눈을 열고 나와 제발 꽃피우고 열매 맺히자
나는 장딴지에 감긴 지평선을 온몸에 나이테로 두르고
눈감고 선 채 어렴풋이 그릴 수 있는 사람의 나무
나무야 왜 이 땅엔 발자국들이 많니

 

 

 

  

 

*********************************************

 

금요일 밤부터 2박3일, 온전히 서규정 시인의 시편에

빠졌다 시집을 구할 길 없어 인터넷 검색을 하여,

읽을 수 있는 시들을 찾아내었다

 

솔직히 시인공화국의 변방에 사는 나에겐 낯설었던

시인의 시편을 읽다가 주말 내내 혼자서 울다가 웃다가

지금은 가슴이 먹먹하다

 

좋은 시인을, 좋은 시를 만난 날은 多幸이다

(시집에서 발췌한 글이 아니고,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던

무책임(?)한 시를 올리고 나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좋은 시는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기를 기원하는 밤!

 

/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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