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원의 무덤 앞에 있었던 푯돌인 '최효원묘표'(1734년 제작)에 따르면, 최 숙빈의 아버지 최효원은 35세 때인 현종 13년(1672) 8월 15일 사망했다. 한 살 연하인 어머니 홍씨는, 이 묘표에 의하면 그로부터 1년 반 뒤인 현종 14년 12월 18일, 즉 서기 1674년 1월 24일에 세상을 떠났다. 양력을 기준으로 하면, 나이 5세에 최씨는 양친(兩親)을 모두 잃은 셈이다.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는 점에서는 드라마 속의 설정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드라마 설정과 달리 실제로는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나중에 죽었다는 점이다.
가족 관계와 관련하여 실제 역사가 드라마와 달랐던 점을 또 든다면, 동이에게 언니가 있었으며 오빠 최후(崔垕)가 정상적으로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드라마의 내용과 달리, 동이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도 그의 곁에 여전히 형제자매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동이(최씨)가 어떻게 궁녀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공식 기록은 없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궁녀의 선발에 관한 법률제도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최씨가 입궁하기 23년 전의 기록인 효종 4년(1653) 9월 24일자 <효종실록>에서 알 수 있듯이, 각 관청의 공노비 가운데에서 궁녀를 선발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국법이었다. 최 숙빈 사후에 나온 <속대전>과 <대전회통> 같은 법전들의 내용도 동일하다.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라는 원칙하에 양인, 즉 일반백성이 궁녀가 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하지만 양인이 궁녀가 되는 것을 처벌하는 형사법규가 있었던 사실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신분을 숨기고 불법적으로 궁녀가 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고아였던 숙빈 최씨
드라마 <동이>에 나오는 장희빈은 공노비 출신이 아니면서도 예외적으로 궁녀가 된 사례에 속한다. 장옥정은 자파 출신 후궁, 혹은 왕비를 배출해 숙종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남인세력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궁녀로 만든, 전략적 기획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공노비로서 궁녀가 되는 것이 원칙이고, 양인으로서 불법으로 궁녀가 되는 것은 예외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입궁 당시 최씨가 공노비 출신이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최씨가 어느 관청에 소속된 공노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중앙관청 소속의 공노비를 거쳐 궁에 들어갔으리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최씨의 부모가 공노비였거나 아니면 최씨가 부모를 잃은 뒤에 공노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드라마 <동이>의 초기 방송분은 역사 기록에 거의 근접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실제의 최씨는 드라마 속 동이보다 훨씬 더 어린 7세 때 궁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전라도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최숙빈에 관한 민간전승의 내용은 이와 좀 색다르다.
1930년에 장봉선이 편찬한 <정읍군지>에서는 최씨의 입궁을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에 소재한 큰다리(대각교·거산교)와 연결시킨다. <정읍군지>에 실린 설화에 따르면, 영광군수로 부임하던 민유중 부부, 즉 인현왕후의 부모가 이곳 큰다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거지 소녀인 최씨를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민유중 집안에서 살게 된 최씨가 그 집 딸(인현왕후)이 숙종의 계비가 될 때에 시녀로 입궁했다고 한다.
한편, 전라남도 담양군에 소재한 용흥사에서도 최숙빈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최숙빈의 실명을 최복순이라고 전제하는 용흥사 전설에서는, 소녀 최씨가 장티푸스에 걸린 가족과 함께 이 절에 들어왔다고 한다. 최씨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모두 죽었고, 슬픔에 잠긴 이 소녀가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에 감동한 산신령의 도움으로 최씨가 길가에서 나주목사의 행차를 만났으며, 인현왕후의 친척인 나주목사 부인의 소개로 이 소녀가 인현왕후의 시녀가 되었다고 한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입궁 이전의 최씨가 오갈 데 없는 고아 신세였고 인현왕후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중전의 시녀로서 궁궐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효원묘표에 의거할 때에도 최씨는 나이 5세에 고아가 되었으니, 소녀 최씨가 고아였다는 점에 관한 한 어디에도 이설(異說)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신분한계 극복하고 상층부로 수직상승
그러나 설화나 전설에 나오는 소녀 최씨의 모습은 공식 기록 및 법률제도에서 추출되는 소녀 최씨의 모습과는 명확히 대조적이다. 공식 기록과 법률제도에서 유추되는 소녀 최씨는 공노비 신분이었을 확률이 매우 높은 사람이다. 이에 비해 설화나 전설상의 소녀 최씨는 비록 불쌍한 고아일지언정 신분상으로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노비가 아니라 자유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노비 출신이든 자유민이든 간에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역사 기록으로 보나 민간전승으로 보나 최하층인 최씨가 열악한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결국에는 사회의 최상층부로 수직상승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혈연·학연·지연 같은 것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거의 순전히 자기 혼자의 힘으로 그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인 최숙빈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그가 어떻게 그런 악조건을 딛고 후궁의 자리에 오른 데에 이어 자기 아들을 다음 보위에 올릴 수 있었는가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정착된 에도시대(1603~1867년) 이래 신분이동의 가능성이 극히 제한된 탓에, 서민 아버지의 생업을 서민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는 것을 적극 미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 숨이 꽉 막힌 일본인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있는 인물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다. 하층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 권좌에까지 거침없이 올라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에도시대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 서민들의 영원한 우상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최숙빈도 1960년대나 1970년대에 비해 신분이동의 가능성이 현저히 제약된 2000년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서민들의 꽁꽁 막힌 가슴을 확 뚫어줄 수 있는 그런 우상의 역할을 해낼 수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