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6:15~23)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23절)
사단에 사로잡힌 반 그리스도적, 심각한 적을 상대할 때,
전쟁에 임하여 승리를 반드시 쟁취할 때,
그 전쟁을 하나님 도움으로 이겨야 할 때,
단호하시고 엄정하신 하나님을 본다.
성경 말씀에는 다소 잔인한 과정을 통해서 적을 제압하는
본문의 내용도 꽤 많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그리스도인이 나는 잔인하게 보일 때가 있다.
사단을 대적하는 의식이
단호하게 비춰지나 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맞는 걸까?
또는 적절한 수준에서 경우에 맞게 그렇게 하는 걸까?
오늘 기사에는
DMZ 부근에서의 사격훈련이 재개된다는 내용이 여기저기 실렸다.
얼마 전에는 NLL 부근의 해상사격 훈련도 재개되었다.
대다수의 Majority 그리스도인들은
북한에 대한 강격책을 지지한다.
핵무기도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다수이다.
아마도 북한의 종교정책, 인권유린, 독재 등이 작용한 듯하다.
적절한가?
NLL 해상사격, DMZ 사격훈련을 우리가 안하면서
북한도 그 지역일대에서 사격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가 유지되어 왔다.
비록 그것이 완전하지 않았겠지만
사람 사이의 실존세계에서의 안보란
그렇게 결과적으로, 현상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의 상태이다.
그런 결과적, 현상적 평화가 정책적 / 동기적 / 정서적으로
근본적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하거나, 그럴 계기를 모색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큰 사건이나 원인 행위가 없었는데,
스스로 군사합의를 종이짝처럼 여기고 폐기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야기한 측면이 다분하다.
그것이 옳은가?
헌법, 국가 정책이 '평화통일'이라면
평화통일을 위해서 상대방을 기본적으로 인격체로 봐 주어야 하는데
그래서 대화를 이끄는 게 필수적인데,
우리는, 교회는 북한을 괴물 집단 이상으로는 잘 봐주지 않는다.
군비통제 수단을 스스로 해체하고
군비경쟁을 스스로 끌어들였다.
오늘 본문에서 전쟁 중의 하나님의 자비를 본다.
전쟁 중에 평화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본다.
위험성을 등한시 하고 평화만을 집착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우리나라, 교회의 시각은 여전히 변화된, 생태적인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악마로 인식하는 것이 지나쳐서
협상과 대화, 하나님의 진리가 파고 들 여지를 전혀 수용할 틈이 없다.
언제든 전쟁이 가능하고 승리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군인의 몫이다
정치인들은 정책과 외교, 경제 등의 다양한 수단을 이 문제를 접하고
종교인들은 좀 더 큰 차원의 사랑과 헌신, 희생으로
이 문제를 대하여야 하는데
그저 사탄으로 여기며 접근하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징계도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것이라면 사랑의 일부입니다. 우리 마음에 분별 없이
원수 의식과 대상을 악마로 여기는 마음이 가득한 것은 아닌지요?
상대방 안에 존재할 어떤 여지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양정환 집사가 내일 모레 큰 수술을 합니다.
이항주 집사님이 금요일에 갑상선 수술을 합니다.
그 분들의 수술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수술의 과정, 과정 실수 없이 잘 이루어지게 하시고
좋은 회복의 과정을 거치게 해 주시옵소서.
바라옵건대 완치의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