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Chapter 1 팡틴
몰락(2)
단 이 지방을 통틀어 오직 한 사람만이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 있었다. 마들렌이 어떤 일을 하든, 마치 일종의 완강하고도 냉철한 본능에 이끌리듯이 그에게 적의를 갖고 있었다.
마들렌이 만인의 축복을 받으며 조용하고도 애정에 넘치는 모습으로 길을 가고 있을 때, 한 사나이가 저만치서 획 돌아보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사나이는 키가 크고 집은 회색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는 마들렌 시장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고개를 흔들면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술을 코밑까지 추켜올렸다. 그의 동작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저 사나이는 누굴까?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쨌든 속지 않을 것이다.’
기분 나쁠 정도로 섬뜩한 분위기가 엿보이는 이 사나이는 누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그러한 인물이었다. 이 사나이는 자베르 경감이 었다.
그는 몽트뢰유쉬르메르에서 순찰이라는 어렵기는 하지만 유용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마들렌이 처음 왔을 때의 일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당시 파리의 경찰 총감이었던 국무대신 앙글레 백작의 비서관 샤부이에의 주선으로 이 직책을 갖게 되었다. 자베르가 몽트뢰유쉬르메르에 부임했을 때 이 대제조업자는 이미 큰 재산을 모아 마들렌 아저씨에서 마들렌 씨로 바뀌어 있었다.
경찰관 가운데 어떤 사람은 오만과 비굴함이 섞인 표정을 갖고 있는데 자베르는 이 중에서 비굴을 뺀 나머지의 인상을 갖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극히 단순하고 비교적 선량하기는 했으나, 그것을 너무 과장한 나머지 오히려 악한 것이 된 두 개의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권위에 대한 존경과 반역에 대한 증오가 그것이었다. 그가 볼 때는 절도, 살인 그 밖의 범죄는 반역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수상에서 산림 감시원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관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종의 맹목적인 신념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반면 일단 법을 어기고 악의 길에 들어선 자에게는 경멸과 밤감과 혐오를 덮어씌웠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관리에게는 결코 과오가 없다. 사법관은 결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한편 이런 말도 했다.
“이자들은 절대로 안 되겠다. 구제할 길이 없다.”
세상에는 극단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들은 영구한 죄인을 제조 또는 증명하여 낙인을 찍는 절대적 권력을 인간의 법률에 부여하여 사회의 밑바닥에 지옥을 만들어 놓으려 한다. 자베르는 이런 사람들과 완전히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는 금욕적이고 정직하며 엄격했다. 음험한 몽상가이기도 했다. 광신자처럼 겸손하면서도 오만했다. 그의 시선은 송곳과도 같이 차고도 예리했다. 그의 모든 생활은 경계와 감시라는 두 마디로 표현될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구부러진 곳에 직선을 가져다 놓았다. 그는 자신의 유용성을 자각하고 직무를 숭배했으며 성직자와 같은 태도로 밀정의 직무를 수행했다. 그의 손에 잡히는 자는 불행한 자였다. 탈옥하는 자는 아버지라도 체포할 것이며 법을 어기면 자기 어머니라도 고발했을 것이다. 더구나 선행을 하는 듯한 자기만족을 느끼며 그런 일을 거침없이 해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청빈한 생활을 신조로 삼았다. 그는 문자 그대로 의무의 화신이었다.
자베르는 마치 마들렌을 노려보는 눈과도 같았다. 혐의와 억측으로 충만되어 있는 눈. 마들렌도 드디어 이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그의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삼는 듯했다. 그는 자베르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고 자베르를 찾지도 않았으며 피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날카로운 그의 시선을 태연하게 참고 있었다. 그는 자베르에게도 다른 사람과 같이 태연하고 친절하게 대하였다.
자베르가 내뱉은 몇 마디 말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직업적인 호기심, 의지와 본능이 반반씩 섞인 호기심을 갖고 마들렌이 다른 곳에서 남기고 온 예전의 모든 발자취를 몰래 추적했던 것 같다.
“이번에야 놈의 꼬리를 잡았군!”
그는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로부터 사흘 동안 자베르는 한마디도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꼬투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단서가 무너져 버린 모양이었다. 인간에게는 절대로 오류가 없을 수 없는 법이다. 또 본능의 특질은 혼란되고 뒤엎어지며 또 실패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본능은 지성보다 뛰어나고 동물은 인간보다 훌륭한 광명을 갖게 될 것이다. 자베르는 마들렌의 자연스런 태도와 침착함에 약간 당황했던 것이다.
한번은 마들렌의 이상야릇한 태도가 자베르에게 깊은 인상을 준 모양이었다. 어느 날 아침 마들렌을 몽트뢰유쉬르메르의 거리를 지나다가 사람들이 모여서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곳으로 가 보았다. 포슐방이라는 영감이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마차 밑에 떨어져 있었다.
포슬방은 그 무렵 마들렌에게 있어서 소수의 적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공증인으로, 마들렌이 이 지방에 왔을 때는 제법 학식이 있는 상인으로서 장사를 하고 있었으나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포슐방은 기술자에 불과한 자는 돈을 벌고 있는데 선생 격인 자기는 몰락해 가는 것을 불편해 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 질투심ㅇ르 일으켰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마들렌을 방해하곤 했으나 결국 자신이 파산하고 말았다. 그는 늙은 데다 재산이라곤 마차와 말 한 마리밖에 없었으므로 먹고 살기 위해 마침내 마부가 되었다. 그에게는 자식과 가정도 없었다.
말의 양쪽 다리가 부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영감은 수레바퀴 사이에 끼어 있었다. 짐을 산더미처럼 실은 마차의 바퀴가 포슐방 영감의 가슴을 짓눌렀다. 소리를 지르는 포슐방 영감을 끌어내기 위해 모두들 마차에 달려들어 들어 올리려고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아싿. 난폭하게 하거나 서투르게 손을 대면 오히려 그를 죽일 염려가 있었다. 마찰을 밑에서 들어 올리는 길밖에는 그를 구출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 지나가다가 사고를 복격한 자베르는 기중기를 가지러 사람을 보냈다.
그때 마들렌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며 길을 비켜 주었다.
“도와줘요! 이 늙은이를 살려 줄 친절한 분이 안 계십니까?”
포슐방 영감이 소리쳤다. 마들렌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기중기는 있습니까?”
한 농부가 대답했다.
“가지러 갔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갔습니다. 거기 철공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15분은 족히 걸릴 겁니다.”
“15분이나!”
마들렌은 외쳤다. 전날 비가 왔기 때문에 흙이 질퍽하였다. 수레는 시시각각 땅 속으로 빠져 들어가 늙은 마부의 가슴을 더욱 눌러 댔다. 5분도 되지 않아 늑골이 부러질 것이 분명했다.
마들렌이 주위 사람에게 말했다.
“15분이나 기다릴 수 없어요!”
“할 수 없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마차가 자꾸 빠져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마들렌이 말했다.
“내 말 들어 보세요. 마차 밑에는 아직 한 사람쯤 더 들어가 등으로 받칠 만한 공간이 있습니다. 30초만 그러고 있으면 이 노인ㅇ르 끌어낼 수 있어요. 허리 힘이 강하고 용기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루이 금화 다섯 개를 드리겠습니다!”
군중 속에서는 한 명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10루이!”
마들렌이 외쳤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모두 외면하며 시선을 떨구었다. 그중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힘이 장사라야지. 내가 깔릴 우려도 있고…..”
마들렌이 한 번 더 말했다.
“자아 그럼, 20루이!”
여전히 침묵만이 계속되었다.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
누군가가 말했다. 마들렌이 돌아보니 자베르였다. 여기 왔을 때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자베르는 계속했다.
“그들에게 없는 건 힘뿐이죠. 등으로 마차를 받치고 있으려면 무서운 힘을 가진 사람이라야 해요.”
그는 마들렌을 응시하며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마들렌 씨, 이 일을 할 수 잇는 사람은 꼭 한 사람밖에 없어요. 난 그 사람을 알고 있죠.”
마들렌은 등골이 오싹했다. 자베르는 태연하게 그러나 마들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덧붙엿다.
“그는 툴롱 교도소의 죄수였습니다.”
마들렌은 파랗게 굳었다. 그동안에도 마차는 계속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포슐방 영감은 울며 소리쳤다.
“답답해! 뼈가 부러질 것 같아! 기중기! 뭔가 없나, 아아!”
마들렌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20루이를 낼 테니 누가 이 불쌍한 노인을 구출하지 않겠습니까?”
누구 한 사람 나서지 않았다. 자베르가 다시 말했다.
“기중기를 대신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에요. 그것은 아까 말한 툴롱의 죄수입니다.”
“아아! 깔려 죽겠어.”
영감이 소리쳤다. 마들렌은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자기를 노려보고 잇는 독수리 같은 시선과 부딪혔다.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군중들의 표정도 바라보앗다. 그는 씁쓸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무릎을 꿇고 마차 밑으로 들어갔다.
침묵과 기대가 섞인 무서운 순간이엇다. 마들렌은 무서운 중력을 받으며 기다시피 들어가 무릎과 팔꿈치를 한데 모으려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군중들이 소리쳤다.
“마들렌 씨, 어서 나오세요!”
포슐방 영감까지도 동조했다.
“마들렌 씨. 어서 나가세요. 나는 어차피 구출되지 못할 겁니다. 빨리 빠져 나가요! 당신까지 깔립니다.”
마들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군중들은 숨을 죽였다. 마차는 계속 빠져 들어 갔다. 이제는 마들렌이 빠져 나오기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순간 갑자기 그 무거운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며 바퀴가 땅에서 반쯤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외치는 마들렌의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빨리 거들어!”
마들렌이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와르르 달려들었다. 한 사람의 헌신이 만민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여러 사람의 팔이 마차를 들어 올렸다. 이리하여 포슐방 영감은 구출되었다.
마들렌이 일어섰다. 땀투성이임에도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옷은 찢기고 온몸은 진흙투성이였다. 모두가 울었다. 포슐방은 마들렌의 무릎에 입을 맞추며 그를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마들렌은 행복하고 신성한 고통이라고나 할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자베르에게 온화한 시선을 던졌다.
포슐방은 마차에서 떨어질 때 무릎 관절이 탈구되어 있었다 마들렌은 공장 노동자를 위해 세웠던 자기 병원에 포슐방을 데리고 갔다. 여기서는 두 명의 자원 간호사가 봉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영감은 침대 옆 탁자 위에 1천 프랑짜리 지폐 한 장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곁에는 ‘당신의 말과 마차를 내가 사겠습니다’라고 마들렌이 친필로 적은 종이쪽지가 놓여 있었다. 마차는 망가졌고 말도 이미 죽어 있었는데 말이다. 포슐방은 회복되었으나 무릎은 끝내 불구가 되고 말았다. 마들렌은 간호사와 신부의 권고에 따라 이 노인을 파리의 생탕투안 지구에는 수녀원의 정원사로 취직시켰다.
그 얼마 후에 마들렌이 시장에 임명되었다. 시의 전권을 부여받은 마들렌이 띠 휘장을 두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자베르는 일종의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주인의 몸에서 이리 냄새를 맡은 불도그가 느끼는 그런 전율이었다. 이때부터 자베르는 되도록이면 마들렌을 피했다. 근무상 어쩔 수 없이 시장 앞에 나타나야 할 때는 존경 어린 공손한 태도로 말을 했다.
마들렌 시장에 있어 이룩된 몽트뢰유쉬르메르의 번영은 외부에 나타난 것만이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징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징후는 결코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주민이 고통받고 있을 때, 일거리가 없을 때, 상업이 부진할 때 납세자는 돈이 없기 때문에 세금을 거부하고 때로는 유예 기간도 넘기게 된다. 이때 국가는 강제징수를 위해 많은 비용을 소비한다. 일거리가 많을 때, 그 고장이 행복하고 부유할 때에는 세금이 쉽게 납부되며 국가도 징세를 위해 별로 비용을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성의 빈부는 장제징수와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몽트뢰유쉬르메르 지구에서는 징세비가 7년 동안 4분의 1로 줄었다.
팡틴이 돌아왔을 때 이 고장의 상태는 위와 같았다. 이 여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도 마들렌의 공장 문은 그녀에게 있어서 마치 낮칙은 사람의 얼굴과도 같았다. 그녀는 거기에 여직공으로 채용되었다. 팡틴은 낯선 직업에 일이 서툴러 돈을 조금밖에 벌지 못했다. 하루에 번 돈이라야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문제는 해결되고 생활비를 벌게 되었던 것이다.
팡틴은 자기가 생활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자기 손으로 노동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녀는 일하는 데서 참된 기쁨을 되찾았다. 거울을 사다가 자기의 젊음이며 아름다운 머리와 치아를 비춰 보고는 즐거워했다. 많은 시름을 잊었다. 오직 코제트에 관한 일, 장래에 관한 일만 생각하고 행복에 젖어 있었다. 작은 방도 빌렸고 앞으로의 수입을 생각하며 달붓기로 가구도 장만했다. 이것만이 사치스럽던 버릇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기혼자라고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딸에 관해서는 조심스럽게 침묵을 지켜 나갔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돈을 지불했다. 그녀는 이름밖에는 글자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대서인에게 부탁하여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주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것이 남의 눈에 띄었다. 여직공들 사이에서는 팡틴이 ‘편지를 자주 쓴다’거나 ‘수상쩍다’는 등 소문이 돌았다. 직장에서도 가끔 얼굴을 돌리고 눈물짓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때는 자식의 일을 또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던 때일 것이다. 과거의 어두운 굴레를 벗어난다는 것은 고통스런 노력이다.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은 같은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돈도 지불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주소까지 알려졌다.
‘몽페르메유 여관 주인 테나르디에 씨.’
사람들이 선술집에서 대서인에게 지껄이게 했다. 이 사람 좋은 노인은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비밀을 털어놓지 않고는 포도주로 배를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팡틴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떤 아낙네는 몽페르메유까지 가서 테나르디에 부부를 만나보고 돌아와 이런 말을 했다.
“35프랑을 쓴 덕분에 모든 것을 알았어요. 아이까지 봤는걸요.”
이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팡틴이 공장에 근무한 지는 1년이 지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직장의 여감독이 그녀를 불러 시장님이 보낸 것이라며 50프랑을 주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공장에 나오지 않아도 좋다. 시장님도 이 고장에서 그녀가 떠나 주었으면 하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테나르디에 부부가 매달 7프랑을 12프랑으로 올린 다음 다시 15프랑으로 올리자고 요구한 것은 이때였다. 팡틴은 눈앞이 캄캄했다. 이 고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집세와 가구값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빚을 갚으려면 50프랑으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애원했다. 더구나 팡틴은 일도 서툴렀다. 그녀는 절망보다는 오히려 수치를 안고 직장을 떠나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녀는 과거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그녀는 이미 모든 기력을 잃은 것 같았다. 시장을 만나 보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럴 마음도 내키지 않았다. 시장님이 50프랑이나 주신 것은 친절했기 때문이며 자기를 쫓아낸 것은 공정한 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 결정에 복종했다.
하지만 마들렌은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들렌은 여공의 일터에 거의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는 직장 책임자로 노처녀를 데려다 앉혔다. 신부가 소개한 여자로 그는 이 여감독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녀는 장말 존경할 만한 여성으로서 똑똑하고 공평하며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자비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비심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마들렌은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맡기고 있었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기 권력을 위힘해야 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법이다. 여감독은 그러한 전권과 자신이 올바르게 행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모든 사무를 처리했다.
50프랑은 여공들의 구호나 보조를 위해 마들렌이 그녀에게 맡기고 이 여자가 마음대로 쓸 수있게 한 돈의 일부였다. 팡틴은 이 고장에서 가정부 자리를 찾아 집딥마다 다녀 보았지만 어느 한 사람 받아들이질 않았다. 그래도 이 여자는 떠날 수가 없었다.
가구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형편없는 가구였떤가! 그 가구를 외상으로 팔았던 고물상은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 도망친다면 도둑으로 체포하겠다.”
또 방값이 밀린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색시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니까 갚을 수 있을 텐데.”
그녀는 50프랑을 집주인과 고물상에게 분배하고 대부분의 가구도 고물상에게 돌려주었다. 이제는 일거리도 없고 직없도 없이, 있는 것이라고는 침대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약 100프랑의 빚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수비대 병정의 허름한 셔츠를 깁기 시작하여 하루에 12수를 벌었다. 저녁에 돌아오면 촛불을 켜 주는 노파가 가난 속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가난한 생활 다음에는 무일푼의 생활이 있다. 그것은 두 개의 방과 같다. 첫째 것은 어두컴컴한 방이고 다음 것은 캄캄한 방이다. 팡틴은 불 없이 겨울을 지내는 일, 이틀에 한 푼어치 좁쌀을 먹는 새를 버리는 일, 치마로 이불을 만들고 이불로 치마를 만드는 일, 건넛방 창의 불빛으로 식사를 함으로써 초를 절약하는 일 등을 노파에게 배웠다.
무일푼과 정직 속에서 늙어간 사람들이 한 푼의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하나의 재능인 것이다. 팡틴은 이 미묘한 재능을 터득하고 약간의 용기를 얻었다.
팡틴의 벌이는 너무나 적었기에 빚은 늘어만 갔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송금이 적어지자 노상 편지를 보내왔다. 그 내용은 여자를 슬프게 만들었고 수취인 부담으로 부쳐 오는 우편료는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어린 코제트는 이 추위에 입을 옷이 없다. 털이 있는 치마가 필요하다. 치마를 사려면 1프랑을 부쳐야 한다.
팡틴은 이 편지를 받아들고 하루 종일 울었다. 저녁 때 길모퉁이에 있는 이발소에 가서 머리핀을 풀었다. 아름다운 금발이 허리까지 닿아 있었다.
이발사가 말했다.
“훌륭한 머리군요.”
그녀가 물었다.
“얼마에 사시겠어요?”
“1프랑.”
“좋아요, 잘라주세요.”
그녀는 이 돈으로 털이 있는 치마를 사서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보냈다. 이 치마는 테나르디에 부부를 격분시켰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그들은 이 치마를 에포닌에게 주어 버렸다. 불쌍한 종달새는 여전히 떨며 지냈다. 팡틴은 생각했다.
‘우리 아기는 이제 춥지 않을 거야. 내 머리털을 입혀 주었으니까.’
그녀는 작고 둥근 모자를 쓰고 머리를 감추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팡틴의 마음속에서는 무서운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이미 머리를 묶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다른 많은 사람들과 같이 마들렌을 존경하고 있엇다. 그러나 자기를 내쫓은 것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다 하고 생각하는 동안 마침내 그녀는 마들렌을 증오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들어갈 시간에 그 앞을 지나기게 되면 일부러 웃거나 노래를 불러 보였다.
그녀는 정부를 만들었다. 조금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허세와 자포자기로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다. 사나이는 거지 음악가에 놀고먹는 부랑자였다. 여자를 패기 일쑤였고, 그녀가 싫어지자 대번에 팽개쳤다.
팡틴은 딸을 무척 사랑했다. 자기가 타락하면 할수록 주위가 점점 더 암담해지면 암담해질수록, 그 귀여운 천사는 팡틴의 마음속에서 더욱 빛을 냈다. 그녀는 항상 말하였다.
“생활이 나아지면 코제트를 데려와야지.”
그러면서 팡틴은 웃었다. 기침은 여전히 멎지 않았고 식은땀도 났다. 얼마 뒤 그녀는 테나르디에 부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코제트는 이 고장에서 유행하고 있는 병에 걸렸다. 발진열이란 것이다. 비싼 약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런 약을 사려면 파산하게 된다. 1주일 안에 40프랑을 보내지 않는다면 아이가 죽게 될 것이다.”
그녀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녀는 이웃 노파에게 말했다.
“아아! 그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군요. 40프랑이라니, 나폴레옹 금화 두 닢이에요. 어디서 가져오라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바보예요, 그 시골뜨기는.”
여자는 천장에 가까운 계단으로 올라가서 편지를 반복해 읽더니 계단을 내려와 펄쩍펄쩍 뛰며 달려 나가 버렸다. 여전히 웃으면서.
누군가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무엇이 그리 좋은고.”
여자가 대답했다.
“시골뜨기가 정말 바보 같은 편지를 써 보냈어요. 40프랑을 보내라니. 시골뜨기는 할 수 없어요, 정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