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수필 / 문학시대 / 류인혜의 책읽기 18 / 2022년
가치에 대한 탐구
-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문학과지성사, 2010.
류인혜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의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정신병력을 가진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17일간 함께한 모터사이클 여행 기록을 담은 소설이다. 이 책은 우선 크기가 압도적이다. 또 딱딱한 양장본의 표지가 들고 읽는 데 부담이 크다. 두꺼운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베고 누워서 잠깐 쉴 수도 있을 만큼이다. 그런데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 만큼 옮긴 이의 문장이 편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에 호기심이 생겨 동행하는 듯 흥미롭다.
‘가치에 대한 탐구’라는 부재가 말해 주듯이 가치에 대한 철학적 탐구서이다. ‘가치’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물(事物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의 총칭)의 값어치는 그것이 필요한 이들에 의해 결정된다. 결정되기 전에 그 존재의 크기가 이미 정해져 있기는 하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의 수준이 높아지거나 낮아진다고 이해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주도하고 있는 화자(話者)인 아버지는 정신병을 치료하면서 지난 기억을 거의 잊었다. 소설의 진행은 그가 아들 크리스와 함께 모터사이클로 미네소타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달려가면서 일어나는 사건과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행하는 그들의 몸과 하나가 되어 달리는 모터사이클은 또 다른 의미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맡았다. 기계를 움직이는 데는 부품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그것들이 조립되어 발생하는 공학적 원리를 인간의 정신과 연결하여 탐구한다. 계속 정비가 필요한 모터사이클 관리법에서 인생의 철학적 탐구까지 넘나드는 이 소설은 결국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소설 속의 “모든 사람이 모터사이클 관리라고 하는 이 작업이 얼마나 철저하게 합리적 절차 속에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처럼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앞으로 일어나는 내용을 알지 못하는 누구에게나 삶이란 흐르는 대로 따라서 흘러가는 것이 속 편한 방법이다.
이 자전적 소설의 저자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는 미국 미네소타 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군에 입대하여 한국에서 근무했으며, 이를 계기로 동양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에서도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반갑다. 220쪽과 516쪽에 실린 그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에서 군인으로 복직했던 저자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제대 후 미네소타 대학에서 철학학사 학위를 받은 뒤, 인도의 베나레스 힌두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미국으로 돌아와 자유 계약 작가로 활동했는데, 몬태나 주립대학교에서 영작문을 잠깐 가르쳤으며 시카고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60년 12월 피어시그는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전기 충격 치료까지 받는다.
우울증에서 회복된 뒤, 그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모태가 된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다. 1968년 6월 피어시그는 ‘정신적 삶과 기술 공학적 삶 사이의 분열’에 관한 책을 쓰고자 한다는 편지를 122개 출판사에 보냈고 그로부터 한 달 후, 아들 크리스와 함께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이 소설의 기본 골격을 이루었다.
1974년 윌리엄 모로우 출판사에서 출간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출간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두꺼운 책을 번역한 장경렬 선생은 인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 대학교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오래전 우연한 기회에 서울대 캠퍼스를 방문하여 일행과 함께 인문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역자 장경렬 선생이 대접하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번역한 작품을 읽게 되어 무척 반갑고 신기하다.
문학적 감성이 풍부한 역자의 역량대로 문장의 아름다운 묘사에서 쉼을 얻지만, 철학적 사고들이 나타나면서 독자는 심각해진다. 따라가기 힘들게 반복되는 긴 치유의 과정에서 현실의 풍경과 잠재된 의식을 일깨우는 사유의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 부분을 건성으로 읽으며 뛰어넘어도 크게 지장은 없다.
여행의 특성답게 보이는 풍경들과 먹고 잠자고 쉬는 일의 반복이다. 길에서 보내는 나그네에게는 어디서 어떻게 묵으며,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타고 다니는 모터사이클의 성능이 가장 큰 변수가 된다. 그들이 타고 가는 모터사이클이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해결할까,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직접 관리하고 이용하는 단 하나의 이동수단으로 인하여 그것에 의지하는 절대성이 생각을 확장시킨다. 과학적인 수단이 현실에서 의미를 얻음은 인간이 그 편리한 도구를 이롭게 사용하는 범위 내에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의 역할은 미미한 듯하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은 주인공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단서와 진행을 맡고 있다. 그가 잊은 듯했던 과거를 찾아가는 여행은 아들이 부닥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 어울려 또 다른 나를 보여주고 있다.
모터사이클의 특성상 운전자 뒤에 붙어서 타고 있는 작은 체구의 사람은 앞의 풍경을 보지 못한다. 어른들의 과거를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스스로 체험해야만 어른을 이해할 수 있다.
낮게 드리운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가려고 고개를 숙인 아버지 덕분에 아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앞에서 다가오는 풍경을 본다. 드디어 자신의 길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스로 설 수 있는 그 환희를 아들은 마음껏 드러낸다. 아들의 기쁨은 어두운 과거에 붙잡힌 아버지를 탈출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햇빛이 길 위로 드러워진 나뭇가지 사이로 통과하면서 바닥에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는다. 빛과 그늘이 번갈아 가며 빠르게 내 눈을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곧 굽은 길로 들어서서 높은 지대로 향하다가, 이어서 햇빛이 가득 비치는 확 트인 곳에 들어선다.
정말로 그렇다. 나는 결코 그 사실을 의식한 적이 없었다. 이제까지 내내 그는 내 등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뭐가 보이니?” 내가 크리스에게 묻는다.
“세상이 온통 달라 보여요.”
우리는 다시 작은 숲속으로 들어선다. 그 순간 크리스가 이렇게 묻는다.
“아빠는 겁나지 않아요?”
“아니, 곧 익숙해지게 마련이지.”
잠시 후 크리스가 이렇게 묻는다.
“아빠, 나도 크면 모터사이클을 하나 가져도 되겠지요?”
“관리만 잘할 수 있다면.”
“그러려면 무얼 해야 되나요?”
“아주 많은 일을 해야 되겠지. 내가 하는 것을 죽 지켜보지 않았니?”
중략-----
물론 시련은 결코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불행과 불운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에는 여기에 없었고, 또 겉으로는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숙이 침투해 있는 어떤 느낌이 이제 느껴진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긴 것이다. 이제 사정이 더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733~734쪽
목침처럼 두꺼운 책을 들고 읽는 수고가 드디어 끝이 났다.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의 삶은 희망적이다. 많은 과정을 거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에게 알맞은 삶의 가치를 찾아낸 듯 뿌듯하다.
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이 어려운 책을 읽어내야 할까. 누구에게나 앞으로 달려가고 싶은 질주의 본능이 잠재되어 있나 보다. 막막하지만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욕망을 해소한 듯 책을 덮는다. 새삼스레 미네소타에서 캘리포니아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류인혜
1984년 『한국수필』 봄호 <우물>로 추천완료. 한국수필작가회 고문.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계간문예 기획위원
작품집 : 『수필이 보인다』, 『나무를 읽는다』 외 10권
수상 : 한국수필문학상, 펜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송헌수필문학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