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 문무왕의 무덤이 대왕암?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26. 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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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 문무왕의 무덤이 대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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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3. 13:15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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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문무왕의 무덤이 대왕암?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일컬어지는 조국 산천에 자신의 시신을 묻지 않고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바위섬에 화장한 납골을 뿌리도록 했던 문무왕의 애국심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이 무덤에 관해 여러 가지 이견들도 있다. 조선 정조 때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의 문집 『이계집(耳溪集)』에는 그가 1796년 문무왕릉비의 파편을 습득하게 된 경위와 문무왕의 화장 사실 및 문무왕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나무를 쌓아 장사지내다 뼈를 부숴 바다에 뿌리다”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문무왕이 세계 유일의 수중릉이라는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말이다.
이견대(利見臺)는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곳이며, 또한 그의 아들 신문왕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만파식적(萬波息笛, 세상의 파란을 없애고 평안하게 하는 피리)을 얻었다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 발굴 조사 때 드러난 초석을 근거로 하여 다시 지은 것이고, 그 조금 아랫자락에 고고학자 우현(又玄) 고유섭을 기념하여 세운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기념비가 있다.
한편 경주에는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과 신라 사람들이 불국토로 여겼던 남산이 있다. 일연이 『삼국유사』에 “절은 하늘의 별처럼 많고, 탑은 기러기 떼처럼 솟아 있다”라고 썼던 것처럼 신라 전성기에 경주 남산에는 808개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남산을 100여 차례 올랐던 윤경렬의 말에 따르면 35개의 골짜기에 절터가 103군데, 불상이 78기, 석탑이 63기가 있다. 남산은 남북이 8킬로미터, 동서가 4킬로미터로 그다지 큰 산은 아닌데도 기암괴석이 많아 자연경관이 훌륭하여 불교 유적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배리(拜里) 삼존불에서 서출지(書出池)에 이르는 남산 종주 길도 사람들의 발길을 끌지만 서출지, 경애왕릉, 포석정, 창림사(昌林寺) 등 남산 자락을 따라가는 문화유산 기행도 운치가 있다.
옛 이름이 금오산인 이곳 남산의 용장사에서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자신의 호처럼 금오산의 ‘매화와 달’에 취하였다. 그런 연유로 김시습은 그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오막살이 푸른 담요 따뜻하기도 한데 매화 그림자 창에 가득
달 밝은 밤에 등잔 돋우고 밤새 향 피우고 앉았으니
사람이 보지 못한 책 볼까 두렵구나
[네이버 지식백과] 문무왕의 무덤이 대왕암?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