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姜順)
태종 19권, 10년(1410 경인/명영락(永樂) 8년) 1월 12일(기묘) 2번째기사
군자주부 강순을 풍속을 어지럽힌 죄로, 전낭장 김중절을 무고죄로 귀양보내다
군자주부(軍資注簿) 강순(姜順), 전낭장(郞將) 김중절(金仲節)을 외방에 귀양 보냈다.
김중절이 강순과 더불어 집터[家基]를 다투어 헌부(憲府)에 호소하기를,
“강순은 네 사람의 아내와 한 사람의 첩을 거느리고 있어 이미 큰 집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또 내 집터를 함부로 빼앗으려고 합니다.”하였다.
헌부(憲府)에서 한성부(漢城府)에 이첩(移牒)하여 강순의 가사(家舍)가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 김중절의 무고(誣告)인 것을 알아내고, 또 강순에게 처첩(妻妾)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까닭을 물으니, 강순이 모두 이미 버렸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헌부(憲府)에서 강순이 잇달아 세 아내를 버리고 제 욕심을 자행(恣行)하여 남녀(男女)의 분수를 문란[瀆亂]하게 하였다고 논하여, 마침내 양편에게 죄를 주자고 청하였다.
○流軍資注簿姜順、前郞將金仲節于外方。 仲節與順爭家基, 訴于憲府曰: “順竝畜四妻一妾, 旣有大家, 今又欲濫執吾家基。” 憲府移牒漢城府, 問順家舍之有無, 知仲節之誣。 又問順多畜妻妾之故, 順對以皆已去之。 於是憲府論順連棄三妻, 恣行己欲, 瀆亂男女之分, 遂兩請其罪。
태종 31권 16년(1416년) 1월 30일 (계해) 005 /
기인을 대신 세우지 못하게한 국정을 어긴 강순, 이폐에게 죄를 묻다
강순(姜順)에게 장(杖) 1백대를 속(贖)받게 하고, 이폐(李蔽)의 직책을 파면하였다.
이 앞서 병조에서 왕지(王旨)를 받들어 행이(行移)한 것 가운데,
“각 고을의 기인(其人)3627)은 병신년(丙申年)부터 시작하여 대신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말고, 모두 당자가 입역(立役)하게 하고, 그 중에서 노유(老幼)로서 자립(自立)할 수 없는 자는 각각 그 호(戶) 안의 솔거인(率居人)으로써 이를 대신하게 하라.”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선공판관(繕工判官) 윤인(尹麟)이 강순의 종[奴]으로써 창원(昌原)의 기인(其人) 황길(黃吉)을 대신하여 궐내(闕內)에 부역(赴役)하게 하다가 일이 발각되니, 헌부(憲府)에서 강순과 윤인의 직첩을 빼앗고 율(律)에 의하여 논죄하기를 청하고, 선공부정(繕工副正) 이폐는 처음에 호패(號牌)를 고찰해 보지도 않았다가, 핵문(劾問)에 대답하기에 이르러서 망령되게 호패를 서로 고찰하여 당자[當身]로서 정하여 보냈다고 말하여 소속 관사(官司)를 기만하였으므로, 아울러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윤인은 논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註3627]기인(其人): 향리(鄕吏)의 자제(子弟)를 볼모로 서울에 머물게 하던 제도. 《세종실록》제15권에 의하면, “고려초기에 주현(州縣)의 향리(鄕吏)로 하여금 서울에서 청후(聽候)하게 하였는데, 이를 기인(其人)이라 하였다.인심(人心)을 수습하고자 함이었으니, 옛날의 볼모와 같았으나, 후에 이를 점점 천대(賤待)하여 모든 천역(賤役)을 하지않는 바가 없었다.”하였음.
○贖姜順杖一百, 罷李蔽職。 先是, 兵曹奉王旨, 行移內: “各官其人, 自丙申年爲始, 勿許代立, 皆以當身立役, 其中老幼不能自立者, 各以其戶內率居人代之。” 至是, 繕工判官尹麟以姜順之奴, 代昌原其人黃吉, 赴役于闕內, 事覺。 憲府請: “奪順、麟職牒, 依律論罪。 繕工副正李蔽初不考視號牌, 至答劾問, 妄謂號牌相考, 以當身定送, 欺瞞所司, 請幷罪之。” 命麟勿論。
성종 70권, 7년(1476 병신/명성화(成化) 12년) 8월 22일(임진) 6번째기사
병조에 전지하여 한계정등의 고신을 돌려주게 하다
병조(兵曹)에 전지하여 한계정(韓繼禎), 박지(朴枝), 박조(朴條), 차중부(車仲富), 홍신생(洪信生), 안효렴(安孝廉), 정계손(鄭季孫), 심견(沈肩), 정귀성(鄭貴誠), 신취지(辛就智), 강순(姜順), 윤수산(尹守山), 한충례(韓忠禮), 정불수(鄭佛守), 김득경(金得敬), 고득중(高得中), 하문손(河文孫), 이돈(李墩), 이영년(李永年), 조복명(趙復命), 경면(慶綿), 황사공(黃事恭), 조칭(趙偁), 김부석(金負石), 신규(辛珪), 장효손(張孝孫), 유욱(柳郁), 조효빈(曺効彬), 김만석(金萬石), 조순도(趙順道), 우회손(禹繪孫), 오백안(吳伯顔), 박귀문(朴貴文), 김효문(金孝文), 김로(金輅), 이신(李信), 전미(全美), 김우(金禹), 박숭동(朴崇桐), 오중희(吳仲熙), 안맹무(安孟武), 정주손(鄭周孫)의 고신(告身)을 돌려주게 하였다.
○傳旨兵曹還給韓繼禎、朴枝、朴條、車仲富、洪信生、安孝廉、鄭季孫、沈肩、鄭貴誠、辛就智、姜順、尹守山、韓忠禮、鄭佛守、金得敬、高得中、河文孫、李墩、李永年、趙復命、慶綿、黃事恭、趙偁、金負石、辛珪、張孝孫、柳郁、曺効彬、金萬石、趙順道、禹繪孫、吳伯顔、朴貴文、金孝文、金輅、李信、全美、金禹、朴崇桐、吳仲熙、安孟武、鄭周孫告身。
성종 73권, 7년(1476 병신/명성화(成化) 12년) 11월 29일(기사) 5번째기사
이조와 병조에 전지하여 정혼 등의 직첩을 되돌려주게 하다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에 전지(傳旨)하기를,
“정혼(鄭渾), 신숙륜(辛叔淪), 허안수(許安秀), 김수정(金守丁), 정선기(丁善琦), 강자녕(康子寧), 이지(李枳), 김치지(金恥之), 이석동(李碩童), 박정동(朴丁同), 최치하(崔致河), 박익손(朴益孫), 윤중수(尹仲琇), 이순량(李純良), 권인손(權仁孫), 채신복(蔡申福), 유자분(柳自汾), 조평(趙枰), 이영기(李永期), 고선경(高善慶), 이세번(李世蕃), 고자승(高自升), 박종선(朴從善), 정맹지(丁孟知), 유순행(柳順行), 신우정(辛禹鼎), 태강수(泰康守) 이동(李仝), 돌산부정(突山副正) 이광석(李廣石), 병산부수(屛山副守) 이말정(李末丁), 박선경(朴善敬), 양준원(楊浚源), 이수형(李秀亨), 최치화(崔致華), 서영(徐穎), 김의로(金義露), 곽연벽(郭連壁), 김극공(金克恭), 오영보(吳永保), 최성해(崔成海), 노효원(盧孝元), 정효례(鄭孝禮), 이인화(李仁和), 김용지(金用智), 정순계(鄭順戒), 한종생(韓從生), 정인손(鄭麟孫), 강중만(姜仲萬), 김수정(金水精), 양근민(梁謹民), 이계희(李繼禧), 이직생(李稷生), 강순(姜順), 나종산(羅終山), 정제(鄭提), 김극정(金克精), 이금질구지(李金叱仇智), 박영춘(朴英春), 엄극유(嚴克柔), 고근(高謹), 한승조(韓承祖), 김효돈(金孝敦), 장영(張穎), 김복흥(金復興), 유득경(劉得京), 정효당(丁孝當), 박유정(朴有丁), 박유정(朴有精), 정혜통(丁惠通), 백수산(白壽山), 신중량(辛仲良), 김자온(金自溫), 이장손(李長孫), 하계손(河繼孫), 김춘길(金春吉), 박숭인(朴崇仁), 음자정(陰自精), 안겸(安謙), 강영춘(姜永春), 최달(崔達), 문효선(文孝善), 김의덕(金義德), 이귀손(李貴孫), 배양(裵良), 성계량(成戒良), 양수인(梁守仁), 조중미(曹仲未), 박을경(朴乙景), 최의로(崔義露), 최치(崔致), 김은영(金恩榮), 김돈피(金敦皮), 정순손(鄭順孫), 신윤(辛閏), 김의생(金義生), 한극효(韓克孝), 최숙손(崔叔孫), 황원순(黃元順), 맹수사(孟受思), 최연(崔漣), 염종계(廉終戒), 이석생(李石生), 이치(李致), 장익손(張益孫), 이문간(李文簡), 임자간(任自簡), 김찰(金察), 김일남(金一南), 김영(金瑛), 홍선(洪璇), 김종만(金終萬), 이소라(李所羅), 김익달(金益達), 정중기(鄭衆奇), 연수(延壽), 왕경자(王敬粢), 이윤형(李允亨), 이계원(李季元), 동청례(童淸禮), 황준경(黃俊卿), 고귀지(高貴之), 박효손(朴孝孫), 곽형동(郭亨同), 김계근(金繼勤), 송유산(宋宥山), 박총생(朴叢生), 최인로(崔仁露), 김후(金厚), 김간(金幹), 황효원(黃孝源)의 직첩(職牒)을 되돌려 주게 하라.”하였다
○傳旨吏、兵曹: “還給鄭渾、辛叔淪、許安秀、金守丁、丁善琦、康子寧、李枳、金恥之、李碩童、朴丁同、崔致河、朴益孫、尹仲琇、李純良、權仁孫、蔡申福、柳自汾、趙枰、李永期、高善慶、李世蕃、高自升、朴從善、丁孟知、柳順行、辛禹鼎、泰康守仝、突山副正廣石、屛山副守末丁、朴善敬、楊浚源、李秀亨、崔致華、徐穎、金義露、郭連壁、金克恭、吳永保、崔成海、盧孝元、鄭孝禮、李仁和、金用智、鄭順戒、韓從生、鄭麟孫、姜仲萬、金水精、梁謹民、李繼禧、李稷生、姜順、羅終山、鄭提、金克精、李金叱仇智、朴英春、嚴克柔、高謹、韓承祖、金孝敦、張穎、金復興、劉得京、丁孝當、朴有丁、朴有精、丁惠通、白壽山、辛仲良、ㆍ金自溫、李長孫、河繼孫、金春吉、朴崇仁、陰自精、安謙、姜永春、崔達、文孝善、金義德、李貴孫、裵良、成戒良、梁守仁、曺仲未、朴乙景、崔義露、崔致、金恩榮、金敦皮、鄭順孫、辛閏、金義生、韓克孝、崔叔孫、黃元順、孟受思、崔漣、廉終戒、李石生、李致、張益孫、李文簡、任自簡、金察、金一南、金瑛、洪璇、金終萬、李所羅、金益達、鄭衆奇、延壽、王敬粢、李允亨、李季元、童淸禮、黃俊卿、高貴之、朴孝孫、郭亨同、金繼勤、宋宥山、朴叢生、崔仁露、金厚、金幹、黃孝源職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