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산행으로 12일 집에서 부터 걸어서 치악산 곧은재까지 왕복길을 걷는다. (15km)
비로봉까지는 오를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더구나 11일, 일 때문에 서울에서 거의 하루종일
같이 있었던 아내의 몸상태가 코로나로 의심이 되는지라 무리하지 않을 생각으로 간단한 산행을 택한 것이다.
10일 병원 검사에서는 감기로 판명 났다는데 11일, 내 눈에 비치는 아내의 모습은 코로나 증상이었으며,
결국 12일, 다시 병원 검사를 받았는데 코로나로 판명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증상이 있고 두 번의 검사 끝에 3일만에 코로나 확진을 받은 것이다.
병원의 검사가 불완전한 것인지, 코로나의 바이러스가 불안정한 것인지...ㅠ
작년 말까지 가뜩이나 위축된 내 의식이 추운 날씨처럼 꽁꽁 얼어 붙는다.
그래도 곧은재의 상고대는 화사하고 포근하기만 하다.
자연이 그려내는 그림은 앙증 맞기도 하지만 차갑고 날카로움도 지니고 있다.
눈 위에 재봉질을 한 것 마냥 앙증맞은 자국을 남긴 동물의 움직임의 흔적...
그리고 지나는 산객의 눈길을 끌어 당기는 대형 고드름...
혹시나 하는 마음에 10여 일을 조심하며 내 몸을 살피는데 나에게는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했나 보다.
아내는 아직도 코로나 증상으로 힘들어 하고 있지만 내가 멀리서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만이라도 그 지독한 바이러스를 피한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21일에는 밤사이 많은 눈이 쌓인
집안의 눈을 대충 치우고서는 또다시 집에서 곧은재를 왕복하는 올해 두번째 산행을 한다. (14km)
내 발자국은 집을 나서서 치악산을 향하는데 길냥이는 밤새 어디서 외박을 했는지 그 발자국이 나의 집을 향했다.
고양이는 영악한지라 사람을 길들이려 한다.
그러나 난 이런 길냥이와 밀당을 하며 끝내 내 페이스로 끌어 당겼다.
(7대에 걸친 길냥이와의 밀당 이야기는 하루 동안 썰로 풀어도 될만한 양이니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ㅎ)
오늘은 러셀이 되어있지 않은 등로를 걸어 곧은재에서 0.5km 떨어진 헬기장으로 가 원주 시내를 조망해 본다.
맑고 깨끗한 대기 덕분에 줌을 당기니 원주시청이 눈 앞에 다가선다.
아내가 코로나 후유증에서 조금씩 회복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며 28일에는 비로봉과 새해 첫 상봉을 한다.
작년에 비해 4주 정도 늦은 비로봉 산행이다.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집에서 바라보는 눈덮힌 비로봉의 자태를 보니 더는 주저할 수가 없다.
집에서 부터 큰무레골 길로 비로봉을 올라 곧은재를 경유해서 오는 18km의 산행...
등로는 지나간 많은 발자국 덕분에 잘 다져져 있어 걷기에 편하고 나무가지에 얼어 붙어 아직 매달려 있는
눈송이들이 봄날의 벚꽃처럼 탐스럽고 산뜻하다.
그리고 세 번의 산행길에 마을 도로 옆 연못에 있는 한 쌍의 거위를 만난다.
집에서 부터 걸어서 가니 (차로 부곡탐방소로 이동하면 절대 볼 수가 없는...)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해에 대한 인간의 의식을 먼저 배제 시켜야 한다는 슈뢰딩거의 말처럼
눈 덮힌 산길을 걸을 때는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자연에 몰입된 나의 감정이나 직관과 같은 자의식적인 경험으로
물아일체의 경지에 빠질 수 있었는데 거위를 보니 '자연의 관찰자'로 돌아서고 만다.
첫 대면에서는 폰을 들이대니 거위들이 기겁을 하고, 놀래서 땅으로 올라서며 주인아저씨한테 까지 달려가
일러 바칠 기세이다. (난 사진을 찍고 싶을 뿐인데...)
'이상한 아저씨가 우릴 찍으려고 해... 피해 버리자.'
'우리도 초상권이 있어요! 찍지 마세요!'
'주인 아저씨한테 가서 일러 바칠까?'
그러나 이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드는지 다시 물 속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 대한 경계는 풀지 않는듯 하다.
"아저씨! 우리 데이트 방해하지 말고 빨리 가세요!"
"아휴~~ 속터져!" (연거푸 물을 마셔댄다.)
21일, 두 번째 만남에서는 여전히 경계는 하지만 처음처럼 놀라지는 않는다.
전번처럼 뭍으로 까지 피하지를 않고 나로 인해 즐거운 데이트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듯 자신들만의 유희에 심취하는 모습이다.
"오빠! 그 사람 또 왔어!"
"알고 있어.... 또 사진 찍는가 본데.... 우리 저 사람한테 신경쓰지 말자"
"그래... 찍다가 전번처럼 그냥 가겠지..."
놀래지 않고 나의 존재를 받아들여 주는 거위들이 고맙다. ㅎ
28일, 세번째 만남에서는 전혀 피하지도, 경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유유자적하게 오히려 자태를 뽐내는듯 하다.
"그 아저씨 또 왔다. 오빠! 나 이쁘게 나올 것 같아?"
"그래, 이왕이면 폼나게 찍어야지... 아저씨 잘 찍어 주세요!"
이쯤이면 내가 거위들의 관찰 대상이 된듯한 느낌이다. ㅎㅎ
고대 중국에서는 숫자 '1'이 다른 숫자를 드러나게 하는 생성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며
관찰자와 관찰대상 사이의 상호작용의 출발점의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3' 이란 숫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완전함과 안정감을 뜻하는 것 같다.
성경에 삼위일체는 1과 3의 숫자가 신학적, 철학적으로 사유된 신비한 교리이다.
남미의 티에라 델퓨에고 원주민과 중앙아프리카 원주민인 포레스트 피플은 3까지를 기초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1은 ahh로, 2는 oa로, 3은 ua로 표기하고 나머지 숫자들은 이 세가지의 조합으로 표현이 가능하다는...
거위와의 첫 대면에서는 내가 일방적인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여 교감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세 번째 대면에서는 쌍방이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입장을 교류하면서 완전한 교감을 이루었던게 아닐까?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 같지만 난 그렇게 헤아리고 싶다. 숫자체계와 헤아리는 과정은 실재를 어떻게
인식하는 지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부호일 뿐이니까...)
한 번 뿐인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 온다고 한다. (물론 이 어구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겠지만...)
태어남이 그 첫 번째 기회로 나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생성적 의미가 있다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매 순간의 선택들은 두 번째 기회로, 나와 세상과의 상호작용의 기회이고,
세 번째 기회는 그 때를 알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삶의 완성을 위해 찾아 올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의 텅빈 충만감과 허허로운 미소를 위해 올해도 남은 인생의 여정에서
자연으로의 귀로, 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저의 블로그를 찾아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산행과 여행일기, 산객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첫댓글 아따!~~ 치악산과 사시는 집 주변의 풍경이 아주 시원해 보입니다.
올해는 얼굴 한번 볼 수 있길 바라겠구요
거위는 나중에 잡는걸로 ...
시원하긴 합니다.^^
넘 외진 곳이라 얼굴은 못 뵙더라도 카페에서 글로서 뵐께요.
지난번 쌤집 방문때 들어 가면서 처다본 동치악은 히말라야 설산처럼 멋있게 펼쳐져 보여 너무아름다웠습니다.
제가 삼척에 있을때 한번 더왔으니 더 장관이였겠죠~
(눈치우시느라 힘드셨겠지만 ㅎ)
올라 오며 오대산 들리느라??
추운 겨울을 나름 잘즐기세요~
아직 눈산행은 더해야지요~
감기 하시구요ㅎ
집에서 바라보는 비로봉의 모습에 반한 것도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3월말까지는 겨울이니 눈산행도 대여섯번은 더할듯요. 건강하세요.
글 구석구석에서 산 사랑이 묻어납니다
즐겁게 잘 봤습니다
즐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곳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힐링 잘 하시구요...
옛날 그때가 생각납니다.ㅎㅎ
벌써 갑진년 이월이네요... 언제 함 보입시더^^
옛날 그때가 꽤 오래됐죠? ㅎㅎ
시간이란게 인간 감정과 의식의 산물이란게 맞나 봅니다. 기억 속의 추억을 생각하면 어느덧 과거를 헤집고 있으니까요...
건강하세요...
집에서 바로 치악산을 오를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
치악산 설경은 너무 시원하고 좋네요.
날씨 좋은날은 치악산 비로봉에서 덕유산, 운장산, 금강산 비로봉까지 보인다던데
본적이 있으실까요? ㅎㅎ
자주 오르시니 보시면 사진 한장 올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늘 언제나 건산하세요^^
소백산 능선은 가끔 봤습니다만... 두건님이 말씀하시니 망원경 준비해서 날씨 맑은 날 올라 오랫동안 살펴보겠습니다. 사진 올릴 때까지 항상 건강하세요.^^
적절하게 생활한다고 하는
표현이 어떠할지는 모르겠습니다 .
요즘 드럼 동영상 ~~~!
건강하세요
님의 표현이 맞습니다.^^ 산골생활 14년차 접어들며 나름 최적화된 일상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드럼은 스틱을 놓은지 4년이 지났네요.ㅠ 건강하세요...
올 겨울 치악산 한번 간다고 그렇게 다짐 했지만 아직도 실행에는 못옮겼습니다ㅠㅠ 잘 지내고 계신듯 합니다 늘 건강 하십시요
치악산이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겠답니다.^^
오실 때 문자 주세요.
@하형호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