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김씨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그 근거가 불분명하다.
신라 왕실의 형제가 왕에게 직간을 하다 형은 북빈경(현 강릉)에 유배되어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었고,
동생은 고염성(현 연안)에 유배되어 연안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 모든 기록은 없고 고려시대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을 시조로 삼는다.
문제는 신라시대 언제 유배간 형제가 있었고
또 신라와 고려라는 그 시간의 한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릉김씨의 시조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강릉김씨를 찾아본 결과 그 시조는 김주원(金周元)으로
김주원을 알면 쉽게 문제의 본질로 들어갈 수 있고,
이야기뿐인 연안김씨와 신라왕실과의 관계가 제법 밝혀질 수 있다.
김주원은 선덕왕을 계승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홍수로 알천(閼川)을 건너지 못하자,
이를 하늘의 뜻이라 믿은 대신들은 김경신(金敬信)을 왕으로 추대하여 원성왕이 된다.
기록상 하늘의 뜻으로 김경신이 왕으로 추대되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김경신의 쿠데타이며
이후 통일신라 왕실이 권력투쟁의 길로 접어들게 한 인물인 셈이다.
권력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은 자청하여 강릉(명주)로 떠나니
김경신은 그에게 명주군왕이라는 직위를 내어준다.
이는 무슨 뜻인가 하면
김주원은 나는 이제 중앙에서 당신과 다툼하지 않고 지방에 물러나니
나의 목숨을 보전해주시오라고 하자
김경신은 강릉에서 왕 노릇하되 경주는 쳐다보지 마시오라고 화답한 것이다.
김주원은 강릉에서 몸을 보전하며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었으나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그의 아들 김헌창은
반란의 수괴가 되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연안김씨의 기록에서 보이는 왕에게 직간하다 유배당한 형제 중
큰형은 김주원이고 그 동생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연안김씨의 시조가 되는 셈이다.
유배당했다는 사실과 권력다툼에서 패하여 스스로 지방으로 물러난 것은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연안김씨의 기록이 전혀 거짓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김주원의 동생이 있었는지, 아니면 집안 식구였는지
최악의 경우 집안에서 부리던 하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카페의 주인장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나를 무조건 상놈이라 하는데...
다양한 가설이 있음은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아시리라 믿는다.
첫댓글 연안 김씨는 양반가문!! ㅎㅎ
김씨는 대부분이 경주김씨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알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