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찾아오신 분은 알콜중독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분이었다.
하루 종일 술생각만 하면서 산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 시간을 떠 올리며 오늘 저녁은 무슨 술을 누구와 마실까를 궁리한다고 한다.
한달 수입의 절반 이상을 술값으로 탕진하며
가족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간다고 그는 스스로 자수하는 심정으로 찾아왔다고 .....
말로는 술을 끊자고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의 술이 주는 달콤한 유혹은 떨쳐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겨우 나이 40후반인데 손떨림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도 간간히 술냄새가 났다.
그는 자신의 기막힌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할 의지마져 발휘되지 않음에 대해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삼형제 중의 장남이었으며 차남과 막내의 사연까지 함께 전했다.
동생 중의 한 분이 도박중독이라고 한다.
처음엔 마작을 했으나 나중에는 경마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한다.
경마에 빠지게 되면서 가정불화가 끊어지질 않았으며
살고 있던 집까지 탕진하고 이젠 지방으로 내려 가 새로운 시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돌아서면 후회하고 자신의 손을 어떻게 하고 싶을 지경이지만
어느 새 자신은 경마장에 와 있는 스스로를 자꾸만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만 더 기회가 생기면 정말 확실하게 돈을 딸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에 빠져 산다고 ...
형은 자신의 알콜중독 보다 동생의 도박중독을 더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막내 동생은 약물중독이라고 한다.
집안의 냉장고엔 거의가 다 보신용 먹거리들이 넘치고 있으며
밥을 먹는 양 만큼의 다양한 약을 먹고 지낸다고 한다.
그는 건강염려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조그만 두통이나 복통만 와도 응급실로 달려 갈 정도라고 한다.
동생은 참 선량하고 착한 사람이며 책임감 강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약물중독에 빠지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자주 찾는 병원에서도 동생의 출현을 반기지 않을 정도라고....
그 내담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래도 묘자리를 잘못 썼거나
부모님 생전에 죄가 많거나 아니면 그들 형제 모두가 업이 두터운 것이 아닌가 싶어 무서운 생각도 든다고 한다.
심리검사를 먼저 하고 살아 온 내력을 들어 보았다.
가정적으로 대단히 힘겨운 상황에서 삼형제는 성장을 했다.
어린 시절, 그들의 기억 속에는 늘 매 맞는 엄마와 때리는 아버지와 지독하게 가난했던 살림살이만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어머니가 행상을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힘겹게 벌어들이는 작은 수입의 절반은 아버지의 술값으로 들어갔으며
아버지는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에 엄마를 학대하고 폭력을 일삼았지만
자식만 믿고 의지한다는 말을 날마다 한숨처럼 뱉으며 살아가는 엄마를 보며 자라 온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아버지의 음주벽을 자신이 고스란히 물려 받았다는 것이 정말 싫다는 것이다.
날마다 술로 살아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기 속에 그대로 살아있으며
지독한 가난이 싫어서 열심히 공부만 했던 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우연히 도박장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재미삼아 작은돈을 놓고 해 본 도박에서
엄청난 돈을 세번이나 따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당연히 그 모든 돈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무수한 돈을 쏟아넣게 되었지만
동생은 지금도 그 당시 처음 돈을 땄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고 .....
이혼 위기에 처한 동생이 도박을 포기할 수 있을지를 물어 온 것이다.
평소 몸이 불편해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보면서
막내 동생은 고등학교때 부터 건강문제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감기 휴유증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안그래도 건강에 민감한 막내 동생은
감기만 걸려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삼형제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어떻게 모두 그렇게 힘겹고 어려운 난제에 부딪치게 되었는지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어린 시절의 환경으로 인한 다양한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들에게 위로가 되고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 같은 안식과 달콤함을 줄 대상을 찾아 낸 것이 결국은 술과 도박과 약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세 분이 모두 치료의지가 있어서 상담을 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딱한 그들의 처지를 헤아리면서 우리는 개인상담 보다는 세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집단상담의 길을 택했다.
집단상담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서로 바라보며 보다 깊이 공감하고
사이코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맞닦뜨리게 한 것은 대단히 의미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조력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우리는 여섯차례의 긴 집단상담을 마치면서 새로운 결의에 찬 그분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단역동의 효과는 기대보다 컸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아프고 어둡던 긴 시간들에 대한 서로간의 공감대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지나 온 길에 대한 위로와 보살핌을 나누면서 회복의 길로 방향전환을 한 것이다.
가족치료의 예는 무수히 많지만
특이한 경우의 특이한 사례여서 공유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과 슬픔이 있다.
그것에 대해 이해받고 격려 받고, 또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존재를 확인하기만 해도
심리적으로 많은 위안이 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