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 선고
한 해도 거의 저물어가는 2009년 12월 말, 울산 U병원 비뇨기과 진료실!
“누구 보호자..! 같이 오신 분 없으세요?”
(“???? 엉? 보호자라니? ”)
일주일 전에 시행한 전립선 조직검사결과를 알기위해 의사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갑작스러운 이 말에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것처럼 띵~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가다듬고 천천히 대답했다.
“괜찮아요! 내게 그냥 다 이야기해도..! 집 사람이 와도 별 수 없고 오히려 그가 현재 더 환자라..올 수가 없기도 하니..! 그럼 혹시 검사결과가 암(癌)이란 말인가요?..” 의사는 잠간 망설이더니 “네~! 검사결과가 그렇게 나왔네요!”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혈액, 초음파, 조직검사 결과 등 지금까지의 여러 검사 데이터들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나하나 해 주었으나 스스로 암(癌)이란 결과를 쉽게 수긍을 할 수가 없었으니...
“아니 이럴 수가..! 암(癌)에 걸리다니 이게 정말인가요?” 재차 당황스러운 내 말에 의사는 “제가 할 일이 없어 환자를 데리고 농담을 하겠습니까?”정색을 하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지난 주, 서울, 동기들과의 송년회에서 친구 L군의 갑작스러운 위암 소식에 놀라던 그 무렵, 나 역시 U병원에서 이제 60대 후반으로 넘어가니 남자들에게 흔한 ‘전립선 비대증 증세가 있다’고하여 혹시나 하고 조직검사를 위한 시편을 떼 내었지만 매년 하던 위 내시경결과처럼 “별 일 없습니다! 술이나 좀 줄이시지요..!” 이럴 줄 알았었지. 이처럼 소위 암(癌) 선고를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통상 암(癌)선고(?)를 받으면 환자는 벌써 그 한 마디에 초죽음이 된다고 했던가?
갑작스러운 이 전립선 암(癌)선고에 나 역시 너무나 혼란스럽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남자의 30%, 여자의 약25%가 암에 걸린다는 놀라운 최근 통계!
하지만 그 30% 속에 하필 내가 속할 줄이야! 서울 S병원의 N교수가 이 전립선 암수술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고 특히 그의 로봇 수술 기술이 유명하니 그 곳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조언을 듣고 진료실을 빠져나와 나름대로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서울근교 광명에서 치과를 하고 있는 큰사위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S병원의 N교수 특진을 알아보라고 한즉, 사위도 적지 않게 놀라면서 빠른 시간 내에 알아서 전화를 하겠다고 하였으며, 집에 돌아와 와이프에게 그 이야기를 한즉, 와이프 역시 믿을 수 없다며 낙담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사실을 되묻곤 한다.
사위의 주선으로 바로 N교수의 특진예약이 잡혀졌고 사위도 당일 오후 진료는 휴진하고 이 어설픈 장인의 진찰을 위하여 S병원까지 동행하겠다니 한결 고맙게 느껴졌으나. 아직 한 번도 병원에 입원, 수술 같은 것은 경험 해 보지 못했고 평소 엄청나게 생각하던 그러나 나와는 별 상관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그 암(癌) 환자! 믿고 싶지 않았으나 점차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생로병사의 순리는 사람뿐 아니라 살아가는 동식물 모두가 겪는 운명적인 사실이긴 하나 갑작스럽게 닥친 현실 앞에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것일까?
집으로 돌아와 커피 잔을 쥐고 오후의 겨울 햇살이 비치는 창을 배경으로 밖을 바라보는데 그 동안 무심하게 쳐다보던 저 아름다운 바다경치! 등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멋진 송림! 이러한 것들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면서 “저 경치들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며 서서히 머릿속에 여러 일들이 복잡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직 연세에 비하여 건강하게 계신 어머니! 그리고 채 정리하지 못한 내 인생의 자취들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이것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복잡한 생각들에 이르니 점차 혼란스러운 마음이 새삼 바빠지며 불의의 사고를 대비하여 유언장(遺言狀)을 써두어야 한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나서 밤중에 일어나 황급한 마음으로 이를 쓴다고 시작해보니 그것 역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은연중 실소(失笑)가 지어진다.
N교수의 진료예약이 U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사흘 후인 12월 29일! 세모의 들뜬 분위기속에 나 혼자만 역주행을 하는 듯, 진료를 받기위해 당일 아침 이른 시간 서울행 KTX를 타기위하여 와이프의 차로 기차역에 도착하여 대합실에서 와이프와 함께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앉았는데 한쪽 구석에서 검은 색 작업복의 허름한 차림의 남자 셋! 전혀 남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아침 식사인가? 스티로폴 박스에서 김밥을 꺼내 그 위에 김치를 얹어 열심히 먹는 모습이 보이니 어쩌면 왕성한 삶의 의욕이 넘쳐 보이는 건강한 그들이 새삼 부러웠다.
드디어 열차의 출발 시간! 남편의 작아진 어깨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서있을 와이프의 외로운 모습이 상상되어 모처럼 잘하지도 않던 포옹의 제스츄어를 한 번 하고는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딱딱한 콘크리트 프랫폼 계단을 바삐 올라갔다.
이른 아침!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고 울산을 출발하여 경주를 지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눈발이 굵어졌으나 딸깍거리는 2박자의 기차의 이음쇠 넘어가는 규칙적인 소리를 귓전으로 들으며 눈에 들어오는 차창 밖 설경들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웠으나 어쩐지 내 무거운 기분 탓인가? 차갑게만 전해온다.
대구에서 다시 광명역까지 KTX를 갈아타고 큰사위의 치과 병원에 도착하니 거의 낮 12시!
사위는 오전 진료를 끝내고, 오후는 휴진조치를 하고 함께 신촌 S병원으로 나섰으나 이틀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서울의 거리는 온통 군데군데 빙판이 되어 승용차로는 운전이 힘들다며 전철, 택시를 이용하여 겨우 S병원 도착!
재빨리 사위가 여기 저기 수납, 진료신청, 가져온 CT사진 제출 등의 절차를 밟는데 역시 병원 규모가 큰 만큼 건물 구조가 까다롭고 환자도 엄청 많아 마치 백화점처럼 붐비니, 역시 병원환경에 익숙한 젊은 의사사위와 함께 오기를 잘했고 절차를 마치고 진료순번을 기다리고 있는데 춘천의 작은 사위와 딸도 또 곧 병원에 도착한다는 전화가 왔으니 교통이 힘든데도 멀리서 와 주니 역시 또한 고마웠다.
드디어 진료실 안!
특진 담당 N교수는 예상외로 젊어 40대 중반으로. 매우 친절하고 신뢰가 가며 CT사진과 조직검사 스라이드, 울산 초진 의사의 소견서 등을 종합적으로 재 판독 한 후, 그 결과가 다행히 아직 초기(初期) 암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수술이 가능하다면서 그의 특기인 로봇 수술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고 이 수술을 권하는지라 이의가 따로 있을 수가 없어 약 1주일 후인 신년 1월 4일에 입원, 이틀 뒤인 6일에 수술을 하기로 하였으니 매도 먼저 맞으라고 했던가?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하여야 한다는 절박한 심경이었던 것 같다.
수술 결정을 하고나니 차라리 한 짐을 덜어놓은 듯,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두 사위와 함께 분당의 큰 사위집으로 차를 몰아 돌아오는데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인가? 아니면 한 가닥 지푸라기를 잡는 심경이 이런 것이었을까? 어쨌든 수술로 모든 것이 다 잘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두 사위와 딸들 그리고 외손자들과 함께 모처럼 고기 집에서 외식을 하기로 하였으니 이름 난 집인지 대기 번호표까지 받고서 십 여분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며, 함께 앉은 자리! 애쓴 사위, 딸들에게 “오늘 모두 수고가 많았으며, 올해의 망년회야!” 하며 모든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건배를 하며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으나 술을 많이 하지 않았음에도 바쁜 하루에 지쳤는지 취기가 올라와 큰 사위네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잠자리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오랜만에 분당에서 거리가 가까운 판교로 최근 새로 이사 온 친구 H와 연락이 되어 그의 차로 공항까지 가기로 하여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 하고 덕분에 오후에 내 삶의 터전인 울산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 다음 이튿날은 경인(庚寅)신년! 또한 다음 1월 2일은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이니 조용히 보내고 싶었으나 춘천에 있는 작은 딸 내외가 특별히 내려와 L호텔 챠이니스 레스토랑에 저녁식사 예약을 하고 축하를 해주는데, 수술 전이라 역시 마음 한 구석에 짐은 있었으나 그래도 좋은 레스토랑에 앉으니 한결 기분전환이 되었고 싱가폴의 아들 내외까지 축하전화를 보내오니 즐거운 기분이 되었으며 함께 있는 L백화점에서 잠간 쇼핑도 하고 함께 호텔 로비에서 기념촬영도 하니 어쩌면 수술 전 마지막 행사처럼 느껴졌다.
2. 입원, 수술
드디어 1월4일, 입원일! 하필이면 서울은 수 십 년 만에 처음 내리는 폭설이라고 했다.
마치 입원을 방해라도 하듯 예약한 비행기가 연이어 모두 취소가 되니 큰 딸이 재빨리 KTX로 예약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눈(雪)으로 인해 입원에 차질이 생길번한 것을 열차 편으로 갈 수 있게 되어 큰 다행이었다.
수술을 위한 상경 길! 와이프는 새삼 더욱 긴장하였고 수술대에 실려 들어가는 모습 보기가 겁나고 체력적으로 당뇨환자라 견디어 낼 수 없을 것 같아 함께 서울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두 딸들에게 모든 간병을 부탁한다. 겨우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고 가는 와이프의 안절부절 하는 모습! 프랫폼을 들어와 돌아가는 길에 차 운전까지 혹시나 염려가 되어 바깥 주차장의 차를 찾아보니 그래도 홀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열차 안은 적당한 실내온도에, 자리도 많이 여유가 있었고 역시 경주를 지나면서부터 약간의 비가 슬슬 뿌리는데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잿빛 하늘에 지루한 시간! 둘째 딸이 준 MP3프레이어가 있어 그나마 그 지루한 시간을 훨씬 가볍게 해 주었다.
2시간여를 달리니 드디어 KTX로 환승하기 위한 동대구역! 이내 열차가 들어오고 열차에 오르니 시발(始發)역이라 객석이 텅 비어, 마치 나를 기다리는 전용차 같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고 역시 산뜻한 실내와 천정에 TV화면까지 있어 훨씬 산뜻한 분위기였다.
열차가 출발하여 대전을 지나니 남쪽과 달리 열차 창밖은 많은 눈으로 쌓인 풍경이었으며 폭설로 서울의 거리 교통이 엉망이 된 뉴스 화면을 보니 내려서 병원까지 갈 걱정이 슬며시 드는데 다시 큰 딸이 ‘전철과 셔틀버스를 탈 것’ 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KTX에서 내린 서울역, 역시 모두들 전철역으로 몰려 혼잡하니 무려 10여분을 기다려 겨우 신촌행 지하철을 타고 버스에서 Y대 정문 앞에서 내리니 병원 건물이 저만큼 먼데 눈(雪)으로 얼어붙은 보도는 미끄러웠고 어깨에 멘 가방 무게도 만만치 않아 힘들었으며, 예약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기고 겨우 입원 상담실 문을 두드리니 기다리던 입원 상담사!
반갑게 맞아주면서 곧 바로 예약된 진료실을 하나하나 안내 해 주는데 마치 미로를 헤매 듯, 많은 진료실들과 또 검사 절차를 거쳐 간신히 입원수속까지 마칠 수 있었으니, 82동 854호! 다행히 배정된 창가의 베드위치가 마음에 들었으나 5인실이었다.
겨우 짐들을 챙기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니 생소한 입원 경험이라 약간은 서먹했지만 그래도 입원실 특유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점차 익숙해졌으며 이윽고 밤이 되니 하루 종일 심신에 피로가 쌓였으나 낯선 병원침대라 쉽게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명멸하는 서울의 야경(夜景)만을 싫도록 감상하며 입원 첫날을 겨우 보낼 수 있었다.
입원 2일째!
어제 밤, MRI와 내시경 검사를 거쳐 오늘은 또 뼈 사진을 찍는다고 했으니 이는. 다른 부위의 전이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인데 전립선암의 경우 위쪽 척추 뼈로 전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였으나 검사결과 다행히 예상대로 전이(轉移)는 없는 것으로 재확인할 수 있었다.
눈으로 질척거리고 교통 혼잡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속에 큰 딸이 드디어 문병을 왔으니 외손자 희지와 지훈이를 스키장으로 보내고 왔다고 하는데 몇 시간동안 살아가는 이야기며, 아이들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데 이제 어엿한 한 가정의 주부로서 제 몫을 잘 하고 있는 듯, 대견하였으나 곧 스키장 간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도 되어 복잡한 퇴근길에 걸리지 않도록 빨리 돌아 가도록하니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갔으나 간 후로도 계속 내일 수술 시간 등을 확인하며. 와이프 대신 보호자 역할을 확실하게 잘 해주어서 고마웠다.
저녁이 되자 본격적인 수술 준비에 들어가는데 수술 확약서며 수술에 따른 후유증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는데 신체 기능이 일부 망가지고 몇 달간 소변 조절이 되지 않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니 앞 일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으나 “이것도 내 운명!”이란 생각으로 스스로 인내심을 가지고 극복하여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인간의 생명은 고독한 것이기는 하지만 고립된 것은 아니다. 그 생명은 어딘가의 또 다른 생명과 이어져 있다. 거기에 대해서도 어쩌면 나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하리라. 어느 일본의 작가의 말이니...그렇다! 내 운명은 외로울지언정 결코 가족이며 친지들 그 속에서 더불어 이어져 있는 것이니 나름대로 책임지며 흘러가리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최선을 다하고 운명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이튿날 새벽, 갑자기 수술 시간이 예정된 오전 11시에서 7시로 당겨졌다고 하는데 예민한 생각에서 불안한 기분이 들었으나 새벽에 집도의(醫), N교수가 찾아와 어제 전연 술도 마시지 않고 아침 컨디션이 엄청 좋아서 수술이 잘 될 것이니 잘 해보자고 하면서 악수와 격려를 해 주고 가는데 매우 인상적이었고 환자의 마음을 잘 꽤 뚫고 있어 매우 신뢰가 간다.
곧 수술실 운반용 침대가 도착! 수술실로 실려 가니 긴장이 되는데 10여명도 더 되는 여러 분야의 아침 수술환자의 침대가 차곡차곡 몰려들고 기계적으로 간호사들의 본인 확인을 서너 차례 더 한 후에 각자 수술실로 다시 밀고 간다.
드디어 로봇 수술대! 말로만 듣던 것보다 훨씬 큰 기계장치인데 마취 담당 의사가 다시 본인 확인 명찰과 문답을 거치고 바로 마취에 들어가는데 호흡기를 입에 갖다 대자마자 그 후는 전여 할 수가 없었고 깨어나니 이미 회복실로 실려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모르는 사이 2시간여의 긴 수술 시간이 흘러갔던 것이다.
드디어 입원실로 다시 실려 오니 뒤이어 딸애들이 걱정스러운 표정들이 보여 역시 안도의 숨을 몰아 쉴 수 있었으며, 환우(患友)라고 하던가? 같이 입원해 있던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 주는데 글쎄 그 수술 결과가 궁금하였으나 수술 후, 하루는 누워있어야 한다니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우선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도록 하고 긴장이 풀어졌는지 이내 다시 수면(睡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튿날부터 회복을 위한 본격적인 걷기운동에 열심히 시작하였고 주치의(主治醫)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며 항암치료도 필요 없다고 하니 믿고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앞자리의 연세가 들어 보이던 여(呂)씨 성의 퇴임 대학교수가 나 바로 뒤에 나와 꼭 같은 수술을 하였고 그래도 일찍 수술 한 덕분에 밤에도 통증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으며 그 날은 작은 딸이 멀리 춘천에서 와서 같이 하룻밤을 지세며 간병을 해주는데 그도 직장인이라 이튿날도 ‘더 있겠다.’ 하였으나 오후 2시경에 보내고 나니 대학 동문 친구 M군이 문병을 오고 저녁에는 K군과 L군이 또 왔으니 모두들 바쁜 중에 시간을 내어주니 고마웠다.
또 그 다음날, 하루 종일 운동으로 시간을 보냈으나 수술 후 뱃속 가스 배출이 되지 않아 부담스럽고 염려가 되는데, 아직 하루 일정이 남았으니 그 때는 될 테지 하고 더 많이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여 링거병이 달린 밀대를 의지하고 걸어 다니니 새삼 환자기분이 났으며,
저녁9시 경에는 바쁜 와중에도 큰 사위가 왔으니 또 문병을 왔으니 병실에서 접하는 문병객들이 새삼 부러웠으니. 사위와 이런 저런 이야기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위가 돌아가고 다시 밤이 되니 네온 불이 명멸하는 야경!
아무래도 도심의 야경은 이 네온 불빛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E 여자 대학의 간판이 특히 눈에 띄는데 아마 이 야경을 이틀은 더 봐야 퇴원을 할 수 있겠으나 아직 수술 후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아 걱정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들어온 호와 2,4호침대 환자들은 기독교 신도들 같은데 면회를 오든가 전화통화를 하든가 모두 ‘하느님의 은혜요, 기도의 덕분’이라고 하는데 깊은 그들의 신앙심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으니 마침 목사가 오고 환자를 둘러싸고 10여명 이상이 기도를 한창 하는 가운데 큰 소리의 내 배기가스가 나오니. 크게 민망스럽기고 하였으나 “옆 침대의 기도의 덕분으로 나까지 은총을 입어 가스가 나왔으니 고맙습니다!”라고 농담을 하였더니 온통 병실이 웃음바다가 되었으며, 가스가 배출되고 나니 한결 몸이 가볍고 이제 퇴원 절차를 밟아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오후에 다시 K군과 L여사가 면회를 왔으니..고마웠다.
입원 4일째 퇴원일! 마침 토요일이라 아침에 작은 사위와 큰 딸이 와서 서둘러 퇴원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기 위해 바로 공항으로 가는데 멀리서 이른 아침에 달려온 작은사위! 덕분에 질척거리는 도로와 회색 구름 낀 하늘! 그 칙칙한 분위기속에서 그래도 수술을 마치고 내려가는 기분은 훨씬 가뿐하였으니 마치 입학시험을 잘 치르고 내려가는 수험생의 기분이랄까?
한 시간 뒤, 울산공항에 마중 나온 와이프! 마치 저승에 간 사람이 살아온 듯 반기는데 아무래도 마음고생이 심하였던지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표정은 그래도 밝았고 이렇게 하여 약 1개월간의 내 투병의 서막은 일단 끝이 났다.
3. 에필로그
그 동안 1개월여 간의 투병생활 끝에 수술 상처도 잘 나아가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창밖 바다경치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또 어떠한 난관이 앞으로 닥칠지 알 수가 없으나 다행히 운이 좋아 로봇수술이라는 첨단 기술의 혜택을 받고 우선은 생로병사의 한 예봉은 비켜갔으니, 어쨌든 일상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담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다행으로 생각되며, 이젠 하던 일들도 줄이며 과욕을 하지 않고 과감하게 정리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삶의 방식을 나름대로 바꾸기로 하였다.
근간 유행하는 말들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웰빙(wellbeing),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웰다이잉(welldying), 사람이 사람답게 늙는 웰에이징(wellaging)이라던가? 영국의 노인 심리학자 브롬디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도 했다고 했으니 그 가운데 사람이 아름답게 죽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보다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늙는 것,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은 더욱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4대 고통이 따르니 질병, 고독감, 경제적 빈곤, 그리고 역할 상실이며 노년을 초라하지 않고 우아하게 보내는 비결은 사랑, 여유, 용서, 아량, 부드러움 등이라고 하였으며 특히 핵심적인 요소는 열정이라고 하였다.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70세 노인에 의하여 그리고 6%는 80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하며,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0이 넘은 나이, 베르디 하이든 헨델 등 유명한 음악가들이 명곡을 완성한 것 또한 고희를 넘은 나이였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자칫 때로는 무리한 열정으로 파탄이 될 수도 있을 것 아닌가싶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관계이니 나이가 들면서 초라하지 않으려면 대인관계를 잘 하여야 하니 즉,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인생에 실패한 이유에 대한 조사인즉,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부족했다는 이유는 15%에 불과했다고 하였고 나머지 85%는 잘못된 대인관계에 있다고 하였으니 그만큼 인간관계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흔히 사람은 이기주의가 강해지며, 노욕(老慾)이 생기니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여 폭군이 되거나 자기도취 즉, 나르시즘(narcissism)에 빠지거나 염세적이고 운명론적인 생각이 지배하는 페이탈리즘(fatalism)에 빠질 수도 있으니 이런 사람의 대인관계는 결국 초라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결승점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하나 후반전의 인생은 여생(餘生)이 아니라, 후반생(後半生)이니 인생의 주기로 보면 내리막길 같지만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새 인생을 시작할 때다. wellbeing인생은 결국 wellaging하다가 welldying으로 마쳐야 한다는 이러한 이야기에 새삼 귀 기울여진다.
인생의 무대는 누가 대신 해 주지 않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과제이니 또 열심히 정리해 나가야 하는 명제를 어쩌면 이번을 계기로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끝)
2010. 2.18
광명역에서 (세브란스병원 진단받으러)
롯데에서 (작은 딸네들과 함께)
첫댓글 많이 놀라셨겠으나 결과가 좋으니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정말 다행이네요. 전이된 곳이 없다니요. 두분 사위분들이 참 듬직하시겠습니다.
부인은 말은 하지 못해도 환자 본인보다 더 고생하셨을것입닏. 이제 마음놓고 두분이서 옛날 이야기처럼 웃으며 지내시면 되겠습니다.
쾌차하심을 빌며.....
고운 매님~! 댕큐~! 지루하고 긴글 읽어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
왼쪽에 서있는 젊은이가 사위이고 앉은분은 부인이고 딸과 손녀 그리고 청년님인것 같은데요?ㅋ
그정도 癌은 癌도 아닙니다요. 부인께서 얼마나 놀라시고 걱정을 하셨겠습니까? 이제 모든 불행 끝 행복시작의 제2의 핑크빛 人生이 기다리고 있군요. 百壽하십시요.
ㅋㅋㅋ 암이 암이 아니다? 농담으로다가도 그런 말씀 마세요~! 또 핑크 빛 인생? ㅎㅎㅎ 이제 거시기도 좀 문제가 될거고..뭐 이제 그럭 저럭일테지요 百壽보담 白手나 할랍니다 ㅎㅎㅎ 댕큐~! ^^*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끝까지 마음 조리고 읽다가 안심을 했습니다. 일찍 발견한 것도 모두 하느님의 도움이고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느님의 도움은 좀 받은 것 같은데...하지만 아직 교회는 못가고 있는데...어카면 되지요? ㅠㅠ 댕큐~! ^^*
청년님 마음 고생이 여하! 조기 발견하여 다행입니다. 추적 CHECK 열심히 하십시요...
글치요? 감사합니다.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닌것 같아요 진짜루..댕큐~! 어갠~~~! ^^*
산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 일까요? 저역시 암 투병을 하는 환우로써 글을 읽으면서 권해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답니다 살아온 삶을 뒤 돌아 보게 하는 소중한 체험이
아닐까요? 저는 산속에 흙집을 짓고 삽니다 그리고 마음을 편하게 하시고 식생활을 바꿔 보세요 건강 회복 되시라 믿습니다 가도 열심이 해 드릴께요^^*
흙집이라구요? 네~~! 좋은 충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건강하시기를 함께 빌며..! ^^*
청년님께 그런 일이,... 닉으로 느껴지는 이미지하고, 유모스럽기도 해서 늘 건강하신 줄만 알았습니다. 긴 글이라서 나누어 읽다보니, 답이 늦습니다. 잘 치료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철학자는 아무래도 경험으로 만들어지나보다 싶습니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셨습니다. ㅎㅎㅎ 쾌유하시고 늘 건강하셔야 됩니다.
ㅎㅎㅎ 글게요 저도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많이 놀랐지요. 그저 운명이거니 생각하고 살아갈 작정입니다. 어쩌겠어요~! 네~! 건강에는 사실 별 문제 없을걸루다 생각하고 있었는데..그렇드라구요~! 댕큐~! ^^*
청년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어쩌면 2년전 저가 당했던 경험을 대신 청년님께서 글을 쓰주신 같습니다 저는 아산병원이거던요 옛날같으면 어쩜 이세상 하직할 병이었지만 요즘은 현대의학의 발달로 다른 부위의 암과는 조금 차별되는것 같습니다 이제 너무 걱정마세요 3-4달만에 정기검사를 받고있으나 아무 이상도 없답니다 초기에 발견된것을 다시 축하드립니다
아하 그러시네요? 선배님이시네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3월 말에 오라고 했는데..! ^^*
누구나 남들에게만 있는 일인거라 생각하고 무심하다가 자기가 큰일을 당하면 몇배의 놀람과 고통을 느끼지요 그래도 초기에 발견하고 의연하게 대처하시는 모습은 놀랍습니다 닉이 청년이시니 역시 실생활에서도 패기가 있으시네요 앞으로도 조리 잘 하심녀서 정성껏 친료 받으시면 아무 걱정 없으실겁니다
댕큐~! 민들레님~! 좋은 날만 보내시기 바랍니다~! ^^*
청년님, 청년처럼 그러나 피로하지는 않게...재발 방지를 위해 운동 많이 하시고 그러나 피로 하지는 않게 마음 편히 하시고
건강하십시오, 저도 4년전 암 초기로 수술을 받아 조심 해 오던중 이번 청년님과 같은 1월4일 또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결과는 좋았으나 병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에 회의를 가지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날 까지 회향하는 맘으로 살아 가지요. 부디 건강하시고 정기 검진 잘 받으시고 편한 맘 가지시길 바랍니다. 좋은 결과 축하드립니다
아하 그러시네요~! 재발방지를 위해 고마운 말씀 명심햐겠습니다. 항상 건강한 날 되시기를 기원합나다 댕큐~! ^^*
고생 많으셨어요. 초기로 발견되고 수술도 잘되시고 가족들의 사랑에 감동입니다 쾌유를 빕니다
네~! 댕큐~! 수박님~! 좋은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
긴글이라 아껴 두었다가 지금 한가한 시간이라 잘 읽어봤습니다 빠른 쾌유를 빌겠습니다
글치요? 꽃다지님 반갑습니다. 너무 긴글이라 ..ㅋㅋ 지송합니다 쓰다가보니..이렇게..항상 건강 전선에 별 일 없으시기를...! ^^*
우선 그만한게 다행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어찌보면 지금부터 조심하라는 경고라 할수도 있습니다 완쾌를 빌며 올려주신 좋은말씀 참고 하겠습니다
설영님~! 그렇지요? 지금부터 조심하라는 경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많이 사기가 떨어진게 사실이니..우울하네요~! ㅠㅠ
우선 식생활도 조심해야하고 내몸의 세포조직이 왜 변했을까? 라는 의문 때문에 사기가 떨어질거라 생각합니다 그냥 부주의로 돌리고 지금부터 몇배로 조심하면 상처가 원살보다 좋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만 다행이라 휴" 하고 한숨이 다 나옵니다.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을 조렸는지. 그래도 그렇게 발견됐으니 망정이지 늦게 아셨으면 어떵게 하실 뻔 했습니까. 부디 올해도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와이구 낭만 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막상 한방 맞고 보니...정말 얼떨떨 하네요~! ^^*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웰빙(wellbeing),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것, 웰다이잉(welldying),
사람이 사람답게 늙는 것을 웰에이징(wellaging)이라고 하며,
영국의 노인 심리학자 브롬디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 했으니 사람이 아름답게 죽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보다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늙는 것,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말씀 가슴에 세기고 실천하려 노력 하렵니다. 言行一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겠지요.
수술 결과가 좋으시다니 불행중 다행 이십니다.
청년님의 닉네임처럼 하루빨리 靑年時節의 健康을 回復 하시기를~~!!
댕큐~! 허브님~! ^^*
병상기(病床記) 숨을 죽이고 읽었습니다만.결과가 좋으시니 불행중에 다행입니다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 - , - 댕큐~! ^^*
수술하실 수 있고 쾌차되실 시간만 기다리시면 되니 정말 다행이십니다 저의 남동생은 페암말기판정을 받았는데 어찌해야 잘 하는 것일지 답답하고 막막하고 팔짝팔짝 뛰어집니다
정말 가족 중에 중환자가 있으시니..많이 우울하시겠네요. 삼가 위로이 말씀 드립니다. 요새는 말기 암도 식이요법 같은 걸루다 치유가 되는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