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1월1일 ‘투이호아’서북방 260고지에는 아군이 쏘아 올린 조명탄으로 밤하늘에 수를 놓은 듯 오색이 찬란한 불빛과 155mm의 포성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제6중대 중대본부 방카에서는 맥주 파티가 열렸다.
오늘이 설이라 하여 중대장 장 대위의 배려로 맥주를 상자째 쌓아놓고는 중대장 집에서 보내온 오징어를 뜯어가며 맥주를 거나하게들 마셨다. 계속되는 포성을 들어가며 술이 거나하게 된 6중대 장교들은 다음번에 있을 전투와 지난번 12월에 있었던 「제퍼슨 작전」 때의 이야기로 화제의 꽃을 피웠다. 6중대에서 맥주파티가 열리고 있는 중에 제2대대 5중대와 7중대는 다비야산 260고지에서 작전 중에 있었다. 6중대는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다가 5,7중대의 공격이 있은 5일 후에 도주하는 베트콩들을 헬리콥터로 추격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섬멸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던 것이다. 6중대 장교들은 설이라고 해서 맥주 파티는 열고 있지만 마음은 한국에서와 같은 명절기분이 날 수가 없었다. 삭막한 모래벌판 한 가운데 천막으로 가리워져 있고 모래푸대로 겹겹이 쌓여 있는 방카에서 오징어를 씹어가며 맥주를 병째로 마시는 파티가 무슨 병절 기분이 나겠는가, 게다가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포성소리 또한 요란하며 하늘에는 불꽃을 이루며 총알들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니 더욱 그랬다. 모두가 빨리 술에 취해서 전쟁의 공포와 앞으로 있을 작전에 대한 불안 등을 잊으려고 하는 모습들이었다.
5중대와 7중대의 작전상황은 이따금 대대와 통화하는 중대장으로부터 간간히 들을 수가 있었다.
제5중대는 260고지 좌측방에, 제7중대는 우측방을 공격중인데 전세가 아군??그리 좋지 않다고 했다. 아군의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은 달갑지 않은 소식인 것이다.
지난번 12월에 있었던「제퍼슨작전」시에는 마을에 산재하고 있는 베트콩들이 도주 하는 대로 추격하며 지역 확보에 작전 목적을 두었으나 이번 「청룡작전」은 베트콩들의 본거지인 산악지대의 요새를 공격하는 것이라 최초 아군의 피해를 예상 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산들이 험하고 베트콩들의 반격이 심하여 아군들의 피해가 점차 증가되고 있는 것이다.
「제퍼슨작전」에서 돌아 온지 며칠이 되지도 않아, 숨도 돌이킬 겨를 없이 이번에는 「청룡 제1호 작전」명령을 하달 받은 제2대대는 밤새 화력지원 계획과 헬리콥터지원 계획 그리고 통신장비 점검등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는 04시 제5중대와 7중대를 주력으로 하여 출동 시켰던 것이다.
제5중대가 강인용 대위의 지휘아래 1번 국도를 따라 반탁다리 있는 곳까지 진입한 때가 07시 40분쯤 되었다. 이제 다리를 건너 우회하여 산 하록으로 돌아 붙으려 하는 찰라였다. 길옆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숲속에서 적들의 자동화기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제5중대는 갑작스러운 적의 기습에 즉각 산개하여 전투배치 배열을 취하고는 60m 박격포탄을 대나무 숲에 퍼부은 뒤 숲에서 사격하던 적들을 퇴각시켰다.
이로 인하여 제5중대가 당초 계획했던 공격개시선 도달시간은 늦어지게 되었다. 당초에는 아침 해가 뜨기 전에 공격개시선 까지 도달하게 되어 있었으나 적의 진로저지 기습을 받고는 늦어졌기 때문에 날이 밝아져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적들에게 아군의 진로가 노출되었다. 그러나 제5중대는 좌일선 까손산을 예정대로 공격을 하였다.
적 진지에서는 아무 반응 없이 조용했다.이에 제 5중대 제1소대는 동측방향으로 돌며 전답과 늪지대를 지나 목표지점인 y고지를 향하여 돌격하여 y고지의 하단부에 접근하려 할 때였다. 조용하기만 하던 적들은 산 하록의 동굴로부터 자동화기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적은 이 때를 노린 것이다.
대대장 오 중령은 부상병들이 속출하자 예비대로 있던제6중대를 투입할 것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새벽 2시. 대대장의 호출로 대대본부에 갔다 온 중대장의 얼굴은 약간 상기된 빛이 감돌고 있었다.
"7중대에서 희생자가 많은가봐."
장 대위는 중대본부 방카 안으로 들어오면서 한마디 했다.
왁자지껄하던 방카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으며 모두들 장 대위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상황이 좀 불리한 모양이지요?"
부중대장 정 중위가 야전침대에 걸터앉은 중대장??말을 건냈다.
"응, 좀 불리해. 7중대에서 부상자가 난 모양이야. 야간이라 놈들이 기습이 악착같다 는 거야." 하며 중대장은 상황판을 꺼내들었다.
소대장들을 ?樗?오게 한 중대장은 작전명령을 하달했다.
한 4~5일쯤 후에 출동되리라고 하던 예상은 느닷없이 새벽 4시를 기하여 제7중대와 임무교대를 한다는 것이다. 소대장들은 작전명령이 하달되는 바람에 술들이 확 깼다. 잠시 소대장들은 상황판을 드려다 보며 각자의 임무와 진입로를 검토했다.
"술좀 더 먹읍시데이. 전쟁하러 온 놈이 무슨 편한 생각 할라컵니껴, 죽으면 죽고 요행이 살면 살아 갈끼고 안 그렇습니껴?"
이종길 소위는 지도를 드려다 보다가는 술병을 입에 갖다 대면서 누구에게가 아닌 혼자서 자문자답 하며 술을 꿀걱꿀걱 마셨다. 다른 장교들은 묵묵히 굵직한 시가담배만 연상 빨아들일 뿐이었다.
공포도 아니고 침묵도 아닌 방카 안에서는 각자 자기의 임무와 앞으로의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최 소위는 아픈 몸으로 겨우 기대어 앉아 술도 입에 대지 않은 채 지도만 드려다 보고 있었다.
"자--- 이제 각자 방카로 돌아가지, 앞으로 출동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최 소위는 이번작전에는 좀 쉬게. 지난번 작전 때 무리해서 몸이 너무 약해졌어. 그리고 최 소위 대신 화기소대장 김 소위가 임무를 대리하게." 중대장은 각소대장에게 출동준비를 지시했다. 그러자 최 소위는 "아닙니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몸은 이제 괜찮습니다."
라고 말을 하면서 화기소대장 김 소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중대장 말에 갑자기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또한 동기생 소대장들에 뒤떨어지는 것 같았고 비겁함을 나타내는 것 같아 역정섞인 어투로 말을 했지만 중대장의 완강한 명령에 하는 수 없이 최 소위의 고집이 관철되지 않은 채 소대장들은 각자 자기네 소대본부로 돌아가 출동준비를 했다.
최 소위는 지난번 「제퍼슨작전」때 너무 무리를 하여 몸이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의 최 소위로서는 도저히 이번 「청룡작전」에는 참가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결국 최 소위는 본부에 남게 됐고 중대원 전원은 새벽 4시를 기하여 트럭에 분승하고는 7중대가 고전하고 있는 지역으로 출발하여 7중대와 임무교대를 했다.
6중대가 야포와 팬텀기의 항공지원을 받으며 260고지, 죽음의 계곡으로 진입한 시각이 아침 07시 30분. 제1소대가 예비대, 제2소대가 좌측방, 제3소대가 우측소대로 하여 공격 중 잡석들로 이룩된 야산인 40고지를 점령 확보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500미터 정도 되는 들판을 건너야 260고지 하록에 닿게 되어있어아군의 공격위치는 매우 불리한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삐죽삐죽한 잡석들과 가시넝쿨 그리고 관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40고지를 넘어 들판 어귀에 닿아 1개 분대가 분산하여 들판을 뛰어 넘으려 할 때였다.
따다다 딱콩하며 이제까지 조용하기만 했던 260고지 하록 적진에서 총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뛰어가던 대원들은 논두렁에 각자 음폐와 엄폐를 이용하여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들판 한 가운데 개활지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완전히 노출이 되어 적의 몸표점으로는 아주 용이하게 되었고 적들은 숲속 동굴 속에서 쏘아대기 때문에 총알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참으로 진퇴양난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사정없이 계속 날아오는 총알은 2소대 소대본부 쪽으로도 나라들었다. 2소대장 이종길 소위는 PRC-6무전기로 분대장에게 뒤로 후퇴하라고 송신을 했으나 교신이 잘 되지 않았다.
이 소위는 낮추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손을 번쩍들면서 "뒤로 빼라."고 고함을 쳤으나 논두렁에 바싹 엎드린 대원들은 날아오는 총알 떄문에 몸을 움직이질 못했다.
"야 연막탄을 터뜨려라."
하며 자기 어깨에 달고 있던 연막탄 한 개를 손으로 쳐들어 흔들어 보여 주면서 목이 터져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소대를 지휘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적들의 총탄에 부상을 당하기 시작했다.
부상자가 속출하자 이 소위는 이성을 잃은 듯 "야 엄호 사격 하라 ! " 하며 들판을 뛰었다.
몇 발자국 뛰었을까 핑----하는 소리와 함께 총탄이 이 소위의 철모를 뚫고 머리를 비껴가자 이소위의 머리에서는 시뻘건 선지피가 온 얼굴을 뒤덮었다. 벌렁 자빠졌던 이 소위는 재차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다시 뛰고 또 뛰며 산 하록까지 가 닿았다. 그리고는 양손에 수류탄을 꺼내어 동굴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던져놓고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로서 제1진 소총소대장으로 참전했던 해병학교33기 31명 중 첫 희생자였으며 청룡부대 첫 장교 희생자였다.
중대본부 천막에 전령 한명과 남아있는 최 소위는 작전상황이 몹시도 궁금했다. 무료하게 야전침대에 드러누워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닝겔병 속 떨어지는 물방울만 쳐다보고 있던 최 소위는 전령인 강 상병에게 "강 상병 대대에 좀 갔다 와 바. 상황이 어떤가?"
잠시 후 전령은 숨을 헐떡이며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왜이래? 먼지피우면서."
"소대장님--- 2소대장님께서 전사하셨답니다. 그리고 사상자도 좀 났고요."
"뭐야?"
"대대 작전병들이 그러는데 조금전전에 2소대장 이 소위님께서 전사 하셨답니다."
전령은 믿기 어렵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최 소위??다시 한 번 안타깝게 강조했다.
"뭐라구? 그럴 리가 있나."
최 소위는 그럴 리가 없다고 전령이 한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령은 똑똑히 들었노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 하는 것으로 보아 귀 밖으로 넘길 말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령이 굳이 자기 말이 옳다고 하는 것이 얄밉게 여겨졌지만 어제 중대장 말에도 7중대가 고전했다는 것과 작전지역으로 보아 전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든 최 소위는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최 소위는 "강 상병, 이 닝겔병 걸어 놓은 데를 잡아."
하며 일어나 앉은 최 소위는 왼팔뚝에 꽂혀있는 닝겔바늘을 빼 버렸다. 그리고는 삐죽이 스며 나오는 핏방울을 손바닥으로 쓰러버리고 나서 군화를 신었다.
최 소위는 신경질적인 발작이 일어난 것이다.
"소대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 몸으로 어딜 가시려합니까?"
하며 전령은 최 소위를 끌어안으며 도로 침대에 누이려고 했다.
"비켜 !"
"안됩니다."
"비키라니깐---안비켜! 이 새끼 비키라면 비켜!"
신경질을 부리며 전령을 밀어재친 최 소위는 몸이 비틀거리며 현기증이 났지만 이를 악물면서 몸을 가누며 대대본부 쪽으로 걸어갔다.
몇 발자욱 내딛다가는 쉬면서 대대본부 상황실 입구까지 도착했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흥건이 베인 최 소위는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참아가며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최 소위는 어느정도 숨을 고르고는 상황실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상황실 안에 있는 전 장병들이 모두 자기를 보고 비웃을 것만 같고 멸시와 경멸을 할 것만 같았다.
("네 동기생들은 전투를 하다가 죽었는데 네 놈만 아프다고 편안히 침대에 누워 있느냐?")하고 모두 한마디씩 할 것만 같았다.
최 소위는 자기의 몸이 아픈 것을 원망하며 작전상황실 안으로 그대로 들어서려고 했으나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몸이 병들으니 마음까지도 나약해진 것이다.
최 소위는 상황실 입구에서 서성거리다가 누군가 나를 볼 것 같아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입구를 비켜서서는 천막을 한 바퀴 돌아 입구 반대쪽 천막에 귀를 바싹 갖다 댔다.
"소대장입니다. 제2대장입니다. 네 , 네 , 전사입니다.……그리고 부상자는 ……."
여단본부에 보고하는 대대장 오 중령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최 소위는 더 이상 들을 수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옆 천막인 보급반 천막으로 갔다. 천막 안에 들어서니 보급관 윤 대위와 병사3명이 이소위의 전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어쩌려고 돌아다녀? 한명 잃은 것도 억울한데 최 소위 마저 갈려고 그래?"
창백한 최 소위를 쳐다보며 윤 대위는 최 소위를 나무랬다.
"정말 이 소위가 전사했습니까?"
"응, 그렇데 . 머리쪽에 맞았데."
후끈거리는 천막안의 공기는 최 소위를 더욱 숨막히게 했다.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방카로 돌아와 야전침대에 벌렁 들어누운 최 소위의 얼굴에는 비지땀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최 소위는 이 소위와의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포항 상륙사단 근무 시 부대 옆 마을 오천리에 나가 술을 너무 마신 탓으로 상급자에게 주먹질을 하다가 늘씬하게 얻어맞고 이빨이 부러졌던 일 하며, 대낮부터 부산 국제시장 뒷골목 빈대떡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취해 화장실에 빠졌던 일, 소대장실에서 늦은 밤에 라면을 끓여 먹던 일, 라디오에서 오후 1시 「김삿갓 북한 방랑기」가 방송되면 "야 ! 과업 시작이다." 라고하면서 연병장으로 뛰쳐나가던 일 등이 주마등같이 눈앞에 아롱거렸다.
파월 승선번호를 가슴에 달고 월남으로 떠나기 며칠 전에 숭실대학 영문과 동문인 애인 황진숙 양을 만나러 부산 영도 그녀의 집에 같이 가서 만났던 일 하며 그 후 황양으로부터의 편지나 선물이 오면 최 소위에게 보여주던 그의 웃음 띤 얼굴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일까? 믿을 수 없는 일이야. 불과 몇 시간 전에 C레이션 깡통을 따며 나는 국물이라도 마셔야 힘을 낼 수 있다면서 C레이션의 「콘 앤드 베이컨」국물을 따라 주 며 몸조리 잘하고 있으라고 했던 그였는데.")
최 소위는 끝내 믿어지지가 않았다. 누워있는 최 소위의 안색은 창백해질데로 창백해져 전령이 보기에도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식사 가져 왔습니다."
멍 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최 소위에게 전령은 하얀 쌀밥과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구어 된장을 풀어 끓인 찌개를 들고 왔다. 그때였다. 확 풍기는 밥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가 최 소위의 비위를 건드려 놓았다. 윽! 하며 최 소위는 누런 물을 토해냈다.
"소대장님 ! 왜 이러십니까?"
전령 강 상병은 양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비비 꼬는 최 소위를 부축했다. 창자까지 내 뱉어 버릴 듯한 구토의 고통을 느끼며 최 소위는 먹은 것도 없는 배 속에서 누런 물만 뱉어져 나왔다.최 소위는 창백해진 안색과 점점 높아지는 체온에 견디질 못하고 몸을 비비 꼬다가는 팔과 다리가 축 늘어져 버렸으며 의식조차 잃고 말았다.
최 소위가 후송되어져 눈을 뜨고 사방을 살펴보니 주위에 있는 침대마다 환자들이 누워있는 야전병원 병실이었다. 이소위의 전사 소식으로 쇼크를 받은 최 소위가 실신을 하자 전령 강 상병은 의무중대에 보고를 했고, 최 소위는 엠브란스에 실려 여단본부 의무실로 갔었으나 충격이 심하여 곧 회복하기가 어렵다 하여 헬리콥터편으로 동바틴 후송병원으로 후송된 것이다.
("여길 내가 어떻게 왔을까?")하며 최 소위는 멍멍한 머릿속을 정리해보며 정신을 가다듬어 보았다. 이 소위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카로 돌아 온 기억까지는 생각이 났으나 그 후로는 통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 소위는 그동안 대소 작전을 서너차례 치루었다. 직접 부하들을 지휘하며 위험했던 고비도 넘겼고 처절하게 죽어가는 월남인들의 모습도 눈앞에서 목격했고 형제같이 지내던 전우들과 죽음으로 인하여 헤어져야 했으며 또한 부하들의 부상을 치료하며 헬리콥터에 실어 후송도 시켜야 하는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최 소위는 전쟁이 가져다주는 비애 속에서 삶에 버둥대는 뭇 인간들의 발버둥이 못내 허무하다는 것을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아름답게, 멋있게, 행복하게 살아 보겠노라고 꾸며놓은 집들이 눈 깜짝하는 사이에 포탄에 어이없이 잿더미로 날아가 버린다. 또한 사랑을 속삭이며 영원으로서의 삶을 꿈꾸며 약속했었던 남편이 베트콩들에게 끌려가고, 아니면 적색분자들은 아군에게 붙들려 온다. 잘 길러 잘 살아 보겠노라고 기르던 돼지, 닭들이 주인을 잃은 채 뿔뿔이 흩어져 본래의 임자 이외의 자들에게 먹히우고 만다.
내일도 모르고 어제를 돌이켜 볼 겨를이 없는 생활의 연속에서 아군에게 쫓기우면서 그렇게도 조용히 간직하고 싶던 재산과 가족을 잃어야만 하는 것이 전쟁속의 월남인들의 생활이다. 이러한 생활상들을 직접 목격하며 나날을 지내는 동안 최우식 소위는 점차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해 오며 살아 왔던 자기의 좁은 영역의 문을 자기도 모르게 열고서는 점차 외부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자신을 넓혀 가는 것이다. 한 가지에 집착되면 고집을 부리던 성격도 점차 풀려지는 듯 했고 어떠한 불만족 상태에 처하게 될 때나 반대로 즐거운 상태에 처할 때도 그전과는 달리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성격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우식(해간 33기) - 제2대대 6중대 1소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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