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인 김춘수의 시 <꽃>이다.
대구의 한 아파트단지에 사는 80대 할머니가 절도 혐의로 검찰에 기소 되었다. 이 할머니는 현재 당뇨와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사건은 이렇다. 아파트 단지의 화단에서 꽃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아파트 관리소에서 이를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경찰은 CCTV를 돌려 본 후 이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와 옆 동네에 사는 노인들이 꽃을 꺾어가는 장면을 포착하고 수사를 하였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할머니 가족은 관리소에 합의금으로 35만원을 주었다. 아파트 관리소가 부정승차 철도 요금이 30배라며 35만원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절도 사건은 당사자간 합의를 했어도 이와 상관없이 처벌하기 때문에 검찰에 송치하였고 검사는 기소유예 처분을 하였다. 기소유예는 죄를 인정하지만 재판에 넘기지 않아 처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다. 꽃을 꺾어 갔다고 경찰에 신고한 아파트 관리소가 너무 한다고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돈을 들여 가꿔 논 꽃이 자꾸 훼손되는 것을 지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경찰은 사소한 이 일을 좋게 마무리 할 수도 있었지만 정식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원칙대로 처리하는 것이 법이라 한다. 사건은 경찰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조사하여 검찰에 보내는 것이 경찰업무다.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들이 많다. 보는 것으로 만족 못하고 남의 집이나 가게 앞에 놓인 화분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동네 골목에는 꽃 화분을 되돌려주지 않으면 고발한다는 경고판이 종종 눈이 띄기도 한다. 몇 푼 되지 않는 꽃이지만 예쁘면 욕심을 부려 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옆집 여자가 더 예뻐 보이고 남의 서방이 탐나는 법이다. 예쁜 것은 함께 봐야지 혼자만 보려고 하니까 문제다. 아름다운 것은 그냥 두고 보면 오래 볼 수 있지만 독차지 하려 꺾어가면 금방 시들어 모두가 손해다. 욕심도 문제고 법대로도 문제다. 삭막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