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Monologue)은
대부분 청중을 향한 연기(Performance) 장르이지만
자신 내면에게 속삭이는 자신과의 대화(Dialogue)라는 아이러니도 허용된다.
우리 모두는 이야기를 미치게 좋아한다.
호기심의 충족이나 단순한 수다나 대리 만족감등을 뛰어 넘는
자신과 세상과 타인과의 심오한 존재 가치적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성서를 꼽는다.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심리적 이유는
바로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2-3분 짜리의 짧은 노래에
우리는 홀려서 열광하고 눈물을 짜내는 이유가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주는 공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한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삶이 주는 혼잡함과 혼둔속에서
그래도 정신줄을 놓아버리지 않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 이야기를 한다.
글로든 말로든 노래나 시를 쓰든, 또는 생각만으로든…
유명한 여류작가 죠안 디디온의 말처럼
“We tell ourselves stories in order to live!”
심리학적으로 자기를 분석하는 행위에서도,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성찰과 반성의 행위에서도,
아니면 아주 사소한 일상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타고 난 이야기 수집가들이기에
남의 이야기든 나의 이야기든, 좋든 싫든
모든 이야기는 우리 자신을 대변한다.
“Self is a perpetually rewritten story”
문제는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이중성이다.
픽션(주관과 허위)과 논픽션(객관과 역사적 사실)의
경계를 오가며 모든 재료들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서 유일무이한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된다.
해서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자서전적이고 고백문과 가장 닮아 있다.
Our life story is our autobiography.
나는 누구인가?
윗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독백 형식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사춘기와 젊은 청년기의 젊은 이야기는
나름대로 처절하지만 풋 익은 과일 맛이 난다.
이제 은퇴를 하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시작하면서
더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안목의
나름대로 성숙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이 60 플러스 엘리트 방으로 전입 신고차 두서 없이 주절거려 본다.
To establish into a reasonably coherent Sequence
from our inner crowds.
문제는
우리 시니어들의 과거의 삶에 대한 회상들이
상당부분 허위라는 사실에서
기억은 자신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단정을 짓는다.
해서 Salter는 그의 저서 ‘Light Years’에서
“There is no complete life. There are only fragments”했고
니체는 한술 더 떠서
‘난 내가 누구고 어떤 존재인 지 알 수 없다’고 외친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궁극적인 인지는 불가하다 할 지라도
우리 모든 인간의 삶의 이야기가
계속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 많은 단편들과 단상들이 모두
한 곳으로 모여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끊임없이 수집과 성찰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종국에 다다를 쯤엔
단 하나의 삶의 이야기( An Unified Story)로
결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진정한 자아의 진보는 끊임없는 연계성,
남들의 기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자신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자긍심이란 위대하고도 유일한 힘이 존재한다” ( 조안 디디온)
결국 우리들의 독백은
거짓이나 과장도 아니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자서전적 작은 사건들의 합집합보다
더 크고 풍요한 나의 독백에는
Storyteller의 정직성과 성향( Personality)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방 엘리트 시니어 회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려 한다.
Personality is much more than autobiographical detail.
It’s our way of processing the world -Our way of being.
해서
이런 우리들의 남다른 성향이 들어 있는 독백 속에
누군가가 공감을 할 수 있다면
죽기 전에 귀한 우정과 애정을 서로 나눌 수가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하면서
꾸뻑 인사를 드린다.
건강하시길…
첫댓글 음~~~
독백인가요?
아니면 대중을 향한 인사?
청중을 향한 연기적 인사?
^^
좋은 글 고맙습니다
읽는 동안 저의 독백, 마음의 소리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좋은 오후 되시길...
독백도 대화도 모두 살아있음에 대한 온갖 표현의 일종인 것 같아요.
;)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It's a splendid and magnificent day. :)
저는,
일주일에 두어번 제잘거리듯 씁니다.
하루는 1,440분
모여모여 제 이야기를 구성하지요.
더러는 과장되이, 허황되이 쓰기도 하지만...
이러는 저도 저일터이니까요.
님의 글은
늘 정독하게 되더군요.
인생2막,
잘 지나가고 계시지요?
좋은 습관이군요.
자신을 들여다 보며 회상과 성찰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인생을 두번 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해서 저도 그렇게 님처럼 제 인생 2 막에서는 해보려고 하긴 하는 데
게을러지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 작금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공감합니다.
돌이켜 보면 질풍노도도 천둥 번개만의 삶도 아니었는 데
처음 살아 보는 생이라 나만 더 유독 힘들었나 생각했읍니다.
섹스피어가 말했나요? 우리 모두가 인생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일 뿐이라고...
아무도 인생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니란 사실을 간과하고 프로처럼 살려고 하니깐 더 힘든 게 아닌가 싶군요.
젊었던 시절 카톨릭 수도승으로 10년을 살아 본 경험이 있읍니다.
하지만 솔찍히 구약을 통채로 정독해 본 기억이 없군요.
신학보다 철학에, 믿음보다 이성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게지요.
마음 내키는 데로 손에 잡히는 때가 오면 저도 언젠가 읽을 날이 있겠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환절기에 건강 유념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