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일이면 과거가 됩니다. 어떤 이는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지간에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가기만 합니다. 흘러간 세월을 되돌아 볼 때 지난날을 추억하며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각해보면 오늘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 아픈 추억을 만들기도 했고 또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을 만들기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결국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지요.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福)과 화(禍)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권한에 따라 오늘을 욕심으로 살면 당장은 기쁠지 모르지만 추한 삶을 살게 되겠지요. 물론 그에 따른 추억도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약1:15). 쉽지는 않겠지만 욕심으로 채우기보다 비우는 아픔을 택하면 손해보는 것 같지만 결국 후일에는 웃게 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물론 그런 삶을 살기까지는 인내를 요구하는 힘든 과정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마5:3)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저는 며칠 전 오고가는 차 안에서 보았던 신문의 한 기사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그것은 60대 후반의 사업가 A씨가 38세 노처녀인 장녀와 결혼할 ‘데릴사위’를 공개 모집한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스포츠칸 2007년 6월11일자 21면 보도) 단 하루 만에 200여명이 몰리는 등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A씨는 전문직일 것, 데릴사위를 흔쾌히 받아들일 것,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나 막내일 것 등의 조건을 내걸었는데 1000억원대 재력가 딸의 데릴사위 공개모집을 하자 270대 1의 경쟁률로 일단 마감됐다는 보도를 보면서 이 시대의 사랑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게 보게 됩니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은 자신보다 다른 이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은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요 자기를 비우는 과정입니다. 에릭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결국 소유 양식에 있어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돈, 사회적 지위, 가정, 자식 등을 일종의 소유물로서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제도나 규범, 물건 등의 피조물에 복종하게 되며, 그 복종에 의해 우리는 소외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더 갖고자 하는 소유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전(全)인적으로 자기를 낮추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 대한 참 사랑을 몸소 보여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사랑이란 말 보다는 행동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참 사랑은 측량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큰 소리는 소리가 없는 것처럼 크고 진실한 사랑에는 소리가 없는 것입니다. 소리가 없어도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볼 수 있는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늘이 중요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의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귀한 시간입니다. 오늘이 바로 사랑할 시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주어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아름다운 사랑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무조건 주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순간적인, 잠깐의 반짝임으로 사라지는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을 추억하며 영원에 잇대어 살아갈 수 있는 노력을 해보아야 합니다. 추억은 현재화되지 않으면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예수님은 그 영원한 사랑을 십자가에서 확증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의 제자로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십니다. 제자는 스승의 참 가르침을 전수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그 참 사랑에 대하여 증거해야 하는 것이 제자로서의 삶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되 영원에 이르도록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사랑을 몸소 보여주셨고 제자로서의 우리는 그 사랑을 영원까지 가져가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을 다할 때 후일을 기약하며 웃는 마지막 사랑의 순례자가 될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4~35)
전명구 목사(인천대은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