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초겨울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새벽에 일어나 급하게 밥을 지어서
안 먹겠다 투정부리는 남편을 강제로 몇술 뜨게 하고서...
청소까지 대충한 후
팔층 아파트너머 낙옆도 거의 메말라버린 야산을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바라보던 난희는
혼자 중얼였다.
'며칠전 까지만 해도 산이 푸르렀는데...
초 겨울은 마치 내 나이와도 비슷한 계절같아'
결혼후 일상이 되버린 생활을 아무 생각없이
덤덤히 보내고 있는 자신을 떠올리다 난희는 피식 웃었다.
남편은 성실했고 집과 직장밖에 모르는
조금은 답답한 구석도 있는 그런 사람이였다.
결혼 이십년동안 속한번 썩인적 없는 전형적인
모범타입의 가장이였다.
중학교 삼학년 아들과 일학년인 딸 하나에
남편의 성실함에 남들보다 조금빨리
자기집 장만도 해서 주위에선 부러워도 했지만
'가족끼리 여행 가본게 언제더라?'
모닝 커피를 마시며 난희는 가족끼리 여행을
언제 갔었는지 문득 생각해봤다
'그래 정석이가 초등학교 졸업할때 기념으로
간것이 마지막 이였어
벌써 삼년 세월 참 빠르네...'
난희는 큰아들 정석이 초등학교 졸업식때
함께하고 삼년간 가족여행이 전혀 없었단걸
문득 기억했다.
'애들 방학때 가족여행 가자고 한번 해볼까
중학생 이지만 정석이가 졸업반이라 안되겠지'
포기도 빠른 난희 였고
생각해보니 결혼 이십년동안
애들 태어나고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끼리
오붓하게 여행 가본것이 몇번 없었다.
난희 나이 마흔아홉...오십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도 나도 열심히 살았네
여행이야 정석이 고등학교 들어가면
날 잡아서 가면되지 뭐'
난희는 내심 성실한 남편과 별 속 안썩이고
반에서 꾸준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들을 생각하자 환하게 웃음 지었다.
상념에 잠겨 있던중 폰이 울렸다.
"정석엄마 뭐해?"
"그냥 있어 늘 똑같지 왜?"
자신과 동갑내기인 아파트 부녀회장 이였다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온지도 오년째
지방에서 고등학교만 마치고서 직장생활을
오래했던 난희는 서울에는 변변한 친구도 없었다.
나이도 자신과 동갑이고 항상 활동적이며
수완이 좋은 그녀를 내심 부러워도 했었다.
다소 내성적인 자신을 살뜰이 챙겨주곤 할땐
동갑 이지만 언니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 그래 놀러갈게 기달려"
뭐라 할세도 없이 전화를 끋은 부녀회장 화숙은
이름이 촌스럽다고 개명 어쩌고 하더니...
어느날 지희라고 불러달라 말하곤 베시시 웃었다.
자신의 본명을 아는 사람이 아파트에선
거의 없다며 극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전화 끊자마자 달려온듯
약간 오동통한 모습에 인상 좋아보이는
화숙 아니... 지희가 성큼 들어섰다.
"오늘 뭐해?"
"뭐하긴 집에 있지 이따 장좀 보고"
오늘따라 유난히 흥분한듯한 화숙이 의아했다.
"그래 ! 그럼 나랑 공연구경 갈까 자기"
"공연? 무슨공연?"
"어, 내가 좋아하는 품바가 있는데
가평에서 공연 한다네 가까우니 같이가자 응"
"품바? 그게 뭔데?"
난희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물었다.
"자기는 품바도 몰라? 각설이 말야 각설이"
"각설이? 엿장수?"
난희는 가끔 시장 가다보면 리어커에 엿을
잔뜩 늘어놓고서 가위치며 헤어진 옷을 입고
알수없는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을 기억했다.
'그,사람들을 각설이라 한것 같은데?'
화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엿장수! 그 사람들 엿을 팔기는 하지만
엿장수는 아냐"
난희는 여지껏 공연다운 공연은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고등학교때 음악에 소질도 있고 좋아도 해서
학교에서 음악써클 같은데 참여해
클래식 기타도 배우며 곧잘 치기도 한 난희 였지만 거기까지 였다
가정 형편상 여상고를 졸업하고 작은 은행에
근무하다 은행의 고객으로 자주오던 지금의 남편
경남을 만나서 그렇게 결혼했다.
그리고 쉼없이 달려온 지난 이십여년...
"가평이면 가깝긴 하네
공연 한다는 각설인지 품바인지 누군데 화숙씨?"
"우씨...지희 라니깐 !"
"어...미안, 지희씨 유명한 사람이야 그 품바?"
"버드리 품바라고 최고중 최고지
많은 각설이들이 있지만...
품바를 말할때 버드리 전과 이후로
말들 하곤해
경기권에선 거의 공연이 없었는데
요건 땡잡은거야 자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야?
애 아빠도 오늘 마침 야근 한다는데
가볼까 헌데 애들 밥은 어쩌지"
부녀회장 화숙은 답답 하다는듯 가슴을 쳤다.
"정석이가 도대체 몇살이야 ?
중학교 삼학년 이면 지가 충분히 챙겨먹어
애들을 그리 오냐오냐 키우니깐 숫기가 없지"
탁자에 여러가지 반찬과 이것저것 챙겨 놓고서
난희는 메모를 남기고 화숙과 집을 나섰다.
'엄마, 갑자기 모임이 있어서 갔다올께
밥통에 밥 해놨으니 먹고 라면 먹던지
동생 챙겨주고 알았지... 엄마 다녀올께'
거의 공연다운 공연은 본적이 없었던 난희는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공연비는 얼마야 지희씨?"
"공연비...그런거 없어"
"공짜라고?공연비 없는 공연이 어딨어?"
난희가 의외라는듯 갸웃거리자.
부녀회장 화숙이 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주고싶으면 주던지 아님 엿하나 사도 말안해"
"뭐, 그런 공연이 다 있어 엉터리 아니야?"
"호호호...가보면 알아 자기"
가평으로 가는 전철은 난희의 기대를 안고
그렇게 그렇게 가평으로 향하고 있었다.
첫댓글 우리 소야 작가님
국내 품바 박사 1호 라고
하시더니 품바 소설을 올리셨군요
소설 내용은. 허구인가요?
아니면 실제 있었던 사연들인가요?
기대됩니다
요번 작품은 아주 재미 있을것 같아요
수고하셨습니다 ^^
실화 입니다
그것도 생생한...
@소야소야 실화를 바탕으로 쓰신거군요
완전 딱 제 취향 입니다 ㅎ
잘 보겠습니다
삐짐하셔서 글 안올리신다더니ㅎㅎ
난희가 품바공연보고 어찌 반응할련지 궁금하네요ㅎㅎ
우씨~~!
@소야소야 ㅎㅎㅎ 저 우씨 아니거든요
가운데 고속도로 생기겟어요ㅋㅋ
@코리 재밋는 코리님
너무 반가워요.ㄹ
역사소설이 아니라서
코님님깨 딱 맞는 소설인듯.ㅎ
숙제검사 아시쥬 ?
@소야소야 ㅎㅎ오늘은 큰맘먹고 숙제? 다햇어요ㅎㅎ
꼬리와 품바 ㅎㅎ
ㅋㅋ쫌 비슷무리 하죠
안녕하세요
소야님의 반가운 소설이 올리셨군요
귀한 작품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근무시간 시간 틈틈히 보겠습니다..
지기님도 한번 보시면
빠진다 내 장담할수 있습니다
노래 레파토리도 다양해서
디스코부터 블루스까지
자기 취향의 품바를 골라볼수도 있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