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감천 문화마을 알짜배기 여행
마을안내센터에서 하늘마루까지
마을버스 차창으로 ‘우리가 가꾸는 꽃길’ ‘내 마음 풍선에 담아’ ‘가을 여행’이 보인다. 낭만이 가득한 이름이다. 버스에서 내려 들머리 인 마을 안내 센터로 간다. 어디서 모여 들었는지, 방문객들로 시끌벅적하다. 친절한 여성 안내원이 ‘감천 할배가 알려주는 알짜배기 코스, 니만 알고 있으래이.’를 설명한다. 나는 여행지의 흥청거리는 분위기와 열에 들뜬 감정을 추슬러서 진정하고,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감천 문화마을 스탬프 지도를 2,000원에 산다. 이제부터는 느바기(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탐방이 되어야 한다. 마음에 1시간 20분 소요되는 B알짜코스를 정하고, 먼저 작은 박물관에 들린다. 감천 문화마을 유래가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감천(甘川)의 옛 이름은 감내(甘內)이다. 감(甘)은 검(儉)에서 나왔고, 검(儉)은 신(神)의 고어다. 천(川)은 내를 한자로 적은 것이다. 직역하면 신(神)의 개울이다. 엄청난 이름이다. 그리고 마을을 이룬 반달고개는 감천2동과 아미 동을 이어주는 왕래가 잦은 교통로다. 말하자면 6.25 전쟁으로 인하여, 충청도 전라도를 비롯한 전국의 태극도 신도들이 8.15 이후 부산 보수 동에 본부를 차리고 집단 피난 생활을 하던 중, 화재 등 여러 가지 말썽이 생기자, 1955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 해발 200m에서 300m 지점의 산자락 이곳에 집단 이주, 판잣집 일천가구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생겼다.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고 줄과 줄 사이에 좁은 골목을 두었다. 같은 줄의 집들은 간격을 두지 않고 벽을 이어 지었다. 산비탈 길을 따라 계단식으로 질서정연한 공동 주거 마을이 탄생했다. 당시 판자 집은 화재에 취약해 방화선 역할을 하도록 폭 6m 정도의 수직 계단을 3개소 설치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다. 처음 지은 판자 집은 1970년 스레트 지붕, 1980년 판넬 및 슬라브 지붕으로 바뀌면서 변화되었으나 마을 특유의 골목길과 감(甘)으로 불린 도시 구획은 대부분 초기의 형태로 남아 있어 근대문화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 정착한 태극 도는 1918년 조철제가 세운 증산교 계통의 교단이다. 그는 1957년 태극도 본부를 이곳에 완성하고 이듬해 1958년 세상을 떠났다.
주민들이 기증한 생활용품을 구경한다. 다양하다. 종 시계, 다듬이, 물 조리, 요강, 맷돌, 절구, 솥 등이 인상에 남는다. 감천 옛 모습의 흑백 사진도 볼거리다. 1957년 잘 계획된 감천동의 판자 집 거주 마을이 눈에 썩 들어오고, 우물 앞에 줄지어 있는 물동이 행렬이 깊은 감명을 준다. 첫 스탬프를 찍고 밖으로 나와 코스를 걷는다. 이야기가 있는 집, 사람 그리고 새, 달콤한 민들레의 속삭임, 하늘이 준 선물, 골목을 누비는 물고기를 지나, 어둠의 집에 들려본다. 실내가 어두워 신비감이 살아난다. 어두운 벽과 공간은 태초의 모습이 이런 것일 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다시 이를 밝히는 희미한 조명으로 빛에 대한 경외감이 생긴다. 어둠 속에서 별자리를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인간은 다른 별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늘마루에 오른다. 의자가 있는 옥상 전망대다. 감천 문화마을을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 할 수 있다. 멀리 부산항과 감천항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자연 환경이 아주 뛰어난 풍수상의 길지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 있는 느린 우체통에 엽서를 보내면 1년 뒤에 받아본다고 한다. 지나간 경험을 추억하는 것은 인간만의 권리고 즐거움이다. 두 번째 스탬프를 찍는다.
감내 카페에서 사랑의 잠물 쇠까지
주 코스로 나온다. 감내 카페를 지나친다. 움직이는 사진 상점을 둘러본다. 8초만의 부산여행, 감천마을을 한권에, 는 숫제 기막힌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호기심이 일어난다.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게들은 오히려 인정이 넘쳐나고 정겨운 풍경이다. 여행객들이 많이 지나간다. 20-30 대 쌍쌍이 많다. 외국인도 눈에 띈다. 일본인 중국인도 많이 온다고 한다. 황금항아리 초코 릿 가게도 보고, 한번은 꼭 들리는 집은 그냥 지나친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오늘만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 어서 와 포트 카드는 처음이지, 가게는 궁금하여 들려 본다. 돌아 나와 걸어가니, 적멸보궁 관음정사란 간판이 있어 멈추어 생각에 잠긴다. 이런 곳에 과연 저렇게 높은 경지의 수도처가 있다니, 하기 사 연꽃도 진흙에서 피는 것 아닌가. 사람의 가장 밑바닥 삶이 가장 높은 삶이다. 끝없이 아프고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 아픔의 소리를 듣고 한없는 자비심으로 치유하고 만져주는 것이 관음보살이다. 그러나 길을 가야한다. 이 또한 흘러가리라. 두근두근 낭만 상점도 보고, 레이저 각인 팔찌 만들기, 무알러지 무 변색 깔끔한 컴퓨터 작업, 커플 템 우정 템, 이니셜 각인 액세사리, 라 적혀 있다. 과연 어떤 것일까. 처음 들어 보는 말이나, 세대 차이가 나는 것 같아 지나친다. 별 라 별 상점이 다 있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가. 이럴 진데, 어떻게 해서 내말만 참이고, 내 사랑만 로맨슨가. 샤르르르, 쿠쿠다스 아이스크림, 수제 마카롱 아이스크림 점보, 도 있다. 단어가 예뻐서 소리 내어 불러본다. 입으로 불러보는 것도 먹는 것 만 큼 맛있다. 또 기가 차게도, 똥 빵, 똥 꼬야기, 장미 아이스크림, 캐릭터 아이스크림, 이 상표로 적혀있다. 먹기 전에 침이 고인다. 똥하고 빵하고, 는 하나의 줄에 서 있는 다른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삶도 죽음도 하나의 줄에 서 있는 다른 이름이다. 문화마을이라 그런 걸까. 이름마다 해학과 살아가는 깊은 맛이 물씬 물씬 풍긴다. 그 냥 간판만 보아도 시간은 인간의 향기를 풍기며 흐른다. 보다 시원하다, 덥다 그치. 나이스 뷰 구경하고 가, 딸 기 딸기 한 딸기 스무 디. 눈으로 먼저 마시는 블루 큐라소 레몬 에이드. 바다 봄 옥상 구스토아 일실치즈 아이스크림. 도 얼마나 곱고 하롱하롱한 간판인가. 꿈을 찾아 가는 여행객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시(詩)가 있을까. 사랑의 자물쇠로 사랑을 확인해요. 도 본다. 그 사랑 때문에, 당신은 사랑 받고자 태어난 사람. 찬송가가 들려오는 것 같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도 하나의 줄에 서 있는 다른 이름이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 얼마나 괴롭든가. 사랑의 자물쇠로 확인하면 그 바다 같은 번뇌가 없어지는 것일까.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에서 피니 쉬까지
마냥 더 걷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가 있다. 그 미적 구성에 감탄한다. 소녀와 소년이 다정히 앉아 있다. 소녀는 노란머리칼, 녹색 상의에 빨간 마 후 라를 하고, 소년은 짙은 검은 머리칼에 선홍빛 상의를 입고 귀엽게 앉아 있고, 좀 떨어져 사막의 여우가 앙증맞게 앉아 있다. 그 돌아앉은 환상적인 뒷모습에 잠시 멍청해진다. 어린왕자와 사막의 여우, 그 눈길을 따라가면 바다가 살짝 보이고, 그 넘어 섬이 큰 별 같이 떠 있고, 반달 같은 골 안의 감천마을이 알록달록 형이상학으로 보인다. 현실의 숨 막히는 사막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숨 돌릴 수 있는 오아시스가 되어 주는 사람, 사랑은 덧셈 뺄셈이 아니라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어린왕자와 여우의 명대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여우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안 거든.’ 우리도 언제 마음의 눈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잘 보게 될까. 등대 포토 존에서 스탬프를 찍는다. 주위가 조금 단조롭다. 발걸음이 헐 가볍다. 정지용의 시 ‘향수’를 역동적인 활자로 시각화해 벽을 꾸몄다. 조금 더 가면, 벽면에 물고기 조형이 가득하다. 개인의 소망과 낙서를 적은 작은 물고기 수 만 마리가 모자이크 되어 벽을 타고 흘러간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이 저렇게 감천, 즉 신의 개울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평화의 집에서, 바다 포토 존에서, 현대인과 빛의 집에서 스탬프를 찍는다. 낮고 작으며, 다닥다닥 이어진 집들 사이의 골목여행이 감천 문화마을 여행이다. 그 골목골목이 날줄 씨줄로 짜여 수수께끼처럼 미로를 만든다. 어느 곳도 놓칠 수 없는 여행이다. 바로 보물찾기를 하듯, 골목골목 다니는 것이, 온통 즐거움이다. 그리고 작품 감상이 바로 추억이 되는 길이다. 감내 작은 목간에 들어간다. 옛날 목간통을 그대로 조형화 했다. 졸면서 수부를 지키는 아줌마와 탕에서 때를 미는 할아버지가 익살스럽다. 다시 코스로 나온다. 금빛 반달고개와 게스트 하우스를 설뚱하게 지나고, 감내 어울 터에서 스탬프를 찍는다.
시간이 지체되어 어느덧 느린 걸음을 재바르게 바꾼다. 감천 황토소금상회에 이어 희망의 메세지에서 스탬프를 찍고 감천문화마을 여행의 막을 내린다. 버스 타러 나오면서 평화의 집에서 본 ‘평화는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다.’ 라는 팻말과 ‘미로 미로의 골목’은 그 다음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훨씬 더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다. 는 두 가지 느낌이 아득한 여운을 그린다. (끝)
첫댓글 좋은 글 감사... 하지만 입장료 징수(전국 어느 마을에도 없을 듯)하고.. 닭꼬지 오천 원, 점보기 천 원, 커피 삼 천 원.. 그외 몇 천원이 기본이니... 외국인이 보기에 바가지 값을 받는.. 대구문협 나들이 날.. 그날, 처음 본 브라질인에 내게 얘기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