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하나님의 [플랜 A] [플랜 B] 》
엡 4:32
<콘스탄틴 황제>
로마의 전성기 때, 황제들은 인생 말년에 이르면 후임 황제를 지정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아닌 인물로, 정말 로마를 위하여 필요한 인물을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로마 황제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합니까?
후임 황제 즉위식을 마치고 칩거에 들어갑니다.
자기가 죽고 싶은 자리를 물색하여 그곳으로 갑니다.
거기서 지내다가 죽음이 가까이 왔다싶으면 그때부터 곡기를 끊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서기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
그는 죄 사함이 침례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침례(세례)로서 죄를 탕감받는다고 여겼습니다.
초대교회 시대 그렇게 여기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비교적 선하고, 양심적이었습니다.
‘세례 받은 이후에도 죄를 짓게 될 터인데, 그 죄는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콘스탄틴은 침례받기를 미루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받아야지…’ 다짐했습니다.
콘스탄틴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앞서 말씀드린 로마 황제의 죽음 관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후임 황제를 지명하고 나서 곡기를 끊을 그때 쯤 침례를 받으면 되겠다!’
_ 이러한 계획이 합당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합당할 수 없습니다.
① 그 이전에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② 침례를 받자마자 즉시 숨을 거두지 않는다면 또 죄를 짓게 됩니다.
③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도 죄를 짓습니다.
숨을 거둘때까지 미운 사람을 계속 미워하고, 원망이 그때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자기 임종에 찾아와주어야 할 자식들 중에 안 온 자식들을 향한 미움도 있습니다.
나보다 더 오래 사는 이들도 있는데, 왜 지금 내가 가야 하는가, 원망도 있습니다.
생전에 잘못 지낸 이들과 풀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 콘스탄틴 황제의 생각은 잘못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도 일종의 죄악입니다.
☞ 콘스탄틴 황제와 같은 생각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나중 용서로는 구원이 없다>
콘스탄틴 황제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죄 지은 다음에 사함 받는 즉, ‘사후처리 용서’로는 자기 잘못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숨 떨어지기 직전, 숨 떨어짐과 동시에 용서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중 용서로서는 구원 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용서해 주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아니면 “나는 구원받을 겁니다!”가 맞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 ‘구도자’가 있습니다.
‘예수 믿을까 말까’ 모색하면서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결단하지 않았지만, 예배에 참석한 사람을 ‘구도자’라 합니다.
구도자에서 “예수 믿겠습니다.” 결단하고, 영접기도를 하면, 그 순간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영접기도를 한 사람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모두 탕감하십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외칠 수 있습니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 구원은 하나님이 내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용서해 주신 사건입니다.
엡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영어 성경 NIV 버전에서는 just as in Christ God forgave you.
‘용서하다’는 영어로 forgive입니다. 본문에서는 과거형으로 번역했습니다. forgave
하나님은 2천 년 전에 이미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지난 주 설교, 제목이 <예수 보혈의 미래성>입니다.
하나님은 왜 용서, 죄 사함, 구원을 사후에 하지 않고 미리 하시는가를 설교했습니다.
☞ 오늘은 그 후속 설교로서 ‘사후 용서’로는 구원 사역이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립니다.
< 하나님의 [플랜A] [플랜B] >
오늘이 2023년 마지막 날입니다.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냅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구원받았음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 구원받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용서는 사후가 아닌 사전 행위다”
지난 주에 설교하기를 “용서는 사후 행위가 아니라 사전 행위다!” 익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먼저 잘못이 있고, 그에 대해서 하는 것이 용서다”로 알고 있습니다.
☞ 그런데 왜 용서는 사후 행위로 사람들이 쓰고 있느냐?
☞ 이것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 오늘 설교 제목이 《 하나님의 [플랜A] [플랜B] 》입니다.
☞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두가지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몇 가지요?
두 가지의 계획을 [플랜 A] [플랜 B]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랜 A]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을 때의 계획입니다.
[플랜 B]는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의 계획입니다.
그러면 지금 하나님은 이 세상을 [플랜 A]로 다스립니까, 다스립니까?
당연히 [플랜 B]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하나님은 [플랜 A]를 거둬들이시고,
[플랜 B]로 전환하셨습니다. 지금은 [플랜 A]의 세상이 아니라 [플랜 B]의 세상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 하와의 선악과 사건으로 모든 사람들이 ‘죄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를 감추기 위하여 죄에다가 죄를 자꾸만 보탭니다.
그러다 보면 모든 것이 뒤틀립니다. 이것을 ‘왜곡’이라고 합니다.
[플랜 A]의 세상이라면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용서는 사전 행위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플랜 B]의 세상은 모든 것이 뒤틀려 있습니다.
[플랜 B]의 세상은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흘러갑니다.
☞ 대표적으로 [플랜 B]에서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세상입니다.
<플랜 B에 살면서 플랜 A를 바라보는 사람들>
2천 년 전에 이미 자기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 그 이름이 크리스천, 기독교인입니다.
기독교인은 [플랜 B]에 살면서 [플랜 A]를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플랜 B]에 살면서 [플랜 A]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미 용서하신 하나님” 그리고 “이미 용서받은 우리들”
“이미 용서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는 “이미 용서받은 성도”입니다.
“하나님처럼 우리도 이미 용서했다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 결혼할 때, 배우자를 이미 용서했습니다. 상대가 잘못할 때마다 부부싸움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그렇게 나올 줄 결혼 전에 알았습니다. 결혼할 때 용서했습니다.
자녀가 잘못한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습니다.
☞ 자녀를 낳기 전 이미 용서했습니다.
친구가 나에게 잘못했다고, 절교하지 않습니다.
☞ 친구로 사귀기 전에 이미 용서했습니다.
고객들이 프레임을 걸어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 창업할 때 이미 용서하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길 가다가 어깨를 부딪혔습니다. 화 내지 않습니다.
☞ 집에서 나올 때 이미 용서했습니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가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상대방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 핸들을 잡고 나올 때 용서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동차 수리비까지 무조건 탕감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보험회사 불러서 처리할 건 해야 합니다.
용서는 했지만, 상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당연히 물어야 합니다.
역으로 내가 책임져야 한다면, 기꺼이 사과하면서 책임져야 합니다.
☞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이게 잘 되지 않습니다. 왜 이렇다고요?
☞ 하나님이 [플랜 A]를 거둬들이시고 [플랜 B]로 전환하셨기 때문입니다.
< [플랜 B]의 세상 살이 >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주에서 한 달 살이’ 한때 유행했습니다.
제주도에 가서 한 달간 살아보는 경험입니다.
제주에서 한 달간 살 때는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한달간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을 쓰는 한 달입니다.
제주도의 풍광을 마음껏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계획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지금, 평생을 하나님의 [플랜 B]에서 “평생 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플랜 B]에서 평생 살이”
하나님이 우리를 지구 상으로 내 보내셨습니다. “[플랜 B]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예수 믿기 전에는 [플랜 B]가 제대로 된 세상인 줄 알았습니다.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 의자에 앉으면 주인이지, 주인이 따로 있나?
꿩잡는 게 매입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픈 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내 떡 나 먹고, 네 떡 네가 먹는 세상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이것이 진리인 줄 알았습니다.
이기주의, 자기 중심주의, 이것이 진리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 모두가 아담과 하와 탓입니다.
우리의 선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하나님께서 [플랜 A]에서 [플랜 B]로 전환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플랜 B]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플랜 B]를 정상으로 알고 살아갑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이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갑니다.
☞ 예수 믿고 보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플랜 A]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플랜 A]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이전의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비록 [플랜 B]에서 ‘평생살이’를 하고는 있어도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이에게는 [플랜 A]가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에게는 [플랜 A]가 소망이요,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 [플랜 A]를 바라보려면 [플랜 B]의 세상을 잘 알아야 합니다.
<플랜 A를 소망합니다>
미리 용서하신 하나님, 미리 용서받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미리 용서받고 구원받았다는 진리, 설교 들을 때는 알겠는데, 은혜가 되는데…
예배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그 은혜가 사라집니다.
교회 문 밖 세상에는 [플랜 B]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플랜 B]의 세상에 나가서 [플랜 A]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돌았다고 합니다.
[플랜 B]의 세상은 이를테면, 꼬리 잘린 원숭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꼬리 잘린 원숭이, 정상적인 원숭이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곳에서 꼬리 없는 원숭이로 살았습니다.
원숭이는 꼬리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것이 진리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 꼬리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꼬리 없는 원숭이들을 향해 “너는 꼬리가 잘려나갔어! 네가 비정상이야!”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우리 말을 귀담아 듣습니까? 안 듣습니다.
오히려 화를 버럭버럭 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플랜 B]가 작동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예배하고, 예배의 감격으로 살다가, 비로소 천국에 입성합니다.
천국은 [플랜 A]의 세상입니다. 할렐루야~
내일이면 2024년입니다.
우리가 착각하면 안 됩니다. 2024년 새 해가 왔다고 해서 [플랜 A]의 세상이 아닙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플랜 B] 세상임을 잊지 맙시다!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은 [플랜 B] 세상에 살면서 [플랜 A]를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2024년에도 [플랜 B] 세상에서 우리의 소망, [플랜 A]를 바라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