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는 것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야. 우리는 지금 세상을 탐험하는 중이야.” 카트린 파시히와 알렉스 숄츠는 《여행의 기술》에서 길 잃기를 독려하며 “길을 잃어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무 길이나 일단 가보기, 다른 데 정신 팔고 가기, 의도적으로 다른 길 들어서기 등 책에서 본 독특한 여행의 기술을 실행에 옮길 장소를 물색한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과 개성 있는 상점이 늘어선 시장의 합, 원주 미로예술시장으로 낙점!
원주중앙시장은 2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친절한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이 스마트폰에 장착된 요즘은 길 잃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원주중앙시장 2층에 있는 미로예술시장은 입구부터 찾아 헤맬지 모른다. 원주중앙시장은 1970년 건립한 2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재건축 없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1층과 2층은 안팎의 여러 계단을 통해 이어진다. 지정된 출입구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 시장 1층에서 눈에 보이는 아무 계단이나 올라가면 된다.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져 방치된 2층은 2010년대 들어 ‘예술로 연주하는 중앙시장’ 레지던스
사업이 진행되고, 문화 관광형 시장과 청년몰 사업에 선정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로예술시장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다.
미로 같은 골목이 이어져 시장 구경이 더 재미있다.
시장은 이름처럼 미로 같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오래된 가게와 최근 들어선 가게가 사이좋게 공존한다. 시장 구경에 빠져 이리저리 무작정 걷다 보면 막다른 길에 이르기도 하고, 왔던 길을 다시 지나기도 한다. 이곳에서 효율적인 동선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보는 게 미로예술
중앙광장에 이른다. 시장은 중앙광장에서 4개 동으로 뻗어간다. 각 동은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가동은 오래된 양복점이나 금은방이 눈에 띄고, 다동은 체험 공간이 다양하다. 라동은 SBS-TV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한 음식점이 모여 있다. 나동은 2019년 발생한 화재로 현재까지 대부분 영업을 못 하는 상태다.
미로예술시장의 마스코트인 고양이와 생쥐 그림이나 조형물을 곳곳에서 만난다.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숨은 재미를 찾아보자. 미로예술시장의 마스코트인 고양이와 생쥐
그림이나 조형물도 그중 하나다. 각 동에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반기는 마스코트와 만난다.
실제로 고양이가 많이 다니던 곳이라 고양이를 마스코트로 삼았다. 이를 증명하듯 지금도 간혹 길고양이가 눈에 띈다. 군데군데 상인들이 고양이를 위해 마련한 먹이와 화장실도 있다.
미로예술시장과 어울리는 업사이클링 카메라 자판기
우연히 들어선 길목에서 독특한 자동판매기를 발견한다. 음료나 과자가 아니라 일회용 카메라와
필름을 파는 자판기다. 이 자판기가 시장과 잘 어울리는 이유는 필름 카메라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과 업사이클링이라는 포인트 때문이다. 일회용 카메라지만 세심한 작업을 통해 여러 번 다시 사용
한다. 자판기 속 카메라는 디자인과 종류가 다양하고 흑백 카메라도 있다.
시장 곳곳을 필름 카메라에 담아보자.
자판기에서 카메라 하나를 뽑는다. 필름 감는 레버를 드르륵드르륵 돌려본다.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리다. 1970년 건립해 세월의 흔적을 담뿍 머금은
시장은 필름 카메라에 담기 딱 좋은 피사체다. 필름을 다 채운 카메라는 자판기 옆 카페 ‘동경수선’에 맡긴다. 자판기를 운영하는 이곳에 카메라와 케이스를 반납하면 다 쓴 필름으로 만든 상품을 선물로 준다. 필름은 현상과 인화는 물론, 스캔해서 온라인상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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