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에 관한 시모음 28)
하얀목련 /이진선
도시의 그늘 속에
하얀 참새 떼가
몰려들었다
아련히 떠오르는 얼굴들,
그리움 가득 품고서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틈새마다
앉아 있다
따사로운 햇살에 살 오르고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날개 짓 하는 그들
낯달이 수줍다
추억을 한껏 풀어놓더니
해질녘
하나 둘 날아가 버렸다
땅으로 내려앉은 갈색 깃털의 참새들이
부지런히 기억을 물어 나르는
저녁 무렵
목련 /김금자
숭고한 사랑이다지?
뽀송뽀송한 여린 꽃잎에
살포시 내려앉은 이슬 머금은
우아한 자태가 참, 어여쁜
너의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새색시 발그레한 볼 같은
그 속살 내어놓고
봄볕 한 움큼 움켜쥔
백옥같이 곱디고운
4월의 목련화는
잎도 피기 전
꽃봉오리를 맺는
너의 꽃말처럼
고귀하게 왔다가는 사랑
속살 후벼 파는
꽃샘추위에도 흐트러짐 없이
소소리바람 끌어안는
어여쁜 목련화야
봄볕마저
너를 빛나게 하는구나!
목련 /류정환
저 새가 뿌리 끝에서 작심을 하고
좁은 물관을 따라 가지 끝까지 올라올 적엔
온몸 가득 신열이 끓듯
화산처럼 치받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날개를 펼쳐 솟아오르고 싶은
그 벅찬 마음을 떠받치느라고
나뭇가지는 두근두근 떨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날고 싶었으면
몸이 온통 흰 구름을 닮았을까.
눈 잃고 귀 잃고 입이 굳어 없어지는 세월 동안
한 겹 두 겹 날개를 직조(織造)하며
행여 꿈이 깰까 저어하여
울음소리조차 안으로 삼켜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심조심 날개를 펼쳐 보는
찰나, 속절없이 툭툭 꺾여 흩어지는 와중에
이번 봄도 실패다, 중얼거리며
주저 않고 뿌리 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목련 /정성욱
그해 목련 한 잎 툭하고 지자
세상없는 부처를 찾는다고
핑계 없는 무덤하나 만들어서
시자스님은 산을 결국 떠났다
새똥이 머리 위에 버짐처럼 앉은 열한 살
“스님 되게 해주세요.”
어미 손에 이끌려 온지 스무 해 하고도 한 해
재워주고 입혀주었더니
그만, 목련 한 잎 툭지자 몰래 떠나버린 것이다
발우 앞에선 적묵(寂黙)이라는데
열불 끓는 큰스님 끝내 할(喝)을 토해 내었다
“저놈이 부처 찾는다고 어찌 제 마음속에 있는 부처는 못보고 저리 홀라당 가버린 겨“
산마루에 올라 흔적 없는 시자의 뒷모습 멀찍이 바라보다
끝내 목련 한 잎 손에 쥐고 혀를 껄껄 찬다
“그래그래 아귀 득실거리는 저자거리 네놈이 얼마나 버텨내는지 하마 내년 목련 잎이 피는 날은
부처님 불알이라도 잡고 돌아오겠지.”
큰스님 못내 아쉬운 듯 눈시울을 붉힌다.
그놈의 목련은
봄바람에 왜 져서
젊은 시자스님의 마음을
저리도 울렁이게 했는지
차마 눈 질금 감아버렸다
목련 꽃 피는 봄날에 /용혜원
봄 햇살에 간지럼 타
웃음보가 터진 듯
피어나는 목련 꽃 앞에
그대가 서면
금방이라도 얼굴이
더 밝아질 것만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가장 행복한 모습 그대로
피어나는 이 꽃을
그대에게 한아름
선물할 수는 없지만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쁨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봄날은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아름답기에
꽃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활짝 피어나는 목련 꽃들이
그대 마음에
웃음 보따리를
한아름 선물합니다.
목련 꽃 피어나는 거리를
그대와 함께 걸으면 행복합니다.
우리들의 사랑도 함께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백목련꽃 /위선환
그걸 알아보라고 했다 꽃이 피기는 필 것인지를
꽃 피는 날은 날이 개이고 하늘이 훨씬 가까울 것인지를
그런 하늘에서라야 꼭 꽃이 피는지를
장지에 눌린 창호지가 툭, 툭, 뚫리듯
머리 위 여기저기서 하늘이 뚫린다 불쑥, 불쑥,
꽃봉오리들이 목을 빼 들이민다
가득하게 한 입씩 햇살을 베어 문다
이를테면 지금 백목련꽃이 피었다
하늘은 파랗고 저렇게 꽃이 희다
목련이 필 때면 /유영훈
가을에 만나
겨울을 지나 목련이 필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만남의 밀어들이
나의 첫사랑이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고백을 못했음은
나는 너를 너무 사랑했기에
한없이 맑고 고운 네 가슴에
사랑의 상처만을 남길 수 없기에
나, 홀로 슬픈마음 달래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앞선다지만
돈이 없으면 못 이루는 것
그때처럼 초라한 내 자신을 미워한 일 없다
몇 그루의 늙은 목련들이
허우러지게 활짝 핀 목련꽃 아래
오빠;
나 내일 아침 예비수녀원 가요
하염없이 흐느끼던 그 눈물이
가난한 우리들의 비련이었기에
목련꽃 필때면 그리움에 운다
네가 간 그 세상에 삶이 있다면
나, 그곳에 가 너를 만나면
사랑한다
이 한마디 꼭 할 것이다
목련꽃 사랑 /古松 정종명
찬바람을 녹여낸 고운
봄 햇살이 길게 누운 뒤뜰에
외롭게 목련 한 그루 서 있다
뼛속을 파고드는 냉기에 속으로
감싸 안은 봉오리 늘어진 가지마다
많이도 열렸다
겹겹이 두른 외투 한 겹 두 겹 벗어 걸고
엄니 무명 버선 닮은 하얀 잎 열어
아름다운 새봄을 노래하는 싱그러움에
가슴을 울리는 그리움이 넘실댄다
목련꽃 피는 이른 봄날이면
흰 코고무신 하얗게 씻어 신고 다니던
옆집 순이 고운 모습 다시 볼 수 없으나
목련꽃 하얀 순정 톡톡 터지는 소리에
젊음이 다시 온 듯 가슴 벅차 기쁘다
순백의 아름다움 뒤 이루지 못하는 사랑에
검게 물들어 낙화하는 아픈 목련꽃 사랑.
목련꽃 /정찬경
목련이 피기 전에는
봄이 왔다고
말 하지 말자
꽃샘 추위도
무서워하지 않고
붓 같은 봉오리가 나타나더니
용감하게 연꽃이
나무에도 피어냈다
선비는 붓 같은 꽃봉오리에 관심있고
화가는 순백색 꽃잎을 사모하고
시인은 젊은 베르테르의 시 한수를
낭송하고 싶다
아~목련이어
요란하게 치장한
젊은 꽃들이 피어나면 어찌할꼬
노란꽃 .빨간꽃. 제비꽃.수선화
넝쿨장미꽃과 함께
미인대회 나아갈 수 있겠나
꽃의 선구자여 ~
예쁘고 숭고한 그대여
꽃의 신인으로 만족하고
후배 꽃들에게 무대를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나
목련나무 아래 /유종인
새떼들이 찾아왔다
몸통과 날개는 다 어디 두고
밀화부리 새떼의 우윳빛 부리만 가지 끝에
매달려 왔다 몸보다 먼저
가만히 흰 부리들만 허공을 콕콕 쪼으며
날아갈 생각 없이 맺혀 있다
몸보다 먼저
배고픈 생각들만 매달려
조금씩 벌어지는 부리들이
따스한 햇살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
햇살을 쪼으다 말고
부리를 가득 벌려 나발을 불기 시작한다
미처 닿지 않은 몸통과 날개 모두
아직 먼 이승 밖인데
폭식(暴食)의 며칠 밤낮은 계속된다
우윳빛 부리들은
위장도 모래주머니도 연결되지 못한
오래된 문처럼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부리가 벗겨지는 순간
허공엔 상처처럼 몇 줄의 향기가 긁혀 있다
며칠 뒤, 뒤따라온 날개처럼 어린 잎새가 돋는
나무, 그 폭식의 그늘 밑으로
반쯤 중풍에 들린 사내가
비뚤어진 입으로 뒤뚱거리며 걸어간다
날개가 꺾인 새처럼
지팡이로 흙바닥을 점자(點字)하듯 걸어간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한효상
하얀목련 피기위해
꽃봉오리 물차오르면
햇살도 눈부시고 따갑다
남풍에 실려온 벗꽃
내음 뜨락에 잔잔하게
흐르면 꽃이 핀다네
순백색 꽃봉오리
하나 둘씩 터지면 화들짝
놀란 꽃잎이 하늘거린다
멀리 있는 그대도
목련꽃 좋아해서 계절이
다가도록 목련꽃 그늘 아래 서있다
자목련 /윤관영
그렇게
가더이다
단단한 머리 위더 단단한 송아지 뿔처럼
내게서
피어나
상아처럼 굳을 것만 같더니,
피어새끼 제비 아가리 같은 자태이더니
그 부리 속 혓바닥 같은 수줍음이라도 있더니
치마 입고
선 물구나무처럼 화끈히
몸 열어 젖히더니 간밤에
비바람 맞아, 탯자리그마저 쓸어내더니
자, 목련 그렇게 가는구나갔구나
목련 연가 /윤미라
스러지는 찰나의 순간
한 번쯤 스치는 기억으로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을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을
고개 숙여야 하는지
낮달 이어도 좋으니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
그대에게 이르고 싶어라
눈 내리던 지난 겨울
찬바람에 휘감긴 마음자리
가지마다 눈꽃을 피워
동그랗게 맴돌아 소용돌이 치던
사랑, 잠잠해지고
한동안 잘 견디는가 싶었는데
봄비로 내린
하늘에 닿은 그대의 눈물
나를 깨우고
지나온 계절을 생각해보면
오늘 이 순간
별것도 아닐테지만
지금
입었던 솜털 옷 한 겹 벗으니
세상은 온통 환한 봄빛
그 까마득한 세월
한 번도 만진적 없는 그대의 입술
얼마나 간절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