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 손
성경본문 : 잠언 3: 34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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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생 목사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약에 와서도 동일합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도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으며, 베드로전서 5장 6절에도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주제 중의 하나가 겸손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근본이 되는덕성입니다.
어떤 한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의향하지 아니 하셨다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쓸모가 없었다'는 의미 있는 고백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덕성인 겸손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겸손이라는 말은 우리말 사전에는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어의 '험블(Humble)'은 헬라어 '타페노스'에서 온 말로서 문자 그대로 자기를 낮춘다는 것입니다. 웹스터에서는 교만의 반대되는 것이라고도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비웃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마음에 온전히 고요한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므로 초조하거나 짜증내거나 실망하지 아니하는 상태 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칭찬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책임전가를 하며 책임추긍을 받으며 멸시를 당하여도 쉼을 잃지 않는 마음을 소유한 것이 겸손한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설교의 왕자라고 일컬어지는 찰스 스펄전은 '겸손은 자신에 대한 바른 평가를 하는것이므로 자신이 온전치 못하고 미미한 존재임을 보기에 자기 능력, 자기 지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근본적인 덕성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덕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니 내게 와서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 수건을 허리에 두루고 대야를 가저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서 바로 그 삶 자체가 겸손하셨던 것을 우리는 볼 수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침례 요한도 겸손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에도 감당치 못한다'고 말했습니다.그분이 '빛'이라면, 나는 '등불으로서 그분의 빛을 담게되는 램프에 불과하다고 한것입니다. 그가 '말씀'이라면 나는 '그 말씀을 전파하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소리는 없어지지만 말씀은 영원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난자가 이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겸손은 아름다운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꼭 있어야될 귀중한 덕성임을 보게됩니다. 이러한 겸손이 있을때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축복은 무었입니까?
첫째로 겸손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은혜를 얻게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5장 5절에서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겸손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무엇보다도 구원받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죄인됨을 알아야합니다. 자기 자신을 보고 죄인됨을 인지하게 될 때 낮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걸인처럼 죄 용서와 구원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것입니다.
겸손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말씀하셨을 때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을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겸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 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지 않고, 겸손해지지 않으며, 돌이켜 회계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이를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푼다고 했는데 구원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위해서, 참으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보고 낮아진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 엘 무디(D. L. Moody)는 '하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말씀하시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단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그의 죄와 악을 고백하면 죄인을 위한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얻는 조건입니다.
원죄는 교만이었습니다. 루시퍼가 교만했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대적하시고 물리치시고 비웃으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자기가 꺽이고, 죄인임을 고백하는 겸손한 자리로 내려옴으로 하나님의 은헤가 임한곳에서, 진정으로 회개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둘째, 겸손은 기도의 응답을 받는 축복을 받게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한 사람은 세리요,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를 자랑합니다. 일반적으로 그 바리새인만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기가 죄인임을 인식하며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지 않으면 누가 불쌍히 여겨줄 수 있겠느냐며, 겸손히 낮아져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나라의 경제난을 당하여서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제목 중의 하나가 이 백성이 교만해 졌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컷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겸비하면, 스스로 겸손해 지면 그땅을 고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0 년만에 우리가 잘나서 이루었다고 우리는 교만해 있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피 비린내나는 페허가 된 바닥에서 얼마나 그리스도인들이 간절히,겸손히 하나님께 부르짓었습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 대열에 섰고 유럽에서는 300년 걸린 것을 우리는 30년 만에 이루었다'며 오만해 졌습니다. 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수가 적어지기 시작했고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기 시작한 결과 우리의 어려움은 시작되었습니다.
겸손은 기도의 응답을 받게합니다. 우리가 겸비하고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땅을 고쳐 주실 것 입니다. 나라를 치유하실 것입니다.
시편 10편 17절은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듣는다고 했지, 오만한 자의 어떤 야망과 야욕의 소원을 듣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겸손한 자의 거룩한 소원을 하나님은 들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몸을 엎드려서 기도하는 기도가 있고, 무릅을 꿇고 기도하는 방법이 있으며 머리를 숙이는 기도가 있음을 보게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의식하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계서도 함께 계심을 모릅니다. 교만한 사람은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 되어서 성령이 우리안에 계시면서 역사하시는 데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주의 임재하심이 뚜렷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7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지 하시지 않는지 잘 모른다면 내가 겸손한가 그렇지 아니한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와 하나님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겸손한 자의 마음에 거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정직해도, 진실해도, 충성해도, 겸손하지 아니하면 덕이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겸손이 없는 덕성은 헛것입니다. 참으로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겸손은 자신을 높아지게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역설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얻으려면 주어야하고, 살려면 죽어야하고 높아지려고 하면 낮아져야합니다.
높아지려고 하면 하나나님께서 '너, 낮아져라'고 하시지만, 낮아지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4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거들리는 '무르익은 곡식이 머리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덜익은 곡식이 꼿꼿이 머리를 드는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닐 때, 무엇인가 우리에게서 창조해 내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겸손을 우리는 개발해 나가야 합니다.
교만은 거짓교사의 특징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특별계시인 하나님 말씀은 우리로 겸손하게 합니다. 이사야는 거룩한 하나님을 뵈옵고 그가 입술이 부정한자라며 겸손해 졌습니다.
계시록의 요한도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며 겸손해 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보며 주님을 만납니다. 그분이 어떠한 분인가를 알고 내가 어떤 사람인 가를 알면 그분 앞에 엎드려지며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보면 주님을 만나게 되고, 겸손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보시듯 볼 때 겸손하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필립스 불룩스라는 목사님은 '겸손해지는 참된 비결은 당신이 당신 자신보다 작아질 때까지 굽히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본질 앞에서 자신을 늘릴 때까지 늘려 견주어 볼때, 당신의 큰 것이 정말 작은 것임을 볼 때 진정 겸손해 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기의 어떠한 것과 자기의 가진 것 때문에 교만해 질 수 있는데 누가 구별했고 누가 주었는지를 깨닫는다면 교만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이 다 위로부터 내려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까?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겸손은 개인적인 결심과 성령의 빛을통해 이루어집니다. 교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 죽음에 넘기우고 '내게 사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하기를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아시면서도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어떤 값을 치루시고라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겸손의 모습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어 그의 이름을 지극히 높은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덕성은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이 덕성이 저와 여러분의 삶속에 실천되어 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