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상은 비틀즈에서 LED ZEPPELIN으로 바꼈다..
터질것 같은 드럼에 귀에 남아도는 베이스, 현란한 기타.
암울한 보컬의 매력까지.. 얼마전 제플린의 다이아몬드앨범
한장이 더 늘었다고 하죠.. 베스트앨범..
비틀즈는 5장(6장인가?)제플린은 4장..
레드제플린은 내 여웅이닷.. ㅎㅎ
아.. 글구 궁금한것이 있눈데...
오지오스본보다 잉베이가 더 쪘습니까!?(무지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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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헤비메탈 완성한 ‘록의 神’ 20년만에 ‘재림’
‘레드 제플린’보컬 출신 로버트 플랜트 새 앨범 화제
지금의 음악팬들은 가요를 듣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지난 70ㆍ80년대를 젊
은 시절로 보낸 기성세대들은 가요보다는 외국 팝과 록에 열광했었다. 우
리 기성세대의 음악 정서를 결정한 영미(英美)가수야 하나둘이 아니었지
만 그중 높은 음악적 만족도를 잘 대물림하는 그룹을 꼽으라면 단연코 레
드 제플린(Led Zeppelin)이 될 것이다.
비틀스와 퀸을 아는 것이 상식이었다면 레드 제플린을 경험하는 것은
‘우월감’을 의미했다. 지금도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음악
전문가 전영혁씨가 퍼뜨려 팝과 록 인구에 회자된 한 마디가 이를 생생
히 증명한다. “록은 비틀스로 시작해서 레드 제플린으로 완성된다.” 레
드 제플린을 들어야 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며, 만약 그 세계
로 들어가지 못했다면 아직 록 청취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
다.
◆국내 록 밴드들의 ‘영원한 우상’
때문에 레드 제플린은 팬뿐 아니라 국내 밴드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
다. 대표적인 국내 록 가수인 김종서. 그의 창법은 레드 제플린의 로버
트 플랜트의 모방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세대 밴드의 보
컬에서도 얼마든지 로버트 플랜트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신중현의 아들
이자 그룹 시나위(김종서 임재범 서태지가 모두 이 그룹 출신이다)를 이
끄는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레드 제플린의 모든 것이 내게 신주(神主)단
지였다”고 고백한다.
레드 제플린의 신화는 네 멤버의 비범한 능력에 기반한다. 로버트 플랜트
의 노래, 지미 페이지의 기타, 존 폴 존스의 베이스 그리고 존 보냄의 드
럼은 모두 각 악기 분야에서 최고 연주자들, 이른바 연주의 사대천왕(四
大天王)이 펼치는 록의 향연이다. 그러니 이들의 연주 화음과 노래가 당
대 최고였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긍심을 언젠가 로버트 플랜트는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 바 있
다. “우리는 결코 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2등
인 그룹이 누구든 그들보다는 훨씬 우수한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레드 제플린은 미국 땅을 떡 주무르듯 요리한 60ㆍ70년대 영국 밴드들 가
운데 잊혀지지 않고 신세대에까지 음악의 숨결을 온전히 전하고 있는 대
표적인 존재로 기억된다. 생명력에 관한 한 가히 비틀스와 쌍벽이다. 드
러머 존 보냄의 사망으로 그룹이 해산된 지 22년, 마지막 정규 앨범 ‘코
다’를 발표한 지도 20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 시대의 젊은이
들은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 열광한다. 이와 관련, 음악 전문지 ‘인디펜
던트’는 얼마 전 “20년 전 그룹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레드 제플린
은 여전히 세대를 결합하는 매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얼마 전 지미 페이지와 더불어 그룹의 상징인 로버트 플랜트가 모처럼 앨
범 ‘드림랜드(Dreamland)’를 발표했다. ‘보컬의 달인’이란 명성에 걸
맞게 자신이 한창때 좋아했던 노래를 멋지게 재해석해낸 이 작품은 현재
평자들의 격찬을 받고 있다. 팀 로즈의 고전 ‘아침이슬’(Morning
dew), 밥 딜런의 ‘커피 한잔 더’(One more cup of coffee), 팀 버클리
의 ‘사이렌에 보내는 노래’(Song to the siren) 등은 그가 아니면 불가
능했을 천상의 가창력으로 구현돼 후대들에게 ‘노래란 이렇게 하는 것
’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세인의 관심이 로버트 플랜트 개인이 아닌 오히려
그가 몸담았던 그룹 레드 제플린에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팬들이
그를 솔로 활동보다 아직도 그룹 시절의 궤적으로 더 기억하고 싶어하
는 탓이다. 평론가들이 쓴 신작 리뷰에도 로버트 플랜트보다 레드 제플린
이란 말이 더 많이 나온다. 분명 이번 앨범도 자체 판매량 증가가 아닌
레드 제플린 앨범이 팬들의 손에 들어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 9장 앨범 모두 300만장 이상 팔려
앨범 판매고는 레드 제플린의 독보적 영역이었다. 마지막 앨범 ‘코다
’ 전에 낸 9장의 정규 앨범 중 판매량이 300만장 밑인 것이 없다. 1971
년에 발표한 그들의 최고 명작인 무제(無題)의 4집 경우는 지금까지 무
려 2200만장이 팔렸고(이글스 히트곡집,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핑
크 플로이드의 ‘더 월’에 이어 역대 4위) 90년 박스 세트로 꾸민 앨범
모음 역시 고가(高價)에도 불구하고 1000만장이나 나갔다.
어떤 록그룹도 그들보다 앨범을 많이 팔지 못했다. 그리하여 레드 제플린
은 ‘앨범 예술의 결정판’이란 소리도 듣는다. 단일 곡이 아닌 앨범 전
체에 비중을 두어 제작을 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록 역사의 명곡으로 손
꼽히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은 대중적 히트곡으
로 손색이 없었으나 그들은 팬들에게 앨범 듣기를 고집, 상업적 싱글로
내놓기를 거부했다. 그로 인해 신비는 더 축적됐다. 앨범 4집이 줄기차
]
게 팔려나간 이유가 이 때문이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의 매력에는 당시 미국의 백악관도 빠져들었다
.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두 딸은 TV 토크쇼 프로그램인 ‘딕 카
벳 쇼’에 출연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그룹은 레드 제플린”이라고
털어놓아 전국적 화제를 일으켰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위시해
‘로큰롤’ ‘블랙 독’ ‘홀 로타 러브’ 등 그들의 명곡은 비단 거리
나 공연장만이 아닌 백악관에도 울려 펴졌던 것이다.
그룹이 음악 역사에 기여한 것으로는 우선 ‘헤비메탈의 형식미’ 확립
을 들 수 있다. 흑인 블루스로부터 발전해 볼륨을 크게 높인 이 장르는
레드 제플린에 의해 일반인들에게 그 스타일이 알려졌다. 팬들은 그들의
음악이 슬픔의 기운이 감돌면서도 워낙에 ‘소리의 덩치’가 컸기 때문
에 좋아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로버트 플랜트의 고음 가창과
존 보냄의 폭발하는 드럼 연주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헤비메탈만이 아니라 원조 블루스, 포크, 디스코, 펑키,
그리고 동양음악 등 록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갖가지 음악을 모조리 실
험하고 구사했다. 형식에 대한 왕성한 식욕 때문에 레드 제플린의 음악
은 ‘장르의 교과서’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어떤 평론가는 그들의 음
악 전체를 ‘알려지지 않은 심포니(교향악)’로 정의한 바도 있다.
◆ 그룹 동료 사망하자 팀 해체
팬들은 음악의 우수성은 물론 그들이 보여준 휴머니즘에도 감동했다. 그
룹은 1980년 존 보냄이 사망하자 “그가 없는 제플린은 의미가 없다”며
지체 없이 해산을 감행했다. 거액이 오가는 그룹활동을 인간적 도리 때문
에 포기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획득한 ‘깨끗한 이미지’는 지금도 록 팬
들을 사로잡는다.
로버트 플랜트의 신보와 함께 레드 제플린이 부활하고 있다. 음악계도
‘전설의 재림(再臨) 측면에서 비틀스 다음은 제플린 차례’라고 전망한
다. 제플린광(狂)이 됐다는 우리의 한 신세대 록 팬이 묻는다. “아니,
이런 음악을 70년대에 만들었다는 게 정말입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
니다!”
주간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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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야기
난 비틀즈보다 레드제플린이 좋아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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