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지역의 전설
진심으로 백성을 위했던 양구 현감 김현도
강원도 양구군 동면 후곡리의 백암봉에는 양구 현감 김현도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서암사가 있으며, 그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김현도는 7년 동안 양구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부당한 세금 문제를 해결하였고, 백성들에게 예와 효를 가르쳤으며, 스스로 효의 모범이 되었던 인물이다. 양구 백성들에게 김현도는 오직 백성만을 위했던 인물로 기억되며, 지금도 그의 학문과 덕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양구 현감으로 부임했던 김현도
김현도는 조선 명종 6년(1551) 파주 천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영특하여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뛰어난 글재주를 선보였는데, 당시 그가 지은 창오모색(蒼梧暮色)이란 장편 시는 당대의 문장가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도 전한다. 김현도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26세에 벼슬길에 나섰지만 부사, 목사 등을 거쳐 예조참의에까지 올랐다. 그가 양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587년에 양구 현감으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이후 7년 동안 양구 현감으로 있으며 진심으로 백성만을 위했던 인물로 기억되며, 지금도 그의 공덕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진심으로 백성을 위했던 양구 현감 김현도
세금을 줄여달라고 조정에 올린 상소
양구 현감으로 부임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김현도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조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 양구 백성들의 원성이 점점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김현도는 ‘전에 있던 현감들처럼 하면 된다. 굳이 조정과 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고개를 저으며, 양구 현감으로 부임하던 첫날 “양구 백성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는 현감이 되자.”라는 다짐을 떠올렸다. 바로 김현도는 상소문을 써나갔다. “우리 양구는 산세가 험난한 고을로 전하의 백성이 200가구도 살지 않습니다. 그들이 경작하는 논밭 또한 적은데, 세금은 두 배를 거두어 갑니다. 이런 까닭에 양구 백성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가고 있으니, 그들의 고통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선조 21년(1588)에 김현도가 보낸 상소가 받아들여졌다. 이후 양구 백성들은 터무니없는 세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늘도 감동한 김현도의 효성
어느 늦은 봄, 어머니의 병이 점점 깊어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김현도는 밤이 새도록 어머니를 간호하였다. 손수 약을 달여 드리고 어머니의 대변을 맛보며 병의 경과를 확인하였다. 매일 밤 어머니가 잠이 드시면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쾌유를 기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김현도의 효성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를 걱정하며 집무실에서 숙직하던 김현도가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 한 도사가 갑자기 나타나 “너의 효성이 정말 지극하구나! 그래서 어머니의 병에 좋은 명약을 주겠다.”라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잠이 깬 김현도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줄 하늘의 계시라는 생각이 든 김현도는 바로 말을 달려 집으로 향했다.
그때 두 마리의 독수리가 김현도의 머리 위를 맴돌다가 말머리 앞에 무엇인가를 떨어뜨리고 날아갔다. 말에서 내려 확인해보니, 그것은 가물치 두 마리였다. 김현도는 ‘이것이 꿈속에서 도사님이 말한 명약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정성껏 가물치를 달여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잠시 후 어머니의 얼굴빛이 좋아지고 기력을 되찾았다. 이후 계속 가물치를 드신 어머니의 병은 완전히 사라지고 완쾌되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김현도가 44세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현도는 장사를 지내고 어머니의 묘 앞에 3년 동안 거처하며 마지막 효성을 다했다고 한다.
서암사 사당에서 매년 제사를 지내
강원도 양구군 동면 후곡리의 백암봉에는 서암사가 있다. 서암사는 양구 현감으로 부임했던 인재 김현도를 모시는 사당이다. 이 사당은 7년 동안 양구 현감으로 있으면서 부당한 세금 문제를 해결하고, 백성들에게 예와 효를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 효의 모범이 되었던 김현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도 양구 사람들은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며, 오르지 백성들의 편에서 백성들을 위했던 김현도의 삶을 기억한다.
참고자료웹페이지
양구문화원, "김현도 현감의 효행", http://yanggu.kccf.or.kr
웹페이지
권영상, “[역사속의 강원인물]그가 떠난지 400여년, 지금도 양구군민 가슴에는 `훌륭하신 현감님'”, 강원일보, 2013.09.12, http://www.kwnews.co.kr
웹페이지
박현철, “<4월> 김현도 (1551~1610·양구)”, 강원도민일보, 2005.04.01, https://www.kado.net
집필자 남종현
원문 주소
https://ncms.nculture.org/traditional-stories/story/7181?jsi=1H2FUdsAVSYtk/Xq8BX2GANB6XM7oKfbQemPfq0IZXcnvTeL9OXED4C4AJx7WPXfmfhDF01kqOOfmk7w2pyag&_ga=2.97141723.538186609.1717673970-819958361.1717673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