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까지 볼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한다. 초기 로마 사회의 고위층은 공공봉사와 기부, 헌납에 앞장섰는데,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운 행위였기 때문에 사회 고위층들이 경쟁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참전했고, 이런 전통은 세계 대전 당시 영국 고위층 자제들의 참전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참전과 같은 적극적 행위보다는 기부와 헌납과 같은 경제적 행위, 사회 복지로의 환원을 가리킨다. 2010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 '블라인드 사이드'는 실천 가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만한 계기를 준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미국 프로 미식축구리그의 경기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날 경기에서 전설적 쿼터백인 조 사이즈먼은 부상을 입고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간다. 그가 부상을 입은 까닭은 상대편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즉 블라인드 사이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미식축구 용어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사각지대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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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의 한 장면.
또래보다 두 배 정도 덩치가 큰 소년, 마이클 오어(퀸튼 아론)는 동네에서 '빅 마이크'로 불린다. 그는 아직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어린 아이지만 머물 곳도, 다닐 학교도 변변치 않다. 어느 날 백인이 다니는 학교 농구장에서 노는 마이클을 본 코치는 그를 이 학교에 전학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그 일이 또 만만치 않다. 학교의 다른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빈민가 흑인 소년이라는 이유로 빅 마이크의 전학에 불편한 감정을 내비친다. 어렵사리 마이클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이제까지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것이 없는 마이클은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 없다. 게다가 마이클에게는 잘 만한 곳도 없다. 매일 밤거리를 전전하던 마이클은 우연히 같은 학교 학부모인 리 앤(샌드라 블록)의 눈에 띈다. 리 앤은 덩치만 컸지, 아직 아이에 불과한 마이클을 외면하지 못하고 집으로 초대해 하룻밤 머물게 한다.
리 앤은 소년을 일 층 소파에서 자게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혹시나 물건을 훔쳐 달아나지는 않았을까 두려워한다. 이 장면은 여주인공 리 앤의 지나친 우려라기보다는 대부분의 백인 중산층이 가진 흑인에 대한 시선을 대변한다. 백인에게 흑인 빈민 소년이란 그저 도둑 아니면 예비 범죄자 정도로 취급되니 말이다. 그러나 리 앤의 걱정을 깨고, 마이클은 자신이 덮고 잔 이불을 곱게 개어놓고 조용히 집을 나서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리 앤은 큰 각오를 한다. 그녀와 남편은 미국 전역에 걸친 식당 체인점을 가진 부자이다. 그들이 마이클을 도와주지 못할 이유는 심리적·문화적인 부분 말고는 없다. 리 앤 부부는 마이클에게 필요한 경제적·물리적 지원을 해주기로 결심한다.
리 앤은 마이클의 법적 보호자가 되기를 자청한다. 마이클은 리 앤의 배려 덕분에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재능을 발견한다. 리 앤은 그의 후견인이 돼 훌륭한 선수가 되도록 도와준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는 우리 주변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그 사람들을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윤리적 메시지이며, 한편 현대사회의 고위층이라고 할 수 있을 부자들에게 권유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빈민가를 맴돌다 범죄자가 됐을지도 모를 소년이 어엿한 성인으로, 게다가 미국의 간판급 미식축구 선수로 성장한다. 물론 이런 일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쉽게 일어날 수 없는 기적적 사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오히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더 볼만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힘들지만 해야 할 일, 어렵지만 하면 더 좋은 일의 개념으로 '블라인드 사이드'는 조용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주장한다. 경제적 고위층의 진정한 도덕적 의무는 바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잘 보는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매우 드라마틱한 사건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간혹 세상은 영화보다 더 놀랍고 따뜻하다. 같은 원리로 지독한 영화보다 현실이 더 잔혹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끔은 동화책 속 이야기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 그 세상도 모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더 생각해볼 문제
1.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떤 방식으로 실천돼야 하는지 토론해보자.
2. 일상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따뜻한 시선을 다룬 영화나 소설로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3. 내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도덕적이며 윤리적 행위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