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송 교수는 "세종 인재경영은 오늘날 인재 경영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며 "인재 파이프라인 모델에 빗대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기업들은 각자 실천 모델을 수립해 인재확보에 나서고 있다. 인재 파이프라인 모델은 기업마다 다르지만 크게 △잠재력 갖춘 인재 선발 △역량 개발 △경력개발 △후계자 양성으로 구분된다.
세종은 크게 `간택` `평의` `중론` 등 3단계로 구성된 인사검증 시스템으로 인재를 선발했다. 세종 초기 10여 년간 이조판서를 맡은 허조는 △정가간택(精加揀擇) △경여평론(更與評論) △중의부동(衆意孚同) 등을 거쳐 인재를 선발했다. 우선 인사 담당 관리가 후보자 경력과 자질, 부패 혐의, 가족관계를 조사하는 게 정가간택이다. 이후 이조 관원들의 평가를 함께 모으는 경여평론, 오늘날 인사청문회에 해당하는 중의부동을 실시했다. 특히 경여평론과 중의부동 단계에서 세종대에 다수 의견을 수렴해 인재를 선발할 수 있었다.
송 교수는 세종의 소통 방식도 좋은 인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세종은 전제군주답지 않게 신하들에게 많은 직언을 구했으며, 어떤 중대 사안을 논의할 때 의견이 달라도 최종 합의를 잘 유도해냈다. 세종은 반대 의견마저도 잘 경청해서 심사숙고했으며,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세종은 인재경영을 펼치며 덕망과 재능을 중심으로 인재를 발탁하고, 인재를 자기 몸처럼 소중히 아꼈다. 천민 신분이었던 장영실을 종3품 대호군까지 승진시켰고, 천문에 뛰어났던 이순지를 동부승지로 발탁한 게 세종이었다.
세종은 리더로서 개별적인 배려를 신하들에게 베푸는 점도 잊지 않았다. 조선 초기 서거정이 쓴 `필원잡기`에는 유명한 신숙주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집현전 선비들은 번갈아 숙직하였는데 (중략) 신숙주가 촛불을 켜 놓고 글을 읽고 있었다. 닭이 울자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고 내시가 아뢰니, 임금이 이를 가상하게 여겨 옷을 벗어 그가 잠들 때를 기다려 덮어주게 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육성한 집현전도 세종식 인재경영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기관이다.
세종은 인재가 어느 한 지위에 적합하면 해당 지위에서 오랫동안 일하게 해서 성장하고 전문성을 쌓을 기회를 제공했다. 황희나 맹사성 같은 정승들은 각각 재임기간이 24년과 8년에 달해 국정을 안정화시키기 유리했다. 예조, 호조, 병조같이 전문성이 필요한 부처의 판서들도 평균 6.8년간 재직해 맡은 임무를 완수하게 했다. 특히 집현전은 거의 대부분 10년 이상 전문 분야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연구년 제도인 `사가독서제` 등을 활용해 폭넓게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