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에 대한 철학적 해석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지침서이자 미 전문 심리 분석가들이 애용하는
심리분석 진단 및 통계 (DSM –5th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메뉴얼에 따르면
우울증(Depression & Anxiety Disorder)으로 판정하기 위해서
하룻 동안 침울과 무기력, 무감증과 무관심, 기력상실과 허무감,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는 횟수등의 깊이를 따져서 진단한다.
일반적으로 우울 증세의 출처를 세가지로
생물학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인 이유(Bio-Psycho- Social Model)로 세분하는 데,
우리가 우울해지는 이유는
한마디로 연결 고리들의 단절(Disconnection)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유전적 영향, 심리적 충격, 사회적 문화적 소외로 인한 부수 현상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주변 환경과 유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자신의 직업,
인간관계, 삶의 가치, 목적의식, 사회적 위치와 명예,
자연과의 단절과 다가 올 미래에 대한 온갖 근심과 우려등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울증에 대한 해결책으로
어떤 이는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의사를 찾아 약(Anti-Depressants)을 복용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알콜과 마약, 노름 또는 어떤 것에 미치도록 집중해서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도피하려고 한다
위의 모든 것이 처음에는 약간의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옴을 느끼게 된다.
종교가 소원풀이나 무상 행복을 제공하지도 않으며
(진정한 종교는 결국 신과 믿는 이의 궁극적인 관계의 맺음이기에)
수많은 약물들은 작년 국제 보건 기구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했듯이
그 약물들이 대체로 무효하며 심지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것과,
어떤 것에 단순히 미쳐서 생각(우울)에 빠지는 것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심각한 중독으로 영육을 망치기가 일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울증과 정신 과민에 대한 해결책은 무었일까?
그 우울함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가만히 직시해보면 어떨까?
한마디로 우울증의 증세는 인간이 슬플 때 느끼는 증세이다.
슬픔이 클수록 그 증세는 우울증의 증세와 너무나 똑같다.
결론적으로 우울증과 정신 과민은 슬픔의 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Depression is itself a form of Grief.
For all the connections we need with which we don’t have now…
해서 슬픔(Sorrow)을 이해 하면
이 우울증이란 로제타 스톤을 해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위에서 말한 나와 세상과의 관계의 단절을 느낄 때
슬픔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이 슬픔을 인정하게 되면
너무나 놀라웁게도 더 영육으로 강인해지고
끊어져 버렸다고 믿었던 관계의 삶을
새삼스러이 직시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활기를 되찾게 된다는 점이다.
또 이런 우울증과 초조감들은 개인적인 결함이라는 시각에서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집합적 문제로 재숙고해 보면
문화적인 풍토에서 생성된 것임을 직면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옳고 그름이란 선악의 기준 조차도
문화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Depression is to a significant degree a collective problem.
A collective problem caused by something that’s gone wrong in our culture.
러시아의 한 시인은
‘슬픔을 느끼 수 있는 한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란 말을 했다.
또한 전쟁의 귀재 나폴레옹도 그의 전서 맥심에서
‘슬퍼하는 군대가 용감 무쌍한 군대를 이긴다’란 명언을 남겼다.
마찬가지로 도덕경에서도
“병사가 서로 다툴 때, 슬퍼하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라고 한다.
항병상가, 애자승의, 抗兵相加 哀者勝矣(69장)
슬픔은 상실한 관계를 애도(우울, 정신과민)하다가
때가 되면 이로 인해서 더욱 너거럽고, 더욱 이해하게 되며,
더욱 강인한 사람으로 세상을 개선 또는 헌신하게 하는
승화란 다음 단계로 전이할 수 있게 하는 엄청난 내제된 힘을 가지고 있다.
우울의 전환이 마치 만달라와 태극의 음양의 전환과 같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근심 걱정의 주요 역활은
다가 올 불안과 공포로 부터 방어막이 노릇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쇼펜아우어는 인생 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우울과 근심(Depression & Anxiety)을 제대로 대처하는
능력(Coping Skill)을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우울증세나 정신박약의 현상은 나쁜 것이 아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퍼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슬픔을 느낄 수 있다 함은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고
이 것을 극복한 인간들의 삶은 참으로 존경스럽고 용감하지 않은가…?!
또 병을 병이라 여길 수 있는 여유는 병이 설 자리를 주지 않는다.
‘以其病病 是以不病, 병을 병으로 알기에 병이 없는 것이다’(도덕경 71)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심정,
가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전쟁터로 나서는 병사의 마음,
독재자에 맞서 박해를 불사하는 시민 정신,
천재지변으로 온 마을을 잃어버린 생존자의 비참함,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죄수의 억울함,
사랑하는 이와의 별리등
무수한 사건들이
우리를 깊은 우울증상으로 몰아 붙이지만
그 우울함의 이면에는
그 무었인가 엄청난 에너지가 존재한다.
지난 관계의 단절이란 슬픔과 우울함으로 인해서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엄청난 내장된 전이의 힘을 찾아내야 한다.
해서 인내하며 슬퍼하고 우울해 볼 일이다.
당분간 만!
It Won’t Be Long! Trust in yourself!
“What is Matter with You?”
No, No, No,
That is a wrong question!
The right question is:
“What Matters to You After all ?”
Depression is a kind of constricted Consciousness.
Let’s Listen and Honor it!!!
삭제된 댓글 입니다.
녜, 좋은 질문을 한다는 자체 속에
여러 가능성이 함축되어 있다고 봐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