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아침, 가방에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넣고 길을 나섰다.
대략적인 동선만을 그려놓았을 뿐, 아무런 예약도, 시간표 조회도 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계획은 여행을 관광으로 전락시킨다.
<서울역>
기차역은 떠나는 사람들의 설렘으로 가득하지만, 공항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은 느껴지지 않는다.
<서대전역>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배)동국형과 몇가지 나눌 이야기가 있었다. 동국형, 형수님, 주찬이가 마중을 나왔다.
주찬이는 동국형의 아들답게 벌써부터 늠름하고 다리가 무척이나 길다.
내가 묵을 숙소까지 예약을 해두신 동국형, 다음날 새벽 버스터미널까지 배웅도 해주셨다.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 정(情)의 거름이 되었다.
이틑날(16일) 점심, 남원을 거쳐서 담양에 도착했다.
서울은 장마라는데, 담양은 한없이 맑다.
버스정류장을 벗어나자마자 초록이 가득하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범석이형이 진우네집국수를 가보라고 했다.
범석이형이 소개한 곳이라면 일단 검증은 된거라 생각하고, 무작정 가서 국수와 약계란을 시켰다.
장사가 잘되는 집이라 친절하진 않다.
국수는 무난했고, 약계랸은 삶은계란답지 않게 술술 잘 넘어갔다.
국수 3000원, 계랸 1000원. 나쁘지 않다.
죽녹원 입구
대나무 숲이라고 했을때 영화『봄날은 간다』가 떠올랐다.
영화 마지막 장면 유지태의 미소를 이해하는데 8년이란 시간이 걸렸었다.
<죽녹원>
조용하다. 대나무 소리가 무성하던 중, 핸드폰이 울린다.
재욱형이다.
"승민아, 어디고?"
동생인 나한테, 늘 형이 먼저 안부를 묻는다.
기와를 얹은 정자는, 자연과의 경계가 거의 없다.
죽녹원에서 나와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 가는길. 무작정 걸었고, 생각보다 멀었다.
가로수길도 한적하다. 걸으며 땀을 흘렸고, 생각의 양은 최소화했다.
가로수길의 종점을 찍고 돌아가는 길.
빛의 방향 때문일까, 돌아가는 길이어서일까. 사진의 느낌이 너무 다르다.
빨간 자전거가 너무 예쁘다.
2인용 자전거. 하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하는 바램은 없었다.
나를 챙기고 싶었다.
<보성>
사흘째(17일), 늦잠을 자고 보성으로 갔다.
녹차밭은 여름향기 촬영지여서 가는게 아니라, 여름향기를 맡기 위해서 가는게 맞다.
목이 너무 말라서 아이스크림과 녹차를 다 시켰다.
이걸 다 먹고나서야 관광지에 왔다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녹차의 녹색은 사람을 차분하게 해준다. 너무 짙지도 너무 옅지도 않다.
녹차밭 꼭대기,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내려가서 바다를 가기로 결심했다.
앞에 가던 사람이 여자친구 사진을 찍길래, 난 꽃을 찍었다.
물소리가 좋아서, 물도 찍었다.
하늘이 예뻐서, 하늘도 찍었다.
나무랑 악수도 했다.
<율포 해수욕장>
썰물이라 모래와 뻘이 펼쳐져있다.
조그만 게가 날 피하지 않고, 빤히 바라본다.
눈매가 살아있다.
사진을 찍고 나니, 모래속으로 들어갔다.
바지락무침
회를 먹고 싶었는데, 혼자 먹기엔 부담될 것이라 해서, 그냥 주인 아주머니가 먹으라는걸 먹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 다 그렇지 뭐.
태양이 작렬하고, 배들도 쉬고 있다.
불과 10일전 오픈했다는 작은 수산물시장.
어항이 깨끗하니 해산물들의 앞날이 창창해보인다.
고등학교 후배가 카스에 글을 남겼다.
날씨가 좋으면 순천만에 가서 낙조를 보란다.
그래서 순천만에 갔다.
낙조를 앞두고 시간이 많이 남아 배도 한 번 타기로 했다.
저 배를 타려했는데, 재미없게 생긴 흰색 배를 타게 되었다.
순천만에 들어서면...왜 자연이 엄마인지를 깨닫게 된다.
크기가 서로 다른 방게들이 서로 티격태격하지도 않고 잘 지낸다.
햇볕이 강했지만, 모자를 쓰기 싫었다. 썬크림도 바르기 싫었다.
태양빛이 얼굴에 다 스며들었으면 싶었다.
배가 순천만 곳곳을 누빌 줄 알았는데...그냥 적당히 한 바퀴 휙 돌았다.
왠지 이걸 꼭 마셔야만 할 것 같았다. 마시기엔 좀 걸쭉했지만...덕분에 오래도록 허기가 안졌다.
낙조를 보기 위해 용산전망대로 향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약 1시간 30여분을 기다렸다.
해가 산 뒤로 넘어가고...주변에서 연신 셔터소리가 들린다.
찬란하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카메라 배터리가 잠들었다.
어디서 묵을까 방황하던 중 한옥집이 보여서 무작정 들어갔다. 가격을 떠나서 왠지 그러고 싶었다.
방을 잡고, 짱뚱어탕을 먹었다. 추어탕에 바다내음을 첨가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우연찮게 마을 주민과 말을 섞에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순천만의 밤경치를 보고 싶지 않냐고 물으신다.
밤에는 입장이 불가능한 순천만이지만,
뒷길로 나를 들여보내주셨다.
순천만 생태공원의 밤...
모처럼 밤답다.
카메라 조리개값을 2에 맞춰놓고 셔터를 누르니, 달빛을 다 흡수해서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이른새벽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셔터가 닫히기까지 한 1분은 걸린 것 같다.
나흘째(18일) 아침, 주인 아주머니와 한옥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 집을 짓는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옥답게 짓고 싶으셨단다.
그런데 사람들은 에어콘이 왜 없냐며, 발길을 돌린다고 했다.
민박/펜션만으로는 수익이 안나서 어쩔 수 없이 음식도 같이 파신다고 했다.
주인 아주머니와 꽤 오랜시간 한옥얘기를 했다.
이런저런 사연을 들으니 집이 더욱 빛나 보인다.
방 이름도 정겹다. 수박...사과.
난 사과방에서 잤다. 예전에 박인비 부모님께서 묵었던 방이라며 나 하는 일도 잘될거란다.
떠나려는데, 뭐 좀 먹고 가란다.
말린 토마토와 각종 콩을 넣고 죽을 끓여주셨다. 요새 사람들은 이런거 싫어한단다.
맛있어서 싹싹 긁어 먹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하고 집을 나섰다.
또 가고 싶다.
- 1부 끝 -
첫댓글 캬 사진들이 너무멋집니다. ㅎㅎ 형님이 여행하신포인트를 쏙쏙골라서 습득하는? 느낌입니다.
형 글도 참 잘쓰세요ㅋ
경상남도엔 안오셧습니까
사진과 글이 Art이십니다..ㅎㅎ
사진들이 정말 너무 멋지네요ㅎㅎ
와우~!! 감성을 자극허는 멋진 사진과 글들입니다
사진 예술이네요
우와... 내년에 여행갈 때, 다시한번 꼭 참고해야겠습니다.
사진과 글이 남도로 오라고 손짓하네요^^ 잘 봤습니다.
기행문이네ㅎ 재밌네요
사진 예술이네요... 여행을 떠나고 싶게 하는 글 입니다^^
힐링제대로하신거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