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내 가슴에 안겨든 사랑의 불 길 고요한 불빛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 아아아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이 노랫말은 60년대 오기택이란 가수가 부른 ‘영등포의 밤’ 이란 노래 가사인데 어린 시절 옆집 사는 형은 이 노래를 입에 달고 다녔었다.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놀던 형은 선풍기니 곤로니 뭐를 만들거나 고칠 때면 으레 나를 대동하였었다. 나는 재주 많은 형이 신기하고 마냥 신이나 조수노릇 한답시고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 덕분에 공기총도 쏴보고 오토바이 뒷자리도 앉는 특혜를 누려 봤는데 형은 어느 날 영등포에 공장을 다닌다고 아쉽게 떠나버렸다. 그때 처음 영등포란 곳을 인식하였다. 당시 포도밭 안양은 복숭아 많이 난다는 소사와 다를 바 없이 보잘 것 없는 소읍이었고 영등포를 가자면 박미와 시흥을 지나 오르는 선망의 융성한 곳이었다. 어렴풋이 성냥공장에 양평동 빵공장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은데 그 후로는 형을 본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노래가 어느 참인가 내 입에 따라 붙어 버렸다. 지금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 입에 못을 물고 망치를 들던 형 모습이 수수히 떠오르고 비가 올 때나 나 역시도 뭐를 만들어 보자고 수작을 부릴 때 그 가수의 묵직한 음조를 탄다. 그뿐만이 아니라 형 때문인지 노래 때문인지 왠지 영등포는 사나이들이 폼 잡고 가볼 곳이란 염두가 그 시절부터 자리했던 것도 같다.
친구하고 어느 동네 깡패가 제일 센지 겨루는 말 쌈에서 알지도 못하면서 끝까지 영등포 라고 우긴 것도 다분히 그 덕분이라 믿어진다. 그때부터 연정을 주어서인지 영등포가 그냥 나는 좋다. 모처럼 서울을 오르는 때 나의 최종 목적지는 영등포가 되곤 한다. 수십년 서울을 다녔어도 어둠이 깔리는 때 곳을 기어들어 갔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주 가는 곳은 아니지만 그러고 보면 꽤 오랜 시간 영등포는 나와 교우하였다. 전철역도 없던 때 인천에 잠시 학교를 다녔었는데 그때 안양에서 인천을 가자면 영등포에서 기차를 갈아타야만 했었다. 나는 힘겨워 학교 다니는 것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에 취직을 하여 인천이나 부천 쪽 공장을 들를 때도 영등포를 꼭 경유하였다.
영등포는 어쩌면 촌티 나는 내 면면으로서 만만하기도 하여 어쩔 수없이 마음에 드는 지도 모르겠다. 기차를 기다리며 나 같은 뜨내기가 동네를 채우는 어스름한 무렵 동네는 그제야 민낯으로 반색하며 절로 무르익는다. 질퍽한 골목은 우중충하고, 마시는 공기도 순순하지 않아 홍어 냄새 쯤 풍겨도 별탈이 없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자하도이든 길가든 널린 좌판은 모두 가난한 소용물들이다. 근심어린 표정으로 삼삼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나는 또 영등포를 본다. 번잡하지만 변변하지 않은 동네는 내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서울 속 시골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상경 길 막 올라 처음 마주한 곳이 영등포가 아니던가. 시골 냄새가 시시콜콜 따라 안 왔을 리 없다. 기실 서울역은 상징뿐이고 상행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영등포역에서 하차하였었다.
환락가에 왁자한 먹자골목에 시장이 뒤죽박죽인 이런 동네에선 객기도 흥정도 큰 몫이다. 주먹이 세거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당연 일등을 차지 할 수도 있다. ‘내 가슴에 안겨든 사랑의 불 길’ 이란 노랫말과도 같이 영등포는 야심한 쯤엔 사랑의 미로를 따라 야들야들 춤을 추는 화장 끼 짙은 양귀비이다. 혹여 환상 마냥 비운하여 암흑가의 잔혹한 음모와 생존본능이 어우러진 영등포의 밤이라 할지라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원래 맨 몸이 전부인 처지엔 닥치는 일이 너무 많지 않은가. 오늘 몇 년 만에 영등포를 또 찾았다.불야성을 이루는 영등포는 밤이 있어 존재 하는 양 오늘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객 찾는 불빛만 아롱지는 것이 환상은 이쯤에서 끝이 아닌가 싶어진다. 기실 그 옛날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하던 진등포라고 불리던 영등포로서야 마포나 노량진만한 포구나 되었던가. 여의도 비행장엔 불빛이 쓸쓸한데 영등포는 불빛만 아련하였다는 마포종점 노래처럼 차라리 한 강 넘어 강촌으로 외로웠을 때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과거 비둘기호만 서던 안양같은 조그만 역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통일호나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겨우 당도한 역이 바로 영등포역이었다. 더욱이 강화나 김포를 가자면 시외버스를 꼭 그곳에서 타야 했다. 그런 역이 이제는 KTX가 겨우 한 두 차례 서는 이도저도 아닌 허수아비가 되고 말았다. 구겨질 대로 구겨진 신세는 너무도 처량하여 비는 아니 오는데 노랫말처럼 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이 되어 버렸다. 정감이 짙고 한(恨)이 질기면 밤이 깊다고 했던가.
큰 허울만 뎅그러니 남아 한 겨울철 따뜻한 화장실에 몰려든 노숙자들만 득실한 것이 마치 가장 노릇하며 시집도 포기해 버린 세상이 야속한 어느 여인의 말로를 보는 것도 같다. 그간 영등포역 신세를 안 진 시골뜨기가 있을까. 사연 많은 한 때는 만남의 즐거움, 이별의 아픔과 상처로 기억되는 기차역이고 꿈에 젖은 동네 여관들이었는데 이제는 그리운 추억으로서만 남는 영등포 밤이다.
개찰구를 빠져 나오며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다본다. 내게 눈물바람 남기고 돈 벌러 간 형이나 장롱 속 밑돈을 몰래 꿰 차고 영등포에 내린 촌뜨기들은 지금은 한 몫을 챙겼을까. 차가운 밤기운에 취해서일까. 고단한 영등포역이 가로 지으며 뭐라 말하는 것만 같다. 왠지 노랫말 끝 구절'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은'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자꾸 밀려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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