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3일 토요일(금요무박) 설악산 한계령 ~ 남교리
신사 산악회 사니조은 하치윤 님과
산행코스 : 한계령 – 한계령 삼거리 – 귀때기청봉 일출 – 대승령 – 복숭아탕 – 남교리
산행거리 : 약 22 km 산행시간 : 약 14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618509
거리 21.8 km
소요 시간 14h 23m 21s
이동 시간 11h 19m 59s
휴식 시간 3h 3m 22s
평균 속도 1.9 km/h
최고점 1,595 m
총 획득고도 776 m
난이도 보통
주중 아열대 기후처럼 밤에 비가 오고 낮에는 햇볕 쨍쨍
열대야 있으나 심하지 않음
귀때기 오르는 중에 해돋이 구경
꽃 : 기름나물 개화 시작, 과남풀 꽃봉오리 맺음, 도라지모시대 만개, 바람꽃 아직 남았슴
개쑥부쟁이 피기 시작, 구름체 솔체 한창임, 금강초롱 안피었슴, 자주솜대 열매,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 날씨도 아열대 기후를 닮아가는지 주중 새벽에 비가 내리고 낮에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가 이어진다. 작년에 극심한 무더위의 잔상이 아직 뇌리에 박혀 있어 지금처럼 40 도도 안되는 지금의 기온은 그저 약간 덥다는 기분을 느끼게 할 뿐이다.
설악에 갈 때는 해돋이를 생각한다. 새벽에 올라 설악산 어느 곳에서든 조망이 트이는 장소에서 아침 일출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장관이다. 마침 금요일 밤 잡에서 바라본 해넘이 풍경이 아름답기에 더 큰 기대를 갖고 설악으로 떠난다.
새벽 2시 30분 한계령 휴게소
이번에는 어느 코스를 밟을까 고민했다. 오색에서 부지런히 올라가 대청봉 주변의 야생화를 둘러보고 서둘러 희운각에 7시쯤 도착하면 공룡능선을 타는 것도 괜챦을 것 같다. 아니면 울산바위 서봉을 거쳐 저항령, 황철봉을 거쳐 마등령으로 돌아 내려오는 코스도 생각해봤으나 한낮의 뜨거운 햇볕에 달구어진 돌길을 걷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 이것도 접어 놓았다. 올 해 들어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12선녀 게곡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마침내 한계령에서 내려 대승령을 거쳐 남교리로 하산하는 코스를 걷기로 계획을 세웠다. 경치가 아름답고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는 안산까지 둘러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여느때처럼 설악 휴게소에서 한 번 정차하여 숨을 고르고 새벽 2시 30분쯤 한계령에 도착했다. 입구를 유연하게 일찌감치 개방한 덕분에 휴게소가 한산하다. 주차된 승용차는 많은데 산객들이 모두 설악산 속으로 들어간 탓에 휴게소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몇 명 안돼 보인다. 우리도 산행채비를 갖춘 후 서둘러 벽처럼 가파르게 우뚝 서 있는 콘크리트 계단으로 오른다.
한계령에서 한계령삼거리까지 2.3 km 와 여기서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백두대간에 속한다. 오늘도 어느 산악회에서 대간꾼들이 온 건지 줄줄이 산길을 치고 오른다. 이들은 마치 시합하듯 황소 땅구르는 소리를 내며 오르막 돌길을 달리다가 앞에 조금 느린 사람이 있으면 그 뒤에 서서 가쁜 숨을 더욱 세게 토해낸다. 동료들끼리 주고 받는 얘기가 밤공기를 타고 멀리까지 들릴만큼 우렁차다. 나는 그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 옆으로 비껴 서서 한참을 기다려 준다.
4시 한계령 삼거리
좀 한갓진 곳에 서서 손전등을 끄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 차가운 밤 하늘에 비치던 그 별들이 초롱 초롱 매달려 있다. 그 별들이 흐르는 곳에 햐얀 구름처럼 희미한 은하수도 흐른다. 언제 내가 저런 별들을 바라보았던가. 이렇게 맑은 날 무박산행이라도 와야 별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늘 밝은 불빛에 둘러싸인 도심에서는 별을 구경하기 힘들다. 그러나 여기서도 마냥 별자리를 바라보며 서 있을 수는 없다. 높은 곳에 미리 올라가야 곧 다가올 해돋이를 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령 삼거리까지 한 시간 반 걸려서 올라오니 앞서 올라온 대간팀 한 무리가 쉬며 앉아 있다. 어둠속에 작은 불빛섬이 생기고 그 곳에 야시장이 들어선 느낌이다. 난 뒤에 올라오는 치윤 님에게 연락하고 그 곳을 떠나 귀때기청봉쪽으로 조금 가다가 있는 풀밭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산꾼들은 반대방향인 대청봉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풀밭 주변은 사위가 조용하다. 잠시 전등불을 끄고 다시 하늘을 보고 또 주변을 둘러본다. 이 곳에는 <동자꽃>과 <오리방풀> 꽃이 큰 무리를 지어 피어 있다. 큰 나무가 없으니 이렇게 풀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나보다.
한계령 삼거리 옆 풀밭에는 각종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
<도라지모시대>
<오리방풀>
<동자꽃>
치윤님을 만나 귀때기청봉으로 오르는데 차츰 여명이 밝아 오고 대청봉 너머 하늘이 붉게 물든다. 대청봉과 공룡능선 산줄기는 어두운 실루엣으로 비치고 그 너머 동해 위로 붉근 기운이 점점 강하게 퍼지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귀때기청봉으로 오르는 언덕은 집채 만한 바위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너덜지대다. 주변에 큰 나무들이 자랄 수 없으니 시야를 가릴 것이 없다. 그야말로 아침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우리는 십여 미터 오르다 뒤를 돌아보고 또 십여 미터 오르는 걸음을 반복했다. 그 때마다 풍광은 변한다. 하늘에는 마치 물에 노랑 빨강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햇빛에 반사된 구름이 그림같이 퍼져 있고 반대쪽 가리봉과 주걱봉 너머 인제읍과 원통쪽 그리고 점봉산 아래 진동리와 귀둔리쪽에는 운해가 덮여 있다. 그래 이런 풍경을 그리워했던 거다. 함께 산을 오르던 사람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 풍경에 도취되어 있다.
어떤이는 지난 저녁 해넘이와 밤하늘 별과 또 오늘 아침의 해돋이를 보려고 바위 위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한다. 날벌레를 피하려고 온 몸을 가리는 그물망 옷을 입고 또 다른 바위 위에서 아침을 해 먹으려는 듯 조리기구를 펼쳐놓고 있다. 그에게는 이런 풍경이 자못 실망스러운 모양이다. 그는 작품 사진을 찍으려고 멀리서 왔다고 한다. 그가 기대했던 것은 운해가 덮인 산 위로 붉게 타오르는 아침 노을과 해돋이였는데 오늘처럼 가느다란 구름만 몇 조각 흐르는데 구름에 가린 해가 뜨는 것은 성에 안찬다고 한다.
4시 40분 대청봉 너머 아침 노을이 밝아온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해돋이를 보고자 너덜길을 더듬어 오른다.
그가 입은 그물망 옷을 보고 나서야 우리는 주변에 날벌레가 엄청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먹고 있는 빵과 과일에도 금방 날파리가 달라붙는다. 자연 속에는 구석 구석 어디에도 생명체로 가득 차있다.
해가 동녘 하늘 위로 훌쩍 뛰어오른 후에야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고 산행을 이어갔다. 해가 오르니 만물이 눈 속으로 들어온다. 내가 이 길을 걸은 것은 지난해 가을 단풍철과 또 그 이전 8월 19일이었다. 두 번 모두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어 아주 만족스러운 산행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귀대기청봉에서부터 시작되는 각종 야생화 전시장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눈길을 잡아끈다.
벌써 <개쑥부쟁이>꽃이 피었다. 약간 푸른 빛이 감도는 하얀 국화꽃송이 같은 쑥부쟁이는 노란 꽃술과 함께 아침 이슬에 촉촉히 젖어 청초한 모습이다. 작년 산행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며느리밥풀꽃>은 이제 막 피기 시작이다. 어찌하여 우리나라 꽃들은 모두 슬픈 전설을 갖게 되었는지 아니 원래 꽃은 슬픈 이야기 속에서 피어나야 아름다운건지 의아스럽다. 지금 한창 피고 있는 <동자꽃>이나 쑥부쟁이나 며느리밥풀꽃이나 모두 주인공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으니 말이다. 마치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문학의 원리를 적용하여 지어낸 이야기 같기도 하다.
5시 40분 해는 멀리 동해바다 구름위로 완전히 떠 오른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신비스런 전설이 하나씩 하나씩 스며나온다.
<말나리>꽃이 오늘 하루의 예고편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오늘 산행에서 기대한 것은 <솔체>와 <금강초롱> 그리고 아직 남아 있을 <설악바람꽃>을 보는 것이었다. 물론 <왜솜다리>도 길가에서 만나면 반가울테고 <산오이풀>꽃도 만날 수 있을것이다. 작년 이맘때 이 길에서 만난 <가는다리장구채>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계획하고 찾아보는 꽃이나 나무도 있지만 시기가 안맞던가 아니면 서식지가 훼손되어 만나지 못하는 것도 있고 또 의외로 기대하지 않았던 꽃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산행에서는 정말 예상 밖으로 <금강초롱>꽃을 보지 못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피는 <도라지모시대>는 즐비하게 피어 있는데 그 고운 자태가 도라지모시대에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금강초롱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기대하였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
<분비나무> 솔방울
<쉬땅나무>
<배초향>
그 대신 생각지도 않았던 <솔나리>꽃을 많이 보았다. 1408 봉 (큰감투봉)에 이르기 전 나뭇가지 사이로 한 줄기 솔나리꽃을 보았는데 정성껏 사진에 담고 나서 대승령에 이르기 전까지 꽤 많은 솔나리를 볼 수 있었다. 2주 전에 이 솔나리꽃을 보러 충북 괴산에 있는 이만봉을 찾아가서도 비내리는 산을 힘들게 올라서 겨우 몇 송이 꽃을 보고 내려온 적이 있는데 이 설악산에서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연한 모습의 꽃을 만난 것이다. 빛도 곱고 지그시 고개 숙인 꽃의 모양도 마치 신선처럼 우아하다.
<개쑥부쟁이>
<애기며느리밥풀>
<산기름나물>
<은분취>
더운 날씨 탓인지 한 구비 두 구비 넘어갈 때마다 몸이 지쳐간다. 처음에는 안산에 들러볼 욕심으로 속도도 내 보았으나 나중에는 그냥 빨리 내려가서 계곡에 몸을 풍덩 적시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나보다 힘이 좋은 사니조은 하대감이 앞서 가다가 기다려주길 반복한다. 나보다는 야생화에 관심이 덜한 하대감은 내가 꽃 한 포기 만나 사진을 찍는 동안 벌써 눈에서 사라지고 그렇게 두 세 포기 꽃을 찍을라 치면 꼬리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달아나 있다.
<난장이바위솔>
<동자꽃>
<도라지모시대>
<설악바람꽃>
<솔나리>
<산오이풀>
<솔체꽃>
<왜솜다리>
산행길 내내 왼쪽으로는 아름다운 바위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참취>
<물레나물>
<둥근이질풀>
12시 30분 대승령에 도착했다. 남교리까지 남은 거리가 8.6 km 니까 4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겠다. 여기부터는 좀 큰 고개 하나만 넘으면 계속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남교리에서 버스 타는 시간이 오후 5시 20분이니까 계산상으로 시간이 꼭 맞는다.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덥고 힘들겠지만 저 앞에 우뚝 서 있는 봉우리를 넘어가야 한다.
<가는다리장구채>
<이질풀>
피터츠 만화에 나오는 강아지 스누피를 닮은 바위
<자주솜대>
하대감은 저기까지 30분이면 닿을 수 있겠다고 한다. 눈짐작으로 거리가 꽤 멀어보이는데 하대감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알고 있는건지 목소리에 힘이 간다. 앞서 가는 하대감을 따라 가다가 두어 번 쉬었다가 갔는데도 실제로 40분만에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더위가 목까지 타오른다. 내려가면서 계곡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더욱 조바심이 난다. 하대감은 어느새 경사진 내리막 길을 뛰어간건지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다. 난 저 멀리 보이는 안산마루를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길가에 자라는 풀과 나무를 보면서 천천히 내려간다.
<솔나리>
<돌양지>
대승령에서 안산 갈림길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다고 사니조은님은 자신만만이다.
시원한 계곡이 시작된다.
<노루오줌>
어디선가 땅속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지표에는 돌이 많아 대부분의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암반 위를 흘러내려가는가 보다. 조금 더 내려가니 비로소 안산에서 내려오는 계곡과 합수부 지점에 맑은 물이 흐르고 하대감은 벌써 웃통을 벗어 던지고 물속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와 있다. 얼음짱같이 차가운 물에 10초 이상 못있겠다며 방정떠는 하대감보다 내마음이 더 급해졌다.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벗는데 서두르는 마음에 비해 손이 느려 터졌다. 팬티만 남기고 다 벗어 버린 채 푹 파인 웅덩이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미 저 꼭대기부터 땅속으로 흘러내린 물이 냉기를 가득 품고 솟아났기 때문에 정말 뼛속까지 시리도록 차갑다.
갈증으로 타던 목으로 시원한 물 한 모금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없다. 설악산은 어느 코스를 가더라도 조금만 고생하면 물을 얻을 수 있는데 오늘 걸었던 코스는 능선만 따라서 걷는지라 중간에 물을 만날 수 없다. 준비해간 물을 아껴 마신 덕에 조금 남아 있었으나 쏟아 버리고 새 물로 채웠다. 한참 동안 물을 마시고 몸에 끼얹고 또 물속에 들어가서 놀면서 잠시 신선이 되었다가 언뜻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저 위에서 남녀 산꾼 둘이서 쭈뼛거리면서 우리쪽 눈치를 보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옷을 벗은 채 물놀이를 하고 있어 선뜻 다가올 수 없어 머뭇거리는 눈치다. 마침 우리도 자리를 떠날 참이었기에 얼른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그 사람들을 불렀다. 장수대에서 출발하여 안산에 올라 야생화와 풍경사진을 찍었다는 부부 산객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제 마음으로는 하산길이 얼마 남지 않은 기분이다.
이 코스의 절정은 복숭아탕이라 부르는 폭포다.
<음나무>
물에서 나온 하대감은 또 다리에 날개를 단 듯 훨훨 날아간다. 난 두어 번 다녀간 계곡이지만 이렇게 수량이 많이 흐르는 계곡물을 정성껏 사진에 담아 본다. 동영상으로 담고 사진으로 담고 하다 보니 걸음이 뒤쳐진다. 이 계곡은 흙이 다 쓸려나가고 그 밑에 드러난 거대한 바위 암반위로 물줄기가 모여들어 쉼없이 흘러내려가면서 움푹 패인 곳에 잠시 머물기도 하고 잘려 끊어진 곳에서는 폭포를 이루기도 한다. 그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열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면서 12선녀 계곡이라 이름붙였을까. 여러 폭포중에서도 폭포 중간부분이 움푹 들어간 모양이 복숭아 같다는 복숭아탕이 으뜸이다. 약 20여 미터 높이에서 쉼없이 떨어지는 맑은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물보라가 어떤 때는 전망대까지 튀어 신비함을 더해준다. 지금은 수량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떨어지는 물 소리가 가슴까지 시원하게 적셔준다.
오후 3시 15분. 이제 버스 탑승할 시간까지 2시간 정도 남았다. 하산해서 식사할 시간도 빠듯할 것 같다며 하대감이 또 다시 사라져 버렸다. 나도 이제는 서둘러야겠다고 마음먹고 부지런히 그의 뒤를 밟는다. 계곡 건너편에 아이보리색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나무가 보인다. 음나무 꽃을 처음 본다. 산에 다니면서 단풍잎 모양으로 땅에 떨여져 있는 음나무 잎을 처음 보았고 표피가 세로로 깊게 갈라져 있는 큰 나무 줄기를 보았는데 또 꽃이 저렇게 아름답게 피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렇게 차가운 물로 온 몸을 적셨는데도 한참 걷다 보니 몸이 다시 더워지고 목이 타오른다. 계곡에서 담아온 물을 다 마신다. 산행 날머리인 남교리 탐방안내소까지 2 km 기점을 지났을 때 앞서 내려간 하대감에게서 전화가 왔다. 1 km 기점을 지났으며 그 곳에서 계곡으로 들어가 몸을 적시겠으니 빨리 오라고 한다. 산행을 마칠 때쯤의 1 km 거리는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니 길에서 잘 보이지 않는 물가에 앉아서 쉬고 있는 하대감이 보인다. 나도 이번에는 마음보다 몸이 더 빠르게 계곡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옷을 입은 채 등산화만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온 몸을 담그고 자맥질도 쳐 본다. 사람의 몸은 70 %가 물로 되어 있어 지친 몸도 물속에 담그면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나보다. 시간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이렇게 잠깐이나마 물속에 들어가니 그렇게 좋을 수 없다. 하대감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도 젖은 옷을 벗어 정리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었다.
남교리까지 1 km 남았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물을 찾아 영혼을 추스린다.
새벽에 설악산 고을을 덮고 있던 안개가 하늘로 올라 하얀 구름을 만들었다.
이제 1 km 도 안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금방 물로 씻어낸 몸에서 또 땀이 배어나올 참이다. 먼저 내려간 치윤님이 밥을 주문해 놓았다며 빨리 내려오라 독촉한다. 계곡 아래쪽에는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우리는 계곡을 바라보는 식탁에 앉아 이 설악산 명물 음식인 뜨거운 황태국밥을 마시다시피 먹어치운다.
뜨거운 여름이다. 많은 회사에서는 여름 휴가를 이 시기에 사용한다. 돌아오는 고속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보인다. 게다가 갑자기 퍼 부은 세찬 소나기도 또 한몫을 하는 모양이다. 평소보다 1시간 이상 더 걸려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