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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 일반자료실 스크랩 <한국교회사5> 금산교회 지주 조덕삼장로와 머슴 이자익목사 이야기
정 기드온 추천 0 조회 6 14.07.05 21: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금산교회 이자익 목사<좌> 조덕삼 장로<우>
5. 금산교회 지주 조덕삼장로와 머슴 이자익목사 이야기

 

전북 김제 모악산 기슭에 위치한 금산교회는 1905년 테이트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전주에 선교기지를 둔 미국 선교사 테이트(최의덕)는 정읍을 가기 위해 모악산 자락을 넘어 금산리를 통과하곤 하였다. 말을 타고 다니는 선교여행이었기에 말이 쉬어가는 마방에 들렀고 자연스레 마방 주인이었던 조덕삼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예수를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그의 사랑채에서부터 금산교회가 시작되었다.

한편 김제지주 조덕삼(1867~1919)의 할아버지 조정문, 아버지 조종인은 본래 평안도출신으로서 중국 봉황성, 고려문을 넘나들며 홍삼장사 등 무역을 하는 거상으로 유명했다. 김제부자로서의 조덕삼의 삶은 남쪽의 넓은 김제평야와 금산의 금광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꿈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김제평야의 광활한 농경지, 그리고 금산의 금광에 대한 꿈을 안고 재산을 정리하여 단독으로 배를 빌려 이삿짐을 실고 남하하였던 것이다. 군산앞바다에서 만경포구를 거슬러 김제읍을 지나 금이 많이 난다고해서 붙여진 금산에 도착한 조종인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금광업에 투자하면서 평안도 거상답게 토지를 매입하고 정착하며 아들 조덕삼의 앞길을 튼튼하게 하였다.

금산교회를 말할 때 조덕삼 장로 말고 빼 놓을 수 없는 또 한명의 인물이 있으니 조덕삼 장로의 머슴이었던 이자익목사다. 이자익은 본디 경남 남해에서 고아로 생활하다가 입에 풀칠할 곳을 찾던 중 김제들녘까지 흘러들어 조덕삼의 집 마방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조덕삼이 예수를 믿으면서 함께 금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앙의 돈독함을 인정받은 그는 주인 조덕삼, 그리고 박화서와 함께 1905년 10월 11일에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차츰 교회가 성장하여 교인이 50명쯤 되었을 때 장로를 피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인들이 모여 투표한 결과 지방의 유지이며 김제부자이고 금산교회 재정을 모두 감당하고 있던 주인 조덕삼을 제치고, 그 집의 머슴 이자익이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장로가 되게 되었다.

이때 교인들이 술렁이며 근심하는 표정들이 영력했다. 그러자 조덕삼은 교회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교인들 앞에 나가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드려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교회를 더욱 잘 섬기겠습니다." 고 선언하였다. 그제야 투표결과를 놓고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던 온 교회가 대 환영을 하면서 조덕삼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 두 사람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집에서는 주인과 머슴의 관계로, 교회에서는 평신도와 장로의 관계로 성실히 자기 본분을 잘 감당해 나갔다. 후에 조덕삼도 금산교회의 2대 장로가 되었다. 조덕삼은 자기 집 머슴인 이자익장로를 평양신학교에 보내어 모든 경비를 부담하며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이자익이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된 후에는 다시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하였다. 이런 연유로 인해 자기 집 머슴 이자익을 공부시켜서 담임목사로 청빙한 주인 조덕삼장로는 금산교회를 훌륭하게 섬긴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이자익은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하면서 놀랍게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3대 총회장에 당선되었다. 장로교역사상 총회장을 재임한 역사가 없다. 그런데 이자익목사는 총회장을 3번씩이나 역임하는 등 장로교회사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를 키워낸 인물이 바로 자기 집 머슴을 자기보다 먼저 장로로 받들며 교회를 섬겼던 조덕삼 장로이다. 이렇게 빛나는 신앙생활을 살았던 조덕삼장로의 손자가 바로 국회의원이며 주일대사를 역임한 조세형 장로이다.

1908년도에 건축된 금산교회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전북지방문화재 제136호로 등록된 “ㄱ자” 예배당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에는 ‘팟정리교회’ 혹은 ‘두정리(荳亭里)교회’로 불렸고 금산교회라는 이름은 1930년대 이후에 붙여졌다.

금산교회는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한국식과 서양식의 건축특징이 병존하여 건축의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5평 정도의 강단은 2단으로 꾸며 결과적으로 3층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전래의 제단구조이면서 동시에 뜰-성소-지성소로 이루어지는 성막의 3중 구조를 연상케 한다. 금산교회당 안에는 초기부터 사용하던 풍금과 강대상, 강대의자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ㄱ’자 예배당은 그 골조가 100년 동안 손상 없이 잘 보존되어 있었으나, 2001년 봄 대대적인 개보수작업이 이루어져 지금 더욱 완벽한 옛 모습을 갖추고 있다.

소재지 :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91 (Tel. 063)548-4055)

▲ 금산교회 전경
▲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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