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에게 경사가 잇따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20일 정기주주총회에서 8년째 연임에 성공했다. 2007년 3월에는 증권업계 최연소 사장에 취임했는데 지금은 증권사 최장수 사장이 됐다. 지난 2월 26일 금융투자협회 ‘2014년 정기총회’에서는 이 협회 비상근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지난 1월 3일에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3회 다산금융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업황이 좋다면 화제가 안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증권업계가 혹독한 불황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외국계를 제외한 42개 증권사 중 적자를 기록한 곳은 19개사이고 전체 적자는 1756억원이다. 증권사의 절반가량이 매물로 나와 있고 자진 폐업하는 증권사도 10년 만에 나왔다. 시장에 비해 증권사가 많고 자본시장이 활력을 잃고 있는 것이 요인이다. 3월 27일 현재 국내 증권사는 61개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사진=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유상호 사장이 잘나가는 것은 한국투자증권의 실적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11년,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도 증권업계 당기순이익 1위를 기록했다. 3년 연속이다. 경쟁사들이 지점을 축소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동안에도 인위적인 인력 감축 없이 얻어낸 결과라 그 의미가 값지다.
성공비결이 뭘까. 큰 요인은 수익구조를 다각화했다는 점이다. 증권사는 주식거래를 중개하고 수수료로 먹고산다. 그러나 요즘은 이것만으로는 못 먹고산다. 증권사가 많아지고 주식시장은 활력을 잃고 있어 증권사들이 제살 깎아먹기식 중개수수료 인하경쟁을 벌여서다.
증권사들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이것이 되려면 CEO를 비롯한 구성원들의 의지가 있어야 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상호 사장은 이것을 해냈다. 유 사장은 “주식거래중개(BK), 투자은행(IB)업무, 자산관리(AM)의 수익구조를 적절히 안배하여 외부 요인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했다”며 “주요 수익원도 5~6개 분야로 다변화되어 있어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도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유 사장의 말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주식거래중개가 전체 수익의 45.5%, 투자은행 업무가 41.1%, 자산관리 업무가 13.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휴대전화-반도체-가전으로 구성된 과거 삼성전자의 황금분할을 떠올리게 한다.
유 사장의 롱런 비결은 투자은행 사업 부문의 성과에서 찾을 수 있다. 투자은행 사업 부문은 기업금융·인수영업·AI(대안투자)/M&A(인수합병)를 중심으로 한 기업금융본부와, 부동산금융·부동산투자·프로젝트파이낸스·인프라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금융본부 등 2개 본부가 핵심 축이다. 최근 수년간 기업 공개(IPO) 시장과 채권 인수 주선,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다방면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며 투자은행 시장을 선도해 왔다. 2010년 삼성생명 IPO 대표 주관사 선정, 2011년부터 2013년까지 IPO 및 회사채 발행 등 투자은행 전 부문에서 국내 최상위권의 실적을 달성했다.
유 사장은 수익원 발굴에도 열심이다. IB 부문의 기존 주요 수익원인 IPO, 주식자본시장(ECM), 채권자본시장(DCM) 외에 해외자원개발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업계 최초로 해외자원개발사업에 투자하는 2개의 사모투자전문회사(PEF)를 3800억원 규모로 운용하고 있다. 이 중 2012년 8월 설립한 데보니안 해외자원개발 PEF는 최근 첫 투자로 캐나다 타이트오일 가스 개발 지분 37.5%를 인수하고 총 1억4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2010년 설립돼 운용 중인 글로벌다이너스티 해외자원개발 PEF는 내년 말까지 호주, 북유럽의 자원개발사업에 13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인수금융에서도 신규 수익을 내고 있다. 올 상반기 M&A 시장에서 최대어로 꼽히는 칼라일의 ADT캡스 인수에 1800억원의 인수금융을 제공, 첫 주선 실적을 올렸다. 최근 M&A 시장은 PEF(사모투자전문회사)가 주도하고 있는데 PEF들이 빠른 의사결정 및 보안유지를 이유로 시중은행 대신 증권사를 금융주선사로 선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중장기 목표는 ‘2020년 아시아 대표 투자은행’이다. 유 사장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직접투자, 금융자문, 인수중개업무를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 금융회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오일머니를 유치한다는 방안도 세워놨다.
베트남 투자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2010년 인수한 베트남 현지합작증권사 ‘키스 베트남(KIS Vietnam)’은 당시 업계 50위에서 지난해 25위로 급성장했고, 올해는 15위를 목표로 한다. 보유 지분을 48.8%에서 92.3%로 확대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수년에 걸쳐 신뢰를 쌓고 네트워크를 확보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가능했다”며 “증권사의 해외 진출은 30년 후를 보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이 베트남에서 신망이 두터운 걸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 3월 25일에는 베트남 금융당국 고위급 인사들이 한국투자증권을 방문했다. 이들은 베트남 총리실을 비롯해 재무부, 중앙은행, 증권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등의 과장급 이상 고위 간부 15명으로, 금융감독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 후속 사업의 일환으로 초청했다. 베트남 당국자들은 지난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증권거래소를 찾았다. 공식일정 가운데 국내 금융사 방문은 한투증권 한 곳뿐이다.
유 사장의 성공 비결을 하나만 들라고 하면 결국 사람에 대한 욕심과 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재 채용부터 전문가 양성까지 직접 나선다. 한국투자증권은 2005년 동원증권과 한투증권이 통합해 출범했다. 그는 2007년 3월 사장에 취임한 이후 단 한 번도 직원 감축과 대규모 지점 통폐합 등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았다. 한국투자증권은 직원 근속연수 업계 1위다. 지난해 다른 증권사들이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 유 사장은 오히려 150여명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올해도 영업환경은 간단찮다. 유 사장이 어떤 솜씨를 보여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