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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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18)굴뚝 청소
풍기 사는 홀아비 먹장수 오 생원은 허구한 날 술타령이다. 부지런히 먹을 만들어 이 서당 저 서당 돌아다니고 이 사랑방 저 사랑방 단골도 여럿 만들어놓고 장날 찾아다니며 전을 편다. 심심찮게 이문을 남기건만 전대가 묵직할 날이 없다. 식구가 많아 돈 쓸 구멍이 널려 있는 것도 아니요, 드러누운 부모가 있어 약값이 나가는 것도 아니다. 서른셋의 건장한 홀아비가 돈을 버는데도 논밭 하나 못 사고 매년 그 장단이니 무엇이 잘못됐는지 지난 그믐날에 곰곰이 생각을 했다.
오 생원이 만드는 먹은 송연(松煙)먹이다.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과 우피(牛皮)를 끓여 만든 아교와 물, 그리고 오 생원만이 알고 있는 비장의 물질을 혼합해 틀에 부어 만들어낸다. 소나무 태운 그을음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오 생원이 고집하는 것은 육송·해송 따위가 아닌 백두대간의 금강송이다. 금강송 그을음은 십년이 넘은 나이 지긋한 그을음이다. 재료뿐만 아니라 배합비율, 삶는 시간 등 나름의 제조비법을 고집해 오 생원의 송연먹은 확고하게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왜 전대는 항상 가벼운가? 그을음을 너무 비싸게 구입하는 게 첫째 문제였다. 십년 넘은 금강송 그을음을 오 생원에게 공급해주는 사람은 박 노인이다. 한근에 열닷냥, 만만찮은 값이다. 박 노인은 그을음을 어떻게 구할까? 박 노인의 말인즉슨 산골 노인들이 가끔씩 무릎 관절약을 하려고 광에 매달아놓은 걸 비싸게 사온다고 둘러댔지만 그게 거짓말이란 걸 오 생원은 알아냈다. 박 노인은 굴뚝 청소부를 따라다니며 그을음을 공짜로 얻어 오 생원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정월대보름이 지나자, 오 생원은 단봇짐 하나 달랑 매고 왕대나무를 쪼개서 둘둘 감은 굴뚝 쑤시개를 어깨에 걸치고 집을 나섰다. 울울창창한 금강송에 파묻혀 있는 봉화 땅 반야골로 들어가 목이 쉬도록 외치고 다녔지만 부르는 집 하나 없더니 오후 늦게 외딴 너와집 안주인이 굴뚝 청소부를 불렀다. “아지매, 우선 요기부터 채워주시구랴, 뱃가죽이 등짝에 붙었소.” 감자가 박힌 꽁보리밥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나서 정중하게 밥값이라며 한냥을 개다리소반 위에 올려놓았다.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 “돈 받으려고 드린 밥이 아닌데.” 오 생원이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 마른 솔잎을 아궁이에 넣어 불을 붙이자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둥 마는 둥이다. “굴뚝 청소한 지 얼마나 됐소, 아지매?” “그이 살았을 적에 했으니 십년도 넘었구먼요.”
오 생원은 어둠살이 내릴 때까지 아궁이를 쑤시고 굴뚝을 쑤셨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불꽃이 기세 좋게 빨려 들어갔다. “굴뚝 청소값이 두냥이라 했지요?” 아주머니가 아까 밥값으로 받은 한냥에 한냥을 더 보태서 두냥을 들이밀어 오 생원은 돈을 받아 넣고 “부엌에서 목간을 좀 해야겠소. 그리고 건넌방에 잠 좀 재워주고 내일 아침밥도 좀 부탁합시다.” 그러면서 다섯냥을 아주머니 손에 쥐여줬다. 아주머니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오 생원은 일부러 부엌 장지문 쪽으로 서서 사타구니를 씻었다. 아주머니가 깜깜한 밖에서 장지문 틈으로 오 생원 목간하는 걸 숨죽여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오 생원이 마루 건너 안방문을 열자 문고리가 걸려 있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놀란 척, 빼는 척도 하지 않고 두팔로 오 생원 목을 감았다. 너와집이 흔들거리도록 격렬하게 두합을 치르고 나서 과부는 은근히 오 생원이 해우값을 내놓을 줄 알았는데 팔베개를 한 채 엉덩이를 두드리며 “아지매~몇년 만이요?” “십년도 훨씬 넘었소.” “이번 굴뚝 청소값은 안 받겠소.” 아주머니는 아직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 생원 가슴을 꼬집었다.
오 생원이 건넌방으로 와 곰곰 생각하니 돈 모으지 못하는 이유 중의 또 하나가 장날마다 색줏집에 가서 돈을 왕창 쓰는 것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이 산골 저 산골 과부 굴뚝 청소로 그 돈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첫댓글 실미도형님#(*&***)
잘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다~~^^
신의묘수! 네요~^^
이젠 떼부자 되것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