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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를 사랑하는 사람들[해.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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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비화 스크랩 아~구월산 (구월산의 여장군)
유격전사 추천 0 조회 61 08.05.09 11:2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구월산의 여장군(女將軍)>


프롤로그 

묘표도 없이 버려진 주검  ---2


제1부 슬픈 회고

1. 꿈은 사라지고   ---3

2. 그리던 조국은 아니었다  ---11

3. 독아(毒牙) 밑에서  ---16

4. 그립다 자유가  ---21

5. 피신 1년은 괴로웠다  ---25


제2부 싸우는 여장군

1. 아- 서울은 어디로  ---29

2. 유격대는 싸운다  ---35

3. 사선을 넘어  ---42

4. 목동아 잘 가거라  ---50

5. 전선에 피어난 애정  ---56

6. 조국의 하늘은 맑다  ---59

7. 총을 겨누는 형제  ---69


제3부 아! 대한민국

1. 자유대한의 표정을 보고  ---75

2. 구류전우 석방에 동분서주  ---79

3. 나는 반공에 미친 여자다  ---82

4. 파란만장한 여장부의 최후  ---83


※ 1953. 1. 1.  우현사 간 이기건 저

프롤로그

-묘표도 없이 버려진 주검


  1959년 10월 14일, 서울 서대문교도소 여수(女囚) 병동 구석진 곳에서 37세의 한 중년여인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극도의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그 여인은 화광(火光) 같은 눈망울로 천정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애타는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입술과 혀가 말을 듣지 않아 옆에 누운 환자들은 그녀가 하는 유언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연고자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교도소 당국은 뒷산 연탄재 속에 가매장을 했다. 나뭇조각에 이름 석자를 적어 묘표를 삼았으나 이틀도 안 되어 산에 올라온 개구쟁이들이 뽑아 버렸다. 10일쯤 지나서야 의정부에서 달려온 중년의 사나이가 가매장된 여인의 시체를 파내어 리어카에 싣고 화장터로 옮겼다.

  10월 25일, 조계사에서 유골을 봉안하는 불교의식에 참예한 사람은 5~6명에 불과했다. 그 여인은 누구인가. 그 여인은 왜 교도소 병동에서 37세라는 한창 나이에 숨을 거두어야 했던가. 그리고 그녀의 주검은 어찌하여 그토록 쓸쓸한 의식으로 ‘처리’되고 말았을까.

  그녀의 이름은 이정숙(李貞淑).

  연만한 독자들은 6․25 동란 중 구월산 지구에서 반공유격대가 신화 같은 싸움을 벌였던 것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더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그 구월산에 ‘구월산 여장군’이 있었던 것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서대문 교도소 병동에서 영양실조로 숨을 거둔 이정숙-그녀가 바로 구월산을 주름잡았던 여장군이었던 것이다.


※ 1997. 4월호 월간 『동화』  p.182-204 역사에 묻는 특별리포트

  <구월산 여장군은 왜 감옥에서 죽어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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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5.13 11:43

    첫댓글 구월산 여장군 이정숙님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 17.06.14 05:26

    통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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