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와 마께
성 대림
‘외손자를 괴려거든 마께를 괴라’는 말이 있다. 아니 들은 적이 있어서 확인이 필요하다. 외할머니한테 들었던가? 어린 시절에는 괸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가 그 말이 ‘사랑한다는 뜻이란 걸 알고는 아, 그렇다면 외손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덩드렁마께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못하다는 뜻이라는 걸 깨닫고는 외가와의 사랑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임의로 해석하고는, 조손 관계라는 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헛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중학생 시절의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래에 딸과의 관계가 서먹하던 차에 불쑥 연락받고는 딸 가족이 나를 만나고 싶다고 일부러 먼 제주까지 찾아와 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작년 어린이날 부근의 일이었다. 외손자를 처음으로 만나서 짧지만 감격스러운 인사의 시간을 가졌다. 점심시간에 불려 나가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인사하고 식사하였다. 반가운 일이었다. 손자도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눈치여서 기분이 썩 좋았다. 자신이 만든 방학 숙제인 것 같은 수제 선물 세트 모형인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작업했을 것 같다. 당돌하게도 내게 바둑을 둘 줄 아느냐고 물었다. 자신은 바둑을 좋아해서 학교 바둑 모임에 가입했고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나도 바둑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다음에는 나와 바둑 한판을 두고 싶다고도 말했다. 딸의 설명으로는 손자가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졸라서 남편과 함께 방문했다고 하였다. 처음에 얼핏 든 생각은 딸이 아비를 보고 싶어서 손자를 빙자하여 오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아니었고 딸의 설명이 맞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해가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다. 딸이 일본으로 밀항함으로써 혹 덩어리처럼 남겨준 외손자가 늘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내 외가와 성가는 다니던 초등학교를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으로 떨어져 있어서, 이후로 나는 두 마을을 번갈아 오가며 초등학교를 다녔다. 정월 명절이면 학교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였었다. 성가에서는 신정을, 외가에서는 구정을 쇠었기에 세뱃돈도 각각 나누어서 받았고, 명절도 두 번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발길이 뜸해졌지만, 어쩌다 자신을 찾아서 먼 길을 오면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며 헤어질 때면 이불 틈새에 숨겨둔 비상금을 꺼내서 차비로 쓰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라면서 손에 꼭 쥐여주셨다. 어떤 때는 일부러 외할머니를 속상하게 하려고 뜬금없이 울음을 터뜨리고는 마구 달아나기도 하여 애를 태워드리기도 하였다. 어린 나이의 손자를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게 항상 정성으로 대하여 주셨다. 손자도 외가에 방문할 때는 늘 배가 고픈 상태로 가서 맛있게 식사하였다. 한번은 점심 식사 후에 방문하여 식사했다고 했지만, 상 차려주어서 반 정도만 먹었는데 할머니가 실망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대학 일학년 때 돌아가셨다. 방학 때 내려왔을 때 넘어져 드러누워 계셨다. 비행기를 타고 고향을 떠나면서 아마 내가 돌아올 때는 할아버지는 안 계실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들어서 잠시나마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조용히 울었던 기억도 난다. 그 후로 얼마간 더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지만 나는 못 내려오고 나중에 묘소를 방문하였었다. 외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기억에 없다. 내가 사는 일정이 무척 바빠서 돌아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외할머니가 안 계신 외가를 여러 번 방문하였지만,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외손자를 괴려거든 마께를 괴라’는 말이었다. 살아계셨던 동안은 손자였지만 돌아가신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외가는 낯설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는 점차 멀어져서 마침내 발길이 끊어지고 말았다.
비록 외손자이긴 해도 할아버지를 찾아주는 일은 기분이 좋다. 두 세대를 건너야 하니 대략 60년의 시간적인 간격이 존재하는 셈이다. 며칠 전 일하는 중에 전화가 걸려 왔는데 바로 받지 못하고 나중에 전화했더니 ‘손자가 할아버지한테 전화했었는데, 지금은 학원에 갔어요.’라고 딸에게 전해 들어 무척 섭섭하였다. 다음 날에는 전화로 반가운 손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나를 보고 싶다고 하였고 다시 제주를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 교내 바둑 대회에서 5등을 차지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다음 만날 때는 바둑 한판을 안 둘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는 제 부모를 졸라서 반드시 방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이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