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세요... 문제의 정답이 이상하네요... 정말 4번이 맞는지 저도 의심스럽네요.
일단 2번과 3번은 답이 아님을 확실히 알수 있고 1번과 4번이 경합하는데...
1번의 사이고 다카모리는 메이지유신에서 왕정복고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를 하고 정한론을 주장하였고
결국 1876년 강화도조약이 이루어졌음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이고 다카모리는 1877년 서남전쟁에서 자결하는데, 조미수호통상조약은 1882년이고
그 배경이되는 조선책략이 국내에 도입되는 것이 1880년 이에 대한 위정척사의 영남만인소는 1881년입니다.
아마 출제자는 이 부분에 촛점을 둔 것 같은데 위정척사 운동이 격화되었으니
유교적 화이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것으로 파악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기에
제가 보기엔 이 진술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정한론이 강화도 조약 체결로 일단락되었기에 또한 사이고다카모리라는 인물이 지문에 나왔기에
시기상 맞지않으므로 1번도 답이 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한론으로 인해서
첫댓글 선생님 답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