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산 이름(山名)
1). 백운봉(白雲峰 속칭 뒷동산 산16번지)
무이리에서 가장 높은 메이며 주산이다. 속칭 뒷동산이라 부르는데 순성(舜成)씨의 말씀으로는 백운봉 이라고 한다.
이 산이 예천군 소유로 되어 있어 고민하던 중 1970년 연고자에게 불하한다는 통지를 받고 즉시 선친의 명의로 매수하였다.
마을 주변의 산들은 원래 우리의 소유였으나 일제 때 토지측량 후 보존등기 할 때 부과되는 세금이 무서워 소유권을 포기하거나 임야관리의 효율을 기하는 조건으로 식목사업을 학교나 군으로 위임한 것을 기화로 학교와 군(郡)에서 소유권을 빼앗은 것 이 아닌가? 생각한다.
2). 비룡산(飛龍山 산 279번지 속칭 동수나무 산)
소천서원 뒤쪽 동수나무가 있는 산으로 축산(竺山) 전씨(全氏)들의 선산이며 이 산 아래 소천서원(蘇川書院)과 청원정(淸遠亭)이 있다. 축산부원군(竺山府院君) 전원발(全元發)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음.
3) 백호산(白虎山)및 백 장군 산(白 將軍山)산622-2)
밧마을 서쪽에 있는 산으로 백운봉(뒷동산)을 중심으로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등성이다. 주산에서 서쪽을 돌아 남쪽을 휘감아서 말물 자(勿 字)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 백호산 끝머리에 쑤뚝 쪽으로 추월헌(秋月軒) 백 진양(白震陽)공의 산소가 있다고 해서 이 부근을 백 장군 산이라고 부른다.
4) 와부산(臥釜山, 도부산(陶釜山) 무이리 산1번지 속칭 뱀 머리, 길가메)과 표석산(表石山 산 446번지)
용궁 읍부리에서 원당리로 가는 큰 길 오른 쪽 키냇가의 산으로 그 모양이 가마솥을 엎어놓은 듯하다 고‘와부산, 도부산’이라 고 하기도 하며 혹은 도사리고 앉은 뱀의 머리 같다고 해서‘뱀머리’또는 큰 길 가에 있다고 해서‘길가메’라고도 한다. 도부(陶釜)는‘지루가마’란 뜻이니 이것이 길가마로 변칭되다가 길가메란 이름이 된 연유일 것이다.
이 길가메 공동묘지에서 안마을 쪽의 높은 등성이를 표석산(表石山)이라고 한다. 표석산이란? 안동 권씨들의 산소에 묘표석이 있기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산이 낮아서 별다른 이름이 없고 다만 편이상 쉽게 부르는 이름이다.
5) 붕어산과 쪽박산(592번지)
창암정(滄菴亭) 주위의 산세가 어옹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형국인데 정자에서 북서쪽 돋들 가운데 붕어 모양의 아주 작은 봉우리가 있다. 마치 낚시를 향해 꼬리쳐오는 듯한 모습이어서 붕어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다 같은 산이지만 이봉우리를 소천동에서 보면 마치 쪽박을 엎어놓은 듯이 보인다. 둔텃골에서 흐르는 골짜기의 물이 이 쪽박산 북쪽 즉 쪽박의 손잡이 쪽 소천동으로 흐를 적에는 이 마을이 번창하고 사람이 많이 거주하였는데, 이 골짜기의 물을 쪽박산 동쪽으로 돌리면서 바가지를 들고 구걸하는 모습으로 변하면서 동리가 폐동이 되고 지금은 세 가구가 산다. 이 또한 풍수지리상의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6) 진등(긴등)
안마을 서당 뒷 산과 표석산으로 해서 마을 동남쪽 끝까지 길게 뻗은 등성이로 구읍으로 가는 대로가 나 있고, 이 진등 밖으로 또 하나의 등성이가 있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골안으로 통한다.
6. 내 이름(川名)
1) 내성천(乃城川)
마을 앞들 동남쪽을 감돌아 흐르는 내로서 강 건너에는 성저리(城低里)가 있다. 봉화군 내성읍에서 흘러온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나‘무이서당기’에는 사천(沙川)으로 나타나 있다. 아마 항상 모래가 냇바닥을 이룸으로 해서 사천이란 이름이 생겼으리라고 믿는다.
2) 금천(錦川, 소천(蘇川),성화천(省火川, 省川)
마을 서편 백호산 너머로 이 산등성이를 감싸고 흐르는 내로서 문경군 산북면에서 흘러온다. 어째서 이 같은 이름을 붙였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내성천에 비해서 자갈이 많고 항상 물이 맑아서 비단 띠를 두른 듯하다 고 금천이라는 이름이 된 것 같고, 삼한시대 소도(蘇塗)가 있지 않았나 의심한다. 청원정 뒤쪽 물가에서 토기가 많이 노출된 사실도 주의를 기우릴 만하다. 성화천은 성자(省字)가‘살필’이란 뜻이니 아마‘살미’동네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무이서당기’에는 소호(蘇湖)로 나타나 있다.
3) 키내(箕川)
마을 입구 즉 북쪽 뱀머리 산줄기를 감싸고 흐르다가 금천에 합류하는 개울로 키의 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 물의 근원은 본면(本面) 덕계리(德溪里) 덕봉(德峰)에서 발원한다고 한다. 이 물이 범남 하면 아이들이 등교가 어려워 많은 불편이 있었으나 요즈음은 튼튼한 교량이 건설되어 통행의 불편은 사라졌다,
4) 가지내(枝川)
금천 하류에 삼각주가 생기면서 물이 갈라져 내린다는 뜻인데, 이곳으로 문경군 산양면 왕태리 앞들에서 나오는 작은 개울과 합쳐진다. 이곳에서 쏘가리, 텅어리 같은 물고기가 많이 잡혔었다. 지금은 농지 정리와 하천 정비공사로 인해 물길이 변경되어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5) 쏘내와 물방아
금천 하류 ‘쑤뚝’을 지나‘딴섬’에서‘속섬’으로 흐르던 내로서 이곳이 깊어서 소(沼)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지정리로 인해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한때 이곳에 물방아가 있었으나 내가 없어지면서 모두 사라졌다.
6) 항상골도랑(구617)
갯밭과‘대추말개’사이로 흐르는 커다란 도랑으로 이곳을 어째서‘항상골도랑’으로 불렀는지 알 수가 없으나 생각하건데 내성천이 갯마을을 감돌아‘둥둥바우’로 해서‘몰개서리’를 만들고‘모정끝’에서 굽이쳐 항상골도랑으로 흐르다가 심한 굽이(蛇行川)로 인해 물길이 변경됨에 따라 잔류로 남아있는 물길이 안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마을 물의 베수구 역할을 하다가 보니 항상 골이 지고 도랑물이 흐르게 돼‘항상골도랑’이라 하지않았나 의심한다. 이 근처의 들 이름이‘해농굼, 팔상개, 몰개서리’라 하여 지금도 들 가운데서 가장 낮은 지대로 침수가 잦은 곳이다. 경지정리 후 새로운 수로로 바뀌었다.
첫댓글 무이 향가에도 나오는 뒷동산 등 어릴 때 보고 자랐던 이름들을 보니 옛 추억이 새롭군요.초등학교 다닐 때 매일 건너 다니던 개울을 치내로 알고 있었는데 "키내"였군요.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속 부탁드립니다.
무이리 소사는 선조들이 살던 곳의 역사 자료이므로 조상의 발자취란에 올리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조상의 발자취"란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상의없이 옮겨 죄송합니다.
명칭과 유래 너무 고맙습니다.
저세한 설명에 엣추억 생각 나서 조앗습니다 수고많이 하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