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 여인 룻과 유력한 사람 보아스 (룻기)
룻기의 저자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를 소개하기를 ‘유력한 자’ (개역)라고 한다 (룻기 2:1). 이는 ליח רובג שׁיא (‘이쉬 기보르 하일’)이라는 히브리어 표현을 번역한 문구인데, 표준 새번역은 ‘재력이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공동 번역은 ‘유력한 재산가’로 번역하고 있다. 히브리어 명사 רובג (‘기보르’)와 ליח (‘하일’) 모두 폭넓은 의미 영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표현을 번역하기란 쉽지가 않다. 따라서 이 표현의 의미는 언어학적인 고찰보다는 오히려 보아스의 가문을 살펴봄으로써 그에 대합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보아스는 유다 지파 사람으로서 그의 아버지는 살몬이요, 살몬의 아버지는 나손이요, 나손의 아버지는 아미나답이다 (룻기 4:18-20). 아미나답은 모세의 형이자 최초의 대제사장인 아론을 사위로 삼는다. 아미나답의 딸이자 나손의 누이인 엘리세바가 아론의 아내가 된 것이다 (출애굽기 6:23). 나손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를 나올 때 유다 지파의 족장으로 선발된 사람이다 (민수기 1:7; 2:3; 7:12, 17; 10:14). 나손은 이집트에서 나온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죽었을 것이다.
살몬에 대하여는 구약 성경에서 이름과 가족 관계 외에 언급하는 바가 없다. 단지 신약 성경을 통하여 그가 여리고의 기생 라합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마태 1:5). 그가 광야에서 죽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라합과 결혼한 점을 미루어 그는 이집트에서 태어나지 않고 광야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혹시 그는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 (여호수아 2:1-24) 중의 하나가 아닐까? 여호수아서에 두 정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살몬은 유다 지파 족장을 지낸 사람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정탐으로 뽑힐 가능성이 크며, 또한 라합과 결혼한 점을 통해 보더라도 여리고에서 그녀가 자기 목숨을 살려준 일을 계기로 그후 그녀와 결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승승장구하는 여호수아 군대를 따라 서진하여 마침내 베들레헴에 정착하였을 것이다. 집안 조상들의 배경이 이 정도라면 보아스는 얼마든지 ‘유력한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룻은 모압 여자이다. 룻이 속하는 모압 족속은 그들의 조상인 모압에게서 유래되는 명칭이다. 모압은 소돔 고모라가 망한 후 죽음을 모면한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 자신의 큰 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창세기 19:37). 모압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그들을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그들을 저주케 하려 하였었다’ (신명기 23:4). 에돔 사람이나 애굽 사람의 삼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허용된 데 반하여 (신명기 23:7-8), 모압 사람은 롯과 그의 작은 딸 사이에 태어난 벤암미(창세기 19:38)의 후손인 암몬 사람과 더불어 ‘십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못박음으로써 (신명기 23:3), 십대 이후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도록 허용될 수 있는 사생자보다도 (신명기 23:2) 못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룻은 이러한 명령이 떨어진지 불과 네 세대도 지나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물론 룻은 여자였기 때문에 남자 보다는 쉽게 여호와의 총회 곧 이스라엘 백성의 틈에 끼여 들어가기가 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모압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일 또한 간단한 일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 여인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기 1:16)라는 굳센 다짐과 고백으로 여호와의 총회에 대한 그녀의 집념을 굽히지 아니하였다. 시아버지도 남편도 잃고 시동생도 없던 룻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기를 바란 것은 결코 남자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보아스는 룻의 이러한 집념을 간파하고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기 2:12)는 말로 그녀를 축복할 뿐 아니라, 후에 친히 그녀를 아내로 취하여 자신의 축복을 현실화시킨다.
보아스와 룻의 이러한 관계는 후에 유대인 예수님과 로마인 백부장 사이에 있었던 일에서 그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여도 자기 하인이 낫겠다’는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기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신 예수께서는 연이어 말씀하시기를,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쫒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시었다 (마태 8:10-12).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많은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버림을 당하는 반면 도리어 이방인 중에서 많은 이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리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은 이방인의 구원을 또한 염두해두셨다. 아니, 이스라엘을 택한 그 일 자체가 바로 이스라엘 뿐 아니라 또한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문을 열어두기 위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선택에 있어서 시간적 한계선을 그어 둘 이유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예수께서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택함’이라기 보다는 ‘청함’이라고 표현함이 더 적절할 것이다 (마태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옛적에 보아스를 통하여 모압 여인 룻이 진정한 의미에서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유대인 이방인을 막론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과거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일과 메시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이방 교회를 세우신 일은 결코 서로 대치되는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일은 모든 일을 순서대로 질서있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한 결과이다.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라의 본 자손들’ 곧 유대인들중 대부분이 자기들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옛날 이방 여인으로서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와 ‘현숙한 여인’이라고 (룻기 3:11), 그리고 ‘외로운 시어머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라는 (룻기 4:15) 칭찬을 들었던 룻과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께 신실한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본 백성 유대인의 칭찬을 들으며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시기의 대상이 될 것이다 (로마서 11:11.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