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굽이굽이 휘어진 도로를 곡예 하듯 유유히 잘도 돌아 나간다. 아직도 더운 늦여름 날씨는 땀방울을 흐르게 하고, 산허리마다 푸르고 울창하게 우거진 숲속의 나무들은 볼 때마다 싱싱한 꿈이 부풀어 올라 마냥 하늘로 향한다. 쌍곡 입구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바위들이 마치 하늘 끝까지 탑을 쌓아 올린 듯 높다랗게 층층이 펼쳐져 있는 여러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감탄사가 절로 튀어 나왔다. 스마트 폰을 꺼내 신이 만들어낸 듯한 봉우리마다 찰칵찰칵 곱게 찍어 댄다. 사진 화면이 차례로 곱게곱게 쌓이며 기묘한 바위들이 눈가를 스치자 시원한 개울물 소리가 정답게 들려온다. 그 모습을 보려니 문득 20여년 전 칠성중에 있을 때 소풍을 왔던 기억과 당시 학생들 모습이 아득히 물가에 나타났다 천천히 사라진다. 그 시절 학생들이 잠시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자연과 바위들은 다 그대로 인데 정든 동료들과 제자들은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할까?
차는 천천히 다시 달려 여러 계곡과 펜션과 야영장을 지나 교직원 휴양소에 도착을 한다. 산꼭대기마다 커다란 바위들이 여기저기서 빛이 나고 허리의 울창한 숲들은 휴양소를 더 멋지게 꾸며준다. 골짜기 갈대숲으로 흐르는 시냇물은 여전히 졸졸졸 흐르며 시원한 노랫가락을 들려준다. 잠시 그늘에 앉아 있으려니 스치는 바람에 툭하고 알밤이 떨어진다. 9월에 접어들자 날씨는 더워도 가을이 문턱에 왔는지 언덕에 서있는 밤나무에는 송이마다 알밤이 빨갛게 익어 입을 벌릴 때마다 붉은 알들이 심술궂은 바람에 마구 쏟아져 날린다. 나무 밑에 빨갛게 쏟아진 알밤을 주우며, 벌어진 밤송이를 부지런히 발로 밟자 비닐봉지가 수북하게 부풀어 올랐다.
정오에 잠시 시간이 있어 도로를 따라 걷다 다리를 건너 산속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에는 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이 빼곡히 우거져 있고 바위로 된 제법 넓고 깊은 웅덩이에는 시원한 물이 가득 고였다. 주변에는 상수리와 도토리가 수북이 쌓여있고, 다람쥐가 경계를 하며 도토리를 물고 다닌다. 한낮이라 더운 데다 깊은 숲속이라 보는 사람도 없어 살며시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니 너무나 시원해 신선처럼 저절로 심신이 깨끗해졌다. 돌아 올 때는 상수리를 두 주머니에 불룩하게 주워오려니 다람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휴양소로 가려고 밭둑을 접어드는 데 감나무에서 빠알간 홍시가 툭 떨어진다. 얼른 주워 홍시를 먹으려니 너무 달아서 마치 꿀을 먹는 것 같다. 옆을 보니 언제 떨어졌는지 홍시 2개가 둑에서 또 뒹굴고 있다. 다시 주우며 누가 있으면 사이좋게 하나 씩 나누어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즐거우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오늘은 어쨌든 너무 기분이 좋은 날이다.
2시가 넘자 명상을 받으러 오시는 24분의 선생님 차로 주차장이 붐비고, 강사님 두 분도 오셔서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똑바로 누워서 두 눈을 감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 다음 머리부터 차례로 온 몸을 두루두루 챙기면서 긴장을 풀어준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하고 몸의 긴장이 사르르 풀어진다. 팔도 흔들고, 허리도 돌리고, 다리도 상하로 세우면서 운동을 한다. 조금 후에는 짝을 하나 씩 정하는 데 운 좋게도 곁에 있던 20대 음악과 김 선생님과 파트너가 되어, 나무 가지를 서로의 손가락에 걸치고 밀면서 실내를 빙빙 돌다보니 재미도 있고 정도 들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상대 3명을 따라 다니며 터치하기와 2명의 짝 중 1명만 선택하기 게임 등을 할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이기까지 하였다.
저녁이 되자 배가 살살 고파 올 무렵 우리들은 떼를 지어 떡바위 펜션으로 가기위해 길을 나섰다. 길가에는 아직 덜 익은 밤송이들이 빽빽하게 매달려 있고, 붉은 딸바 열매가 먹음직스러워 각자 따서 입에 넣을 때마다 달콤한 향이 번져 우리들은 까르르 웃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올갱이찌개 식사 후 삼삼오오 모여서 잘 지은 펜션을 둘러본 후 개울가로 향했다. 가는 도중 알밤이 우수수 떨어져 우리들은 그것을 줍느라 바쁘면서도 즐거운 이야기는 쉼 없이 밤처럼 쏟아졌다. 개울물은 끊임없이 속삭이고, 동료들이 곁에서 재미있게 떠드는 수다를 들으며 알밤을 까먹다 보니 까만 밤이 칠보산 자락에서 어느새 밀려와 우리들과 섞여서 놀려고 자주 몸을 드러낸다.
밤에는 ‘호흡명상’을 받으려고 팔과 다리를 쭉 펴고 누운 다음 두 눈을 감는다. 강사 선생님의 부드러운 음성에 맞추어 호흡을 조절하며 온 몸의 긴장을 풀고 발부터 차례로 움직여 운동을 시작한다. 잠시 후에는 일어나 차츰차츰 세기를 더하며 격렬하게 댄스를 시작한다. 곁의 음악선생님도 신명이 나는지 신나게 춤을 추면서 나직이 유행가를 불러 나도 같이 따라 부르려니 어느 새 합창이 되어 흥겨운 춤과 노랫가락이 창문을 넘어 밖으로 줄달음 친다. 간식으로 먹는 수박과 포도는 달콤함에 흘린 땀방울을 보충해 주는 역할과 함께 여러 선생님들의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토실토실한 대화의 시간으로 이어져 9시 이후에도 이야기는 계속 꽃을 피운다.
다음 날은 칠보산을 가려고 입구에 들어섰을 때 내 앞을 막는 높은 산봉우리와 바위들이 너무 멋있어 입이 딱 벌어지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조금 가니 맑은 시냇물에 나무와 오묘한 바위들, 강사님의 경쾌한 해설들, 진지하게 듣는 예쁜 동료들의 자세에 또 스마트폰을 거듭 눌러댄다. 얼마 후 걷기 명상은 시작되고 비교적 평탄한 길에서 내 짝 김 선생님은 눈을 감고 난 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안전하게 돌밭 길을 소리 없이 인도한다. 큰 돌이 있으면 잡아당겨 피하게 해주고, 푹 파인 곳은 밀어서 내가 대신 빠져 건너다보니 손에 처녀의 감촉이 진하게 와 서로 친밀한 정이 내면에 감돈다. 다음에는 서로 역할을 바꿔 해보니 처음에는 돌길이 두려웠으나 점점 김 선생님께 의지하고 신뢰감이 쌓여 떨어지기가 싫다.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 눈을 뜨자 작은 폭포수가 바위에서 세차게 떨어진다. 깨끗한 물은 끊임없이 바위를 타고 흐르고, 푸른 나무들은 햇살에 빛이 난다. 이제 3시가 넘어 중간에서 하산을 하려고 온 길을 다시 내려가려니 너무나 아쉽고 정이 담뿍든 동료선생님들과 헤어지기가 너무 섭섭하다. 하루만 더 머무르고 싶다. 제천으로 가시는 음악 선생님과도 작별의 악수를 하고 차에 올라 청주를 향해서 달린다. 쌍곡이 길게 굽이굽이 메아리치며 눈에 선하다. 뒤로 아득하게 멀어져만 가는 뾰족한 바위들이 그립기만 하다.
첫댓글 나영찬님 ~
제가 칠성중 3회 입니다.
간혹 저희 카페에서 나영찬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그저 먼곳에 계신 분인줄만 알았는데....
오늘 글을 대하고 보니 매우 가까운 분이셨네요...
저는 고향이 사곡(뱃골)이지만 제 고향이나 다름없는 쌍곡 소식을 이렇게 아름답게 보내 주셔서
감사하게 읽고 갑니다..
쌍곡에서 처럼 늘 행복하고 건강하세요.